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제2장1959년-헤세로부터의 편지
헤세로부터의 편지
설날 아침 헤세한테서 편지를 받았다는 것, 정말 기분 좋은 일...... 길조로 여기고 싶다.
1월 1일(오전 0시)
지금 막 새해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크래커 봉봉(筒形의 양끝을 잡아당기면 큰 소리를 내면서 찢어져 안에서 장난감이 나옴)과 꽃불과 함께......
불꽃은 정말 멋지다. 그들은 혜성처럼 치솟아서는 펑 하고 폭발하고 초록, 빨강, 노랑......의 수많은 별이 되어 흩어진다. 정말, 정말 멋지다!
12시 정각에 우리는 건강을 빌며 축배를 들었다. 철수와 단둘이서 섣달 그믐날(Silvester)을 즐기는 것은 멋진 일이다.
오늘 철수는 나에게 자그맣고 예쁜 손목 시계를 선사했다. 그것은 아주 내 맘에 꼭 들었으나 나에겐 어딘지 좀 사치스런 것이었다. 또 하나 기꺼운 놀람 ― 하와이에 계신 고모님한테서 항공소포를 받았다. 그 안에는 철수의 것으로 내의 한 벌과, 내 것으로 모직으로 된 흰 재킷이 들어 있었다. 정말 기뻤다.
철수는 그 외에 나에게 값비싼 빨간 장미 한 송이와 예쁘장한 카드를 선물로 주었다. 정말 말할 수 없이 그가 고마웠다.
새해에 내가 바라는 것은,
1. 건강, 건강, 건강!
2. 좋은 과제와 성공
3. 철수의 성공
4. 건강하고 영리한 아이
5. 약간의 돈
1월 4일(일요일)
5분 동안 산보를 했다. 영국 공원은 온통 눈 속에 하얗게 파묻혀 있었다. 허파 가득히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파스테르나크의 문장들은 아주 번역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난 그를 미치게 좋아한다.
1월 1일(오후 11시)
오늘 아침 헤르만 헤세의 편지를 받고 즐겁게 놀랐다. 그 속에는 석 장의 그림 엽서와 헤세의 축하 인사가 들어 있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의 크리스마스 카드에 답해 주다니, 정말 그의 친절에 감사를 드린다.
설날 아침 헤세한테서 편지를 받았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의 기운을 복돋아 준. 난 그것을 무조건 1959년 새해의 길조로 여기고 싶다. 그것은 틀림없이 커다란 기쁨을 내 일에 가져올 것이다. 난 그걸 믿는다.
1월 7일
잎이 말끔히 떨어진 나무 사이로 푸른 것이 보인다. 잉글리셔 가르텐(英國公園 * Englischer garten)의 호수이다. 하얗게 얼어 붙어 있었고 썰매 타는 아이들로 번잡했던 호수가 오늘은 깨끗이 녹아서 푸르디 푸른 물이 출렁인다.
백조는 언제 돌아올까?
바람이 몹시 분다.
차지 않다. 그러나 허파 속으로 파고 드는 매운 바람이다......
온갖 꿈을 꾸다.
환각과 예상과 또 예상하지 못한 것을......
괴롭게 줄타기 하는 꿈을 어젯밤에 꾸었다.
오늘은 한 페이지밖에 번역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아프고 땀이 쏟아져서. 정말 유감이다.
오늘 난 과로를 했다. 너무 많이 걷고 불규칙적이고 불충분한 식사를 하고 좀더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나는 모든 피상적인 것을 증오한다.
나는 모든 경박한 것을 증오한다.
성숙을 나는 동경한다. 과일의 무거운 황금빛 성숙을......
생각이 깊고 눈이 날카롭기 때문에, 직관으로 모든 사람을 꿰뚫어 보면서도 마음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는 동생을 사랑한다.
내면의 고요와 명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애를 사랑한다.
피상적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애를 사랑한다.
천성이 성실하고 경외심에 가득 차 있고 경건하기 때문에 나는 그애를 사랑한다.
그애는 참으로 나의 보석,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나의 보석이다.
모든 철면피한 것, 둔한 것, 무례한 것, 조야(粗野)한 것, 소란하고 시끄러운 것 등등을 나는 증오한다.
사랑이란 두 영혼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이어야 한다.
전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정신적인 것, 순수한 정신(Nur-Seele)을 나는 추구한다.
창백하고 순수한 달의 그 무감각한 냉정을 나는 갈망한다. 나는 끈끈한 것, 숨이 뜨거운 것, 야비한 것, 친숙한 것을 증오한다.
나는 평범한 것(Gewohnliches)을 증오한다.
1월 8일
나는 생활하고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고 싶다. 고요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내 생활 속의 정적과 질서가 없이 어떻게 내가 나무와 새들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내 아이와 나를 위한 생활의 단순함, 생활의 정적, 그리고 내 자신 속의 하모니, 이것들이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 디아나 봐르지
17일 전부터 집에서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다.
목을 빼고 그것을 기다린다.
오늘 몸이 좀 아팠다. 열이 좀 나고 몸이 불편했다. 저녁에 철수의 셔츠 한 개와 내의 몇 개를 빨았다.
오늘 점심때부터 멋진 눈보라가 날렸다. 유감스럽게도 금방 멎고 말았지만, 그러고는 포근한 날씨......
영국 공원의 연못은 얼음이 풀렸다. 그것은 앙상하고 시커먼 나무들 사이에 연푸른 색을 띠고 있다.
장미를 어제 버려야만 했다. 그러나 카네이션은 아직도 싱싱하게 피어 있다. 그것은 나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 준다.
만일 외출을 하지 않고, 더이상 외계(外界)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면, 훨씬 많이, 훨씬 날카롭게 보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 기뻐할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밤엔 번역을 좀 했다.
이중 창(二中窓)인데도 바람 소리가 들린다.
먼 바다의 파도 소리.
1월 9일
<지바고>를 읽었다.
아름답지만 역시 어렵다.
내가 꼭 사야만 하는 것은,
1. 아기의 배내옷.
2. 아마도 요람과 잠재우는 바구니 하나.
3. 평상복.
4. 코르셋 한 벌도 아마......
그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크라미 부인은 요즘 점점 더 침울해진다. 자기 남편이 죽은 후로는 얼굴에 미소 한 번 볼 수 없다. 무섭게 고독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여자는 용감하다. 결코 울지 않고, 더 많이 일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망각을 찾으려 한다.
그이가 내게 말하길, "당신은 전생(前生)에 쥐였을 거야. 왜냐하면 잘 때 이를 갈고, 게다가 개와 고양이를 지독하게 무서워하거든." 그 말이 나에게 생각을 하게 했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따뜻한 아궁이로, 가족에게로, 엄마의 젖가슴으로...... 어느 곳이든, 세상의 어느 곳이든 그를 위한 사랑과 기도가 있는 곳이면......
그것은 인간에게 내면의 평안과 외면의 자신을 준다.
사랑 없이 자라고 돌아갈 아무 곳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람은 괴팍스레 고독해진다. 그러면 아주 쉽사리 당황하게 되고, 기분이 극(極)에서 극으로 달리기만 하여 결코 침착과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된다.
모성애! 난 그것을 얼마나 미칠 듯이 아쉬워 하는가! 난 그것을 받아 보지 못하고 자라났고 그래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모성애에의 동경은 내 가슴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내거나 불만일 때면 그것은 뚜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를 도와 줄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난 극단으로 기울어져 있다.
죽고 싶도록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모차르트(Mozartische)적인 명랑과 고요와 조화의 순간을 내 속으로 체험해 보았으면.
모든 격정적인(Pathetisch) 음악을 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인생이란 우리가 전(全) 심장으로 사랑하는 그 무엇으로써 채워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공허하고 불만족한 것이 될 것이다.
난 좀 슬프다. 기도를 드리고 싶다.
나는 가시를 하나 품고 있다.
내 가슴의 가장 깊은 곳에.
때때로 난 그곳이 아픈 것을 느낀다.
그러면 난 아주 아주 홀로 가장 어두운 방 속에 있고 싶어진다.
거기서 촛불이 타는 것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나 난 또한 뜨겁게 갈망한다. 사람을! 인간의 사랑과 따스함을.
내가 가장 동경하는 것은?
어머니! 어머니가 그래야만 하듯이 사랑에 충만하고 오직 사랑뿐인......
파스테르나크와 더불어
파스테르나크의 계절에 나는 죽고 싶도록 피곤하다.
1월 10일(눈, 흐림)
지난해는 나에게 대체로 만족할 만한 해였다. 한 번도 심한 경제난에 봉착한 일이 없었고, 세계 박람회를 구경했고, 몇 권의 책과 외투, 시계를 살 수 있었고, 나의 번역이 빛을 볼 수 있었으며, 나와 가족 사이엔 기쁨이 지배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상 모집에서 도합 백 불을 벌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난 신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금년에도 만사가 잘되어 나갔으면! 하나님, 저를 도와 주시고 버리지 마시옵소서!
<지바고>를 읽다. 훌륭한 책!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를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 속에 단 한번 전재 미문의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 러시아가 격렬한 폭풍의 와중에서 어떻게 그 머리 ㅜ이의 지붕을 잃어버렸는지를, 그리고 이제 모든 민중과 더불어 노천에 서 있다는 것을 누구도 이제 더이상 우리를 감시하지 않습니다. 자유! 진정한 자유, 요구만의 자유가 아니고 모든 기대와는 반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자유, 동시에 시구(時句)로부터, 오해(誤解)로부터 풀려 나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 그 자유의 와중에서 모든 사람들은 얼마나 거인처럼 자신을 느끼는 것입니까!
혁명은 우리의 의지에 어긋나게 너무도 오랫동안 억제되었던 호흡처럼 모든 사람이 부활하고 중생했다! 가는 곳마다 변화요, 혁명이다! 모든 사람이 두 개의 혁명 ― 개인적인 혁명과 공동적인 혁명 ― 에 참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Da Sozialismus)는 모든 개인적 혁명들이 동시에 급류를 쏟아 붓는 바다, 색과 자유의 태양, 창조력이 풍부한, 천재에 의해 영감을 받은,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계시되는 생의 바다, 바로 그것인 것처럼 나에게는 생각된다. 이제 인간은 이 생을 책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 속으로부터, 추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경험하기로 결심하였다.
오랜 중단 후의 첫번째 중요한 사건은 상한 곳 없이 남아 있는 집 ― 그것의 모든 돌멩이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귀중하게 보이는 ― 으로의 숨막히는 기차 여행이었다. 그것만이 진정한 생이고 모든 시험과 모험의 목표였으며, 예술이 작품 속에 표현해야 할 바로 그것이었다. 자기 가족에로의, 자기 가정으로의, 자기 자신에로의 귀환 ― 하나의 새로운 존재가 비롯되기 위해.
마야코프스키(Majakowsky) ― <전쟁과 평화>, <나선(螺旋) 피리>, <인간>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은 전적으로 내 맘에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도스토예프스키의 계속이거나 좀더 솔직히 말하면, '이뽀릿트'나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젊은 반항적 주인공들 중의 하나에 대해, 혹은 '미성년'의 주인공에 대해 쓰여질 수 있는 하나의 서정시이다. 얼마나 넘치는 재능인지! 얼마나 멋지게 그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단연코 확실히 힘차게, 직선적으로 말하는데 성공하고 있는지! 얼마나 대담하게 그는 자기 논거(論據)를 세상 사람들의 면전에, 그리고 공중 멀리 집어 내던졌는지!
그는 어느 한 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한쪽 기슭을 떠났으나 맞은편 기슭에 그는 상륙하지 않았다.
지옥과 파멸과 죽음은 그를 건드릴 수 있어서 기뻐한다. 그러나 봄과 생(生)도 그를 건드릴 것을 갈망한다. 온 세계는 깨어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월 12일(큰 눈)
아침, 동화 속에서처럼 눈이 내린다. 세상은 온통 10센티미터 두께의 흰 융단으로 덮여 있다.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눈에 싸인 채 자꾸 걷고 싶다. 그렇게 해선 안 될 테지만......
밤, 푸른 하늘에 별이 총총, 흰 눈이 덮인 거리, 가로등, 차고 신선한 공기......
영국 공원의 실개천이 가로등과 별빛 아래 검게 빛나며 재잘거린다.
자연은 정말 언제나 아름답고 조화에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언제나 근심과 불안과 공포에 가득 차 있고......
우리는 항상 남의 자유를 생각해야 한다.(wir mussen immr an die Freiheit der anderen denken.)
―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빌헬름 헤르초크(Wilhelm Herzog) ―
베데킨트 ― 술집의 삼류 가수로, 문학적 어릿광대로 가장(假裝). 1910년대, 봄의 소생, 아동 비극(Kindestrgodie).
앙드레 지드 ― 모든 허영의 결핍, 약간 싸늘한 겸손.
일흔 살의 마스크 ― 문제의 안정, 매끄럽고 침착한 고정성. 그와 피카소와의 유사성은 정열적인 배우라는 것, 지나치게 솔직한......
1월 15일(큰 눈)
아침.
잠이 깨어 덧문을 걷어 올렸을 때 눈앞에 나는 동화의 세계를 발견했다. 세계는 온통 사치스레 풍성한 눈으로 깊이 덮여 있다. 눈은 그치지 않고 자꾸자꾸 퍼붓는다.
올 겨울 들어 가장 큰 눈이다.
음울한 회색의 앙상하고 가난한 풍경은 반짝이는 흰색의 꿈이 가득 찬 동화의 무대로 바뀌었다.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사고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Dekadenz)다.
저열한 충동으로만 살고 거기에도 만족하지 않는 여자를 나는 증오한다.
나무는 하늘 높이 높이, 치솟고자 발돋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동경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에로스 ― 닿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의 추구 ― 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그저 좀 교활한 동물일 뿐이다.
오늘은 열심히 번역을 하였다. 약 8시간 동안.
죽고 싶게 피곤하다.
번역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역이다. 그것은 많은 신경의 소모와 육체적인 지속성을 요구한다.
매일 약 4시간만 일을 해도 되고 휴식 속에서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러나 매일매일 내게는 똑같은 열(烈)이 찾아올 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처럼 과도한 요구를 받고 혹사당한다면 어떻게 훌륭히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유감, 또 유감이다. 나에게도 결국 그 책을 사 볼 독자들에게도......
오늘 파스테르나크의 멋진 시를 발견했다.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그것들의 원인과
근원과 뿌리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발견하고 싶다.
아, 만약 부분적으로라도
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여덟 줄의 시를 쓰겠네.
정열의 본질에 대해서
오만과 원죄에 대해서
도주나 박해,
사업상의 우연과
척골(尺骨 Elle)과 손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법칙을 나는 찾아내겠네.
그 본질과
이니셜(Initial)을
나는 다시금 반복하겠네.
― B. 파스테르나크, 1954
마야코프스키의 죽음
별아, 네가 있는것을 알기에 나는 행복에 겨워 울고 있다.
1월 20일(따스하고 맑음)
크게 놀랄 일은 우리의 희곡 ≪안네―≫가 결코 출판되지 못하리라는 것.
오늘 최후의 거절을 당했다.
자신을 질책했다.
집에 오는 길에 질베스터 교회에 들러 잠시 기도를 드렸다. 신께서 다시 한번 나를 도와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또 앞으로도 도와주실 것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어린애에게 충분한 힘을 주실 것을!
가슴이 몹시 뛴다. 틀림없이 목욕 때문이다.
달 밝은 밤.
이제 막 하루의 과제를 끝마쳤다.
즉, 11페이지를 번역했다. 오늘 제10장(章)을 마쳤다.
그러나 같은 한국 사람 하나가 이미 ≪여권(旅券)≫을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이미 3분의 2를 번역했다고 한다. 유감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나대로 번역하는 것이고 그는 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다.
내버려 두자!(Laisser-faire)
모든 사람은 자기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여타(餘他)의 것은 자기 별에 이미 적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예상을 초월한다.
평온하다.
오늘 채린이 생각을 많이 했다. 전 심장으로 난 그애를 사랑한다. 그애는 정말로 인간들 중의 한 영혼, 여자들 중의 참 진주다. 그애는 나에게 보석처럼 소중하다.
아, 나는 얼마나 사소한 것, 추잡한 것, 사치한 것, 조잡한 것, 잔인한 것, 조야한 것을 증오하는가!
완벽, 무거운 황금빛 성숙과 수정같이 맑은 정신성을 추구한다.
그것은 진리. '나는 해야만 한다(Ich soll)'는 것...... 그것에 의해 살고, 그것에 의해 나의 생과 정신을 분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싶다(Ich will)'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가 이것을 할 것인가, 저것을 할 것인가를 나에게 결정해 줘야 한다.
자기 훈련, 목적 의식, 겸손하고 자기의 환경을 의식한 일에 대한 인내, 인생에 다르게 마련인 가지가지 불쾌감에 대한 관용......
행복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밤낮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충만하고 완벽한 순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자신으로의 복귀한 당위적 자아(當爲的 自我, soll-ich)로의 복귀, 진정한 자아로의 복귀, 본질에로의, 근원에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거의 모든 긴장이나 만족 없이, 난 요즘 권태를 느낀다. 매일같이 똑같은 나날의 경과, 요리를 만들고, 먹고, 세탁을 하고, 번역을 하고...... 깊은 밤중까지 똑같은 피곤과 똑같은 기이한 만족...... 그것이 나의 생활이다(Cest ma ire), 그것이 전부이다(Cest tout). 난 신문이나 잡지를 전혀 읽지 않는다. 그러기엔 내 눈과 손이 너무도 피곤하고 맥빠져 있다. 그러나 지루하지는 않다. 아마도 난 지루해 할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에는 단 한 번 부활절이 있다.
운명과 속죄, 사랑!
어둠 속, 아름다운 촛불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크레센도(Cresendo)로 점점 커져 가는 이 피아노 소리는 어디서 들려 오는 것일까?
별들은 검은 바다 속에 침몰하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바다 냄새......
가로등처럼 어두운 골목길에서 타오르는 별들......
그들의 모든 것은 봄과 동경을 숨쉰다.
수정같이 맑은 별, 지상적인 것을 증오하고, 모든 육체적인 것을 멸시하며, 창백한 영상으로 정신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 여명(黎明) 속 나르시스의 숨결에 불과한......
별아, 네가 있는 것을 알기에 나는 행복에 겨워 울고 있다.
별아, 결코 너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동경으로 자신을 소모시킨다.
별아, 자아(自我)의 진정한 모습아.
1월 22일
저녁 ― 영국 공원 쪽에서 안개 속에 묻혀 베일을 쓴 불그레한 달.
검푸른 하늘과, 흰 눈에 덮인 대지.
드디어 오늘 번역을 끝마쳤다. 미치게 기쁘다.
내일 교정을 보면 그걸 부치는 것이다.
그것이 책이 돼 나온 걸 보고 싶다.
이제 며칠간 긴장을 풀 수 있다. 책을 읽고, 평온 속에 모든 것을 반성해 보고 싶다.
깊은 감정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을 나는 증오한다.
피상적이고 자신에게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 파스테르나크가 묘사했듯이 '공공연한 의태(擬態)에서 생겨나서 인생을 감각의 연쇄로 보는' 사람들을......
≪여권≫의 클라이맥스(Climax)는 마야코프스키의 죽음이다.
마야코프스키의 어린 동생의 비탄하는 장면을 읽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1부 : 유년 시절, 음악 스크리야빈
2부 : 청년 시절, 철학, 코헨(Cohen), 마루부르크, 베니스
3부 : 문학, 마야코프스키, 그의 죽음. 비가 오고 따뜻하다.
오늘 ≪여권≫의 3부를 보냈다. 비용은 7마르크 40페니......
멸치(건조된 작은 생선)를 받았다. 오늘...... 1958년 10월 25일에 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오는 데 석 달이 걸린 셈이다. 너무하다!
긴장이 탁 풀리고 피곤하다.
저녁때 별다른 이유도 없이 몹시 슬퍼졌다.
인생이란 고되고 이익 없는 일만으로 이루어지고, 최후ㅡ이 휴식을 주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래, 오래 발을 끌며 걸어야만 하는 잿빛의 암담한 풍경처럼 나에게는 보였다.
좀 신경 과민이다. 아마도 신체적 상태 때문에......
내 자신이 텅 빈 느낌이다.
요즈음 채린이의 꿈을 자주 꾼다. 내가 갑자기 날개가 생겨서 그걸로 그애한테 날아가서 1~2분 동안 재잘거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내가 새가 되어 아무 데나 날아 다닐 수 있고 아무나 방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희극적인 것이 아닐까? 나는 오렌지 껍질을 씹으며(그것은 한 달 전부터 내 취미가 되어 버렸다) 생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본다. 그것은 하나의 캐리커처(戱畵), 생이란 요컨대 캐리커처이다. 인간이란 가면(maske)과 의태(擬態)를 소유한 원숭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메피스토의 미친 듯한 홍소의 의미를 나는 아주 훌륭히 이해할 수 있다. 나 자신도 때때로 이런 홍소를 터뜨리고 싶다.
만일 원하지 않는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느끼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절대를 추구한다.
그러나 생은 나에게 평범과 피상의 것 외에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중세와 대리석을 동경한다. 그릴파르처(Grillparzer)의 '절대 세계'를 나는 동경한다. 무섭게 깊은 사랑, 심장이 터질 듯한 환희, 죽고 싶은 환멸 등등......
일상 생활의 평면성이, 내용 없는 인간들이 나를 질식시킨다. 나를 절망으로 몰아 넣는다.
깊은, 핵심을 뒤흔드는 체험, 그것을 이제 곧 하게 되는 것이다.
한 생명을 세계로, 눈부신 햇살 속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무겁게 책임감을 느낀다. 그 작은 생명에게 맹렬한 의무감을 느낀다.
난 그애에게 완벽하게 행복한 생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저 그애가 최소한도 사랑에는 굶주리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하도록 노력하길 다짐할 뿐이다.
그 밖에는 어쩌면 좋을지 난 알지도 못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교육? 아니다. 난 나 자신을 교육시키고 형성시켜야 한다. 난 정말 아직 너무도 불완전하다. 내가 어떻게 한 생명을 명령하고 인도할 수 있단 말인가? 안 된다. 안 된다!
그저 난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병이 들면 기도를 드리고, 괴로워하면 울고...... 난 착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아무런 요구 없이 희생만 치르며 난 사랑할 것이다.
그렇다. 지바고가 옳다. 진정한 세계는 가족이 세계 ―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 ― 라고 말한 그가 옳다.
그것은 우리 전인생 중의 가시적(可視的), 현실적 요소이다. 그 외의 일체는 창백하고 유령 같다.
아쿠타가와(芥川)는 말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단지 3분의 1만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3분의 1은 유산, 또 3분의 1은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이란 단지 하나의 상황일 뿐이고...... 자기의 계급과 자기의 월급, 자기의 일의 성격에 의해 완전히 자기의 정서와 사고까지도 규정지어진......
지금 무릎(오른쪽)이 쑤시고 이빨(왼쪽)이 아프다. 그리고 열이 좀 난다. 잘 되겠지...... 그 외에는 아무 이상 없다. 이런 모든 과로 후에도...... 내 건강에 대체로 만족이다.
3월 3일(나의 출산 예정일)까지 39일밖에 남지 않았다.
상당히 불안하다. 하지만 거의 태연하게 견뎌내고 있다. 참을성 있게 정지하여 절약하고, 절약하고, 절약하고, 또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 아주 형편 없이 먹는다. 그러나 칼슘 정제(錠劑)와 비타민으로 어린애는 별 이상 없을 것이다. 최서한도 그것을 바란다.
이제 자야만 한다. 12시 반. 오늘 밤은 더이상 번역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고된 일이 시작될 것이다.
안녕. 나의 일기장아. 넌 내 친구가 되어 버렸어. 고독 속에서 키티가 안네 프랑크에게 그랬었던 것처럼 난 너에게 내 가슴을 샅샅이 털어 놓을 수 있다. 내가 괴로워할 때 넌 나를 비웃지 않고 내가 기뻐할 때 넌 날 시기하지 않는다. 난 미치게 너를 사랑한다.
1월 24일(아침에 눈)
열이 났다. 오늘은......
난 번역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하루 동안의 휴식을 허락받았다.
≪어두운 동경≫을 읽었다. 아주 매력적으로 아주 흥미 있게 씌어졌다.
단지 ≪여권≫ 때문에 우리는 크라머(Kramer) 부인한테 10마르크를 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언제 그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아직도 막막하다. 상당히 우울하다.
그러나 머리를 쳐들어라! 언젠가 너를 도와 주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다시 한번 너를 도와 주실 것이다.
모든 일이 그분에 의해 결정된다. 그분만이 권세를 가지고 계시며 우리의 생사를 지배하신다.
기도를 드려야겠다. 기도를, 기도를...... 모든 것이 잘 되도록.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가야, 넌 무엇 때문에 이 비참과 무정과 냉정 속으로 태어나야만 하는 거니?
1월 29일
흔히 주장하듯이, 나와 똑같은 환경에서도 훨씬 많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여자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나보다 더 건강하고, 더 강한 체구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임신 중에 육체적 과로는 출산과 산후에 극히 나쁜 영향을 준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아무도 그걸 고려해 주지 않는다. 내 스스로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 정말 내 힘이 미치는 한 일을 하려고 했고 또 해왔다. 늘 충분하지 못한 시간내에 책을 번역했다. 그러나 이젠 정말 더이상 해낼 수가 없다. 어젯밤 <툴라에서 온 편지>를 번역할 때, 그리고 후기를 쓸 때 난 내 몸이 얼마나 쇠약해졌는지 알았다.
마야코프스키의 '이별의 시'
사람들이 말하듯
사건은 끝났다.
사랑의 범선(帆船)은
인생에 좌초(坐礁)했다.
인생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말자.
하나 하나 헤기엔
너무도 많아
고뇌와
고통,
존재의 괴로움......
안녕히!
1월 31일
정월도 이제 다 가 버렸다.
그때까지 한 달밖에 안 남았다.
몹시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또 약간 호기심이 머리를 쳐들기도 한다.
어린애의 작은 재킷과 구두 등을 보면 미지의 생명에 대한 강렬한 사랑과 다정함을 느낀다. 예쁘고 영리하고 착하게 어서 이 세상으로 오너라. 꼭 와야만 해! 자, 어서!
나는 이기주의를 버려야만 한다.
좀 더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항상 자신을 다른 사람의 처지에 바꿔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 난 더 자제심이 있어야 겠다.
그렇지 않으면 난 지고 마는 거다.
난 자신을 훈련시키고 단련시켜야 한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모든 잘못과 인간의 불행을 반사하는 정직한 거울이다.
매일매일 향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다른 사람의 증오, 혐오로부터 구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하고 자신이 또 존경받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의 현존을 감사한다는 건 훌륭한 체험이다. 이 달에 나는 여러번 그것을 감지했었고 자신을 강제하지 않고 아무 위장 없이 신을 성찰하고 기도하였다.
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점차로 믿고 있다.
2월 2일
학교 점수는 아이의 장래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들의 우스꽝스런 허영이다. 그것을 나는 증오한다. 나도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의 허영심을 만족시켜 왔다. 공부가 나에겐 맘에 들었고 좋은 점수를 받는 건 우선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에서 지금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차라리 요리, 세탁, 다리미질, 뜨게질을 배웠어야만 했다. 도대체 역사, 지리, 영어, 국어 등의 좋은 점수와 세상의 비실제적인 것들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성경이나 요가를 공부했어야만 옳았다. 혹은, 재능이 있다면 그림을 공부했어야 했다. 난 내 아이에게 좋은 점수를 받으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한 짓이다. 대부분 가장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부모들이 특히 그런 짓을 한다.
오늘 오후에 에카르트 교수와, 철수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 난 지금(거의 새벽 2시) 잠을 이룰 수 없다. 지독하게 춥고 떨린다.
잠이여, 빨리 와서 너의 부드럽고 검은 커다란 외투로 휘감아다오!
어젯밤 꿈 속에서 동경에 대한 멋진 시를 썼었다. 깨어났을 때는 유감스럽게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2월 3일
S한테서의 편지 ― 부정적인 대답.
그는 다시 화초의 구근(球根)을 요구해 왔다. 난 그럴 만한 충분한 돈이 없다.
이브의 공포가
모든 것을 삼키려 드는 죽음의 크고 검은 입에서 빠져 나와 도망치려 했다.
2월 4일
악몽에서 깨어나 몹시 침울한 기분이다. 깰 수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몽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누가 알랴? 영원히 계속되는 악몽이 바로 인생인지...... 거기서 깨어날 수 없다.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영원한 어둠 속으로 침몰하지 않는다면......
2월 10일
오늘 행복(Gluck) 하나가 나를 찾아들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나의 친구 주혜한테서 아주 예쁜 카드를 받은 것이다. 그는 그 속에다 나에 대한 그의 우정과 나를 향한 그의 공경을 적고 있다. 내가 아직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를 실망시키게 될지 어떨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를 죽고 싶도록 사랑했었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 그는 내가 일찍이 안 가장 순수한 인간이다. 나는 그를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불안하다.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나의 상(Bildnis)이 나와 너무나 닮을 수 없음을 불안해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웃고, 또 울고 싶다. 우리 사이의 우정은 하나의 성스럽고 숭고한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다. 우리의 <띠보가(家)의 회색 노트(Graues Heft)>, 논어 공부, 국어 문법 공부 등 우리는 많은 것들을 둘이서 시도했었다. 내 생의 일장(一章)을 나는 주혜없이 회상할 수 없다. 1950년대 부산에서, 나는 서울이 북괴군에 점령되어 폭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쓰라리게 울었던지, 나는 참상을 그렸고 주혜가 죽었을 거라고 울고 또 울었었다. 그는 정말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아직까지도 사랑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오늘은 참죄절(Fast-nacht)이라고 한다. 거리에는 아이들만이 가장복(假裝服)과 가면(假面)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피에로, 기사(驥士), 카우보이, 인디언 추장, 악마(Tejfel) 등...... 제과점에서는 무더기로 갖고 온 과자들을 사고 있다. 날씨는 지독하게 춥지는 않지만 눅눅하다. 철수는 광범위한 재료(오려낸 신문 조각, 정기 간행물 등)를 가지고 매우 부지런히 <독일의 재통일과 평화 협정(Wiedeneinigung von Deutschland und Friedens-vertrage)>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나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정신적인 나의 욕망이 너무나 희박하다.
한 군데 집중할 수가 없고, 동물적 태만(animalische Tragheit)과 무위(無爲) 속에 나는 빠져들어 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허튼 소리를 지껄이고, 빈둥거리며 나는 기다리고 있다. 위대한 체험을...... 내 생의 그 체험(Erlebnis)을......
철수는 선량하고, 끈기 있고, 무욕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그를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량하다고 해서 그를 악용(惡用)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
얼어 붙은 별들과 누런 가로등의 푸른밤. 밤은 고요하고 달콤하다. 동화(童話)의 무대처럼 나의 오직 하나 가장 소중한 친구 주혜, 너를 나는 결코 잊지 않고 있다. 나의 가장 깊은 잠재 의식(Unterbewuβtsein) 속에 너의 이름을 나는 써 왔다. 너는 나의 영혼의 쌍둥이다. 너와 너의 고귀한 현존(Gegenwart)을 잃어버리고 나는 얼마나 너를 갈망해 왔던가! 이국(異國)에서 친구 하나 없이 적(敵)과, 질투자와, 개인의 영달(榮達)과 안락만을 생각하는 동물적인 사람들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때, 나는 너를 얼마나 목말라 했던가!
너와 비교하면 모든 사람들은 너무도 비소(卑小)하고 야비하고 불결했다. 얼마나 자랑스럽게 얼마나 경외심(敬畏心)에 넘쳐 나는 너의 이름을 마음 속에 소리쳐 불렀던가! 도대체 네가 존재(存在)한다는 일이,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너와 같은 여자가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벌써 내게는 하나의 커다란 위안이었다. 너의 우정에 나는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부끄럽다.
미래의 나의 생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한결같이 너를 사랑하고 존경할 것이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세 사람, 철수, 채린 그리고 주혜.
세상에 이 세 사람과 나 외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남김 없이 행복할 것이다. 우리를 방해하고 화(Unheil)만 끼치는 다른 사물이나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 만일 내가 도박(Toto)을 걸어 이긴다면 이 세 사람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오, 그것은 얼마나 멋질까? 적어도 그런 꿈 정도는 꿀 수가 있다. 그러나 유감히도 나는 도박을 싫어한다. 그것에 맞는 소질이 내게는 정말 없다. 게다가 나는 낙천주의자(Optimist)가 못 되고 나의 성향(性向)은 검은색이다. 반대로 철수는 상당히 낙천적이고 모든 것을 상당히 파랗게 그린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미칠 듯이, 그의 혈기 왕성(血氣旺盛)한 무구속성(Unbefangenheit)과 오만(Ubermut)을 진정 사랑해야 한다.
나는 그와 같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나에게 매혹적인 것이다.
2월 12일
S로부터 불쾌한 편지. 또다시 구근과 성장 촉진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내가 유복(裕福)하다고 생각할까? 나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는지. 그는 무분별(rucksichtlos)한 에고이시트다.
채린이한테서 가드 한 장, 그 속에 특별한 건 없으나 그 애는 언제나 귀엽다.
오늘 잘못하여 찬물에 머리를 감아서 감기에 걸렸다. 종일 식욕도 없이 구토에 몇 번이고 엄습 당했다. 불쾌한 일이다. 아마도 이런 일이 결국 언제나 끝날 것인지...
배가 고프다. 한 조각의 음식도 나는 삼킬 수 없다. 열(feiber)도 나고...... 내일 무조건 목욕을 하고 나서는 카로리눔 병원 의사한테 가야 한다.
2월 13일
채린이한테서 매우 멋진 편지를 받았다. 그애는 정말 귀여운 애다. 그러나 '랭보(Rimbaud)'가 행방 불명 되었다니 유감이다. 그 외에 '티지(Tigi)'도 유감 천만! 정말 한심스러운 노릇이다.
모든 것이 나를 그처럼 압박한다.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절망적(hoffnungslos)으로 보인다.
저녁에 나는 카로리눔(Carolinum) 병원의 의사한테 갔다. 날카로운 약 냄새가 풍기는 산뜻한 병원...... 나는 거기서 아마 해산(Entvindung)을 할 것이다. 그 의사는 비 바이에른(unbayerisch)적 익살맞은 사투리를 쓰는, 나이가 지긋하고 몸집이 큰 건장한 분이다. 상처와 메스 앞에도 찌들지 않는 전형적인 외과의 거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건 그의 능력 때문이다. 20일 후면 나는 거기로 가야만 할 것이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비명을 참으며......
의사는 내가 젖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젖에 좋은 것을 나는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이 만년필이 나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왜 잉크가 새어 나올까? 불결하다.
휘규와 바로메타는 이제 짙은 청색을 띠고 있다.
두 명의 타인이 공존한다는 일은 원래 골치 아프고 복잡한 문제이다. 이론적으로 봐도 내게 불가능한 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의 시도(試圖)를 강행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거기에다 또 하나의 존재(제3의 타인)가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될까? 아무도 그걸 부수어 파멸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가히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가능한 한 재난(災難)만 대수롭지 않다면......
오늘은 모든 것이 야릇하게 아득하고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 나는 덧문을 내리고 어스름 속에서 사념에 잠겼다. 이 하루를 늙고 병든 암탉처럼 그렇게 꺼벅꺼벅 졸면서 나는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는 보통 아빠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 부담이 되고 속박이 되고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엄마되는 이에 대한 배려(配廬)와 관심도 있어야 한다. 거기다 그는 너무 젊고 너무나 활기에 차 있는 것이다. 가능한 한 거기에 관계하지 않으려고만 한다. 되도록이면 거기에다 별로 지출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외의 생각은 없다.
이것은 그의 탓일까? 아니다, 결코!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것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나 할 일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의 쌍방 어머니들은 너무 젊고 슬하(膝下)에 자식이 많다. 때문에 거의 그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걸 객비(客費)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것 또한 너무 당연하고 자명(自明)한 일이다. 나는 그것을 기뻐하고 또한 그걸 가끔 후회하기도 한다. 생(生)이란 정말 살아갈 가치가 없다.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타인에게 생(Leben)을 선사하려고 하는가? 어떠한 권리로? 그것을 하는 나는 무엇일까? 하나의 견본(Vorbkld)이 나일까? 아니다! 아니다! 그 일과 미래를 생각하면 대개는 몹시 슬프다는 느낌이다. 그러한 의지(Wille) 없이 세상으로 그것을 내보내게 된 것을 제발 용서해 주었으면. 나의 책임은 엄청난 것이다. 동시에 소름끼치는 속박(束縛)을 받고 있다. 나는 산욕(産褥) 중 자살을 한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겠다. 직접적인 동기 없이 말하자면 세계고(Weltschmerz)에서 벗어나......
2월 15일
어젯밤 나에게 불안이 엄습(Unfall)해 왔다. 끔찍스러웠다. 모든 것을 삼키려 드는 죽음의 크고 말 없는 검은 입에서 빠져 나와 나는 도망치려고 했다. 달리고 또 달렸지만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더이상 보고, 느끼고, 읽고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 흙이나 돌이 될 것이고 세상은 그래도 지금같이 꼭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나는 무(nichts)에로 녹아들 것이다.
끔찍하다(Schrecklieh)!
나는 나의 사고(Gedanke)를 전향(轉向)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를 거기에서 전향시킬 수 없다. 밤마다 몇 번이고 나는 깨어나서 불안의 엄습(掩襲)을 받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왜 그것을 육체적으로 통렬(痛烈)하게 느끼고 괴로워해야 할까?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이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인간은 거기 대항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지 가공할 죽음이 그를 데려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 나는 인간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겠다. 그들은 돌로 머리를 쳐서 자살을 하지 않도록, 어떠한 미혹(Jauschung)이 무조건(unbedingt) 필요하다. 종교와, 술과 사랑과, 혹은 일종의 자기 찬미(Selbstverherrlichung)가, 생(生)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처럼 자신을 미혹(迷惑)시킬 수 있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파스칼(Pascal)도 불안을 가졌었다.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불안에 떨게 한다(Der ewige Schweigen des endlichen Raumes Jagt mich Furcht).'
그렇다. 이 침묵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미래 앞에서의 이무지. 무엇 때문에, 정말 무엇 때문에 우리는 태어난 것일까? '하나의 식물이 자라듯 맹목적인 우연(Blinder Zufall)' 이외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보다 높은 원인을 의식하고 있을까? 왜 우리는 적어도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오오, 내가 차라리 새나 조갑지라면! 죽음이나 생에 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살기만 하고, 노래만 부르고 있게 된다면(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얼마나 좋을까! 하필 인간으로 이 세상의 빛을 바라보도록 그 누가 나를 초대한 것일까.
나는 이러한 발작이 곧 종식(終熄)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나의 공포에 질식한다.
불합리(Absurde)와 자살(Selbstmord). 철학의 본질(Grundlage)은 생이 보람된 것인지 아닌지 해결해 주는 일이다.
죽음의 면전에서
조그마한 생을 살아내기 위하여 인간의 사고는 단절되어야 한다.
2월 16일
나는 모순의 벽으로 밀쳐져 있다. 내 속에는 무(無)의 황량하고 차가운 영지(領地)가 있다. 나는 생과 세계에 소외감을 느낀다. 옛날에는 자명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불가해 하고 모순되게만 보인다. 나는 왜 살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하는가, 알고 싶어 못견디겠다.
생(生)이란 살아질, 지켜나갈 만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떠한 권리로 나는 하나의 생명을 세상으로 보내는가? 십 년 후에는 나와 꼭같이 그것은 무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애를 쓴다는 일은 절대로 보람 그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죽든, 20년 후에 죽든 마찬가지다. 영원한 침묵을 지키는 시공(時空)에 비하면 모든 것은 그렇게도 헛된 일이다. 요컨대 인간의 생은 추구할 만한 게 못된다. 가깝든 멀든 미래에는 죽음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행동하고 있다. 그것은 회피(回避)하고 있다. 모든 것, 모든 다른 것은 끔찍이도 생각하지만 죽음만은 조금도 생각질 않는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에게는 터부(禁忌)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서는 미쳐 버릴 것이기 때문에...... 스케줄에 따라 일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연구하고, 사랑하고 엔조이하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마치 자기에겐 종말(終末)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인간의 생의 방식이란 얼마나 그릇되고 자기 기만인 것인가!
사람은 사고하기 싫어한다. 단지 살고 싶어할 뿐이다. 그가 살고 있다는 육체적 확실성(Korperliche Gewiβheit)만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사람이 얼굴을 볼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으니 태양과 죽음이 그것이다'라고 한 라 로쉐푸(La Rochefou)의 말은 정말 옳았다.
사람은 순간만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옳지 않을까? 아무 계획도 하지 말고 오직 하루하루를 살아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망각하도록 모든 수단을 써서 감각을 무디게 해야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죽음은 불가피한 불청객(不請客)으로서 매일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머리가 몹시 혼란하다. 내 자신이 몹시 낯설고, 버림받은 느낌이다. 나는 인간을 더이상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 하느냐고, 피안의 소망(Goffnung des Jenseits)을 가지고 있느냐고, 인생이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믿느냐고...... 나는 모든 사람에게 솔직히 대답해 달라고 묻고 간청하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스스로 체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죽음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원컨대 죽음의 생각을 회피하지 마시길! 죽음은 매일같이 점점 가까이 우리를 향해 다가와서 끝내는 우리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시기를!
제발 우리 함께 그것에 대한 방편(方便)을 숙고해 보자고! 서로서로 돕자고......
그저께 이후 나는 완전히 달라진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시시하고 낯설고, 창백하게만 보인다. 나는 즐거워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고, 너무도 무감각하다. 나는 인간 감정의 온갖 고락(苦樂)을 더이상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내게는 헛되게 생각된다. 죽음만이 내게 큰 의미를 가진다. 인간이 일생 내내 포착(捕捉)해야 할 오직 하나는 죽음이다. 죽음만이 사고(思考)되고 논쟁되어질 가치가 있다. 그외의 일체(一切)는 중요하지 않고, 무형적(無形的)이며 허위(虛僞)이다.
나는 죽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진종일 죽음만을 생각하였다. 그래야만 했다.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2월 17일
그 이탈리아 여자는 아주 건강하다. 그 여자는 돌아다니고, 기저귀를 빨고, 전화를 걸고...... 그 여자의 활동력은 초인적이다. 해산한 지 꼭 8일, 드물게 축복받은 건강체의 여자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 여자를 부러워한다. 4시간의 진통(鎭痛)을 집에서 치른 뒤에 병원으로 달려가 5분 후에 아기를 낳은 것이다.
나도 꼭 그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산(順産)을 해주십사고 신(神)께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해산 후 속히 회복할 수 있기를 빌고 있다.
그 이탈리아 여자의 일이 내게 무엇인가 위안(慰安)을 준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단절(斷絶)된다. 그렇지 않다면 배겨내질 못하는 것이다. 사고를 멈추지 않고서는 가스 마개(Gashahn)를 돌리거나, 목매어 죽을 것이다. 죽음이 모든 것은 질식시킬 때까지 이 조그마한 생을 살아내기 위하여 인간의 사고는 단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근본에까지 사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피상적으로, 가능한 한 지엽적인 것, 공허한 것, 진부한 것을 사고해야 하리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킬 수 있기 위하여.
그렇지 않고서야 살아내지를 못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하면, 그것이 이상적이리라. 인간이 더 사고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낙원일 것이다!
2월 19일
오늘 아침 나는 M으로부터 항공 전보를 받았다. M은 2월 9일에 나에게 돈을 부쳤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50불을 G. K. Lee 씨에게 부쳤다. 그가 한달 동안 돈을 쓸 수 있게. 그 돈이 도착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저께 장양한테서 온 튤립 가운데 두 송이는 샬크 양에게 한송이는 살비오(Salvio)한테 선사했다. 샬크 양은 약 1주일 전부터 아프고, 살비오 양은 어린애를 낳은 것이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어린애를 보았다.
그애는 어찌나 조그마한지! 나는 경악했다.
인자한 가족들과 이 살비오!
친절하고 과묵하고, 책임감이 강한 진지한 남편(이탈리아인답지 않게)과 유쾌하고, 언제나 기분이 좋고 건강하고 부지런한 아주 쾌적한 음성의 부인, 가난하지만 4명의 그 가족은 행복해 보인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지껄이기 위해서 지껄이는 사람, 천박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 철두철미하게 판에 박은 사고만을 가진 사람, 우쭐하고 유치하며 책임감이 없는 사람, 굴욕 앞에 치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간단히 말해서 정신의 품격이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자랑스러워야 한다. 자기의 긍지를 지녀야 한다. 개성이 없는 사람은 정말 하나의 캐리커처(karikatur)이다. 그가 행하고 말하는 전부가 우스꽝스런 냄새를 풍긴다. 그 자신만이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성격이 없는 사람, 규율이, 이상이, 사물에 대한 직관이 없는 사람을 나는 얼마나 증오하고 경멸하는지.
오, 신이여! 인간의 좋은 점만을 내가 깨닫고,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게 도와 주옵소서! 모든 것이 나를 격동(激動)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소한 약점과 부담이 나를 너무도 미혹시켜서 생의 맛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나는 황야(荒野)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내 앞에도 뒤에도 광활(廣闊)한 황야가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너무나 쓸쓸하고, 너무나 버림받고 의지할 데 없음을 느낀다. 생이며, 인간의 영혼이며...... 모든 것이 그렇게도 불결하다. 아, 소름 끼치도록 불결하고 비천(卑賤)하다.
신이여, 내가 더 살아내기를 바라게 구원하소서. 제발, 나에게 생에의 의지와 욕망을 베풀어 주옵소서.
모든 것이 너무도 망가졌다.
수선할 수 없도록 망가졌다.
난 아무래도 상관 없어.
아무것도 더이상 나를 매혹시키지 않는다.
의지 없이 존재할 뿐인 하나의 돌, 혹은 나무에서 떨어진 하나의 잎사귀가 나다.
재즈, 재즈, 재즈 ― 트럼펫, 클라리넷...... 미칠 듯한 소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근심을 불어 꺼 버릴 수 있기 위해? 왜(pourquoi)?
깊고 깊은 밤 ― 2시 반. 무서운 정적(靜寂).
나는 망실(忘失)되었다.
우리 안의 한 마리 야수처럼
어딘가에 있을 인간과 자유와 빛.
내 뒤에는 추적자가 고함을 지르고 내 출구(出口)는 봉쇄되었다.
― 파스테르나크
2월 21일
어둡고 비라도 쏟아질 듯한 날, 무겁게 구름에 덮인 하늘과 영혼.
G. K. Lee 씨는 소식이 없다. 혹시 <여권(Geleisbrief)>을 출판할 것인지? <안네 프랑크>의 원고를 돌려 줄 것인지 모든 것이 몹시 궁금하다.
2월 22일
눈......
전과 다름 없는 일요일.
눈이 무섭게 쏙아졌다. 지금은 저녁. 슈베르트(Schubert)의 <미완성......(Unvollendete)>을 듣고 있다. 어둡고 우수에 잠긴 선율(旋律) ― 어두운 예감에 가득 찬......
<춘희>를 재독(再讀)했다. 감동적인 이야기다. 좀 울었다. 소(小) 듀마(Allexandre Dumas fils)는 화류계나 완전히 창녀가 아닌 여자의 사랑을 대단히 잘 이해하고 있다.
그 여자보다 훨씬 추(醜)한 영혼을 가지고서 뽐낼 줄만 알고 있는 속물과 위선자보다 나는 그런 여자들을 동정한다.
세계와 세평(世評)만 두려워하는 그들. 평상시의 행동이란 꼭 그대로거나 훨씬 추한 것이다.
법률과 세상의 눈앞에서만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이나 신성(神性)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인간들을 나는 증오한다.
난로가 빨갛게 타고 있다.
그런데도 춥다.
그 이탈리아 여자는 몹시나 건강하다. 작은 소리로 유행가를 부르고 종일 기저귀를 빤다. 얼마나 억세고 튼튼한 여자인지! 한없이 그 여자가 부럽다.
건강이란 정말 신의 선물(Gotts-geschenk)이다. 극도로 건강한 아이를 하나 가져 봤으면! 이것이 나의 유일한 야심(Ehr-geiz)이다.
여자가 된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어떤 변명이나 회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위와, 무기력과, 무능 등등에 대한 하나의 구실로써 그들이 여자라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
여자가 된다는 어려움에 자기를 상실한 많은 젊은 여성들, 너무나도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 결혼을 결승점, 하나의 최종적 안식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력과 진지함과 끈기가 부족하다.
사람은 전력을 기울여 도박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쾌활하게 내기를 할 뿐이다. 득실(得失)이 그리 생기지 않도록...... 결국 결혼이라는 피난처가 어쨌든 시민적 안전을 배려해 준다. 때문에 훌륭한 여자의 출현이란 극히 희귀할 따름이다. 여자가 훌륭해 지려면 여러 가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이 그걸 방해하고 있다.
튤립에서 정말 맥빠진 술 냄새가 난다.
죽음
― 오토 프리드리히 볼로프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할 때 압도되고 전율하는 불안이다. 거기에는 육체적인 불안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Nichtmehrsein)것을 생각할 때 엄습해 들어오는 어지럽고 섬뜩한 감정이 문제가 된다. 그것은 생명적인 존재(Dasein)의 존속에 대한 공포, 벌거벗은 부재(不在)에 대한 공포이다. 그러나 존재의 존속에 대한 불안은 또한 다른 어떤 것, 죽음에 의해 위협적으로 제기된 문제, 즉 이제까지 살아온 생이 조속한 종말의 가능성 앞에 직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연결된다. 야스퍼스는, 이보다 깊은 불안을 단순한 '존재의 불안'으로부터 '실존의 불안'으로 구별하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영향은, 그것이 항상 자기 일상 생활의 확실성의 껍질에서 인간들을 자꾸 자꾸 끌어내어 인간의 눈앞에다 모든 자기의 계획과 기도(企圖)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실존한다(Existieren)는 건 죽음의 면전(面前)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위대한 지옥
나는 더욱 진통을 기다릴 뿐이다. 두렵고도 깊은 감동을 줄 경험을......
2월 24일
놀랍게도 따뜻한 날씨.
저녁 때 암르하인(Amrhein) 양의 생각지도 않던 방문을 받고 기뻐서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어제 구두 시험을 통과해서 이제는 박사라고 불러야만 되게 되었다. 우리는 충심으로 그녀를 축하했다. 그녀와 함께 우린 멋진 저녁을 보냈다. 먼저 브라텐들(Brathendl)이라는 음식점에 가서 각자 닭 반 마리씩 먹고 그녀의 성공을 축하하여 54년도 오펜하임 주를 마셨다.
그 후 안개가 자욱한 레오폴드 가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녀는 레오폴드 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녀는 뷔르츠부르크(Wurzburg)에서 그 거리에 향수를 품었던 것 같다. 그런 다음 개선문 곁의 카페에 앉아서 커피와 홍차를 마셨다. 9시 30분 경에 우린 헤어졌다. 그녀는 17번 전차를 타고 숙모집으로 갔다.
그녀는 탁월하고 유능하고 착한 여자이다. 조용하고 조화된 그러면서도 민감한......
나는 그녀가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좋은 남편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녀는 틀림없이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
죽음에 대한 나의 공포는 더이상 생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동물적이고도 적나라한 공포에 불과했었다. 나는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만 한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야기시키는 본질적 기분(우울 * 권태 * 공허 * 자포 자기) 등과 싸워야만 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생(生)을, 이 생을 긍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이 일회적(一回的)인 생을 열망해야만 한다. 나는 이 내적 기분을 극복해야만 한다. 아니면 내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밤에 라디오에서 현대 음악을 들었다. 불협 화음의 기이한 금속성의 톤, 그것은 나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말해 준다. 전율할 만큼 쫓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를......
그런 음악을 듣는 것은 불안했으나, 잘 이해되었다.
2월 27일
드디어 그 돈을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보낸 소포도......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친절하니 나는 참으로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오늘 대학 병원에 마지막 수속을 할 수 있었고 짐도 챙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언제고 갈 수 있다.
나는 더욱 진통을 기다릴 뿐이다.
두렵고도 깊은 감동을 줄 경험을......
어제 오후 전통 깊은 뮌헨 미술관에서 끔찍스런 사고가 발생했다. 정신 착란을 일으킨 한 남자가 루벤스(P.P.Rubens)의 세계적인 명화 <위대한 지옥>의 그림을 가공하게도 산을 뿌려서 파손시켰다. 사람들이 그의 이름과 인상을 기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비록 그를 죽이거나 벌한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그림은 루벤스가 애초에 그린 것과 같이는 결코 되지 않는다. 유감스럽다! 천만 번 유감스럽다!
내가 그 그림이 파손되지 않았을 때 그 그림을 세 번이나 보고 경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그것은 공포로 가득 찬 감동적인 그림이었다.
만일 루벤스가 천당에서건 지옥에서건 이런 음모를 들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월 28일
T(정화 아버지)와 함께 장보기를 한다. 싸구려 트렁크 하나, 나와 아기를 위한 약들, 아기 내의 등...... 이제 정말로 더욱 더 진통을 기다린다.
오늘 방을 해약했다.
마틸드 샬츠 양은 선량하고 친절하나 너무도 수다스럽다.
그녀는 참으로 잠자코 있지 못한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온갖 것에 대해 수다 떠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가 선량함에도 그녀를 경멸한다.
쿠바에서는 날마다 사람들이 총살당하고 있다. 혁명 후에는 언제고 인간은 피에 굶주리고 복수심에 불탄다.
이 세상에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많은 불쾌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정신 이상으로 비정상적인가? 내가 미친 것일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에 종막을 고한다는 것에 그렇게도 자주 희열을 느낀다. 나는 내 자신과 온갖 것에 계속해서 몰두하고픈 마음은 없다. 너무도 지치고 지쳐서 진절머리가 난다. 많은 곳에 밑줄이 그어진 내 책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 누군가 정신적인 욕구가 없는 무미 건조한 인간일 경우에...... 나는 분명 까다롭다. 나에게 완전히 낯선 사람이 내 책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 싫다. 오늘 저녁 나는 분명 신경과민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내 책을 몹시도 사랑한다. 그것은 내 관념의 일부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혐오감으로 인해 전율한다. 분개한다.
어두운 밤 ― 자욱한 안개, 별들과 냄새. 얼음이 녹는다. 아주 얄팍한 얼음 밑으로 물이 속삭이며 흐른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빨려 들어가듯이......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어둡고 숨막히는, 그리고 한계가 없는......
나는 가고 또 갔다.
내 발 밑에서 빙판이 깨어졌다.
그러나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집들과 거리에서는 불빛이 타고 있었다. 나는 내가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거의 감미로운 고통이 ― 집에 대한, 따뜻한 침대에 대한, 인정에 대한 동경이......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방은 어두웠고 황무지와도 같이 텅 비고 황량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정신을 차렸고 내 이성에 명했다. 내 마음을 돌렸다.
모든 것은 그렇게 무의미하다.
나는 내 자신과 분노를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느 책으로 인해 죽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바로 이와 같은 무의미한 감정으로 인해 헐값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조차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러 번 그것을 갈망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진부하기 때문에......
아이는 내 몸 안에서 매우 힘차게 태동한다. 그것이 몹시 싫다. 아이는 벌써 빨리 세상을 보자고 이젠 보챈다. 그러나 도대체 인생이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사랑? 기막히게 빨리 사라져 가는 달콤한 꿈과 환멸에 불과한 것이다. 하루하루는 위대한 사랑을 죽여 버리고 하찮은 사랑을 묵살한다.
오, 참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온갖 것을 알고, 반대로 그도 다른 사람에 대해 온갖 것을 안다는 것을. 영원한 불변, 습관, 생은 신속히 사랑을 위해 무덤을 판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도 타산과 이성이 남아 있다.
인간이 이런 변화에 중점을 두고자 하지 않고 사랑에 집착한다면 그는 반드시 생을 파괴하게 되리라.
사랑한다는 것이나 산다는 것, 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지속하기엔 불가능한 것이다.
3월 10일
우르슬라 암르하인 양에게서 아주 예쁜 카드가 하나 왔다. 그녀는 특별히도 몹시 내 마음에 든다.
아이는 아직까지 아무런 징후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나는 시시각각 기다린다. 그동안 아이가 너무 크게 자라서 난산이 될까 두렵다.
그러나 거기에 무슨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운명이다. 각자는 각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운명을 납득해야만 한다.
내가 분만 중에 죽는다 해도 그것이 내 운명이고 비운(非運)인 것이다.
나는 요즈음 기이하게도 나도 모르게, 그리고 자주 죽음을 생각한다.
밤중에 자주 내 가까이에서 죽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나는 죽음에 대비하여 내 몸을 보호하고 내 마음을 돌린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고 되돌아온다.
내가 허심 탄회하게, 분별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지금 죽거나, 20년 후이거나, 30년, 혹은 50년 후에 죽는다 해도 결국 마찬가지다. 꼭 같은 것이다.
3월 11일
어머니에게서 멋진 편지가 왔다.
극평론가 Y씨에게 희곡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접수돼서 빠른 시일내에 출판되리라는 소식이다. 나는 안심했고 기뻤다.
그러나 슬퍼할 소식이 있다. 미스터 리가 우리의 <여권>을 인쇄도 하지 않고 아무런 해명도 없이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여원(女苑>사(社)에 대해 상담해오셨다. 어머니는 그것을 문고판으로 발행했으면 하신다. 그러나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첫째, 이미 너무 늦었다는 점(경쟁상으로).
둘째, 여원사에서 사실상 인쇄할지 의문이라는 점에서.
그러나 만일 그것이 문고판에 끼일 수만 있다면 난 몹시도 행복하리라!
나와 T와 우리 아기를 위해서 모든 일이 꼭 성공하리라!
나는 많은 작품을 번역해야 한다. 나는 전속력으로 일해야만 한다.
함부르크에서 온 미스터 정(鄭)이란 분의 방문을 받았다. 장미 다섯 송이를 가져왔다. 꽃은 기뻤으나 사람은 별로...... 점심을 먹고 거의 6시간이나 수다를 떨다 가 버렸다.
저녁 때 내 고착 관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베토벤의 <제 9번 교향악>을 들었다. 장엄한 음악(합창).
나는 스스로를 극복해야 한다.
나는 심연에서, 허공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흘려버려야 한다. 아니면 나는 자신을 상실하리라. 아니면 곧 신경 쇠약에 걸려서 분명 정신 병원으로 가야 하리라......
T가 머리를 감았다. 그는 내게 단 하나의 사랑스런 사람이다.
우리의 생존에 한계가 있더라도 아니 오히려 우리의 생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를 몹시 사랑한다. 그렇게 간절히 그를 사랑한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하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어머니는 사랑스럽고 선량한 분이다.
3월 13일
모든 것은 꿈과 같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그렇게 돌변했고 압도적이었다.
13일 저녁에 나는 병원에 입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