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우물

댄스댄스댄스

2008. 3. 27. 15:31



:::
「나를 두 번 다시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요」하고 유키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말했다.
「그렇게 불렀나?」하고 나는 물었다.
「불렀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
「불당에서 돌아왔을 때요. 그날밤」하고 그녀는 말했다.
「아무튼 두 번 다시 부르지 말아요」
「부르지 않겠어」하고 나는 말했다, 「확실히 약속해. 보이조지와 듀란듀란에 맹세코 약속해. 두 번  다시 그렇게 부르지 않겠어」
「언제나 엄마가 그렇게 부르고 있었어요, 나를 아가씨라고 말예요」
「그렇게 부르지 않겠어」하고 나는 말했다.
「그분은 언제나 내게 마음의 상처를 입혀요. 하지만 그 분은 그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를 좋아해요. 그렇죠?」
「맞아」
「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성장하는 수밖에 없어」
「성장하고 싶지 않아」
「성장하는 수밖에 없어」하고 나는 말했다. 「싫어도 모두들 성장하는거야. 그리고 문제를 안은 채 나이를 먹고 모두들 싫어도 죽어 가는 거야. 옛날부터 죽 그랬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너만이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아냐」
그녀는 눈물 자국이 난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 보았다. 「아저씨는 사람을 위로해줄 줄도 몰라요?」
「위로해 주고 있는 셈인데」하고 나는 말했다.
「절대로 빗나가 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아저씨는 요리 솜씨가 좋군요」하고 유키가 감탄하여 말했다.
「솜씨가 좋은 게 아냐. 단지 애정을 기울여 정성스레 만들고 있을 뿐이야. 그러기만 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자세의 문제야. 여러가지 사물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랑할 수 있어. 기분좋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되겠군요?」
「그 이상은 운이야」하고 나는 말했다. 「아저씨는 의외로 사람을 낮게 평가하는군요. 의젓한 어른인 주제에」하고 유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유키는 나의 피나 코라다를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맛있어」하고 그녀는 말했다.
「동의 지지」하고 나는 말했다. 「'맛있어'에 두 표」
유키는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대체 어떠한 사람인지, 나로선 잘 이해할 수가 없어요. 굉장히 성실하고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근본적으로 빗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굉장히 정상적이라는 것은, 동시에 빗나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그런한 일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요」하고 나는 설명했다. 그리고 꽤 다정해 보이는 웨이트리스에게 피나 코라다를 다시 주문했다. 그녀는 허리를 흔들면서 재빨리 음료를 날라 와서 전표에 사인을 하고는, 체샤 고양이처럼 폭이 넓은 미소를 남기고 가버렸다.
「그럼,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죠?」하고 유키가 말했다.
「어머니는 너를 만나고 싶어하고 있어」하고 나는 말했다.「자세한 것은 나도 잘 알 수 없어. 남의 집안 일이고, 약간 독특한 인물이니까. 하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 알력을 낳아온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를 넘어, 너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있어」
「사람과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찬성」하고 나는 말했다. 「'어려운'에 두 표」
「네 말은 모두 옳아」하고 나는 말했다. 「논지도 명확해.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엄마는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한 걸 제대로 설명해도,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러한 느낌도 들어」
「그러니까 초조해요」
「그것도 잘 이해할 수 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한 때에 우리 어른들은 술을 마셔요」
유키는 나의 피나 코라다를 절반쯤 주욱 들이켰다. 어항처럼 거대한 잔이어서 양이 꽤 많았다. 다 마시고 나서. 잠시후에 그녀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세우고 손으로 턱을 괸 채 멍한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좀 이상해」하고 그녀는 말했다. 「몸이 따스하고 졸리는 것 같아요」
「그럼 됐어」하고 나는 말했다 「기분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요. 좋은 기분이에요」
「좋아 긴 하루였어. 열세 살이든 서른네 살이든 간에 마지막으로 약간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귄리는 있어」
나는 돈을 치르고, 유키의 팔을 잡고 해변을 따라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방문의 자물쇠를 따주었다.
「이봐요」하고 유키가 말했다
「뭐야?」하고 나는 물었다
「잘자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
「이봐요. 남자는 그토록 강하게 여자를 갖고 싶어지나요?」하고 어느날 해변에 누워 있을 때 갑자기 유키가 내게 물었다.
「그래. 그 강도에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원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남자라는 것은 여자를 갖고 싶어하게 되어 있어. 섹스에 대해서는 대개 알고 있겠지?」
「대개 알고 있어요」하고 유키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성욕이라는 게 있어」하고 나는 설명했다. 「여자하고 자고 싶어하는 거지. 자연스러운 일이야. 종족 보존을 위해-」
「종족 보존 따위에 대해 묻고 있지 않아요. '보건' 시간의 강의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요. 그 '성욕'에 대해 묻고 있어요. 그게 어떤 것인가를.」
「이를테면 네가 새라고 하자」하고 나는 말했다.「그리고 하늘을 날으는 일을 굉장히 기분이 좋으므로 아주 좋아한다도 하자.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자주 날을 수가 없어. 날씨나 풍향이나 계절에 따라 날을 수도 있고 날을 수 없을때도 있거든. 하지만 날을 수 없는 날이 계속되면, 힘도 남아 돌고 초조해져요. 자신이 부당하게 깎아내려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왜 날을 수 없을까 하고 화도 나고 말야. 이러한 느낌을 알 수 있겠어?」
「알 수 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언제나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그럼 얘기는 간단해. 그게 성욕이야」
「전번에는 언제 하늘을 날았어요? 지난 번에 아빠가 안겨준 여자를 만나기 이전에는?」
「지난 달 말경이야」하고 나는 말했다.「즐거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언제나 즐거워요?」
「반드시 그렇진 않아」하고 나는 말했다.「불완전한 생물이 둘이 모여 하는 일이니까, 언제나 잘 될 수만은 없지. 실망하는 때도 있어. 기분 좋게 날고 있다가 그만 나무에 부딪치는 수도 있어」
「음」하고 유키는 말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새가 하늘을 날면서 한눈을 팔다가 그만 나무에 부딪치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는가 보다. 나는 약간 불안해졌다. 그렇게 설명해도 되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소녀에게 그릇된 얘기를 해준 게 아닐까? 하지만 괜찮겠지, 어차피 성장하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니까.
「하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잘 되어갈 확률이 향상되지」하고 나는 계속 설명했다. 「요령을 알게 돼, 그러나 대체로 이에 비례해서 성욕 자체는 서서히 감소되어 가지, 그러한 거야.」
「비참해」하고 유키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정말」하고 나는 말했다.



:::
「미안해」하고 나는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왔었어요 뭐라고 호통을 치거나 유리창을 두드리고 차를 흔들곤 했어요」하고 그녀는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라디오의 스위치를 껐다. 「굉장히 무서웠어요」
「미안해」
그리고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일순 얼어 붙은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가 갑자기 그 색깔을 잃고, 조용한 수면에 나뭇잎이 떨어졌을 때처럼 표정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입술이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형성하면서 천천히 약간 움직였다. 「아니, 아저씨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왔어요?」
「알수없어」하고 나는 말했다. 내 목소리는 어딘지 잘 알 수 없는 장소로부터 들려오고 있는것 같았다. 그 발걸음 소리의 음향과 마찬가지로 깊이와 넓이가 혼탁되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천천히 땀을 닦았다. 내 얼굴 위의 땀이, 차갑고 단단한 막처럼되어 있었다. 「잘 알 수 없어. 대체 뭘하고 있었을까?」
유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살며시 손을 뻗쳐 내 볼에 가져왔다. 그 손가락 끝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그녀는 내 볼에 손가락을 댄 채, 냄새를 맡을 때처럼 숨소리를 내면서 숨을 들이 마셨다. 그녀의 작은 코가 약간 부풀었다가 고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1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보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올릴 수는 없는 일,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일, 설명하려 해도 누구에게도 잘 설명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요」그녀는 몸을 기대듯이 하면서 내 볼에 살며시 볼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10초나 15초쯤 그대로의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가엾어라」하고 그녀는 말했다.
「왜 그럴까?」하고 나는 말하며 웃었다. 별로 웃고 싶지는 않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사로운 보통 인간이야, 어느 편이냐 하면, 실제적인 인간이야. 그런데 왜 언제나 이토록 기묘한 일에 끌려들어 버리는 것일까?」
「글쎄, 왜 그럴까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내게 묻지 말아요. 나는 어린애고, 아저씨는 어른이예요」
「틀림없어」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기분을 잘 알 수 있어요」
「난 잘 알 수 없어」
「무력감」 하고 그녀는 말했다. 「뭔가 거대한 것에 의해 휘둘려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와 같은 기분」
「그럴지도 몰라」
「그러한 때에는 어른은 술을 마셔요」
「정론이야」하고 나는 말했다.



:::
혼자 있게 되는 것은 좋은 기분이다. 물론 유키와 둘이서 있는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혼자 있게 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고, 실패해도  누구에게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우스운 일이 있으면 혼자 농담을 하고 혼자 킥킥거리며 웃고 있으면 되었다. 아무도 「그러한 농담은 시시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지루하면 재떨이라도 바라보고 있으면 되었다. 내가 가만히 재떨이를 바라보고 있어도, 아무도 「왜 재떨이 따위를 바라보고 있는가」하고 묻지 않았다. 좋든 싫든 나는 혼자 보내는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것이다.
혼자있게 되자, 내 주위의 빛의 색깔이나 바람 냄새마저도 약간ㅡ그러나 확실히ㅡ 변화된 것처럼 느껴졌다.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면 몸 안의 공간이 다소간 넓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재즈FM방송에 주파수를 맞추어 콜만 호킨즈나 리 모건 따위를 들으면서 공항까지 유유히 운전하였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은, 억지로 찢겨진 것처럼 흐트러져, 지금은 구석 쪽에 약간씩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무역풍이 야자나무 잎들을 흔들면서, 그러한 구름 조각들을 천천히 서쪽으로 흘려 보내었다. 747이 은빛의 쐐기처럼 격렬한 각도로 하늘에 빠져 들어 가는 게 보였다.
혼자있게 되자, 나는 갑자기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머리 속에서 급속하게 중력이 변화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사고는 그러한 중력의 변화에 잘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도 멋있는 일이었다. 좋지 않은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는 하와이다, 제기랄, 무엇때문에 생각에 잠겨야 한단 말인가' 나는 머리를 비우고 운전에 신경을 집중하면서, <스퍼피>나 <사이드 와인더>에 맞추어 휘파람과 외풍의 중간쯤 되는 음색의 휘파람을 불었다. 시속 160킬로의 속도로 언덕을 내려가자, 주위의 바람이 요란하게 윙윙거렸다. 언덕길의 각도가 바뀌자, 태평양이 선명한 남빛으로 물든 채 시계에 가득 퍼졌다.
이제,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로써 휴가는 끝났다. 아무튼 끝나게끔 되어서 끝난 것이다.



:::
「내가 보기에 자네는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하고 고혼다는 말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잠시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느 부분에선 그래. 나름대로 즐기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결코 행복한 건 아냐. 자네에게 어떤 종류의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어떤 종류의 것이 결여되어 있어. 그래서 정상적인 생활을 보낼 수 없어. 그저 댄스의 스텝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계속 춤을 출 수는 있거든. 개중에는 감탄해 주는 사람도 있지.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나는 완전한 제로야. 세른넷인데 결혼도 하지 않고 있고, 변변한 직업도 갖고 있지 않아. 하루살이야. 공단 주택도 임대받지 못해. 지금은 데리고 잘 상대도 없구. 앞으로 30년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해?」
「어떻게 되겠지」
「하긴」하고 나는 말했다. 「될지도 몰라. 안 될지도 몰라. 아무도 알수 없다구. 모두 똑같애」
「하지만 나는 현재 '부분적으로나마' 즐기고 있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자네는 썩 잘하고 있네」
고혼다는 고개를 저었다. 「잘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한없이 푸념을 늘어놓고, 또 자네를 귀찮게 만들고 있겠나?」
「그러한 때도 있지」하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등비수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냐」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수가 막혔을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 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이것이 필요한 것이면 이는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
5월 7일에 유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돌아왔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지금부터 어디로 놀러 가지 않겠어요?」
나는 마세라티를 타고 아카사카의 맨션까지 유키를 맞으러 갔다.
유키는 마세라티를 보자 이마를 찌푸렸다.
「이 차는 어떻게 된 거죠?」
「훔친 건 아냐. 샘 속에 자동차를 빠트렸더니 이자벨 아자니 같은 샘의 요정이 나와서 '지금 빠트린 건 금으로 만들어진 마세라티입니까, 아니면 은으로 만들어진 BMW입니까' 하고 묻길래 아뇨, 내 차는 동으로 만들어진 중고 스바루입니다. 하고 대답했지. 그러자 ㅡ 」
「쓸데없는 농담은 그만 해요」하고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예요. 정말 이건 대체 어떻게 된거죠?」
「친구하고 일시적으로 교환한 거야」하고 나는 말했다. 「내 스바루를 꼭 타고 싶다고 하기에 바꾸었어. 그 친구에게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
「친구요?」
「그래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도 한 명쯤은 친구가 있어」
그녀는 자동차의 조수 자리에 올라 자동차 안을 휙 둘러보았다.
그리고 또 이마를 찌푸렸다. 「이상한 차예요」하고 그녀는 내뱉듯이 말했다. 「얼간이 같애」
「그러고 보니 소유주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더군」하고 나는 말했다. 「표현은 약간 달랐지만」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또 소오낭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유키는 한참 달리고 있어도 죽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스틸리 댄의 테이프를 작은 소리로 켜면서, 주의 깊게 마세라티를 운전하였다. 매우 좋은 날씨였다. 나는 알로하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녀는 엷은 면바지에 핑크색의 랄프 로렌표 폴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색깔이 햇볕에 그을은 피부에 썩 잘 어울렸다. 마치 하와이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앞에는 가축을 운반하는 트럭이 달리고 있는데, 돼지들이 판자로 만들어진 울짱 틈사이로, 우리가 타고 있는 마세라티를 붉은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돼지는 스바루와 마세라티의 차이 따위는 알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돼지는 차이화라는 게 어떤 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기린도 알지 못하고, 뱀장어도 알지 못한다.
「하와이는 어땠어?」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움찔했다.
「어머니하고 잘 지냈어?」
그녀는 어깨를 움찔했다.
「서핑은 능숙 해졌어」
그녀는 어깨를 움찔했다.
「괭장히 건강해 보이는데. 햇볕에 그을은 게 무척 매력적이야. 마치 카페오레의 요정처럼 보이는군. 등에 보기 좋은 날개를 달고, 스푼을 어깨에 둘러메면 어울릴 것 같아. 카페오레의 요정. 네가 카페오레 편이 되면, 모카와 브라질리아와 콜롬비아와 킬리만자로가 몽땅 달려 들어도 절대로 당할 수 없어. 온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카페오레를 마시지. 온 세계가 카페오레의 요정에 매혹돼. 햇볕에 그을은 네 모습은 그토록 매력적이야」
힘껏 순수하게 칭찬해 주었는데, 통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어깨를 움찔 할 뿐이었다. 혹은 역 효과가 난 것일까? 내 순수함이 어디선가 일그러져 버린 것일까?
 「생리현상이야?」
그녀는 역시 어깨를 움찔했다.
나도 어깨를 움찔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네게 한 가지 물어보겠어」하고 나는 말했다.
「너는 하꼬네에 돌아가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까 혼자 도쿄에 있겠다는 거지. 그러나 여기서 너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유키는 어깨를 움추렸다. 「아저씨하고 놀고 있어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허공에 매달려진 듯한 침묵이었다.
「멋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신의 말 같아. 단순 하면서도 계시로 충만해 있어. 죽 둘이서 놀며 지낸다. 마치 낙원에 있는 것 같아. 나와 너는 가지각색의 장미꽃을 꺽거나, 황금의 연못에 보트를 띄우고 물놀이를 하거나, 밤색의 복슬 강아지를 씻어 주면서 나날을 보내지. 배가 고프면 위에서 파파야가 떨어지고, 음악이 듣고 싶어지면, 천상에서 보이조지가 두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말할 나위도 없이 멋있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나도 슬슬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돼. 언제까지나 너하고 놀면서 지낼 수는 없어. 그리고 너의 아빠로부터 돈을 받을 수도 없어」
유키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가 아빠나 엄마로부터 돈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처럼 짓궃은 표현은 하지말아요. 나 역시 이렇게 아저씨를 불러내곤 하는 일이 때로는 무척 괴로워졌어요. 어쩐지 아저씨의 일을 방해하며 폐를 끼치고 있는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만일 아저씨가 ㅡ」
「돈을 받으란 말인가?」
「그렇게 해주면, 적어도 나는 마음이 편해질 수 있죠」
「너는 알지 못하고 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든간에 직업적으로 너와 만나고 싶진 않아. 개인적인 친구로서 만나고 싶어. 네 결혼식 때에 사회자로 부터 '이분은 신부가 열세 살 때에 신부의 직업적인 남성 유모 노릇을 하던 분입니다' 라고 소개 받고 싶지 않아.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직업적인 남성 유모란 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고 질문할 것임에 틀림없어. 그보다는 '이분은 신부의 열세 살 때의 보이 프랜드 였습니다'라고 소개받고 싶어. 그편이 훨씬  모양이 좋아」
「어이가 없어」하고 유키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난 결혼식 따위는 올리지 않아요」
「좋아. 나도 결혼식 따위에는 나가고 싶지않아. 시시한 연설을 듣고, 잘못 만들어진 벽돌 같은 케이크를 선물로 받는 일 따위는 정말 싫어. 시간의 소모야. 내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아. 그러니까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해서 한 이야기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친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다. 경비로는 더더욱 살 수 없다'는 거야」
「그러한 테마로 동화라도 써 보면」
「멋있어」하고 나는 말하고 웃었다. 「정말 멋있어. 너는 점점 대화의 요령을 익혀 왔어. 좀더 능숙해지면 나하고 둘이서 익살스러운 재담을 훌륭히 해낼 수 있어」
유키는 어깨를 움추렸다.
「이봐요」하고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진지하게 이야기 하자구.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매일 놀고 싶다면, 매일 놀아도 좋아. 특별히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시시한 일인 걸. 그런건 어찌 됐든 상관없어.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해. '돈을 받고 너와 어울려 놀지는 않아.' 하와이의 경우는 예외야. 그건 특별한 행사야. 여비도 내주고, 여자도 안겨주었지. 하지만 덕분에 너의 신용마저 잃어가고 있지. 내 자신이 싫어졌어. 이제 그러한 짓은 두번 다시 하지 않겠어. '종결이야' 앞으로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아무도 쓸데없는 참견은 할 수 없어. 돈도 내놓을 수 없어. 나는 딕 노스와도 다르고, 비서인 프라이데이와도 달라. 나는 나이지, 누구에게 고용되어 있지도 않거든. 만나고 싶으니까 너하고 만나. 네가 나하고 놀고 싶다면, 나는 너하고 놀거야. 너는 돈 문제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
「정말 나하고 놀아줄 거예요?」하고 유키는 발톱의 매니큐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상관 없어. 나나 너도 세상으로부터 스르륵 흘러내리고 있는거야. 새삼스레 우려할 필요도 없겠지. 유유히 놀면서 지내면 돼」
「왜 그토록 친절해요?」
「친절한 게 아냐」하고 나는 말했다. 「시작한 일을 도중에 그만둘수 없는 성격이야. 네가 나하고 놀고 싶다면, 흡족할 때까지 놀면돼. 내가 너와 삿포로의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무슨 인연이야. 어울릴 바엔 마음이 흡족할 때까지 어울려」
유키는 잠시 샌들 끝으로 지면에 작은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네모진 소용돌이꼴의 도형이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저씨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게 아니예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나는 이에 대해 약간 생각해 보았다. 「끼치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네가 염려할게 못 돼. 그리고 결국 나 역시 너와 함께 있는게 좋으니까 함께 있는 거야. 의무적으로 어울리고 있는게 아냐. 왜 그럴까? 왜 나는 너하고 있는것을 좋아할까? 나이차이도 이토록 많고, 공통된 화제도 별로 없는데 말야. 이는 아마 네가 내게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기 때문일 거야. 내속에 죽 묻혀져 있던 감정을 상기시키는 거야. 내가 열세 살이나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쯤 되었을 무렵에 품고 있던 감정이야. 만일 내가 열다섯 살이었다면, 너와 숙명적으로 연애를 하고 있었을거야. 이는 이전에 말했었지? 」
「말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구」하고 나는 말했다. 「너와 함께 있으면, 이따금 그러한 감정이 되돌아오는 수가 있어. 바로 가까이에 느끼는 거야. 그러한건 나쁘지 않아. 그게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는, 너도 머지않아 알 수 있을 거야」
「지금도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그래?」
「나도 지금까지 많은 걸 상실해 왔는 걸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그럼 이야기는 간단해」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10분쯤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또 신사 안의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는 아저씨밖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정말이에요. 그래서 당신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거의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
「내가 지난번에 그에 관해 심한 말을 했죠?」
「딕 노스 말야?」
「네」
「형편없는 얼간이라고 말했지」하고 나는 말했다.
유키는 지도책을 문에 부착된 포켓에 되넣어 놓고, 창틀에 한쪽 팔꿈치를 대고는 가만히 전방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요. 내게도 친절했고, 아주 잘해주었어요. 서핑도 가르쳐 주었어요. 외팔인데도 양팔이 있는 사람보다 더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엄마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죠.」
「알고 있어. 나쁜 사나이가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심한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알고 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어, 네가 나쁜 게 아냐」
그녀는 죽 앞을 향하고 있었다. 한 번도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열어젖혀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여름의 바람이, 그녀의 반듯한 앞머리칼을 풀잎처럼 흔들고 있었다.
「가엾지만, 그는 그러한 타입의 사람이었어」하고 나는 말했다.
「나쁜 사나이가 아냐.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할 만도해. 하지만 이따금 품질이 좋은 휴지통처럼 다루어져, 온갖 사람들이 온갖 물건들을 거기에 집어던지고 가거든. 집어 던지기 쉬운 거야. 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경향이 갖추어져 있는가 봐. 너의 어머니가 잠자코 있어도 모두들 특별히 보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야」범용함이란 흰 웃옷에 묻은 숙명적인 얼룩과 같은 것이다. 한번 묻은 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불공평하군요」
「원리적으로 인생이란 건 불공평한 거야」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심한 짓을 한 듯한 느낌이 들어요」
「딕 노스에 대해서?」
「네」
나는 한숨을 쉬며 차를 길가에 세우고, 키를 돌려 엔진을 껐다.
그리고 핸들로부터 손을 떼고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생각은 정말 쓸모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하고 나는 말했다. 「후회할 정도면 너는 처음부터 제대로 공평하게 그를 대하고 있었어야 했어. 적어도 공평해지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했다구. 하지만 넌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네게는 후회할 자격이 없어. 전혀 없어.」
유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좀 지나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은 어떻든간에 너만은 그처럼 쓸모없는 생각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알겠어, 어떤 종류의 일을 입밖에 내서는 안 되는 거야. 입밖에 내면 그건 거기서 끝나버려. 다시 몸에 깃들지 않아. 너는 딕 노스에게 한 일을 후회해. 그리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정말로 후회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돼. 하지만 만일 내가 딕 노스였다면 나는 네가 그처럼 간단히 후회하기를 바라지 않을거야. 입밖에 내어 '심한 짓을 했다' 고 타인에게 말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야. 이는 예의의 문제이며, 절도의 문제야. 너는 그걸 배워야 해」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는 관자 놀이를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잠들어 버린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따금 속눈썹이 희미하게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입술이 약간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몸안에서 울고 있는가 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열세 살짜리 소녀에게 너무 많은걸 바라고 있는 것일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처럼 훌륭해 보이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상대가 몇 살이든,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든간에,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은 적당히 처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쓸모없는 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키는 똑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움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쳐 살며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
「괜챦아, 네가 나쁜게 아냐」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너무 편협한가 봐. 공평하게 보면 너는 썩 잘하고 있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한줄기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무릎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은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훌륭하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하면 되죠?」하고 잠시 후에 유키는 말했다.
「아무 일도 안 해도 돼」하고 나는 말했다. 「말로 나타낼 수 없는걸 소중히 하면 돼. 그게 사자에 대한 예의야. 시간이 지나면 여러가지를 알 수가 있어. 남아야 할 것은 남고, 남지 않을 것은 남지 않거든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줘.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네가 해결하는 거야. 내 말이 너무 어려운가?」
「약간」하고 유키는 말하고,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확실히 어렵군」하고 나도 인정했다. 「내가 하고 있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우선 이해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리하고 여겨지기 때문이지. 하지만 나는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말하면 이렇지. 사람이라는 건 어이없이 죽어버리는 거야. 사람의 생명이라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한 거야. 그러니까 사람은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람과 접촉해야 해. 공평하게,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간단히 울면서 후회하곤 하는 인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
유키는 문에 기대는 듯한 자세로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어려운 일처럼 생각되는데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려운 일이야, 아주」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어. 보이조지처럼 노래가 서투른 뚱뚱보도 스타가 될 수 있었거든. 노력하기에 달렸어」
그녀는 약간 웃고,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하는 말을 대충 알 수 있을것 같아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이해가 빠르군」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엔진을 걸었다.
「하지만 왜 그토록 보이조지 만을 눈엣가시로 여길까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왜 그럴까」
「사실은 좋아하는거 아니예요」
「이 다음에 천천히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볼께」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우선 재떨이를 비우고,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재를 걸레로 닦고, 코코아 찌꺼기가 달라붙은 컵을 내다놓았다. 그리고 부엌을 대충 정리하고, 물을 끓여 진한 커피를 만들었다. 부엌은 딕 노스가 일하기 쉽도록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죽은지 하루도 못 되어 거기에는 뚜렷한 붕괴의 양상이 엿보였다. 싱크대 속에는 무질서하게 식기들이 처넣어져 있고, 슈가 포트의 뚜껑은 열려진 채로 있었다. 스테인레스 레인지에는 코코아가 잔뜩 달라 붙어 있었고 식칼은 치즈따위를 자른 채의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가엾은 사나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그 나름의 질서를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것은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눈깜짝할 사이다. 사람이라는 건 자신과 제일 어울리는 장소에 그 그림자를 남기고 간다. 딕 노스의 그것은 부엌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가까스로 남겨진 그 불안정한 그림자도, 눈깜짝할 사이에 소멸되어 버린다.
가엾게도,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이외의 말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나는 이따금 마음이 내키면 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강한가고 내가 물으면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언제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듯한 ㅡ초점이 맞지 않고 멍한ㅡ어조로 말했다. 그 어조가 아무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아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보통이예요. 보통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어머니는?」
「..... 멍하니 계세요. 일도 별로 하지 않아요. 종일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어요. 맥이 빠져버린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식료품 구입이라든지?」
「식료품 구입은 아줌마가 해주니까 괜챦아요. 배달도 해주고요. 우리 두 사람은 둘이서 멍한 상태로 있을 뿐예요. 이봐요..... 여기 있으면 어쩐지 시간이 정지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나요?」
「유감스럽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지. 시간은 자꾸 지나가지. 과거가 불어나고 미래가 적어져 가거든. 가능성이 줄어들고, 회한이 불어 나는 거야」
유키는 잠시 잠자코 있었다.
「목소리에 별로 기운이 없군」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그래요?」하고 나는 되풀이 했다.
「뭐예요 그게?」
「뭐예요 그게?」
「흉내 내지 말아요」
「흉내 내는 게 아냐. 그건 너 자신의 마음의 메아리야. 커뮤니케이션의 결여를 증명하기 위해 비에른 보그가 격렬하게 되돌아오는 거야. 스매시!」
「여전히 별난 사람이야」하고 유키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어린애들하고 똑같은 짓이예요」
「틀려. 똑같지 않아. 내 경우는 깊은 내성과 실증의 정신에 의해 확고히 뒷받침되어 있어. 이는 비유로서의 메아리야. 메시지로서의 게임이야. 단순한 어린애들의 흉내내기와는 질이 달라」
「흥, 어이가 없어」
「흥, 어이가 없어」하고 나는 되풀이 했다.
「그만해요. 그건, 이제!」하고 유키는 외쳤다.
「그만하겠어」하고 나는 말했다.「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목소리에 별로 기운이 없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응, 그럴지도 몰라요」하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엄마의 기분에 끌려들어가 버려요. 그런 의미에서 그 분은 강한 사람이니까. 영향력이 있어요. 틀림없이. 그 분은 주위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요. 자신의 일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강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말려들어 버려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녀가 블루이면 나도 블루가 되는 거예요. 건강할때는 나도 그 영향으로 건강해지지만 말예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거기서 나와서 나라고 둘이서 노는 편이 낫겟군」하고 나는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요」
「내일 그리로 맞으러 갈까?」
「응, 좋아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당신과 얘기를 하니까 약간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좋았어」하고 나는 말했다.
「좋았어」하고 유키가 흉내를 내었다.
「관둬」
「관둬」
「내일만나」하고 나는 말하고, 흉내를 내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
고혼다의 존재는 나에게 있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와 그는 친구였다. 그가 만일 키키를 죽였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는 내 친구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상실하여왔다. 안 된다. 아무래도 전화를 할 수 없다.
나는 녹음 전화 장치의 스위치를 꽂고, 전화벨이 울려도 절대로 수화기를 집어들지 않았다. 만일 고혼다로부터 지금 전화가 걸려와도, 지금의 상태로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몇번씩 전화 벨은 울렸다. 누가 걸어온 전화인지는 알 수 없다. 유키인지도 모른다. 유미요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벨 소리에 응하지 않았다. 그게 누구에게 걸려온 것이든 간에, 지금의 나로서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 일곱 번이나 여덟 번쯤 벨이 울리고는 끊어졌다. 나는 전화 벨이 울릴 때마다 전화국에 근무하고 있던 여자  친구를 생각해 내었다. 「달나라로 돌아가요, 당신은」하고 그녀는 내게 말하였다. 정말이야,  네 말이 옳아,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확실히 달나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공기가 내게는 너무 진하다. 이곳의 중력이 내게는 너무 무겁다.
4, 5일쯤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하고, 나는 그동안 약간만 식사를 하고, 약간만 잠을 자고,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몸의 기능을 잘 파악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들어,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앗다. 여러가지가 상실되어 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계속 상실하여 가고 있다' 언제나 혼자 뒤에 남겨져 버린다. 이런 식으로,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나 고혼다도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상황도 다르다. 생각하거나 느끼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서로를 상실하려 하고 있다.
나는 키키의 일을 생각하였다. 나는 키키의 얼굴을 생각해 내었다. 「왜 그러는 거예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죽어 땅 속에 묻혔다. 죽은 '정어리'와 마찬가지로, 결국 키키는 당연히 죽어야 했기에 죽어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내게는 그렇게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체념이었다. 광대한 해면에 내리 쏟아지는 비처럼 조용한 체념이었다. 나는 슬픔조차도 느끼지 않았다. 영혼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어루만지면, 산뜻하고 기묘한 감촉이 느껴졌다. 모든게 소리도 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모래 위에 그려진 표지를 바람이 날려 버리듯이, 이는 그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만일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하더라도, 만일 자네가 키키를 죽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자네에게는 죽일 의향이 없었어」
그는 양손의 손바닥을 펴고 가만히 응시하였다. 「없었어. 있을 턱이 없어. 왜 내가 키키를 죽여야 하나. 나는 그녀를 좋아했어. 나와 그녀는 매우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였어. 우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어. 나는 그녀에게 아내 이야기를 했어. 키키는 잘 들어 주었어. 왜 내가 그녀를 죽여야 해? 하지만 죽인 거야, 이 손으로. 살의따위는 없었어. 나는 자신의 그림자를 죽이는 것처럼 그녀를 목졸라 죽였어. 나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동안, 이건 내 그림자가 아니었어. 키키였어. 하지만 이는 어둠의 세계에서 일어난 거야, 여기와는 다른 세계야. 알겠어? 여기가 아냐. 그리고 권유한 건 키키야. 내 목을 조르라고 키키가 말했어. 좋아요, 목을 졸라 죽여요, 하고 말했어. 그녀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용서한 거야. 거짓말이 아냐, 정말로 그랬어. 나는 알 수 없어. 그러한 일이 일어날까? 모든게 꿈처럼 여겨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실이 용해되어 가는 거야. 왜 키키가 나를 유혹하나. 왜 내게 자신을 죽이라는 따위의 말을 하나?」



:::
「그를 만났어요?」
「만났어」하고 나는 말했다. 「만나 이야기를 했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지. 아주 정직하게 이야기를 했어. 그리고 그대로 죽어 버렸어. 나와 이야기하고 나서 곧 바다에 마세라티를 처넣은 거야」
「내 탓이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네 탓이 아냐. 누구의 탓도 아냐. 사람이 죽는 데는 그나름의 이유가 있어.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아. 뿌리와 마찬가지야. 위에 나와 있는 부분을 조금이라도 끌어당기고 있으면, 질질 딸려나와. 인간의 의식이라는 건 깊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거야. 뒤얽혀 있고 복합적이며.....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진정한 이유는 본인밖에 알 수 없어. 본인도 알지 못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는 그 출구의 문의 손잡이를 죽 잡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때문에 나를 틀림없이 미워할 거예요」하고 유키는 말했다.
「미워하진 않아」하고 나는 말했다.
「지금은 미워하고 있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나중에 미워할 거예요」
「나중에도 미워하지 않아.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는다구」
「설령 미워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래도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릴 거예요」하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예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상하군, 너도 고혼다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
「그래요?」
「그래, 그도 무엇이 사라질까봐 죽 신경을 쓰고 있었어. 하지만 뭘 그렇게 걱정해?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라지는 거야. 우리는 모두 이동하며 살아고 있어. 우리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사물은 우리가 이동함에 따라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 버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사라질 때가 오면 사라진다구. 그리고 사라질 때가 올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아. 이를테면 너는 성장해가지. 앞으로 2년이 지나면 그 멋진 원피스도 몸에 맞지 않게 돼. 토킹 헤즈도 낡아빠진 것처럼 느껴질지도 몰라. 그리고 나와 드라이브 따위를 하고 싶지도 않겠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해. 생각해 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
「하지만 나는 죽 당신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해요. 그건 시간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주는 건 기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공평하게 말하면, 너는 시간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어. 모든걸 처음부터 단정해 버리지 않는게 좋아. 시간이라는 건 부패와 같은 거야. 뜻하지 않은 일이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변해 버려.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녀는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다.
「정말로 나을 미워하지 않아요?」
「물론」하고 나는 말했다. 「미워하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그것만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어」
「절대로?」
「절대로. 2500퍼센트 미워할 리가 없어」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혼다를 좋아했었죠?」하고 유키가 물었다.
「좋아했어」하고 나는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눈 속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하지만 나는 가까스로 이를 억눌렀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였다. 「만날때마다 좋아져 갔어. 그러한 일은 별로 없는데. 특히 나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는 말야」
「그가 그 사람을 죽였어요?」
나는 잠시 선글라스 너머로 초여름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어」
그는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어요?」하고 유키가 물었다.
「어떡할까」하고 나는 말했다. 「아무것도 정해 두지 않았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지만 어쨌든 한 번 더 삿포로로 돌아가겠어. 내일이나 모레라도, 삿포로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나는 유미요시를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양사나이. 거기에는 나를 위한 장소가 있다. 나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 번 더 그리로 돌아가 풀려진 테를 메워야 한다.



:::
키키의 꿈
나는 키키의 꿈을 꾸었다. 이는 아마 꿈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꿈과 유사한 행위다. '꿈과 유사한 행위'란 대체 무엇일까?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게 있다. 우리의 의식의 변경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간단히 나는 그것을 꿈이라 부르기로 한다. 역시 그 표현이 가장 실체에 가까우리라고 여겨지므로. 나는 새벽녘에 키키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시간은 새벽녘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국제 전화. 나는 그 호놀룰루의 다운 타운에 있는 방의 창틀에, 키키 같아 보이는 여자가 남겨두고 간 전화번호를 돌리고 있었다. 드륵드륵 하고 회선이 이어져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져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하나의 번호가 차례로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수화기를 단단히 귀에 대고, 그 흐린 소리를 세어 보고 있었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뎗 번, 하고 나는 세고 있었다. 열두번째에 누가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그 방에 있었다. 호놀룰루의 다운타운의 휑뎅그렁한 그 '죽음의 방'에. 시각은 점심 때인듯했다. 천장의 채광용 들창으로부터 곧바로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빛은 몇 개의 굵은 기둥이 되어 바닥으로부터 직립하고, 그 속에 작은 티끌이 떠돌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빛의 기둥은 칼로 잘라내어진 것처럼 선명하면서도 예각적으로, 남국의 태양의 격렬함을 방안에 전달하고 있었다. 빛이 없는 부분은 어둡고 차가웠다. 그 차이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마치 해저에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 바의 소파에 앉아,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전화코드가 길게 바닥을 가로질러 뻗어가고 있었다. 코드는 어두운 부분을 가로질러, 빛 속을 빠져나가고, 그리고 멍하고 희미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굉장히 긴 코드다. 이렇게 긴 코드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전화기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의 가구 배치는 이전에 보았을 때와 똑같았다. 침대, 테이블, 소파, 의자, 텔레비젼, 플로어 스탠드, 그러한 것들이 부자연스러우리만큼 제멋대로 배치되어 있다. 방의 냄새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밀폐된 채로 있던 방의 냄새다. 공기가 탁하고 곰팡이 냄새가 난다. 하지만 6개의 백골은 없어져 버렸다.  침대 위나 소파, 텔레비전 앞의 의자, 식탁 등에서도 백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사라져 버렸다. 식탁 위에 있던 먹고 있는 중이던- 식기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전화를 소파 위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하지만 머리가 약간 아팠다. 굉장히 높은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얼얼한 느낌의 아픔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거기에 주저앉았다.
제일 먼 곳의 희미한 어둠 속에 있는 의자 위에서 무엇이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쑥 일어나 구두 소리를 내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키키였다. 그녀는 천천히 어둠 속에서 나타나서 빛 속을 가로질러 식탁의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이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청색의 원피스에 하얀 숄더 백.
키키는 거기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아주 부드러웠다. 그녀는 빛의 영역이나 그림자의 영역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거기까지 가보려다가 어쩐지 기가 죽어 그만두었다. 게다가 관자놀이에는 아직 희미한 아픔이 남아 있었다.
「백골은 어디로 갔나?」하고 나는 말했다.
「글쎄요」하고 키키는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없어졌겠죠」
「네가 없앴어?」
「아뇨, 그냥 없어졌어요. 당신이 없애지 않았나요?」
나는 옆에 놓아둔 전화기를 문득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가벼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을까? 여섯 구의 백골」
「당신 자신이에요」하고 키키는 말했다. 「여기는 당신의 방인걸요, 여기에 있는 건 모두 당신 자신이에요」
「내 방」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돌핀 호텔은? 거기는 뭔가?」
「거기도 당신의 방이예요, 물론. 거기에는 양사나이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있고」
빛의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다. 딱딱하고, 질이 고르다. 그 속의 공기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흔들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곳에 내 방이 있군」하고 나는 말했다. 「이봐, 나는 죽 꿈을 꾸고 있었다구. 돌핀 호텔의 꿈이야. 거기서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고 있었어. 매일처럼 그와 똑같은 꿈을 꾸고 있었어. 돌핀 호텔이 굉장히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고, 거기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고 있었다구. 나는 그게 너인 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무래도 너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될 듯한 느낌이 들었어」
「누구나 당신을 위해 울고 있어요」하고 키키가 말했다. 아주 조용하고, 신경을 위무하는 듯한 목소리였다.「하지만 그건 당신을 위한 장소인 걸요. 거기서는 누구나 당신을 위해 울어요」
「하지만 너는 나를 부르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만나기위해 돌핀 호텔까지 갔어. 그리고 거기서..... 여러가지 일이 시작되었어. 이봐, 네가 나를 부르고 있었지? 그리고 네가 나를 이끌었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을 부르고 있던 것은 당신 자신이에요. 나는 당신 자신의 투영에 지나지 않아요. 나를 통해 당신 자신이 당신을 부르며, 당신을 이끌고 있었던 거예요. 당신은 당신의 그림자를 파트너 삼아 춤을 추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당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동안, 이것은 자신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고혼다는 말했다. 이 그림자를 죽이면 잘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모두들 나를 위해 울까?」
그녀는 이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며시 일어서서 구두 소리를 내면서 다가와 내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뻗쳐, 손가락 끝을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매끄럽고 가느다란 손가락이었다. 그녀는 이어 내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당신이 울 수 없는 것을 위해 우리가 우는 거예요」하고 키키는 조용히 말했다. 마치 타이르듯이 천천히. 「당신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것을 위해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당신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을 위해 우리가 소리 내어 우는 거예요」
「네 귀는 아직 그대로인가?」하고 나는 물었다.
「내 귀는 ㅡ」하고 말하고 그녀는 빙긋 웃었다. 「아직 그대로예요. 이전과 똑같아요」
「한 번 더 내게 귀를 보여 주지 않겠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그 기분을 음미하고 싶어. 네가 언젠가 레스토랑에서 내게 귀를 보여주었을 때의, 세계가 다시 태어나는 듯한 그 기분을. 나는 죽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돼요. 그건 언제나 볼 수 있는게 아녜요. 그건 정말로, 보기에 적합한 때에만 볼 수 있는거예요. 그때는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언제든 또 보여 드리죠. 당신이 진정으로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을때에」
그녀는 다시 일어나, 천창으로 곧바로 비쳐드는 빛의 기둥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강한 빛의 티끌 속에서 그녀의 몸은 당장이라도 분해되어 사라져 버릴 것처럼 보였다.
「이봐, 키키, 넌 죽었니?」하고 나는 물었다.
빛속에서 그녀는 빙글 몸을 회전시켜 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고혼다 말예요?」
「그래」하고 나는 말했다.
「고혼다는 자신이 나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하고 키키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는 나를 죽였을지도 몰라요. 그에게 있어서는 그래요. 그에게 있어서는, 그가 나를 죽였어요. 그건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는 나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일을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나를 죽일 필요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그러지 않고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어요. 불쌍한 사람이었어요」하고 키키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어요. 그저 사라졌을 뿐. 사라지는 거예요. 옆에 나란히 달리고 있는 전철에 옮아타는 것처럼. 그게 사라진다는 것이에요. 알겠어요?」
알 수 없다고 나는 말했다.
「간단해요. 보고 있어요」
키키는 이렇게 말하고, 바닥 위를 가로질러, 벽을 향해 자꾸 걸어갔다. 벽 앞에 이르러서도 보조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벽 속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구두 소리도 사라졌다.
나는 죽 그녀가 흡수된 벽의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벽이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빗 속의 티끌만이 여전히 천천히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또 약간 아팠다. 나는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가만히 그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도, 호놀룰루에서 내가 이끌려 갔던 그때도, 그녀는 마찬가지로 벽에 흡수되어 갔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요? 간단하죠?」하고 말하는 키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도 해 봐요」
「나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간단하다고 했쟎아요? 해보세요. 곧바로 그대로 걸어가면 돼요. 그러면 이쪽으로 올 수 있어요. 무서워하면 안돼요.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까」
나는 전화기를 손에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코드를 질질 끌면서 그녀가 흡수된 부근의 벽을 향해 걸어갔다. 벽이 가까워지자 나는 약간 기가 죽었지만, 그래도 보조는 늦추지 않고 그대로 벽에 부딪쳐 갔다.
하지만 몸이 벽에 부딪쳐도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내 몸은 불투명한 공기의 층을 빠져 나갔을 뿐이었다. 공기의 질이 약간 변화한 듯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손에 든 채 그 층을 빠져나오고, 그리고 내 방의 침대로 돌아왔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전화기를 무릎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간단해」하고 나는 말했다. 「괭장히 간단해」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대어 보았지만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이는 꿈일까? 아마 꿈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러한 걸 알 수 있겠는가?



:::
이봐, 유미요시, 나를 더 이상 외돌토리로 만들지 말아 다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게는 네가 필요해. 나는 외돌토리가 되고 싶지 않다구. 네가 없으면 나는 원심력에 의해 우주 가장자리로 날려가 버릴 듯한 느낌이 들어. 제발 내게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어딘가에 연결시켜 다오. 현실의 세계에 연결시켜 주기 바란다. 나는 요괴에 홀리고 싶지 않아. 나는 보통의 서른네 살이 된 사나이야. 내게는 네가 필요하단 말야.
「사라져요?」
「이 세계로부터 사라질까 봐, 소멸될까 봐」
유미요시는 웃었다. 「그렇게 간단히 사라지진 않아요. 괜찮아요. 안심해요」
「이봐, 그렇지 않아. 너는 알지 못하고 있어. 우리는 자꾸 이동해 가고 있어. 그리고 이동해감에 따라 여러가지가,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가지가 사라져 간다구.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무엇 하나 머물러 있지 않아. 의식 속에는 머물러 있지. 하지만 이 현실의 세계로부터 사라져 가는 거야. 나는 그게 걱정이야. 유미요시, 나는 너를 구하고 있어. 내가 무엇을 이토록 구하는 건 거의 없었던 일이야. 그러니까 네가 사라지기를 원치 않아」
유미요시는 내가 한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우스운 사람이군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약속해요. 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내일 당신을 만날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줘요」
「알았다」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체념했다. 체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만 해도 좋았다고 나는 자신있게 타일렀다.
「잘자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당신은 나를 갈구하고 있는 거군요?」
「아주 격렬히」하고 나는 말했다. 「모든게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을 했어. 그리고 나는 너를 갈구하고 있어」
「격렬히」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스커트 자락을 또 당겼다.
「그래, 아주 격렬히」
「한 바퀴 돌아 어디로 돌아왔어요?」
「현실로」하고 나는 말했다. 「꽤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현실로 돌아왔어. 여러가지의 기묘한 것들 속을 통과해 왔어. 여러사람들이 죽었어. 여러가지가 상실되었어. 굉장히 혼란되어 있었는데, 그 혼란이 해소된 건 아냐. 아마 혼란은 혼란스러운 대로 존속되어 가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느껴. 나는 이로써 한 바퀴 돌았다는 걸, 그리고 여기는 현실이야. 나는 한 바퀴 도는 동안 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되어 있었어. 하지만 어떻게든 계속 춤을 추었지. 제대로 스텝을 밟았어. 그래서 이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밀한 걸 지금은 도저히 설명할 수 있을것 같지 않아. 하지만 나를 신용해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너를 갈구하고 있고, 이는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네게도 중요한 일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그럼 나는 어떡하면 좋죠?」하고 유미요시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감동하여 당신과 자면 돼요? 멋있어, 그토록 구해지고 있다니 최고야! 라는 식으로」
「틀려, 그렇지 않아」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적당한 말을 찾았다.
하지만 적당한 말 따위는 물론 없었다.「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건 정해져 있는 일이야.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어. 너는 나하고 자는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처음에는 그럴 수 없었어. 그러는게 부적당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 때까지 기다렸지. 한 바퀴 돌았어. 지금은 부적당하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 나는 당신과 자야 한다는 말이에요?」
「논리적으로 확실히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해. 설득의 방법으로서는 가장 나쁘리라고 생각해. 그건 인정해. 하지만 정직히 말하려면 이렇게 되어 버린다고. 그렇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어. 이봐, 나도 보통의 상황이면 제대로 순서를 밟아 너를 설득해. 나도 그 정도의 방식은 알고 있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방법적으로는 남들 만큼 제대로 설득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아. 이는 더 단순한 일이야. 그러니까 이는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 없어. 능숙하게 해내느냐의 여부의 문제가 아냐. 나하고 너는 자는 거야. 정해져 있어. 정해져 있는 것을 나는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아. 그러한 짓을 하면, 거기에 있는 중요한 게 깨져 버리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
유미요시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자신의 시계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군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
나는 면도와 샤워를 하고 밖에 나가 아침의 거리를 산책하고 그리고 던킨 도너츠에 들어가 도너츠를 먹고, 커피를 두 잔 마셨다.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나도 일을 시작해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키가 공부를 시작한 것처럼, 나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되는 것이다. 삿포로에서 일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거의 3년동안 계속 눈치우는 작업,  곧 생업에 종사해온 끝에, 나는 뭔가 자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문장. 시나 소설이나 자서전, 편지 따위도 아닌, 자신을 위한 단순한 문장.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나는 유미요시의 몸을 생각해 내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확인하고 봉인한 것이다.
나는 행복스런 기분으로 초여름의 거리를 거닐고,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 후 호텔의 로비에 있는 화분의 큰 나무 밑에 앉아, 프런트에서 유미요시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
「사라지지 않았어」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하고 그녀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아요」 그럴까 하고 나는 그녀를 껴안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세계는 취약하고 그리고 위태로운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간단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에 있던 백골은 아직 하나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양사나이의 뼈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 백골이 나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 멀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내 죽음을 가만히 계속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멀리서 돌핀 호텔의 소리를 들었다. 마치 멀리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밤 기차의 소리처럼.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면서 올라가고 그리고 멎었다. 누군가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방문을 닫았다. 돌핀 호텔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게 삐걱거리고 모든 게 낡아빠진 소리를 냈다. 나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울 수 없는 것을 위해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유미요시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유미요시는 내 팔 속에서 푹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몸 속에는 한 조각의 잠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말라붙은 샘처럼 나는 깨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포옹하듯이 살며시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 이따금 소리내지 않고 울었다. 나는 상실된 자를 위해 울고 아직 상실되지 않은 자를 위해 울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간 울었을 뿐이었다. 유미요시의 몸은 부드럽고 그리고 내 팔 속에서 따사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현실을 그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조용히 날이 밝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머리맡에 자명종의 바늘이 현실의 시간에 맞추어 천천히 회전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것은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 팔의 안쪽에 유미요시의 숨이 내쉬어져 그 부분만이 따스하게 젖어 있었다.
현실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이윽고 시계 바늘이 일곱시를 가리키고 여름의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비쳐들어 방바닥에 약간 일그러지고 네모진 도형을 그렸다. 유미요시는 푹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머리칼을 젖혀 귀가 드러나게 하고 거기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갔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하고 나는 그대로 3분이나 4분쯤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의 말하는 방식이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고 표현이 있다. 목소리가 잘 나올까? 내 메시지가 현실의 공기를 잘 흔들 수 있을까? 몇 가지 문구를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을 골랐다.
「유미요시, 아침이야」하고 나는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