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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에서 드라마란 장르가 태어난 이래, 작가의 이름과 함께 기억되는 드라마는 많았다. 한국 드라마의 원형을 구축한 김수현은 누구도 꼼짝못하게 만드는 힘 있는 대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전원일기>로 대표되는 김정수는 평범한 생활대사 속에서 우물처럼 깊은 삶의 진실을 길어올리곤 했다. 고인이 된 조소혜가 시청률 67%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첫사랑>으로 대중과의 교류를 꾀하는 동안 송지나는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가장 로맨틱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노희경이 세상에 나왔다.

서른도 안 된 이 어린 작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김수현의 그것처럼 독했고, 서민들의 삶에 대한 질퍽한 묘사는 김정수의 그것만큼 사실적이면서 훈훈했다. 이렇듯 선배작가 모두를 어머니로 두고 있으면서, 그 어떤 아버지도 닮지 않았던 기묘한 신생아는 마포 달동네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가 사는 이유>에서 불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 <거짓말>로 이어지며 ‘마니아 드라마’라는 신조어를 생산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드라마는 노희경과 함께 ‘고민’이란 것을 시작했다. 단순한 스토리텔링에서 멈추지 않는 그녀의 드라마는 늘 ‘회의’를 통해 한 발자국 앞서나가기도 하고 뒷걸음치기도 했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바보 같은 사랑> <고독> <꽃보다 아름다워> <유행가가 되리>와 최근작 <굿바이 솔로>에 이르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괴롭혀왔다. 묻어두고, 잊어버리고 살면 좋을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환부를 드러내는 진단이 없으면 치유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드라마는 늘 텍스트 안에서 머물기보다는 현재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내야 할 것인가 하는 묵직한 철학적 주제로 접어들곤 했다.

지난 5월 30일 <매거진 T>의 창간 기념 이벤트로 마련했던 노희경 작가와의 만남 역시 그러했다. 작가 지망생이 많이 참석한 관계로 ‘선배 노희경’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도 많았지만 “미운 사람을 용서하다 보면 화병만 생기지 않겠냐?” 같은 질문처럼 함께 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눈 고민의 시간으로서의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자리였다. 여기, 바쁜 일상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노희경 작가의 육성을 지상중계한다.

"이제, 나비처럼 가볍고 싶다."


T : 오랜만에 <거짓말> 보시니까 어떠세요? 이성재씨나 배종옥씨가 상당히 풋풋하네요, 배종옥씨는 노희경 작가님과 이제 작가-배우 관계를 떠나 좋은 동료로, 친구로 늙어가는 듯합니다. <거짓말>을 하며 만났던 배종옥과 최근 <굿바이 솔로>를 끝낸 배종옥의 느낌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노희경 : <거짓말> 할 때 몸이 안 좋아서 한의사 하는 친구가 뱀을 달여서 약이라고 줬어요. 나 혼자 먹기는 무섭고 표민수 감독이랑 같이 먹었는데 정말 냄새도 고약하고 이상해서 못 먹겠어. 그때 표민수 감독하고 둘이 한 이야기가 “세상에 적응 안되는 게 딱 세 가지가 있다. 사랑, 뱀, 배종옥.” (웃음) 처음 만난 배종옥이란 여자는 정말 이상했거든요. (웃음) 그 친구가 저보다 2살 많은데, 그땐 우리 모두 젊었고, 나도 그렇고 배종옥도 그렇고 성격에 모난 사람이라 처음에는 정말 많이 싸웠어요. 추잡하게도 배종옥을 앞에 두고 표민수 PD랑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한 번 골탕 먹일까 그 궁리만 했을 정도로.

 T : 그래서, 골탕 먹이신 적 있으세요?

노희경 : 있죠. (웃음) 진짜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기함을 토하는데, 너무 미웠던 나머지 나도 나를 제어를 할 수가 없었어요. 밥 먹고, 엘리베이터에 윤여정 선생님이랑 배종옥씨가 먼저 탔고 내가 이후에 탔는데 내 눈에는 윤여정 선생님이 안 보였던 거야. 당장 이 여자가 너무 미우니까 순간 내가 달려들어서 목을 조른 거야. “연기를 제대로 하란 말이야!!!” 이러면서요. (웃음) 손이 목에 갈 때까지는 정신이 없었고, 손이 가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졌어요. 윤여정 선생님이 두고두고 말씀하시죠. ‘엘리베이터에서 배종옥 목 졸린 사건’이라고. (웃음) 그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함께 작품 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표감독도 너무 꼴 보기 싫으니까, 초반에 잘 보면 유호정 나오는 커트는 길고 상당히 공들여 찍은 데 비해서, 배종옥은 보이스오버나 풀샷으로 간 컷이 많아요. (웃음) 물론 지금은 든든한 동료로, 존경하는 배우로, 인생 선배로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구요.

 T : 베스트셀러 극장 극본 공모에 당선되기 이전에 원래 출판사를 다니셨죠?

노희경 : 네

 T : 어쩌다 갑자기 드라마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노희경 : 그 시작은 정말 나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니었어요. 물론 글 쓴다고 어릴 때부터 떠들고 다녔고, 그걸로 돈도 뜯어 쓰고, 친구들이 많이 고생했죠. (웃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문예반 친구가 내 방황을 도와주기 위해서 저금통을 준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늘 그러셨거든요. 늦잠을 자도 쟤는 작가니까, 사고를 쳐도 쟤는 작가니까, 작가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상당히 져준 부분이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거짓말쟁이가 돼버린 거죠. 그래서 출판사를 그만뒀어요. 살아 계실 때 작가가 된 모습은 못 보여드렸지만, 돌아가신 지금이라도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직장 그만두고 소설을 쓰면서 참 힘들었어요. 그때 한 선배가 내 소설을 보더니 넌 드라마가 맞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드라마 수업을 한번 들어보자 해서, 작가연수원에 갔던 거죠.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혹은 내가 쓰고 싶은 드라마가 있어서 그렇게 시작한 케이스는 아니었어요.

 T :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던 거겠죠?

노희경 : 그렇죠. 쓰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T : 20대 후반의 노희경이란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노희경 : 그때는 멜로는 안 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T : 아니 왜요? 그렇게 연애를 많이 하셨다면서. (웃음)

노희경 : 일단은 제일 두려운 게, 작가들끼리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지나간 애인들이 볼까봐서요. (웃음) 사실 가장 쓰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 이야기였어요.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세리와 수지>가 데뷔작이 됐지만 사실 가장 먼저 썼던 것은 <엄마의 치자꽃>이었어요.

 T : 작가님의 개인사라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보다가 너무 울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출연하신 주현 선생님도 이름도 모르는 작가 대본을 받고 한 장 한 장 읽는데 밤새 펑펑 울었다, 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초기 작품에는 가족의 이야기가 많았어요.

노희경 : 어머님을 너무 좋아했고, 그 분 표정이나 그 분 하신 말들을 그냥 보내기가, 혼자 담고 있기가 아깝기도 했고.

 T : 대사의 상당 부분이 어머니가 하신 것인가요?

노희경 : 맞아요. 어눌한 느낌이나 대사 톤 자체가 <꽃보다 아름다워>의 영자(고두심) 같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나문희 선생님이 저희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모습이랑 닮았구요.

 T : 예전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란 말을 하셨는데, 어떠세요? 지금의 삶이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고, 그 분이 원하셨던 모습인 것 같나요?

노희경 : 조금은,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죠, 엄마는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하셨지만, 전 여전히 피우죠.

 T : 끊으실 생각도 없으시죠?

노희경 : 솔직히 별로 없어요. (웃음)

 T : 노작가님의 드라마에서 가족의 존재는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하는 가족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거짓말>을 쓰던 시절의 가족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노희경 : 그땐 가족이 싫었어요. 난 가족이 좋다는 사람을 보면 제일 이상했어. 가족끼리 친하다는 말이 내게는 외계인이 쓰는 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에겐 어머니가 있었지, 가족은 따로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원망의 대상이었고, 내 콤플렉스였었죠. 그런데 이제는 알겠더라구요. 우리 집에 형제가 많은데 내가 막내다 보니까 위에 언니하고 나이차가 많이 나요. 아, 그들도 참 많이 힘들었구나, 이제는 알겠어. 그들도 나랑 친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 얼마 전 여형제만 모여서 여행을 갔다 왔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오랜만에 어릴 때 이야기도 하고, 밤새 방에서 깔깔대며 웃기도 하고. 이제 우리에겐 가는 일만 남았거든요. 우리 어머니도 가셨고, 아버님도 시한부라 가실 날 받아놓고 있으신데, 이제라도 형제들과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지금은 가족이 좋다는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어요.
사실 가족끼리는 작은 오해들이 쌓여서 큰 증오를 만들어내거든요. 나만 해도 우리 아버지에게도 엄청난 큰 오해를 했어요. 5, 6살 때였나? 우리 아버지가 바람을 많이 폈어요. 바람을 피니까 가끔 불쑥 집에 왔어요. 물론 바람을 펴서 밉다, 이런 생각도 없을 때라 그저 아버지가 오면 반찬이 잘 나오는 날이라 기분이 좋았죠. 내가 워낙 작고 어눌하고, 물론 지금도 똑똑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하루는 꿀밤을 10대를 맞으면 10원을 준대요. 그래 맞자, 하고 참는데 9대쯤 맞으면 너무 아파서 자지러지게 우는 거지. 그래서 운다고 돈을 못 받았어요. 아버지가 밉다, 라는 마음이 딱 들면 그 장면이 생각나요. 어떻게 애비가 되서 그럴 수가 있나, 그 어린애가 가난하고 먹을 것 없어서 10원을 가지고 눈깔사탕을 사먹으려고 참는데 때리고 돈도 안 주나, 되게 미워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거의 1년에 한 번쯤 보고 살았죠. 증오심이 많았으니까.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폐암 선고를 받으시고, 나도 적극적으로 아버지와 화해하지 않으면 내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이 글하고 다를 순 없으니까.
그래서 정말 어떤 숙제를 해결하듯이 아버지를 모셔왔는데 지금은 사이가 좋아요. 작년쯤인가 밥상머리에서 내가 물었어요. 아버지, 기억나요? 나 꿀밤 주면서 10원 준다고 했던 거? 그러니까 막 웃으시는 거야. 아버지는 내가 너무 귀여우셨던 거예요. 쪼그만 애가 10원 주면 10대 맞아요, 하고 따라다니니까, 그게 너무 귀여웠던 거야. 아버지가 식사하시다가 그 때 이야기를 하시면서 웃느라고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아, 아버지도 내가 예뻤구나,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았었구나. 나도 조카들이 귀여워서 많이 울렸거든요. 꼬맹이들이 얼굴 빨개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이 놈의 녀석, 막 그랬는데 이제 안 해요. 나는 사랑한다고 하는데 어린 애들한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제는 아버지랑 집안 텃밭에서 상추 가꾸면서, 그때 그 여자가 왜 좋았어? 그런 것도 묻게 되고. 그렇죠. 아버지가 왜 바람을 피웠는지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가 가요. 우리 아버지같이 재미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처럼 재미없는 사람이랑 같이 살기 힘들었을 거야. 난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부부로서 아버지와는 맞지 않았고, 맞지 않는 여자를 그래도 본처라고 한겨울 밤 문득 찾아오던 그 남자는 참 괜찮은 남자였다, 그런 생각도 들어요. 누군가에겐 이 말이 교훈적으로 들리고 듣기 싫을 것 같은데, 시간을 내버려두면 그런 깨달음은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몰라도 돼요, 마흔에 알아도 돼요.

 T : 그래서 서른하나에 쓴 <거짓말>에서는 준희가 가정으로 돌아갔군요.

노희경 : 그러니까. (웃음)

 T : 글을 쓰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신 적 있으세요?

노희경 : 맨날 느끼죠.

 T : 드라마를 공부하는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드라마를 잘 쓸 수 있나요? 이런 추상적이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대답을 하시나요?

노희경 : 작가교육원에 강의를 나가면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엘리트예요. 그 사람들이 학생들한테 야, 작가 이거 되게 어려운 길이다, 안 된다, 포기해라, 그러신대요.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나도 되는데 니네들이 왜 안 되냐. 나는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고 생각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들은 넌 너무 꿈을 준다, 그러는데, 전 꿈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모두 다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두 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모두 다 치열하다고 하지만 천만, 만만의 말씀, 모두 다 치열하지 않습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루의 5분만, 집중해서 5분만 글 쓰라고 하지만 365일의 5분도 하지 않습니다. 하루 밤새우기는 해요, 며칠 놀려고 그렇게는 해도 꾸준히 매일 하지는 않아요. 꾸준히 매일 하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전 그 생각해요, 선생님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만 해도 기본은 해요. 대부분 입으로는 열심히 해요, 죽도록 사랑해, 말해놓고 물만 떠다 달래도 짜증내잖아요. 그러니까 사랑도 입으로 하고, 글도 입으로 쓰고, 그런데 매일 쓰는 사람은 아무도 못 당하고, 사랑도 실천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도 못 당해요. 작가 되기는 어렵지는 않아요. 대신 정말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매일 써야 해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다 열심히 한다는 거야. 뻥치지 말자, 목숨 걸고 해야 해요.

 T : 늘 마니아 시청자군을 끌고 다니며 시청률과 상관없이 명예로웠던 노희경 작가의 행보에서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후반부나 <고독>은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어요. 그런 과정들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노희경 : 사람들이 암 선고 받고 나면 그 과정이, 분노하고 원망하고 인정하고 수긍한다고 하는데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거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조건 남 탓 하다가,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자학하다가.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너무 고통스럽지만 앞으로도 이런 시련이 나에게는 또 올 것이란 걸 알구요. 물론 그것이 두렵지만 그런 일이 오지 않게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또 다시 나는 망할 테고, 또 다시 휘청거릴 테고, 또 실수할 거예요. 다만 이제 내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은 내가 그때 일어서서 또 다른 글을 썼듯이, 다음에 무너질 때도 그것을 끝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일어나자고 다독이는 거예요.

 T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때는 배우들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재우야 잘 잤니, 신영아 밥 먹었니, 인사하는 버릇이 있었을 정도로 작품에 푹 빠져서 사신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그러세요?

노희경 : 작가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캐릭터들과 24시간 같이 있는 것 같아요. 미친 사람처럼. 어차피 육화하는 작업이라 혼신을 주지 않으면, 전부를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주는 거죠. 우리 식구들이 나랑 밥 먹다가 그래요. 야야야, 천정명이 나온다, 가만 보면 내 말투나 행동이 천정명을 흉내 내고 있는 거야. 어느 순간 보면 야, 이제 미영이 할머니 나온다 그러고. (웃음)

 T : <굿바이 솔로>를 떠나보내시고 한 달 넘게 흘렀습니다. <굿바이 솔로>는 본인에게 어떤 작품인가요?

노희경 : 내가 넘고 싶은 개인의 한계가 있었어요. 시청자들이 좀 편하게 봤으면 하는. 그런데 이거 사람들이 또 울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웃으라고 쓴 건데 왜 우는 거야? 화나는 거야. 그래서 작품 끝나고, 되게 많이 힘들었어요. 왜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 나는 가볍고 싶은데. 가벼움과 경박함은 다른 말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정말 가볍고 싶었어요. 진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어느 날 내 드라마를 봤는데 사람들이 안 볼 만도 해. (웃음) 마음이 퍽퍽한 거야. 어느 작가가 나에게 “너 그것 사람들 많이 보라고 쓴 거야?”라고 말하더라구요. 소수만 보라고 일부러 쓴 것 같다고. 아 그랬구나,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그 고민한 결과가 나오겠죠. 좋은 작품도 써야 하고, 시청률도 많이 나와야 하고 가랑이가 찢어지겠지. (웃음) 그래도 이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기회를 주시니까, 다음에는 좀더 가볍게, 사람들이 편하게,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전달했으면 좋겠어요. 나이는 마흔이나 됐는데 아직도 더딘 것 같아. 맨날 배워. 맨날 몰라요.

 T : 죽을 때까지 모르지 않을까요.

노희경 : 그러게 말이에요.


"노희경 작가에게 던진 T피플의 달콤살벌한 질문들"


T피플 : 글이 잘 안 풀릴 때가 있잖아요. 사람이니까, 전지전능하지 않으니까. 창작 강박증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비법에 대해 전수해주세요.

노희경 : 저는 사실 재능이란 것을 믿지 않아요. 사람들은 살리에르와 모차르트 이야기를 하며 살리에르에 동정을 표하는데, 제가 알기로 모차르트의 작품 수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만큼 노력했다는 이야기거든요. 강박증은 누구에게 있어요. 특히 잘하려고 할 때 강박증이 나와요. 오늘도 이 자리에 오면서도 힘들었어요. 말을 잘하려고 포장하려고 하면 힘들어져요. 흔히 ‘필이 온다, 안 온다’ 그런 말을 많이 해요. 그런데 필 올 때만 쓰면 필 안 올 때가 너무 많아요. 필이 오면 오는 대로 쓰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즉 그 기분 따라, 심한 말로 꼴리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쓰는 거죠. 오늘 내가 글이 안 풀리면 왜 안 되는지 다시 한 번 짚어보고, 그 원인을 알고 쓰는 거죠. 매일. 컨디션이나 기분에 좌지우지되지 않게. 특히 방송은 정해진 분량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가장 큰 관건이거든요. 글이 잘 써지면 써지는 대로,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정해놓은 시간을 계속 쓰셨으면 합니다.

T피플 : 저는 노희경 작가님이 여타의 작가들과 차별성이 있는 것, 그 글 이면의 휴머니즘 때문이라 생각해요.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노희경 : 소크라테스는 정말 똑똑해요, 현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현자가 아니라고 했거든요. 내가 휴머니스트다 하는 순간에 이미 아닌 거죠. (웃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나에게도 나쁜 면이 있지만 끝까지 나쁘지는 않은 어떤 부분이 있어요. 누구랑 어떤 사람 실컷 씹고 집에 갈 때 꼭 후회해요. ‘ 뭘 안다고 그렇게 씹어댔을까.’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후회한다고 해요. 나만큼 나쁘고 나만큼 여리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자학증이 글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절대로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에 지치고, 자기를 미워하는 방식은 지쳐요. 사람을 미워하는 것 자체가 지치는 일이예요. 나도 미워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몸이 쪼그라들었는지 몰라. (웃음) 이제는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느냐, 내가 옳아봤자 얼마나 옳고, 상대가 그르면 얼마나 그르겠냐, 이런 생각들을 하니까 두루뭉술해져요. 개중에 사람들은 이런 저를 보고 회색분자라고 하는데 회색분자면 또 어떻겠습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죠.

T피플 : 일단 제 질문이 3가지인데, 짧은 거예요. 노희경 작가가 좋아하는 날씨랑, 지금까지 노희경을 있게끔 한 것, 답이 어머니라면 어머니는 빼시고, 그리고 지금 제 나이가 24살인데, 지금 이 시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세요.

노희경 : 날씨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늙었다 그러는데 요즘엔 너무 덥고 너무 추운 날씨 싫어요. (웃음) 예전 봄, 가을이 밍숭맹숭해서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져요.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 대로 오래가지만 않으면 그건 괜찮은 것 같아요. 나를 있게 한 사람? 내가 정말 단 한 번도 믿을 짓을 안 했는데 믿어준 친구들이 있어요. 내가 첫 월급을 탔을 때 내 손을 잡고 울어준 친구도 있어요. 문예반 동창들 그리고 일단은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내가 정신만 차리면 날 짓밟지만. (웃음) 날 혹독하게 키우는 친구들이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24살이라… 그때는… 계속 화만 냈던 것 같아요. 감나무 아래서 그저 감이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나한테 행운이 오기만을 기대했고, 오지 않으면 화를 냈어요. 그러면서 낭비한 시간이 제일 안타까워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T피플 : <유행가가 되리>를 재미있게 봤거든요. 작가님하고 조금 다른 나이대, 계층의 이야기였는데, 그 캐릭터를 어떻게 얻으시나요? 또 노작가님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쓴다는 생각이 드는데, 드라마란 세계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세계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갈 수 있는 것인지, 타협을 하시는 부분도 있으신 건지, 그게 궁금합니다.

노희경 : 다른 캐릭터는 어떻게 창조하느냐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저는 어른들하고 친해요. 그런데 어른들을 보면 똑같아요. 안 늙어요. 류승범을 스무 살에 봤는데, 걔는 나한테 엄마 같다 그래요. 내 마음은 난 네 친구이고 싶은데 말이죠. (웃음) 그저 모양만 바뀔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카가 나 안 주고 저만 혼자 과자 먹으면 서운해요. 사람 마음은 똑같아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죠. 물론 어떤 어른들 중에 재미없는 어른들이 있죠. 그건 고정관념이 심한 사람들이에요. ‘ 기집애가 왜 담배 펴?’ 이러면 싫잖아요, 솔직히. 나이는 고정관념이 만드는 거지, 열려 있는 사람들하고는 나이차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방송가에서 내 주장을 펼치는 것, 그것은 ‘타협’이 아니고 ‘조율’이에요. 조율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구요. 물론 작품 내용을 조율하진 않죠. 방송국하고 작가들이 싸우는 경우도 있고, 투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다행히 저는 없었어요. 작가가 자기 뜻대로 쓰는 것은 방송은 아닌 것 같아요, 여기는 일기장이 아니거든요. 일기장이라면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 되죠. 욕도 하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당연히 조율해나가야 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는 이유> 때는 욕을 정말 많이 썼어요. 그런데 욕을 줄이라고 해서 줄였어요. 내가 박종 PD와 일하면서 배운 노하우인데, ‘내가 죽어도 아니라고 할 때 네가 양보해라. 대신 네가 죽어도 아니라고 할 때 내가 양보하마’라고요. 그 이후 큰 작품들을 쭉 했는데 죽어도 안 되는 일은 대부분 없었어요. 결국 어떻게는 조율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여기 작가 지망생들이 많은 것 같은데, 왜 자꾸 싸우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여기도 이야기가 통하는 사회예요. 감독과 방송국 사람들, 관계자들, CP들까지 우리의 동업자이지, 적이 아니에요.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있죠. 그러면 글에나 신경 쓰지 그런 것에 진 빼지 마세요. 작가정신 혼자 지키면 되지, 싸우려고 달려들지는 마세요. 방송도 알고 보면 괜찮은 곳이에요.

T피플 : 선배 작품을 보면 참 맑아요, 어떻게 저렇게 맑을 수 있나 싶을 만큼. 맑음 속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아까 가벼워지고 싶다고 하셨지만, 저는 노작가님의 무거움에 대해 찬양하고 싶어요. 정말 무거워질 만큼 무거워져서 그 무게가 감당을 못하고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솟구치는, 그런 가벼움을 지금 충분히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좀더 무거워지길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드라마 작가 준비하실 때 많은 대본을 보셨을 것 같은데, 영향력을 준 선배가 있으세요? 또 어 요놈 봐라, 질투심마저 느껴지는 후배 작가를 말해주세요. <거짓말> 보고 느낀 것은 정말 연애 많이 했겠다, 연애에 있어서는 귀신이다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연애 많이 하셔서 <거짓말>보다 더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노희경 : 웃기겠지만 저는 드라마 쓰기 전에 다른 분 대본을 하나도 안 봤어요. <보통사람들> 대본을 앞에 3장 본 게 다예요. 왜냐하면 그대로 베낄까 무서웠어요. 그래서 지금도 남 대본 잘 안 봅니다. 서로 대본 쓰는 법칙이 다르기 때문에 보기 힘들죠.
저에게 영향력을 줬던 사람이라면 김수현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리고 김정수 선생님을 되게 좋아했어요. 지금 질투가 날 만큼 잘 쓴다, 또 이런 작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하는 친구는 <부활> 쓴 김지우 작가예요. 건강해서 좋아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병색’이 있고 비비 꼬였는데 그 친구는 성품만큼이나 건강해요. 시청률도 잘 나오고 <부활>로 마니아도 생기고 보기 좋아요. 또 <태릉선수촌> 쓴 홍자람, 홍지나 작가들 작품이 예쁘고 보고 나면 훈훈하고 풋풋해서 지켜봐야지 하는 작가예요. 이번에 처음으로 미니시리즈를 한다는데 기대가 돼요.

T피플 : 글을 쓰다 보면 넌 감정을 쏟을 줄 모른다, 벽을 만들어놓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인정을 하면서도 어떻게 빠져나갈지 모르겠어요.

노희경 : 감정을 쏟으려면 쏟아지지 않아요. 오버가 되죠. 연애할 때 오늘 키스하려고 작정하면 안 돼요. (웃음) 똑같아요. 의도가 있으면 안 된다고.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흥수가 “엄마가 엄마 꺼야”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는 다시 들으면 식은땀이 죽죽 나요. 장황하고 감정과잉으로 느껴지는 신이라서 그래요. 감정을 쏟으려고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잘하려고, 치장하다 보니까 자꾸만 힘이 들어가고 유치해지고 머뭇거리게 되는 거죠. 아파, 그러면 아파만 쓰면 돼. 근데 아파, 등줄기가 어쩌고 저쩌고 어떻게 하다 보면 장황해지는 거죠. 이렇게 자꾸만 덧칠하려다 보니까 힘이 들어요. 나도 작품을 하다 보니까 늘 오버하는 신이 나오거든요, 내가 할 말만 하자, 포장하지 말자, 덧칠하지 말자, 그렇게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드라마는 대사가 아닙니다, 정말 대사가 아닙니다. 저기 어른들이 저 때문에 여러 가지 병폐가 생겼다고 하는데 정말 인정합니다. 드라마는 대사가 아닙니다.

T피플 : 어떤 인터뷰를 보니까 직장 그만두고, 일 년만 작정하고 몰두해서 글쓰기를 하셨다고 생각하셨다는데 정말 일 년 만에 되셨나요? 확신이 있으셨나요?

노희경 :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1년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적어도 하루에 한 줄은 쓰려고 했어요. 그 1년 동안 생긴 버릇이 지금도 가는 거죠. 난 졸지에 실업자가 된 거고 동생은 학원 강사를 해서 천원어치, 이천원어치 봉지쌀을 사먹을 때였어요. 어느 날 집에서 글 안 쓰고 데굴데굴 놀았어요. 저녁에 동생이 직장을 퇴근하고 와서,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글 쓰느라 힘들었겠다. 내가 밥해줄게’ 그러는데 처음엔 ‘어 그래. 힘들었어 밥해라’ 그랬어요. 그러다 문득 나 뭐하는 짓인가? 생각이 들었어요. 쪽팔림 때문에 동생에게 놀았다는 말은 못 한 거죠. 그때 이후로 나쁜 짓인데 아침마다 거울 보면서 하루에 한 번씩 내 뺨을 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 7~8년을 뺨 때리기를 했어요. 좋은 버릇은 아니죠. 그냥 열심히 하면 돼지, 뺨까지 칠거야 없죠. (웃음) 하지만 그렇게 뺨을 때리면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절박했기 때문이에요. 앞이 너무 불확실했으니까.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이 나름대로 절박하시겠지만 대신 뺨은 때리지 마세요. 그냥 친구가 1시간 하면 난 2시간 하세요. 친구보다 자신 있으면 한 시간만 하면 되구요.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남이 하나 쓴다고 하면 난 2개 쓰고, 2개 쓴다면 난 3개 쓰고, 무조건 그러는 수밖에 없어요. 난 정말 많이 썼어요. 선생님들이 ‘희경아, 제발 작품 좀 그만 가지고 와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써대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는 거죠.

T피플 : 모든 사람은 이해할 구석이 있다고 하셨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그렇게 참다가 화병이 나시잖아요. 싫은 사람도 알고 보면 그리 악하지 않다고 하셨지만, 사람이 너무 참으면 병이 나지 않을까요?

노희경 : 맞아요. 싫은데 좋아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싫으면 싫어하면 돼요. 대신 누군가가 싫은 것 때문에 내가 괴로울 필요는 없는 거죠. 그런데 결국 피할 수도 안 볼 수도 없을 때가 있어요. 물론 부부는 이혼하면 되고 부모 자식은 찢어져서 안 볼 수 있어요.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질문한 것은 그렇게 하면 마지막까지도 편하겠냐는 거였어요. 내 마음이 안 편한 거죠. 내가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예요.

T피플 :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추소영 대사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 운동하느라 바쁘다” 이런 이야기 했는데, 혹시 여성운동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 임성한 작가와 비교하는 기사를 봤었는데, 임성한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노희경 : 밤이 깊을수록 질문이 무서워지고 있네요. 여성 운동가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만 일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나도 입으로만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걸 경계하자 했던 대사였구요. 그 다음 질문은… 임성한 작가, 도 있죠. 세상에는 임성한 작가도 있고, 노희경도 있고, 신정구, 인정옥 작가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