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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객지 생활을 접고 고향 곡성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아버지 몸이 이미 치유할 수 없는 깊은 병에 들어서였다. 젊어 한때를 대한민국이 좁다 하고 천지사방을 헤매 다니시더니, 늙고 병든 아버지는 수발해 줄 처도 자식도 없는 고향의 빈 집으로 홀로 들어가셨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광주에서 살고 있던 나는 주말마다 갓난아기를 들쳐업고 아버지 일용할 반찬거리와 약 등속을 싸 들고 고향집을 가야했는데, 1988년 올림픽이 있던 해였다. 세상은 올림픽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는데 고향집의 아버지는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향집엘 가려면 광주에서 곡성읍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운이 좋으면 고향 동네 앞을 지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거개는 동네에서 오리가 떨어진, 고향 동네 사람들이 그냥 '삼거리'라고 부르는 곳에서 버스를 내려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고향집까지 어린 아기를 업고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타박타박 걸어가야 했던 것인데, 그해 봄 어느 날은 반찬거리와 약에 더해 한 가지가 더해진 짐을 들고 가야 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사들인 짐승들의 먹이였다.
아버지는 그해 봄 엄청나게 많은 동물들을 사들여 놓고 있었다. 새끼 돼지 두 마리, 토종닭 일곱 마리, 흑염소 세 마리, 그리고 강아지가 무려 열두 마리나 되었다. 그것들을 아버지는 오일장이 설 때마다 한 종류씩 사들이신 거였다. 그렇게 많은 짐승들을 사들인 아버지는 그해 봄 시한부의 생을 살고 있었다.  
 
양의의 진단으로는 육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였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왜 그리고 어쩌자고 그 많은 짐승들을 사들여 놓았는지 나는 그때 오리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의아하다기보다 까닭 모를 슬픔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양철로 된 사립문을 들어서자마자 내게로 달겨들던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라니. 그것들이 일제히 내게로 달겨들며 내던 제 각각의 소리들은 내게 울음소리가 아니라 거의 비명소리 같았다. 당신의 몸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겁도 없이' 들여놓은 목숨 달린 것들이 내는 비명소리에 나는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그러한데도 마루에 나앉아서 마당에 풀어 놓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는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하아, 적막강산이던 집에 사람이 오니 저것들도 반가운 모냥이다."
"반가와서 그러나요? 배가 고파 그러겠지요."
나도 모르게 건짜증이 일어 말대꾸 아닌 말대꾸가 나왔다.
"아니여, 밥은 겁나게 묵었어. 배가 불러도 필시 고픈 것이 있는 것이것제."

왜 나는 그때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하시던 그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일까.
밥을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왜 진작 헤아리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니, 그때 나의 아버지와 함께 했던 두 마리 새끼돼지, 일곱 마리 토종닭, 세 마리 흑염소, 열두마리 강아지들이 나보다 나았다.

품안의 자식이라더니, 품 한번 벗어나면 제 갈길만 생각하는 자식들보다 나았다. 그것들이 바로 아버지의 자식이었다. 아버지의 새끼들이었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에만 겨우 왔다 가는 나는 아버지가 정을 주던 그 짐승들을, 사람 없는 적막강산 집에서 아버지에게 그나마 꼬물꼬물 온기를 주던 그것들을 왜 그리도 구박덩이 취급을 했던 것일까.
 
시인 안도현의 시 중에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버지 세상 떠나신 지 십년하고도 육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내내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생애와 함께 했던 그 어린 짐승들을 생각했다. 그 어린 짐승들은 그때 아버지에게 자식들보다 따스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니. 이따금 애완견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 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개한테 사랑을 주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 어린 짐승들이 떠오른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당신은 그럼 언제 사람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고 싶어지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 때문일 것이다.
 
글/공선옥(소설가) 일러스트/김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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