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때 우리 집에는 '코코'란 녀석이 있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니? 하면서, 잘 때는 '잘자' 하면서 나는 이 녀석의 코에 내 코를 부비었는데 그 모습을 본 누나가 '코코' 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코코는 아무 때나 내 방에 제 맘대로 드나들었는데 어떤 때는 내 가방을 질근질근 씹어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의자를 딛고 내 책상에 올라가 시침 뚝 떼고 앉아있기도 했다. 나처럼 좀 엉뚱한 데가 있는 녀석이었다.
시인 정호승 씨네 집에는 바둑이 한 마리가 있다. 어느 날 둘이 개이야기를 하다 이 개의 내력을 조금 들었는데 대충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렇다. 시인네 집 아들이 늘 개가 한 마리 있었으면 하고 아버지를 졸랐는데 아버지는 개를 사주지 않고 년을 버텼다. 개라는게 한 식구와 다름없는데 정을 붙이고 나면 뒷날 헤어질 때 너무 슬프고 힘들기 때문에 그랬단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너무 나쁜 아버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하루 시간을 내서 개시장이 열리는 '모란장'엘 나갔는데 어떤 놈을 사야하나 생각을 하다, 개를 고른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려 처음 눈이 마주치는 녀석을 사기로 작정을 하고 정말로 처음 눈이 마주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왔단다. 그리고는 그녀석 모습 그대로 '바둑이'하고 이름을 붙였단다.
그 얘기를 듣다 내가 한 마디 했다. 아니 세상에, 상상력과 은유와 상징을 버무려 먹고 사는 시인네 집 개 이름이 옛날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 맨날 나오는 그 바둑이라니 이거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 아닙니까? 그랬더니 시인 하는 말, 고유한 이름,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면 나중에 더 슬프지 않겠냐고, 그래서 흔하디 흔한 이름으로 부르려고 한다고, 그런다. 참내. 시인의 마음이 개처럼 착하다. 그러니 '개들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시를 쓰지.
사람들은 모른다. 개들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걸. 개들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걸. 개들도 꿈을 꾼다는 걸. 세상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면서도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 '개만한 사람들'도 별로 없는 세상에 말이다. 이 세상은 사람 혼자 사는 게 아닌데. 사람만이 소중한 게 아닌데. 어떤 사람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듯, 어떤 개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생명있는 것들은 다 그렇다. 풀도 나무도 다 그렇다.
글/백창우(작곡가,시인,가수) 그림/김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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