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귀하게 자란 탓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까지 성격을 버린 아름다운 소녀들이 모두 그렇듯이, 그녀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젊었기 때문에(스물하나인가 둘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성향을 상당히 불쾌하게 느끼곤 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습관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자신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녀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가, 그녀의 몸의 어딘가를 요령있게 절개해서 그 에고를 해방시켜 주었다면, 그녀도 훨씬 편해졌을 것이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 주위에는 그녀보다 강한 인간이라고 할 만한 이는 한 명도 없었으며, 나만 하더라도 젊었을 때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다만 불쾌할 뿐이었다.
그녀가 어떠한 이유로-이유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야겠다고 결심을 하면, 어떠한 왕의 군대라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 불쌍한 희생자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능숙하게 막다른 골목으로 유인해 벽에다 밀어붙이고, 마치 잘 삶아진 감자를 '주걱'으로 으깨듯이 완벽하게 상대방을 때려눕혔다. 그 뒤에는 얇은 종이 정도의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것은 분명히 대단한 재능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결코 논리적인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감상적인 약점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는 있었다. 그리고 마치 야생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꼼짝 않고 몸을 엎드리고 호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다가, 타이밍을 포착해서 상대방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답석 물어 그것을 갈기갈기 찢었다. 대개의 경우 그녀의 말은,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억지거나 요령 좋은 속임수였다.
그래서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당한 사람도, 주위에서 보고 있던 우리도, 어째서 그 정도의 일로 승부가 끝나 버렸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데, 요컨대 그때는 이미 그녀에게 약점을 단단히 잡혔기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게 된 후다. 권투에서 말하는 '다리가 굳어 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매트 위에 쓰러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녀로부터 그런 꼴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와 같은 광경은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것은 논쟁도 아니고, 말다툼도 아니고,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정신적 학살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러한 면이 굉장히 싫었지만, 그녀 주위의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러한 이유로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그녀가 머리가 좋고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그녀의 그런한 경향을 조장했다. 이른바 악순환이다. 출구가 없다. <꼬마 검둥이 삼보>에 나오는 세 마리의 호랑이처럼, 버터가 될 때까지 야자나무 주위를 계속 빙빙 돌게 된다.
그룹 내의 다른 여학생들이 그녀에 대해서 그 당시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평가하고 있었는지는 유감스럽게도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의 그룹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소위 방문자와 같은 자격으로 관여하고 있었으므로, 여학생들의 속마음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대개가 스키 친구들이고, 세 개 대학의 스키 동호회와 비슷한, 또한 그 일부분이 모여서 형성된 기묘한 조직이었다.
그들은 겨울 방학에는 오랫동안 스키 합숙을 하고, 그 밖의 시즌에는 모여서 연습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모두 함께 쇼난 해안으로 수영을 하러 가거나 했다.
인원은 전부 열둘에서 열셋 정도고, 모두가 말쑥한 차림이었다. 말끔하고 느낌이 좋고, 친절했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 그들 중 누군가 한 사람을 특별히 기억해 보라고 한다면, 절대로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들은 내 머리 속에서 녹아 버린 초콜릿처럼 질척하게 뒤섞여 있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분리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구별 같은 것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녀만은 별도 였지만.
나는 스키에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흥미가 없었지만, 고등 학교때 친구가 그 그룹에 속해 있고, 내가 어떤 사정에 의해서 이 친구의 아파트에 한 달쯤 얹혀살게 되면서 그 그룹의 멤버들과 서로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마작의 점수 계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되지만, 어쨌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나에게 매우 친절해서 스키 여행에 나를 초대해 주기까지 했다.
엎드려팔굽혀펴기에만 흥미가 있다고 해서 나는 그 제의를 거절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말투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스키보다는 엎드려팔굽혀펴기를 훨씬 좋아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나와 함께 지내던 친구는 처음부터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끝까지 줄곧 그녀에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대개의 남자들이 넋을 잃게 되는 그런 타입의 여자였다. 나도 좀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첫눈에 그녀에게 반해 열을 올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다. 세 가지 포인트를 확보하기만 하면, 그 대부분의 특질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명해 보이고, 활기에 차 있고, 요염하다는 세 가지 말이다.
그녀는 몸집이 작고 야위었으나 멋지게 균형잡힌 몸매라서, 온몸에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반짝반짝 빛났으며 입술은 고집스럽게 일직선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따금 생긋 미소를 지으면, 그녀 주위의 공기는 무슨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한 순간에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녀의 인품에 호감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미소만은 좋아했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 고등 학생때에 영어교과서에 '봄에 사로잡혀서'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미소는 꼭 그러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누가 따뜻한 봄날의 양지를 비평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에게는 정해진 특정한 연인이 없었기 때문에, 그룹 내의 남학생 두세 명 가량-내친구도 그 중 한 사람이었지만-이 그녀에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특별히 상대를 정하지도 않고, 그때 그 자리의 상황에 따라서 능숙하게 그 세명의 남학생을 요리했다.
세사람도 최소한 표면상으로는 서로를 끌어내리지 않고, 예의 바르게, 그런대로 즐거운 듯이 지냈다. 나는 그런 모습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지만, 결국 그것은 타인의 문제였지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내가 일일이 참견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가 거북스러웠다. 나는 나름대로 응석 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권위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얼마만큼 응석둥이로 자랐는지를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었다. 응석을 부리고 칭찬을 받고, 원하는 것을 모두 자기것으로 만들면서 그녀는 자랐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응석둥이로 키우거나 용돈을 마음대로 쓰게 하거나 하는 정도의 일은 어린애가 응석둥이가 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에 있는 어른들의 성숙되고 굴곡된, 다양한 종류의 감정의 방사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책임을 누가 떠맡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책임을 회피하거나, 아이에 대해서 모두가 좋은 얼굴을 하고 싶어할 때, 그 아이는 확실히 응석둥이가 된다.
마치 여름날 오후에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강한 자외선에 알몸을 노출 시키듯이,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연약한 그들의 '에고'는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입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응석을 모두 받아주거나 아무때나 용돈을 많이 주거나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만나서 두세 마디 말을 나누고, 그 뒤 얼마 동안은 그녀의 언동을 보기만 했는데도, 나는 완전히 정나미가 떨아지고 말았다. 설사 그 원인이 그녀 이외의 누군가에게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령 인간의 에고가 다소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기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조금이나마 노력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이후, 그녀를 피하지는 않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한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이시카와 현인가, 어딘가 그 근처의,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유명한 고급 여관집 딸이라고 한다. 오빠가 하나 있었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나서, 외동딸처럼 소중하게 자랐다. 성적도 톱이고 미인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늘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동급생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동경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녀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하여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워 상당한 수준이었다고한다. 나는 구군가의 집에서 꼭 한 번 그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다지 음악에 정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주의 정서적인 깊이 따위를 제대로 판단 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음감은 놀랄 정도로 예리했고, 적어도 악보를 틀리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그녀가 음악 대학에 들어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깨끗이 피아노를 포기한 뒤에 미술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기모노의 디자인과 염색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미지의 분야였으나, 어릴 때부터 옛날 기모노에 들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몸에 밴 경험적인 육감의 도움도 받아 가면서 그녀는 그 방면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끌 정도의 재능을 발휘했다.
요컨대, 어느 길로 나아가더라도 그 나름대로 보통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며 능숙하게 처리해 나가는 타입이었다. 스키도, 요트도, 수영도, 무엇을 시켜도 그녀는 잘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주위의 어느 누구도 그녀의 약점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녀의 비관용성은 예술가 기질로 간주되었고, 신경질적인 성향은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으로 파악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룹의 여왕이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세금 대책의 일환으로 네즈에 가지고 있던 방 두개짜리 우아한 맨션에 살면서 마음이 내키면 피아노를 두들겼다. 그리고 옷장에는 새 정정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그녀가 손바닥을 치기만 하면(이것은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몇명의 남자 친구들이 그녀의 일을 처리해 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가 장차 그 분야에서 상당히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당시, 그녀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1970년인가 1971년인가, 그 무렵의 일이다.
나는 이상한 우연에 의해서, 꼭 한 번 그녀를 안은 일이 있다. 안았다고 해도 섹스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끌어안은 것 뿐이다. 술에 취해서 모두가 뒤섞여 자고 있었는데, 문득 깨어보니까 우연히도 옆에서 그녀가 자고 있었던 것뿐이다. 흔히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일을 지금까지도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깼는데, 문득 옆을 보니까 그녀가 나와 함께 담요를 덮고 기분 좋게 자고 있었다. 그때는 6월 초로 모두가 뒤섞여 자기에는 안성맞춤인 게절이었다. 요를 깔지 않고 다다미 위에 누워 잤기 때문에, 아무리 젊다고는 하지만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셨다.
더군다나 그녀가 내 왼팔을 베개로 삼아 베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이 말라서 미칠 지경이었으나, 머리를 치워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목을 살며시 들어올리고 그 틈에 팔을 빼낼 수도 없었다. 그런 짓을 하는 도중에 그녀가 눈을 떠 이상한 방향으로 오해라도 하는 날이면, 나로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잠시 동안 상황의 변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가 반대편으로 돌아누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팔을 뺀 뒤 물을 마시러 가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규칙적으로 숨을 쉴 뿐이었다. 내 셔츠의 소매가 그녀의 숨결로 따뜻하게 젖었기에 그것이 묘하게 간지러웠다.
15분인가 20분 동안을 나는 그냥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도 그녀가 움직이지 않아서 결국에 나는 물 마시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갈증은 견딜 수가 없었으나, 당장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왼팔을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억지로 고개를 돌려 베갯머리에 놓여 있던 누군가의 담배와 라이터를 발견하고, 오른팔을 뻗어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러면 한층 더 목이 마를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담배를 한 개비 피웠다.
하지만 실제로 담배를 다 피우고, 그 꽁초를 가까이에 놓여 있던 빈 맥주 캔에 집어 넣어 끄고 나니, 이상스럽게도 갈증의 괴로움이 담배를 피우기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숨 돌리고,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
아파트 근처를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어서, 그 곳을 왕래하는 심야 트럭의 짓눌린 듯한 편편한 타이어 소리가 얇은 유리창 너머 방안의 공기를 희미하게 흔들어댔고, 몇 사람이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한 밤중에 낯선 방에서 잠을 깬 대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도대체 내가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완전한 제로인 것이다.
여자와의 관계가 묘하게 복잡해진 탓에 하숙집에서 쫓겨나고, 곤경에 부딪히고, 그래서 친구의 아파트에 신세를 지게 되고, 스키도 타지 않는 주제에 영문도 모르는 스키 동호인 그룹에 끼게 되고, 결국에는 아무리 해도 좋아질 수 없는 여학생에게 팔베개까지 해주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런 짓을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봐도 특별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자기를 단념하고 다시 눈을 뜨고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나의 왼팔 위에서 그녀가 몸을 움직였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왼팔이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마치 나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모습으로 내 몸에 바짝 몸을 밀착시켜왔다.
그녀의 귀가 나의 코끝에 있고, 희미해진 전날 밤의 오드콜로뉴와 땀냄새가 났다. 구부러진 그녀의 다리가 내 넓적다리에 걸쳐져 있었다. 숨소리는 아까와 다름없이 조용하고 규칙적이었다. 따뜻한 숨결이 나의 목에 와 닿고, 옆구리의 근처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유방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딱 달라붙는 셔츠에 플레어드 스커트를 입고 있어서, 나는 그녀의 몸의 곡선을 뚜렷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다른 경우고, 상대가 다른 여자였다면, 나는 그런 상황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그녀라는 이유로,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상황에 도대체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을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 내가 처한 어처구니없는 상화은 구제할 길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한층 더 난처한 것은, 나의 페니스가 그녀의 다리와 밀착되어 딱딱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계속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기는 했지만, 어쩌면 내 페니스의 변화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잠시 후에, 마치 잠의 연장이라도 한 것처럼 살며시 팔을 뻗어서 나의 등에 감고, 내 팔안에서 약간 몸의 방향을 바꿨다. 그때문에 그녀의 유방은 좀더 강하게 나의 가슴에 밀착되고, 나의 페니스는 그녀의 부드러운 아랫배에 닿게 되었다. 상황은 한층 더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나를 그런 상황에 몰리게 한 그녀에 대해서 나름대로 화가 났지만, 그와 동시에 아름다운 여자를 안는 행위 속에는 일종의 따스함 같은 것이 배어 있어서, 그와 같은 몽롱한 가스 모양의 감정이 이미 내 몸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나는 이미 어디로도 도망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또 그녀가 나의 그런 정신 상태를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고 있었는데, 팽팽한 페니스가 지닌, 그 기묘한 웃지 못할 상황 앞에서는 노여움 따위는 이미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나는 체념하고 오른팔을 그녀의 등에 둘렀다. 그래서 우리는 힘껏 서로를 끌어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는 체했다. 나는 그녀의 유방을 가슴에 느끼고, 그녀는 나의 딱딱한 페니스의 감촉을 배꼽 바로 밑에 느끼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귀와 위태로울만큼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경계선을 응시하고, 그녀는 내 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든 체하면서,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는 상상을 하고 있었으며, 그녀는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따뜻하고 매끈매끈한 페니스를 만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손에 잡듯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무척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내 페니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내 페니스는 내 페니스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남자의 페니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던 내 페니스였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의 작은 팬티와 그 속에 감싸여 있는 따스한 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녀도,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질에 대해서, 내가 그녀가 생각하는 페니스에 대해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들은 질에 대해서, 남자들이 페니스에 대해서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걸 느낄지도 모른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상당히 망설이고 나서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손가락을 집어 넣지 않고, 그녀는 그녀대로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지 않았다. 그것을 억제하는 게 그때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지만, 결국은 그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이상으로 상황을 밀고 나갔다면, 우리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감정의 미로에 빠져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느낀 것처럼 그녀도 그렇게 느꼈다.
우리는 그 자세로 30분 가량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가 아침 햇살이 방안 구석구석을 또렷하게 비출 때가 되어서야 몸을 떼고서 잠을 청했다. 몸을 뗐는데도 내 주위에는 아직도 그녀의 살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교외에 아파트를 얻어서 이사를 했고, 그 기묘한 그룹과는 소원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묘하다고는 해도 그것이 어디까지나 나의 독단적인 생각이지 그들은 자신들을 기묘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쪽에서 보면, 내 존재가 훨씬 더 기묘했을 것이다.
나는 한 동안 신세를 진 친절한 친구하고는 그 뒤 몇 번인가 더 만났다. 그때는 당연히 그녀에 대해서 얘길 했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아마도 변함없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자, 그 친구도 간사이 지방으로 돌아가 버려서, 서로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12년인가 13년이 흘렀고, 나도 거기에 맞춰서 나이를 먹었다.
나이를 먹는 것의 이점 중 하나는, 호기심을 갖는 대상의 범위가 한정된다는 것인데,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기묘한 부류의 사람들과 사귀게 될 기회가 옛날에 비해서 훨씬 줄어들었다. 이따금 우연한 기회에, 옛날에 만났던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있지만, 그것을 마치 기억의 가장자리에 걸려 있는 단편적인 풍경과 같아서,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특별히 그립지도 특별히 불쾌하지도 않았다.
다만 몇 년인가 전에,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어느 음반 회사의 디렉터 일을 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조용하고, 꽤나 느낌이 좋은 사람이었다. 앞머리와 이마가 닿는 부분이 마치 경기장의 잔디처럼 깨끗이 직선으로 가다듬어져 있었다. 나는 일 관계로 그와 만났던 것인데 필요한 이야기가 끝나자, "집사람이 이전에 무라카미 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하더군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옛날 성을 말했다. 그 이름과 그녀의 존재가 한참 동안 머리 속에서 연결이 되지 않았으나, 대학의 이름과 피아노 얘기를 듣고,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그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이 나는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의, 그 뒤의 역정을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씨를 잡지의 화보 같은 데서 보고, 금세 알아보았다더군요. 만나보고 싶어해요."
"저도 만나 보고 싶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그립다기보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와 그녀가 만나던 시기는 짧았고, 직접 말을 건 일조차 거의 없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자신의 옛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는게 왠지 이상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부드러운 유방과 머리카락 냄새와 나의 발기한 페니스에 대해서 생각해냈다.
"매력적인 사람이었지요. 건강하시죠?" 하고 나는 물었다.
"글쎄요, 그저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하고 그는 말을 고르듯이 느릿느릿 대답했다.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요?" 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아뇨, 특별히 몸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요. 글쎄요, 몇 년 동안 그다지 건강하다고도 할 수 없어요."
도대체 어디까지 질문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를 않아서, 나는 애매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뒤의 그녀의 운명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 말씀드려서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순서대로 이야기 하기 힘들어서요.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상당히 건강해졌어요. 적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건강하죠" 하고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역시 큰맘 먹고 질문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집안일을 여쭤 보는게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데가 있어서요."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말보로의 빨간 담뱃갑을 꺼내 가지고 불을 붙였다. 골초인지 오른손의 집게 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의 손톱이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런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상관없습니다. 특별히 숨길 것도 없고, 그 정도로 볼썽사나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냥 사고 같은 겁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 하는게 어떨까요?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다방을 나와서 황혼이 진 거리를 한동안 걷다가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조그만 바에 들어갔다. 그 곳은 그가 늘 다니는 단골집이었다. 그는 바의 가장자리에 앉더니, 친숙한 말투로 큰잔에 담은 위스키 더블 온더록과 페리에 한병을 주문했다.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그는 온더록 위에 페리에를 조금 따라 대충 휘저어서 단숨에 절반 가량을 마셨다. 나는 맥주에 조금 입을 댔을 뿐, 그 다음에는 잔 속의 거품의 행방을 바라보면서 상대방이 이야기하길 기다렸다. 그는 위스키가 식도를 따라 내려가 제대로 위장 속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한 지 10년쯤 됩니다. 처음에 알게 된 것은 스키장에서였죠. 그때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간지 2년째 되는 때였고,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이따금 아르바이트로 아카사카의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을때였어요. 그녀의 집안과 우리 집안 모두 결혼을 허락했어요. 그녀는 무척 아름다워서 저는 홀딱 반해 있었죠.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이야기예요."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는 맥주 잔에 다시 입을 갖다 댔다.
"평범했지만 저는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했어요.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에게 애인이 몇 사람인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어요. 저는 현실적인 인간이어서 만일 과거에 뭔가 사연이 있었다 하더라도, 현실에 해를 미치지 않는 한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본질적으로는 평범한 가라고 생각합니다. 일도, 결혼 생활도, 가정도. 만일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평범함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이죠.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집사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이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거죠. 물론 저로서는 집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죠. 집사람은 습관적으로 여러가지를 원하고, 또 그것을 손에 넣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그 종류도, 양도 매우 한정된 것이었죠."
그는 다시 위스키를 주문했다. 내 맥주는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결혼한 지 3년 뒤에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습지만, 굉장히 귀여운 아이였어요. 살아있었다면 벌써 초등 학생이 되었겠군요,"
"죽었습니까?" 하고 나는 그의 말 중간에 끼여들어 물었다.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흔히 있는 사고였죠. 갓난애가 자다가 몸을 뒤척였는데 그때 이불이 얼굴에 감겨서 숨이 막혀 죽은 겁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단순한 사고였어요. 운이 좋았으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나 결국은 운이 나빴던 겁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요. 몇몇 사람들은 집사람이 갓난애를 혼자 내버려두고 쇼핑을 나갔던 것을 탓했고, 집사람도 그 일로 자신을 비난했어요. 그게 다 운이죠. 저나 당신이 비슷한 상황에서 아이를 돌보았다 해도, 사고는 같은 확률로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렇겠지요" 하고 나는 동의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사람의 죽음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어찌 된 셈인지 사고가 많았거든요. 자주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애가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특별히 신기한 일도 아니었죠. 물론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을 잃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겠지요. 그것만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죠.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소중한 것은,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줄곧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문제는 제가 아니고, 집사람이었어요. 집사람은 그러한 감정적인 훈련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집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지요?"
"네" 하고나는 간단히 말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아주 특수한 사건입니다. 저는 이따금 인간의 삶의 상당 부분이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다 주는 에너지에 의해서, 혹은 결손감이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규정 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 너무나 무방비 상태였어요. 요컨대" 하고 말하고 나서 그는 양손을 포갰다.
"집사람은 자기 일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타인의 부재가 가져다 주는 아픔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죠."
그는 웃으면서 내 얼굴을 보았다.
"결국 집사람은 극도로 망가진 겁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저는...... 그럴듯한 표현이 떠오르지를 않는군요..... 어쨌던 저는 집사람을 사랑합니다. 설사 집사람이 자신이나 나나 주위의 모든 것에 상처를 입히고 돌아다녔다 하더라도, 저는 그녀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부부라는 게 그런 거죠. 결국 그 뒤 1년 가량을 쉴새없이 티격태격하며 지냈어요. 구원할 길 없는 1년이었습니다. 신경도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었고, 미래의 희망같은 것이 전혀 없었죠. 그러나 우리는 그 1년을 극복해 냈어요. 우리는 갓난애의 존재와 결부되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 새로운 맨션으로 이사를 했죠."
그는 두 잔째의 위스키를 홀짝 들이키고는 기분 좋은 듯이 심호흡을 했다.
"아마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도, 몰라보실 겁니다" 하고 그는 정면의 벽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나는 잠자코 맥주를 마시고 땅콩을 집어 먹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집사람을 좋아합니다"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제 아이는 낳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하고 나는 한참 있다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불가능하겠지요. 저는 그렇다 치고 집사람이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저로서는 어느쪽이라도 괜찮습니다만."
바텐더가 그에게 위스키를 더 마실지를 물었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기회를 봐서 집사람에게 한번 전화를 주십시오. 그녀에게는 아마 그러한 자극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인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명함 뒤에 볼펜으로 전화 번호를 적어 나에게 건네 주었다. 놀랍게도 그들과 나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계산을 했다. 우리는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그는 하다 남은 나머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회사로 들어갔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녀의 숨소리와 피부의 따스함과 부드러운 유방의 감촉이 아직도 나의 내부에 남아 있기 때문에, 나는 14년 전의 그날 밤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