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란 무엇인가?
그 첫 번째 '탈모에 대하여'
며칠 전 어느 주간지로부터 '나의 이십 대'라는 페이지에 하루키 씨 얘기를 싣고 싶은데, 그 일로 이십 대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빌렸으면 한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옛날에는 사진 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십 대의 사진이란 게 거의 없는데, 그래도 어떻게 대 여섯 장은 찾아냈다. 그런데 그 십 년 남짓 이전의 사진을 보고, 내 머리카락이 이십 대 때보다 훨씬 풍성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머리 스타일이 달라진 탓이겠지 했는데,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단연 지금 쪽이 머리카락 양이 많다. 더부룩한 것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발소에 다니는 횟수도 옛날보다 늘어났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카락이 많아졌다는 건 흔한 얘기가 아니다. 마누라는 '옛날에 비해 머리를 안 쓰니까,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어진 때문 아니예요?'라고 간단히 말하는데, 암만 별 볼일 없는 소설이라 해도 소설을 쓰는 이상은 그 나름으로 머리를 쓰고, 머리를 쓰면 스트레스도 자연 쌓인다. 문단이라든가 업계, 세금, 월부금 등등의 일도 잇고, 더구나 소설가도 옛날처럼 뜰에 나 앉아 참새 떼를 바라보며 '벌써 봄이로군'하고 주절거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머리를 안 쓰니까'라는 둥 간단히 결론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네게도 역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다. 그런 것이 바깥으로 반영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아닌게 아니라 내 머리카락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전업 작가가 되고 난 뒤부터이다. 그렇다면 전업 작가가 된 일이 나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가 하는 문제를 총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내 증모현상의 수수께끼도 자연히 풀릴 것이다. 명명 변화를 리스트 업 해보니까 다음과 같다.
(1)동경을 떠나 교외에서 살게 됐다.
(2)타인과 만나는 일이 극단적으로 적어졌다.
(3)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일찍 자게 되었다.
(4)하루 세 끼를 꼬박 먹고, 혼자서도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5)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다.
(6)교제상 마시는 술이 팍 줄었다.
물론 머리카락이 빠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획일적인 결론은 내릴 수 없지만, 내 경우에는 이러한 생활의 변화가 모발 상태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뒤집어 말하면 뼈를 깍아내듯 소설을 쓰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때-오 년 정도 이전 일인데-머리 숱이 눈에 띄게 줄어든 적이 있다. 그 무렵엔 사업상 이런저런 말썽이 많아(지금은 그때 일을 되돌이키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그 탓으로 머리카락이 쑥쑥 빠져 나갔다. 목욕탕에 들어가 머리를 감으면 바닥 배수구에 항상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뒤엉켜 있었다. 나는 원래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서, 처음 한동안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드디어 목욕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서면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가 조금씩 들여다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좀 이마가 벗겨진 것 아니야'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 단계까지 가서야 나도 머리를 의식하게끔 되어, 머리 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헤어 스토닉으로 열심히 두피를 맛사지하게도 되었다. 탈모라든가 발기부전이라든가 하는 것은(후자는 아직 관계없지만서도) 비만이나 금연과는 달리 스스로 노력하면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 종류의 사태가 아닌 만큼, 당사자의 심경은 몹시 어둡다. 그러나 타인이란 참으로 잔혹하여, 본인이 그 사실을 염두에 두면 둘수록 '괜찮아. 까짓 것, 요즘에는 진짜 같은 가발도 많으니까'라는 둥, '하루키 씨, 대머리가 되면 또 대머리가 된대로 귀여울테니까 염려 놓아요'라는 둥, 정말 집요하다. 이게 어느 귀 한 쪽이 잘라져 나갔다거나 하는 일이라면, 모두들 동정의 여지도 있고, 앞에 두고 놀려대거나 하는 일도 없을텐데, 탈모라는 것은 구체적인 통증을 동반하지 않으니 진지하게 동정을 받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젊은 여자는 자신이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없는 만큼, 이런 류의 일에 관해서는 정말 철딱서니가 없다. '아이, 볼상 사나워. 정말 대머리가 됐잖아. 봐요, 좀 보여줘요. 어머 머릿가죽이 보여. 아이 징그러워, 우와'하고 말이다. 이런 경우는 꽤 화가 치민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성가시고 불쾌한 상황이 개선돼 삼에 따라, 나의 탈모량도 서서히 줄어들어, 두석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원래의 상태대로 감쪽같이 회복되었다. 그 이후 머리카락 때문에 마음을 조린 일은 한번도 없다. 언젠가 또다시 무슨 날벼락 같은 문제에 휩쓸려 머리카락이 빠지게 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가능한 한 사소한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많은 일도 하지 않으며 느긋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
그 두 번째 '비만에 대하여'
지난 주에는 탈모에 관한 얘기를 했으니까 이번 주에는 비만에 관해 쓰겠습니다. 그다지 달가운 화제도 못 되므로, 읽고 싶지 않으신 분은 안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중년이 되어(나는 서른 여섯 살이므로 싫든 좋든간에 일단은 중년 초기에 속한다) 가장 곤란한 일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점점 살이 찐다는 것이다. 이십 대일 무렵에는 아무리 먹어대고 마셔대도, 체중계의 바늘이 60킬로그램 선을 넘어서는 일이 결코 없었는데, 최근에는 조금만 방심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65킬로그램 정도가 되어 버려 아연해지고 만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아연해지는' 경험이 날로 풍성해지는 것 같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한동안 장편 소설에만 매달려 있었던 터라 시간이 아까워서 조깅을 쉬었더니, 지난 2월에 나의 체중은 마침내 66킬로그램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딪고 말았다. 운동 부족에다 일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에 과식, 폭음이 겹치다 보면 살이 찌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 정도 체중이 되면 사뭇 몸이 무겁고, 사이즈 29인치인 바지에 몸을 쑤셔넣기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래서 석달 동안 감량에 감량을 거듭한 결과 59킬로그램까지 체중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조금 더 힘내어 어떻게든 58킬로그램 선에 정착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키가 168센티니까 그 정도 선이면 가장 가뿐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봐서 일 개월당 2킬로그램 정도의 감량이라면 그렇게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찌기는 쉽고, 빼기는 어렵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또 다르게는 '비만에 이르는 길은 짧고 평탄해도, 감량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기야 이 점은 체질 탓도 있어, 중년이 되면 너나할것 없이 모두 살이 찌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안자이 미즈마루 씨 같은 경우는 나보다 한 단계 위의 중년인데도, 늘 바싹 말라 있어 부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우리 마누라 같은 경우도 절대로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다.
살이 찌는 체질인가 안 찌는 체질인가 하는 차이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꽤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제삿날이라든가 결혼식처럼 친척들이 한꺼번에 모인 자리에 나가, 주위를 한바퀴 휘 둘러보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 경우를 보면, 우리 친척들은 뚱뚱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안되지만 꽤 통통한 체형의 사람이 많고, 마누라의 친척들 쪽은 모두가 대개 야위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제삿날에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면 '이거야 상당한 끈기를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는걸'하고 결심을 새로이 하여 운동에 힘쓴다. 마츠모토 세이초(소설가.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추리소설가로 전신, 일본 추리 문학계에 한 획을 그었다.)의 오래 전 단편에 세끼 손가락이 짧다는(아마도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이유로 박복한 운명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일가족의 얘기가 있는데, 나는 요즘 들어 그런 사람들의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노력 없이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을 또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불공평, 불평등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쓰다 보면 점점 화가 난다. 그러나 그 대신-이라고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마누라 집안에는 암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 반면 우리 집안은 암으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만과 암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가 하는 데까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 이와 같이 혈통이라고 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어쩌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기라도 하면, 식장에서 좌우로 나뉘어져 나란히 앉아 있는 양가 친척들의 얼굴 생김이니 체격이니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견주어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시도해 보세요. 틀림없이 흥미로울테니까. 그건 그렇고 세상에는 비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꽤 많은듯, 책방에 나가 보면 살을 빼기 위한 노하우 책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데, 또 그 대부분이 베스트 셀러인 모양이다. 나도 몇 권인가 들쳐 보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이거야말로 결정판!'이랄 만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세 권을 읽으면, 거기에는 살을 빼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어, 그 각각의 방법이 전혀 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몹시 극단적인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책도 있다. 살을 빼기 위한 영양학이 아직 체계적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현재, 지나치게 편협한 요법에 의존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위험 부담이 클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애당초 꼼꼼한 성격이라 다이어트나 살을 빼기 위한 운동에 대해서 꽤나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 결과로써 나온 결론은 '사람에게 다양한 생김새나 성격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살 찌는 방식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만인에게 적합한 살빼기 방법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체질이나 식생활, 직업이나 수립에 맞추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처럼 권위있는 영양과 의사가 각 개개인의 얘기 '음,음'하고 들어가며, 그 상대에게 알맞는 살 빼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게 이상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하지만, 갑작스레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한군데다 뭉뚱그려 놓은 다이어트 책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뭐가 어찌됐든, 프랑스 요리집에서 디너를 먹고 디저트를 생략해야 하는 분함이나 불쾌함은 필설로는 다 하기 어렵다고 생각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