이름 없는 나날들


......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나날 동안, 그러니까, 내가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르는 이 나날 동안 나는 혼자서 먼먼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서울에서 살았던 나날 동안 외로운 저녁이면 함께 만나서 밥을 먹고 깔깔거리고 걱정 나누고, 했던 서울 사는 육 년 동안 만났던 그이들. 그이들이 있어서 좋았던 그 저녁을 위하여, 그 저녁을 위하여, 나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잔을 올려야 하리라.



마당 있는 집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난 뒤 한동안 나는 마당에다 꽃이나 약초나 채소들을 심는 데 열중했다. 꽃도 꽃이지만 나는 우리나라 채소들을 심어서 먹고 싶었다. 교포 아주머니에게서 얻은 미나리와 깻잎, 고추와 갓을 나는 마당 한 귀퉁이에다가 심었다. 기다렸다. 갓에서 싹이 나오고 깻잎이 자라고 고추에 작은 흰 꽃망울이 달리기 시작할 무렵. 우박이 내렸다. 갓김치에다 깻잎 장아찌에다가 고춧잎 무침을 먹어보리라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올랐던 나는 우박이 내리고 난 뒤 마당 귀퉁이에 서서 울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약이 올랐다. 모든 게 다 꿈이었다. 그렇게 그런 것들이 먹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이곳에서 사는 게 다 꿈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것도 다 꿈이었다. 붙잡힌 영혼이여, 몸이 무거운가, 왜 이곳에서 그곳으로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가.



늙은 학생


늙은 학생을 한 명 알고 있는데 그는 이십 년 동안 학생이었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는 집에는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전화도 없다. 그는 그 텅 빈 집 안에서 배우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분석한 것들을 정리한다. 이십 년 동안 세월은 참 많이 바뀌었으나 그는 다이애너가 죽은 것도 미국에 거대 테러 사건이 난 것도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이 터진 것도 모른다.
그가 아는 것 두 가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
그의 집 부엌 안에 살고 있던 작은 쥐 한 마리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그를 바보라고 욕하다가 드디어 그 부엌을 떠났다. 배우면서 그는 혼자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오늘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바보이고 바보이고 바보인 그 늙은 학생이 오늘 죽었다. 아무도 그의 관을 짜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자기 외에는 남을 책임져보지 않은 그를 위하여 나는 오늘 포도주 한잔.



시커먼 내속


녹차와 아주 친한 아는 분이 언젠가 물의 상처에 대해 들려주셨다. 물은 서로 부대끼며 흘러가다가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또 상처를 받는다. 녹차를 끓일 물은 그러므로 그 상처를 달래주어야 한다. 물을 두서너 시간 전에 받아두어라. 그런 다음 물을 끓이는데, 물은 또 끓을 때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끓고 난 뒤 물을 미지근하게 식혀라. 모두 물의 상처를 달래주는 일이다, 그런 다음 차에 물을 부어라.
내 속이란 얼마나 컴컴한가. 아마도 물에게는 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상처 입는 일은 아니었을까. 흐르다가, 끓다가 입은 상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진탕에서 입는 상처......



가소로운 욕심


기숙사에 살 때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으로
토끼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이 없어서 저녁밥은 못 하고 당근 오이나 잘라서 먹자, 하고 당근 껍질을 벗기다가 녀석들을 보았다. 나는 당근을 던져주었다. 오물오물 단방에 먹어치웠다. 그후로 자주 나타나서 내가 당근을 던져주면 오물오물 먹었다. 이제는 당근이 집에 없는 날에도 나타나서는 내 방 앞 잔디밭을 어슬렁거렸다. 따로 당근을 사들고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한 녀석에게는 푸른색을, 한 녀석에게는 붉은색을. 여름 내내 우리는 참 친해졌다. 용하게도 녀석들은 언제나 리본을 달고 나에게로 왔다. 껑충거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나보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리본도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수메르어를 배우는 시간 - 차창룡 시인에게


아무래도 공부를 하는 일은 제 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 했습니다.
봄이 올 무렵, 이곳 날씨는 사나워져서 도서관 창 밖으로는 사계절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날씨가 얼마간 계속되다보면 영락없이 저는 잡념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 잡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 센지 자주 책을 놓고 도서관을 빠져나와 골목길들을 거닐게 합니다. 그 골목길 사이사이에서 문득 저를 놓아버리고 싶은 인간에게 공부란 무슨 업인가, 싶습니다. 공부라는 것. 그것은 마음을 정하게 갈고 닦는 일에 속하는 것일 터이지요. 그러나... 저의 다른 업 중의 하나인 마음이 자주 어지러워지는 와중에 거닐다보면 제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무색해져버립니다. 이를테면 하루하루를 조화롭게 지내야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을 걷고는 싶지만, 그 조화라는 긴장을 유지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요즘 BC 3000년경에 씌어진 행정문서를 읽고 있는데, 마음이 어지러우면 단 한 줄도 읽기가 어려워져 이렇게 도서관을 빠져나와 골목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마음은 자주 어지러운지, 제 마음이 어느 골목이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가지고 있는지....
자주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던 만큼 자주 피곤하기도 하구요.



내가 날씨에 따라서 변하는 사람 같냐구요?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하는 사람 같냐구요?
네, 그렇게 보여요.

날씨라는 게 얼마나 사람 마음을 변하게 하는데요. 주위 환경에 민감한 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니구요. 저는 제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아주 인심이 후하답니다.
오늘 저는 날씨가 흐려서 강의를 들으러 갈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마음 굳게 먹고 갔지요. 나이 든 교수님이 뭐라고 뭐라고 하시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구요. 다만 흐린 날이면 따뜻한 우유에다 카카오 가루를 타 마시면서 이불 밑에 앉아 애거서 크리스티 영화나 보았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뜨거운 나일 강변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이나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벌어지는 살인. 살인이 벌어져도 잔혹하게 느껴지지 않고 다만 포와르와 함께 범인을 쫒으면 되는 세계. 악과 선이 분명해서 어느 누구를 향해 "저, 나쁜 놈!" 이라고 막 말할 수 있는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달콤한 카카오를 마시는 저의 작은 소망에 충실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저는 날씨가 흐리면 하지요.



불안한 날


불안하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빨래를 할 수도 없고 집안 청소를 할 수도 없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젼을 보거나 하는 일마저 할 수가 없다. 마음속에서 뭉게뭉게 나오는 불안구름 좀 봐. 왜 불안하지? 의자에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침대에 누워 있을 수도 없고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고 누군가 전화를 해도 받기가 겁난다. 아버지 기일이다. 오랫동안 기일에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아버지가 묻힌 곳과 내가 밥을 먹고사는 곳의 거리가 너무 멀다. 이승과 저승이 아니라 그 길이 너무 멀다. 아버지를 잃고 난 뒤 또 무엇을을 더 잃은 것 같다.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다.



거품의 눈물


책을 버린다.
빛이 좋은 날을 골라 쓸모 없다 싶은 책들을 골라내어 버린다. 짐이다. 싶은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오래된 여행기도 있고 철학책도 있고 유행일 때 사놓은 심리학책도 있다. 책을 다 버리더라도, 혼자 생각한다. 버릴 수 없는 책이 있을까? 그 가운데 하나, 가난한 벗의 시집 하나, 이런 시가 들어 있는 시집 하나.
인생 혹은 거품의 눈물, 그 생애에 걸친 소금기, 눈물은 왜 바다
처럼 찝찔해야만 할까, 폭풍우, 폭풍우도 없이.....
진이정의 시, 「눈물의 인생」.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죽음을 맞이하는 힘


지난 여름 어떤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로 학비를 벌었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올 무렵 그의 아들에게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을 그만두고 난 뒤에도 우리는 가끔 만나 산책도 하고 커피와 빵도 같이 먹었다. 그때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죽을 때 그냥 잠자듯이 했으면 좋겠어. 아들녀석이랑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지 의논하고 장을 볼 계획을 세우고, 아들이 장 보러 간사이 그렇게 잠자듯이," 나는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들에게 물었다. "점심때 브로콜리 수프랑 닭가슴살 구이를 먹자고 하셔서 장보러 갔다 왔더니, 소파에 앉아 계시더군요. 어머니, 불러도 대답을 안 하셔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할머니, 힘센 할머니, 정말 말씀하신 대로 하셨군요. 사는 힘도 힘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힘도 힘인것을.



종 모양의 토기, 그리고 과거를 바라보기,
아니 지나간 시간을 소처럼 우물거리기,

벗들을 그리워하기

 - 주인석 벗에게


..... 다시 저는 그날 우리들이 먹었던 저녁 밥상에 오른 두어 가지 반찬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싱싱한 굴이 있었지요, 그리고 잘 무친 나물이 있었습니다. 팔십년대와 구십년대를 통과한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지나보내고 다시 둘러앉았습니다. 어느 한때 우리가 자주 얼굴을 보고 살던 시절, 그리고 자주 얼굴을 보지는 않더라도 지상에서 맺은 인연을 기억하면서 살 때, 우리를 맺어주던 작은 기억들, 그 기억을 우물거리는 술을 조금 마시고 일찍 잠을 깬 새벽녘, 그때 우리가 먹었던 굴이 우리의 미뢰를 치면서 울컥, 한 시절을 건드릴 때, 그 기억 속에는 이 지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가꾸어낸 평화 중에 가장 크고 그리고 가장 작은 평화가 깃들여 있음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 지상의 집값


여행을 하다가 시간이 남아 기차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독일 북부 해안도시를 산책할 때이다. 마침 복덕방 앞을 지나게 되어 그 앞에 붙어 있는 집의 사진과 값을 훑어보았다. 이 도시에 있는 집값은 얼마나 되는가. 이 도시 사람들은 얼마나 일을 해야 집 한 채를 장만하나. 그리고 내가 평생 일을 한다면 이 도시에서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까? 그중에서 마음에 든 집 한 채. 정원이 있고 방이 다섯 개에다가 너른 거실이 있고 큰 부엌이 있고 벽난로가 있는 이층집. 25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얼마가 될까? 숫자에 약한 나는 그 앞에서 한참 계산을 하다가 그만둔다. 내 힘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 돈이라면 내가 벌수 없는 돈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집값 계산조차 제대로 못 하는 나에게 집이 제 발로 걸어올 리는 없지만 기차를 기다리는 그 시간, 아주 작은 아파트라도 한 칸, 언젠가 장만한다면..... 하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면 될까? 그러나 일도 일 나름. 공부한답시고 엎드려만 있다보면 머지않아 쪽박을 차리라. 그것도 깨진 놈으로.



킬링 슈트라세, 양파 썩는 냄새가 나던 집


어느 해 봄, 나는 킬링 슈트라세라는 거리로 집을 옮긴 적이 있었다. 킬링 슈트라세는 외국인과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가난한 독일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아파트촌이 즐비하고(그러니까 이곳에서 아파트촌이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아파트촌 안에는 손바닥만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창문마다 빨래가 널려 있고 학교를 빼먹은 아이들이 놀이터 화단에 앉아 빠르게 담배를 돌려 피웠다. 가끔 화단에는 쓰다 버린 콘돔이 보이기도 했고, 화단 중간 중간에 설치된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넘쳐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더러운가? 아니, 그들은 시간이 없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청소를 하러 다니거나 공사장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번다. 청소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두 번 이상 일을 하러 나간다. 새벽에 나갔다가 점심때 돌아오고 잠깐 쉬다가 오후에 또 한탕을 뛰러 나간다.
그 거리에 방을 얻은 것은 기숙사에서 살기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었다. 몇 년을 학생들 틈에 끼여 살다보면 더이상 학생들하고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고되다. 어느날 기숙사 부엌에서 언제나 교회에 나오라고 설교를 하는 신학생이 내가 끓이는 된장국 앞에서 코를 막던 날,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나는 어느 날 마음을 크게 먹고 집값이 싼 그곳에 방을 얻었다. 다섯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학생들 틈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혼자 사는 것이 지겨웠으나 턱하니 남자를 구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대리 식구를 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불을 켜야만 비로소 환해지는 혼자 사는 방이 구덕구덕 마치 장마에 핀 곰팡이처럼 내 피부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혼자 사는 일이 그리 싫은 것은 아니었으나 가끔은 누군가와 저녁에 아무 약속 없이 불쑥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다, 그런 시도가 성공할 확률은 거의 영 프로에 가까운 거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기숙사의 봄을 맞으며 떠나올 때를 생각하기,
혹은 아직 낯선 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기

- 혜경에게


.....이곳 기숙사에서 나는 벌써 일곱번째 새 봄을 맞고 있다. 컴퓨터를 켜놓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테트라 팩에 든 포도주를 한잔 마시기도 하고 그리고 너랑 함께 돌아다녔던 바다를 생각한다. 지방 대학 국문과에 다니던 시절, 그때 우린 가끔 마주 앉아 술을 마시기도 했지. 남해 바다 햇볕에 마른 쥐포가 곁에 있기도 하고 그날 서투르게 네가 담근 김치가 있기도 하고 두부를 넣고 끓인 찌개가 우리앞에 있기도 하고, 그때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웃기는 일은 말이 많은 건 내 쪽이었는데 정작 내가 그 많은 말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아마도 그래서, 말 많은 쪽이 나라서, 그 말에서 도망가고 싶은 내 마음의 어느 구석이 나를 떠밀어 다른 기슭으로 보낸 걸 거다. 그 말이라는 거, 내가 했던 그 많은 말이는거.....
시인이란 삶이 시작된 건 아마도 말로 세계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겠지만, 인위적으로 그 삶을 목 졸리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말에 대한 애증 때문은 아니었는지. 독일은 우리말을 쓰는 나라가 아니고, 난 그게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입을 자동적으로 다물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무렵 나에게는 말을 멈출 수가 없는, 혹은 이대로 가다가는 말에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말 공포' 같은 게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이 나를 부패시키고 말 것이라는 공포, 이런저런 이유로 근원을 알지 못하는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거지만 그 시절 나는 그런 걸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겪은 것은 혼자 있음. 가난함. 이런 것들이지만. 내가 하는 말에서 멀어지면서 얼마간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먼나라 언어를 배우고 아이처럼 서툰 말로 겨우 빵을 사고 뉴스나 책을 남의 언어로 남의 일처럼 읽는 동안 나는 많이 차가워지고 혹은 나에게 혹독해졌는데,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줄어들고 그곳에서 살아왔던 이야기들에서도 얼마간 놓여나게 되었는데......
말에서 놓여난 자유를 아직도 자유답게 누리지 못하고 다시 그 말의 굴레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지켜보면서, 아직 나는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고개를 흔든다. 말을 하는 근원을 나 스스로가 알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날, 그리고 그 새로운 언어가 나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날, 나는 내 코끝으로 스치던 냄새들을 새로운 말로 적을 수 있으리라. 그때면, 나는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으리.



무소식


한동안 연락이 없다. 궁금하다. 도대체 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기에 연락이 없는 걸까. 한참을 참다가 드디어 전화를 해본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불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왜  그 사람은 집에도 없고 연락도 하지 않는가.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어본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더 불안해진다. 정말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다음날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본다. 역시 받지 않는다..... 드디어 포기한다.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고 언젠가는 무슨 연락이 있겠지..... 며칠 동안 그 생각에만 골몰하다가 드디어 그 생각도 잊어버린다. 바깥에 꽃이 환하고 풀냄새가 아득하고 바람도 청랑한 김에 잊어버린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겠지.....



보기에 민망하다, 고 느끼는 나는?


서양의 고급 식당에 앉아서 소리를 내면서 수프를 들이켜는 고향 선배를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서양 백화점에서 물건값을 깎아주지 않는다고 소리소리지른 고향 선생님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카메라를 든 스무 명 남짓의 동양인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서양 교회를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것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서른 개도 넘는 선물용 쌍둥이표 과일칼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사는 친척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어떤 유명한 서양소설에 나온다는 술 500ml를 거금을 들여 사는 호사 취미를 가진 분들을 보며 민망하다고 느끼는 나는? 나는 무엇인가? 이 보잘것없는 나는 무엇인가?



우울했던 소녀


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렇게 싫었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내 뚱뚱한 실존을 드러내라고 채근질을 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이 쓰라릴 때면 나는 또 구석에 앉아서 단팥이 들어간 빵을 집어먹었다. 더 뚱뚱해질까봐 겁이 나는데도 먹었다. 빈속에 단맛이 들어가면 슬프고 외로웠다. 나는 그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천장을 올려다보던 마음이 내가 문학으로 가는 모퉁이였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허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