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공원은 평일과는 달리 색상이 화려하다. 공원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은 슬프고, 대체로 평화롭지만 불행하다. 나는 원래 지리에 약해서 낯선 버스를 타면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때로는 가벼운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신이 나기도 한다.

가끔은 공원에도 간다. 공원은 계절과 시간과 요일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가장 상쾌한 것은 아침의 공원이다. 아직 아무도 들이쉬지 않은 공기는 맑고 산소로 충만하다.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고, 온 세계가 싸늘하게 젖어 있다.

아파트에 혼자 있다 보면 외롭고 따분하다. 그러면 온갖 상념이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은 일들도 많으니까,... 그러다 보면 결국은 매듭이 지어진다. 아마도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장소를 낯설어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때로 매듭을 짓지 못해 안달한다.

평일의 공원에서 만나던 어린이들과 마주치면 몹시 거북하다. 남편이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비

비를 좋아해서, 비가 내리면 비를 본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라본다. 빗소리를 듣고 비의 내음을 맡는다. 조그만 마당과 건너편 지붕, 낯익은 풍경이 비에 젖는 모습을 본다. 빛나는 아스팔트, 낮게 가라앉은 하늘, 물기를 담뿍 머금고 이파리 하나 하나를 떠는 나무. 우리는 다들 비를 좋아해서 비가 내리면 창문을 열어놓는다.
"아, 비 구경해야지."
비는 몇번이든 상관없이 보고 싶다. 아침에 내리는 비와 오후에 내리는 비, 밤에 내리는 비가 저마다 다르고 창문에 따라서도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을때면 먼지 낀 공기의 냄새도 맡고 싶고, 질리도록 쏟아질 때면 그 시원스런 냄새를 맡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서는 일이 좀처럼 없기에,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일을 한다. 한 우리에서 사는 두 마리 동물처럼, 더구나 서로의 생활 패턴을 속으로는 우습게 여기면서 겉으로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간섭하지 않는다. 나와 남편은 취향이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책도 다르고, 뭘 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다르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왔고, 오히려 다른 편이 건전하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같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령 감정의 기복-예를 들면 연애-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고 한다면 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외간 여자였다. 외간 여자

때로 외간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외간 여자란 요컨대 아내가 아닌 여자.
아침, 남편이 샤워를 한다. 수염을 깎고 이를 닦는다. 막 세탁소에서 갖다 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메고, 검정색 양복을 입는다. 남편은 양복이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남편은 현관을  뛰쳐나간다. 구두를 신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그 순간의 황망함에는  전혀 길들지 않는다.
할 말이 있었는데.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떤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 말이 있었는데.
밤이 되면 남편은 돌아온다. 하지만 그때의 남편은 아침의 남편과는 다른 사람이다.
아침의 남편은 약간 냉담하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있었다. 대외적인 얼굴이라고 하면  그뿐이겠지만, 내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얼굴, 아침의 남편은 그런 얼굴이다.
나는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목욕을 하고 일을 한다.
남편은 지금쯤  외간 여자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할 지도  모른다. 외간 여자의 눈에 남편은 예의바르고 인상 좋은 남자로 비치리라.
남편은 외간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늘 인상이 좋으니까. 외간 여자니까. 화를 내면서 울지도 않고 남편의 결점을 지적하지도 않으니까.

가끔은 외간 남자를 만난다. 외간 남자는 아주 친절하다. 예의 바르고, 얘기도 많이 해준다. 나와 내 일을 칭찬해 주고, 잔이 비기 전에 재빨리 한 잔 더 주문해 준다. 물론 나는 외간 남자의 그런 배려가 반갑지는 않지만, 남편이 그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남자도 자기 아내에게는 이렇게 친절하게 굴지 않겠지, 하고 생각한다.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월요일

나는 밤에 일하거나 책을 읽다가 남편이 그리워지면 잠든 얼굴을 보면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따분하면 밤 마실을 하러 나가는데, 마실이라고 해봐야 택시를 타고 밤새 문이 열려 있는 책방에 가는 정도라 기껏해야 왕복 1시간 반이다. 참으로 소박하다. 책방이 아니면 밤새 영업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든지, 공원 옆에 있는 육교에서 오가는 차를 바라본다. 밤은 기분이 맑아 좋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집에서 남편이- 물론 쿨쿨 자고 있을 테지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 돌아갈 장소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때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찍한 것일까).

우리는 많은 주말을 함께 지내고 결혼했다. 늘 주말 같은 인생이면 좋을 텐데,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주말 같다면 우리는 보나마나 산산이 조각나리라는 것을.
남쪽나라 섬에서의 산산조각.
하기야 다소 동경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같은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먹은 밥의 수만큼 생활이 쌓인다. 밥

한편 나는 남편과 음식을 함께 먹는 것도 좋아한다.  우리집의 조그만 식탁에서 먹는 밥은 물론, 경기장에서 축구를 구경하면서 한 입 가득 우물거리는 김밥도, 공원에서 먹는 샌드위치도, 밤거리를 싸돌아다니다가 길거리에 서서 먹는 우동도.


::중요한 것은 남편이 남자라는 점이다. 다만, 남자와 같이 살면 생활에 색깔이 입혀진다. 색

외출에는 미리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조정해서 약속을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외출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에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특별한 공기가 있어, 나는 그 부담없음과 신선함을 좋아한다. 색깔있는 생활이란 예를 들면 그러 것.
다른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의 사사로움, 그 번거로움, 그 풍요로움, 혼자가 둘이 되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단순함, 남자의 복잡함. 남자의 관용, 남자의 안심.
그리고 잠들고 깨어나고, 걷고 물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고, 얘기하고 한숨을 쉬고 어처구니없어 하고, 고함을 지르고 화를내고 무관심하는 그 모두가 하나하나의 색이라는 것을,

색깔있는 세계란 아마도 의존과 관계가 있으리라.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의존도 있다는 것을, 남편을 만나고서야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풍경

집안에 있어도 비슷하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나는 남편의 머리를. 남편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남편은 하늘을, 나는 컵을.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야 물론 때로는 답답해서 전부 같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깨끗한 장소에서는 그런 바람이 일시적인 변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시적인 변덕은 우리집에서나 통하는 농담이며 진실이며 결론이며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상비약이다.
남편과 함께 있고 싶은데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은데, 더 이상 이런 마음이 불거지면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할 때도 있다. 함께 있고 싶다기보다 함께 있지 않으면 더는 함께 있을 수 없을 듯한 느낌. 함께 있으면서도 만난지 두 달밖에 안 된 연인들처럼 들러붙어 있지 않으면 내 마음을 잃어버릴 것 같다.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지 않게 해줘, 하고 생각한다. 절실하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남편은 말한다.
"그건 일시적인 변덕이야."
나는 그 말의 정당함에 안심한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 부부의 관계는 정상이고 안정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
라고 나는 말한다. 그래, 가령 함께 있지는 않아도,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하고.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 올린 풍경에...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하기야 남편은, 어느 날 아침부터 갑자기 번들거리는 입술로 자기를 배웅하는 아내를 보고, 일시적인 변덕이겠지, 라고 생각할 테지만.


::노래를 부르면 몸에 좋다는 것을 결혼하고 알았다. 노래

결혼은 struggle이다. 만신창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상처도 마르니, 일일이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무튼 들러붙어 자는 것이 바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는 음악이 또 바람이 되어 준다.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벚꽃 드라이브와 설날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 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쁨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것은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한가지가 선택되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나는 가슴이 설랜다.
한없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지금 자신이 있는 지점을 확인하는 포인트라고나 할까. 부부관계란 그런 사소한 일로 지탱된다.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것이 골치아파진다. 혼자만의 시간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아파진다.
그래서 얼마 전, 아는 편집자에게,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아도, 역시 남편을 사랑하는 것 아니예요?"
란 말을 들었을 땐우울했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장에 이혼할 텐데..
때로, 이혼하면? 하고 혼자 생각한다. 홀가분해지겠지. 적어도 집안의 청결은 유지될 테고, 반찬도 내가 먹고싶은 것만  만들면 그만이다. 강아지도 키울 수 있고, 시끌시끌한 텔레비젼을 하루종일 켜놓지 않아도 된다. 여행도 돌아올 예정없이 떠날 수 있고, 차분하게 지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을 더욱 좋아할 수 있다.
싸우는 일도 없겠지. 열을 받아 고함을 지르고 깨물고 걷어차는 일도 없겠지. 훨씬 더 친절하게 굴 수 있겠지.
남편 역시, 훨씬 깍듯하게 나를 대하겠지. 이혼하면.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외로워진다. 신선한 생각이 아니니까. 신선은 커녕, 살붙이같고 소꿉친구 같은 것이니까. 어 오랜만이네, 하고 느닷없이 나타난 잊고 있었던 옛날 친구같으니까.
약간 거리가 있는 편이 'comfortable'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무모하게도, 결혼하는 거야, 성가시지만 받아들이는 거야, 같이 현실과 싸우는 거야, 하고 생각했던 저 불가사의한 뒤틀림을 나는 지금도 아름답게 생각한다. 아름답고 어리석고 행복한 무엇이었다고.


::나는 어쩌면 나만의 남자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방랑자였던 시절

종종 왜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당하는데, 나는 어쩌면 나만의 남자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결혼할 당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애정과 혼란과 행복한 우연 끝에 나만의 남자를 원했던 것 같고, 또 누군가만의 여자이기를 절실하게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의 여자. 서글프게도 결혼의 참맛은 이 1대 1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어리광을 피우고 어리광을 피우게 하는 것은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리광에 대해서

결혼하고서 딱 한 가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름에 집착하면 결혼 생활 따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남편이 내게 어리광을 피우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올바르지 않아도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게, 남편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주면 여기에 있는 것이 나의 필연이 되고,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기에 있을 필연성이 없어지고 만다. 이웃에 사는 연인처럼 행세해서 안 될 것이 무어란 말인가?


::화해는 싸움의 과정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절망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킵 레프트

화해는 싸움의 과정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절망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킵 레프트란 단어는 자동차 교습소에서 배웠다. 아무튼 왼쪽으로 붙어서 차분하게 속도를 너무 내지 말고 가라. 차분하게 왼쪽으로 붙어서, 안심하고.
화해란 이 가르침과 비슷하다. 싸움의 원인이 된 어긋남에다 싸우면서 주고받은 말, 본 얼굴과 보이고 만 얼굴, 던진 가시, 꽂힌 가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왼쪽으로 붙어서 속도를 너무 내지 말고 차분하게 흐름을 타는 것.
화해란 요컨데 이 세상에서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
킵 레프트는 정말 처절하다. 그리고 때로는 터무니 없을 만큼 어리석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편하니까.

 
::남편은 아마도 나의 'devil person'이리라. RELISH

결혼하고야 내가 지겹도록 사리정연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이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거의 심신의 파멸.
다만 결혼하고야 나는 분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한층 혼란스럽다.
그러나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이런 것하고 비슷하다.
'devil food.' 알콜중독자의 알콜처럼, 알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음식물을 'devil food'라고 하는 모양인데, 다이어트책에 씌어있었다.

나는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란 말로 맹세한 사랑이나 생활은 어디까지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목적은 아니라고 믿고, 찰나적이고 싶다. 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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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한다, 나 역시 종종 남편이 모는 자전거 뒤에 올라타고 산책을 나서는데, 남편의 견갑골과 견갑골 사이에 내 머리가 신기할 정도로 쏙 파묻혔던 것. 그때 느끼는 안정감과 비슷한 분량의 불안정- 이 '나는 어쩌면 나만의 남자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구절은 내 안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