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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때 우리 집에는 '코코'란 녀석이 있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니? 하면서, 잘 때는 '잘자' 하면서 나는 이 녀석의 코에 내 코를 부비었는데 그 모습을 본 누나가 '코코' 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코코는 아무 때나 내 방에 제 맘대로 드나들었는데 어떤 때는 내 가방을 질근질근 씹어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의자를 딛고 내 책상에 올라가 시침 뚝 떼고 앉아있기도 했다. 나처럼 좀 엉뚱한 데가 있는 녀석이었다.

한번은 이 녀석이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집은 성남 초입인 수진리 고개 근처에 있었는데, 이 코코란 녀석이 아침에 출근하는 우리 둘째형을 따라 나섰다가 수진리 고개 큰 길에서 그만 차에 치였던 모양이었다. 집 앞이 시끌시끌해 나가보니 이녀석이 다친 몸으로 사람 걸음으로 한 십 분쯤 되는 길을 기어와 우리집과 옆집 사이에 난 좁다란 곳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는 거였다. 누가 들어갈라치면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으르릉 거리기 때문에 아무도 어쩌지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핏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내가 들어가려고 하자 동네 사람들이 막 말렸다. 물린다고. 개는 상처를 입으면 무섭다고 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코코, 나야." 하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낮게 "으르르" 하더니 내 목소리를 알아채고는 신음소리만 내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녀석을 데리고 나오려면 몸 아래로 두 손을 깊숙이 넣어 안고 나오는 방법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밖에서 난리를 쳤다. 그냥 나오라고. 개가 사나와져서 날 물거라고. 이제 살기는 틀렸다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믿었다. 사람들이 뭐라 그러든 코코가 날 물리는 없다고. 아무리 아파도 참고 나한테 제 몸을 맡길 거라고. 물론 코코는 날 물지 않았다. 그저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바로 치료를 받은 코코는 두 달이 못되어 다시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나는 알았다. 사람은 개를 못믿어도 개는 사람을 믿는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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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 씨네 집에는 바둑이 한 마리가 있다. 어느 날 둘이 개이야기를 하다 이 개의 내력을 조금 들었는데 대충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렇다. 시인네 집 아들이 늘 개가 한 마리 있었으면 하고 아버지를 졸랐는데 아버지는 개를 사주지 않고 년을 버텼다. 개라는게 한 식구와 다름없는데 정을 붙이고 나면 뒷날 헤어질 때 너무 슬프고 힘들기 때문에 그랬단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너무 나쁜 아버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하루 시간을 내서 개시장이 열리는 '모란장'엘 나갔는데 어떤 놈을 사야하나 생각을 하다, 개를 고른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려 처음 눈이 마주치는 녀석을  사기로 작정을 하고 정말로 처음 눈이 마주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왔단다. 그리고는 그녀석 모습 그대로 '바둑이'하고 이름을 붙였단다.

그 얘기를 듣다 내가 한 마디 했다. 아니 세상에, 상상력과 은유와 상징을 버무려 먹고 사는 시인네 집 개 이름이 옛날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 맨날 나오는 그 바둑이라니 이거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 아닙니까? 그랬더니 시인 하는 말, 고유한 이름,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면 나중에 더 슬프지 않겠냐고, 그래서 흔하디 흔한 이름으로 부르려고 한다고, 그런다. 참내. 시인의 마음이 개처럼 착하다. 그러니 '개들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시를 쓰지.

사람들은 모른다. 개들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걸. 개들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걸. 개들도 꿈을 꾼다는 걸. 세상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면서도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 '개만한 사람들'도 별로 없는 세상에 말이다. 이 세상은 사람 혼자 사는 게 아닌데. 사람만이 소중한 게 아닌데. 어떤 사람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듯, 어떤 개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생명있는 것들은 다 그렇다. 풀도 나무도 다 그렇다.

글/백창우(작곡가,시인,가수) 그림/김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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