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우물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된다

2008. 3. 28. 14:12



좋아하는 REM과 펄 잼 · 세릴 크로우 · 수잔 베가 · 존 메렌캠프 등의 신보가 속속 나와, 덕분에 요즈음 하루하루가 즐겁다. 좋아요, 마음이 푸근해요. 역시 나는 옛날부터 이렇게 심플한 미국의 록 음악을 좋아한 모양이다. 후티와 블로피시도 좋아한다. 한때 영국 음악에 밀려 젊은 사람들이 '어어, 미국에도 록이 있어요?' 라고 심각하게 말한 적이 있는데…… 음, 있었지, 있었어.
비틀스를 시작으로 하는 '리버플 사운드'가 잇달아 등장하였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이미 미국의 록과 모던 재즈의 뜨거운 세례를 받은 상태였으므로 '어어, 영국에도 록이 있었어?'란 식으로 유행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실은 비틀스나 롤링 스톤즈나 '이게 아닌데'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크리던스나 도어즈 쪽이 오히려 감동적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줄곧 듣고 있었지만, 비틀스나 스톤즈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절실하게 실감하게 된 것은 고작해야 7,8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리스의 한 섬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비틀스가 듣고 싶어 내내 들었다. 그래서 '화이트 앨범'을 들으면 지금도 그리스의 가을 오후, 인적없는 해안이 눈앞에 떠오른다.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고, 하늘은 파랗고 끝없이 높고, 구름은 마치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얗다. 소나무 숲의 냄새도 난다. 생각해 보면 '화이트 앨범'=그리스의 해안이라는 것도 좀 묘하지만.
그런데 '화이트 앨범' 하면, 그 옛날 어디선가 본 재킷에 '오블라디 오블라다'의 가사가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고 씌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우와, 굉장하다, 초현실적인 가사야. 과연 존 레논(인지 폴 매카트니인지)이다' 싶어 가사를 귀 기울여 들어보니

Obladi, Oblada,
Life goes on, blah!

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문장상 이 블라는 브래지어의 브라(bra)가 아니라 역시 환호 소리 같은 blah!가 아닐까, 틀림없이. 그래야 운율에 맞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는 이미지가 너무 재미있어 나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하긴 뭐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해봐야 별 볼일 없지만.
본의 아니게 아침부터 속옷 얘기를 하여(지금 아침이다) 황송한데, 최근데 발매된 브라이언 애덤스의 CD 중에 '나는 그대의 속옷이 되고 싶다(I Wanna Be Your Underwear)'란 곡이 들어 있는데, 그 가사란 것이 내가 오늘날 들은 노래 중에서 제일 한심했다. 들을 때마다 '대체 뭘 주장하자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의 침대 시트가 되고 싶다
나는 당신의 털을 깎는 면도날이 되고 싶다
나는 당신이 걷어차는 하이힐이 되고 싶다
나는 당신의 립스틱이 되고 싶다
나는 당신의 속옷이 되고 싶다…….

이런 식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위태위태한 가사가 끝없이 나열된다. 으음, 이거야 원 편집광의 세계잖아 하고 생각한다. 최근 그런 유의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사람이 집요하게 쫓아다니면 여자분들 좀 무섭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이미 정상적인(비교적 정상적인) 어른 사회의 일개 시민이 되었기 때문이고, '어머, 이 가사 멋지다'고 생각하는 젊은 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가 하나의 사실로서 이미 정착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음악 자체는 아주 좋아하지만 말이다.
'18 til i die(죽을 때까지 18)' 이라고 제목이 굉장히 멋진 CD가 들어왔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18세라면 정말 피곤하겠죠.
전혀 무관한 화제인데, 인생은 흐르고 흘러 지난번 '이삼류급 러너스 클럽' 다섯 명이 처음으로 역 이어달리기에 다녀왔다. 와세대의 OB 세명과 사진대학 OB 두명, 인원 구성이 좀 이상하지만 장소는 요코하마의 '어린이 나라'였다. 그런데 11시 출발로 알고 현지에 가보니 9시 출발로 변경되어 있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아사히 신문사가 후원하고 있는데. 그래서 모두들 동행한 이가라시를 '멍청'하다는 둥, '얼이 빠졌다'는 둥, '인간 말종' 이라는 둥 걷어차고 놀리고 신나게 혼내 주었다. 뾰족한 수가 없어서 다섯명이서 10킬로미터 레이스를 하였는데, 부회장인 에이조한테 처음으로 졌다. 톱은 과연 우리 팀의 유일한 체육계 출신 다니구치 군(회원번호 3번)이 차지했다. 회장인 나는 꼴찌였다. 훌쩍훌쩍.


후일담..

이글이 실린 후에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인즉, 고등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이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해석한 일이 있다는군요. 그때 선생님 역시 '때는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라고 해석했다구요. 그런데 학생들은 그 의미를 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학생이 손을 들고 "그 문장은 '인생이 있고, 골짜기가 있고' 라는 뜻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하여, 교실이 떠나가라 웃었다고 한다.
재미있군요. 재미있지만, 역시 그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