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일이
다른 어떤사람에게는 죽음과 똑같을 만큼 괴로울수도 있다
그녀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기억으로 내안에 유보된채 남아있었다
추억은 갖가지 영상 덩어리가 되어 가차없이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 가장 무섭다
살아있는 인간에 비하면
장소는 아무리 소름 끼쳐도 장소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무서워도 유령은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일 무서운 발상을 하는 것은 늘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늘어났다 줄어든다
늘어날 때에는 마치 고무처럼 그 팔 안에 영원히 사람을 가두어둔다
그리 쉽사리 풀어주지 않는다
아까 있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도 1초도 움직이지 않는 어둠 속에 사람을 내버려 두곤한다
그녀는 내 눈을 보고 말했지만
그녀의 세계는 그녀 자신으로 가득하여 아무것도 비추고 있지 않았다
생활의 패턴이란 몸에 배어 있는것이다
그때 나와 엄마을 잇는 유일한 끈은 몸에 배어있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싫증이 났기 때문에
혹은 자기 의지로 또 혹은 상대방의 의지로 헤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계절이 바뀌듯, 만남의 시기가 끝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마지막이 오는 그날까지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었어도 결혼하겠습니다. 그럴 정도의 장애였다면.. 그는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있을수 없는 가정이지만 도망치지는 않았겠지, 이번일은 그러니까 가정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기묘하게 비어있고 모두들 이 기묘한 공간에서
결단 비슷한 것을 하고 있을 뿐 사실 쿠니씨는
이미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 나는...'
슬픈 것은 죽음이 아니다. 이분위기이다
그 충격이다
충격은 머릿속에 남아있고 아직도 덩어리져있다
아무리 해도 녹아 없어지지 않았다. 가령 나 자신은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 자신감은 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단박에 사라졌다
언제든 지금 밖에 보고 있지 않은데 시간의 흐름은 왜 이렇듯 슬픈 것일까
감상이, 갇혀 있었던 어떤 영역에서 잇달아 흘러나왔다
죽음은 슬프지 않다. 감상에 짓눌려 숨이 갑갑해지는 것이 고통스럽다
이 가을의 높은 하늘에서 도망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가버린다
아니 실은 언제든 시간은 가버렸는데 그것을 의식하는 일이 별로 없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런 별 생각 없는때로 돌아갈 수 없다
사소한 일이 가슴을 찌른다
요즘 내 감수성의 세계는 마치 실연당했을 때 같다
....
옛날에 읽은 어떤 책 속에 길 모퉁이에서 아주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죽을 때에도 그 음악이 흐른다는 내용이 있었어
주인공이 어느 화창한 오후에 길을 걷고 있는데
건너편 레코드가게에서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와서
그는 앉아서 그 음악을 들어 그의 정신적 스승은 인간 생활의 어떤 측면에서든
죽음이 현재하는 증거라고 그의 운명이 그에게 보여준 증거라고 말하지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트럼펫 소리가 들릴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지
매일 파스타를 먹고 화창한 오후에는 온갖 경치를 보러 나가요
다리가 아파질 때까지 걷고, 포도주를 마시고, 같은 방에서 자요
여름에는 더워서 미칠 듯한 빛 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기분을
서로 다른 창문에서 보도록 해요. 그럴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을 잊는 일은 없을거예요
이상한 때에 알게 된 채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