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플라스틱 손가방을 든 중년여인이 우리 집 현관에 서서 벨을 누르고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여자로 시각은 오후 4시 전이었다. 그녀가 벨을 누르자, 휑뎅그렁한 집 안에 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거대하고 텅 빈 위장 바닥에 앉아 누군가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중년 여성이 검은 손가방을 들고 있다는 그 조합도 왠지 이상하고, 사실 그 가방은 그녀에게 전혀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블라인드 사이로 살그머니 여인을 관찰했다. 연령은 40세에서 45세 사이이며 어디에나 있는, 아무 데서고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키는 크지 않다.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고, 엷은 갈색 장화를 신고 있었다. 우산은 녹색 비닐 우산이다. 지나치게 색이 짙은 드롭스같이 천한 녹색이었다. 이상한 색 배합이었다.
빗속에 서 있는 핑크색의 여인은 마치 물을 머금어 부풀어오른 심장 처럼 보였다. 팽창한 심장이 잃어 버린 보금자리를 찾아 4월의 비내리는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것이다.
"여보세요, 눈이 잘 안 보이는데, 혹시 여기가 제 집인가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긴 제 집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중년 여인은 부풀어오른 심장 따위가 아니고, 또 보금자리를 찾아 걷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인은 단지 화장품 판매원이었다. 나는 그걸 그녀가 두 번째 벨을 누를 때 알아차렸다. 여인은 현관 차양 속으로 들어오더니, 그 때까지 들고 있던 손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꿔 들고, 그 때까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접어 벽에 세우고 왼손으로 벨을 눌렀다. 그래서 손가방 측면에 붙어 있는 화장품 회사의 마크가 보였던 것이다. 마크 밑에는 #241이란 번호가 테이프로 부착되어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241호 여인인 것이다.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린 어둠침침한 방 안에 두 번째 벨 소리가 천천히 울려퍼지는 동안 여인은 주변 풍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지 재미 있는 풍경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주택지의 풍경이다. 집과 도로와 가로수밖에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여인은 매일 매일 질릴정도로 그런 풍경을 보아 왔을 터였다. 그런 표정이었다. 문을 계속 쳐다보는 데 지쳐서 할 수 없이 주변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뭔가에 흥미가 끌려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문 쪽으로 가지도 않았다. 물론 나가서 거절할 수도 있었다. 집 사람은 집에 없으며, 나는 화장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그렇지만 나는 그 때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어두운 방의 의자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는 화장품 샘플을 담은 손가방을 손에 들고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친 듯이 보였다. 나는 창가에 앉아 두 다리를 작은 테이블 위에 얹은 채 물 탄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오후 4시는 술 마시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다. 나는 평소에는 이렇게 이른 시각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날, 내게는 술을 마실 만한 이유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요 며칠 동안 나는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곤혹스러웠다고 해도 좋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 기분을 잘 몰랐다. 모퉁이를 잘못 돌아 같은 곳을 언제까지나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의 접속이 어딘가에서 어긋나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암실에 들어가 사진을 현상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마누라가 직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로 그녀와 이야기한 다음,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어 그대로 창가의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관해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히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가 죽고 싶어할 이유란 아무 데도 없는 것이다. 단지 나는 죽음이란 것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한번 부엌 바닥에 누워 죽은 시늉을 해 보았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계속 죽어 있는 훈련을 한 것이다. 나는 위를 보고 누워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숨을 멈췄다. 물론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숨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숨을 멈추었다가 숨을 한 번 들이킨 다음 다시 숨을 멈췄다. 한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외면적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나는 죽어 있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텅 비워 보았다. 이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이것이 죽음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죽음이 아니었다. 단지 어둠이었다.
나는 단념하고 일어나 다시 위스키를 마셨다. 모든 건 꿈 탓이었다. 내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두운 오후였다. 뭘 생각해도, 뭘 해도 거기엔 어두운 그림자가 배어 있었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었다. 책도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을 시도해도 안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단념하고 그냥 위스키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때 벨이 울린 것이다.
나는 가만히 여인을 보고 있었다.
저 여인은 도대체 무얼 기다리는 것일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 번째 벨 소리를 듣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30초나 40초, 대략 그 정도였다. 그래도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지도 않고, 세 번째 벨도 누르지 않았다. 변함 없이 무표정하게 층층나무 가지 언저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층층나무 가지엔 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지만, 여인은 특별히 달팽이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특별히 뭔가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건 죽은 시늉을 연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여인은 단념했다. 그녀는 #241의 손가방을 오른손에 든 채, 왼손으로 녹색 비닐 우산을 들고 자루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활짝 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문을 힐끗 쳐다보고 나서 현관을 떠나 빗속으로 사라져 갔다. 올 때는 왼손에 손가방을 들고 오른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돌아갈 때는 그것이 반대가 되었다. 즉, 오른손에 손가방을 들고 왼손에 우산을 든 것이다. 그런 사실은 아마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우산과 가방의 위치가 어쩌다 바뀌었을 뿐이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매우 괴로운 기분이 되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거기에 확실한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 일로 나는 대단히 우울해졌다. 그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산과 가방의 위치를 전환시킨 일로, 나는 내가 그 여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던 거야.'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나는 단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귀찮았을 뿐이다.
나는 다시 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3일 전에 흰 뱀 꿈을 꾼 것이다. 커다랗고 흰 뱀인데, 눈은 녹색이었다.(그 여인은 우산과 닮은 색이었다.) 뱀은 큰 나무 위에 살고 있었다. 매우 큰 나무였다. 나무 이름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나무는 내 존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뿌리와 내 뿌리가 이어져 있는 것이다. 뱀이 움직이면 내 뿌리도 움직였다. 나는 그게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무 밑에 석유를 뿌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뱀은 타면서 아주 격렬한 소리를 냈다. 그 연기에서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 고약한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공기를 좀먹었다. 공기가 전부 뱀이 되어 그게 내 입을 통해 몸에 들어 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죽자고 뛰어 지하철로 도망쳤다. 지하철 열차 안에는 대형 냉동고가 여러 개 늘어서 있었는데, 그 속에 다람쥐 시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모두 꽁꽁 얼어 있었다. 뱀이 나를 쫓아오자, 나는 뱀을 향해 그 다람쥐 시체를 던졌다. 내가 다람쥐를 던지면 그게 뱀에게 도달하지 않고, 도중에서 곰팡이 같은 포자로 분해되어 공중에 둥둥 떴다.
그런 꿈이었다.
나는 그다지 꿈을 꾸지 않는 편이며, 어쩌다 꾸었다 해도 곧 잊어 버린다. 그래서 꿈에 거의 흥미를 갖지 않는다. 자신이 꾼 꿈만이 아니고 타인이 꾼 꿈에 대해서도, 또는 꿈이란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흥미가 없다. 그러나 이 꿈만은 잠이 깨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매우 극명하게 기억되고 있었으며 또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내가 얼어붙은 다람쥐를 잡았을 때, 손에 느낀 감촉을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내게는 그게 죽음과 관련된 꿈처럼 생각되었다. 나와는 달리 집사람은 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꿈의 분석이나 점 같은 것에도 통달해 있었으므로, 어쩌면 그 꿈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꿈이 지닌 의미 같은 것을 가르쳐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그 꿈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거기에 신경이 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처남이 뼈 계통의 까다로운 병에 걸려 막 입원했을 때라서, 나로서는 그런 때 굳이 그녀의 기분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동생 병의 유전성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꿈에 대한 응어리는 나쁜 예언처럼 내 속에 줄곧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빨리 잊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그 중압감은 내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자고 있는 동안에 입 안에 들어온 벌레를 잘못해서 그대로 삼킨 것처럼 거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했다. 그것도 쉽게는 생각나지 않을 것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에 대해 생각해 냈다. 그는 물리 교사로 오른쪽 손목에 청자색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가 칠판에 분필로 수식을 쓸 때마다 우리는 그 화상 자국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색조를 명확히 생각해낼 수 있다. 칠판의 흑색과 분필의 백색, 청자색의 화상 자국이다.
내가 그에 대해 특별히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따분했고 옷 차림새도 볼품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물리란 과목이 딱 질색이었다. 그렇지만 공평하게 보면 그는 결코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어느 날, 학교 뒤쪽의 산림 속에서 목을 매달고 죽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노조 분규 때문에 줄곧 고민했었다고 모두들 말했다. 그런 냄새를 풍기는 짤막한 유서도 있었다. 확실히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그런 정도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노조 때문에 일부러 목을 매달고 죽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은 내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다. 어째서 노조 따위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그 물리 교사에 대해 잠시 동안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을 때의 그에 관해, 이제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의 손목에 있는 화상 자국과 장례식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에겐 부인과 국민학생인 자식이 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건 여름의 일로 몹시 더웠었다. 모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밖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일사병으로 쓰러진 여자 아이도 몇 명인가 있었다.
나는 얼음이 녹아 버린 물 탄 위스키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다음, 그걸 손에 쥔 채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택시 한 대가 집앞에 멈추었고, 거기서 감색 레인코트를 입은 중년 남성 한 명이 내렸다. 남자는 차에서 내리더니 우산을 펴고 그리고 내 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초리가 날카롭고 체구가 큰 사내였다. 그러나 그 사내는 길을 건너 그대로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다음에 내가 생각해낸 건,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썩은 사과에 관한 것이다. 사과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껍질이 화상으로 생긴 물집처럼 군데군데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사과는 내가 알던 한 젊은 여성이 흔적으로 남기고 간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 없이.
그녀가 살던 아파트에는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가구나 생활 도구가 그냥 그대로 있었다. 내가 아파트를 찾아가자, 관리인이 내게 대신 하소연을 해댔다. 벌써 3개월이나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집세도 체납되어 있다. 그러니 아는 사이라면 어떻게 좀 해 달라는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방랑벽이 있었다. 가끔 훌쩍 사라져 버리는 일이 있었다. 그래도 3개월이라면 아무래도 좀 길다. 나와 관리인은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이 조금 열려 있었던 덕분에 공기는 그다지 썩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엌의 음식 쓰레기 썩은 냄새는 확실히 느껴졌다. 설거지통에는 접시와 커핏잔이 쌓인 채로 있었다. 식기에 붙은 음식물은 말라붙어 있었다. 전기는 이미 끊겨 있었고, 냉장고 속에 든 우유와 야채도 얼마간 썩어 있었다. 부엌 테이블 위에는 사과가 둘 놓인 채 썩어 있었다. 그 옆에는 읽다 만 문고본이 놓여 있었다. 턴 테이블에는 LP레코트가 얹혀진 채였다. 방안은 특별히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다. 어디 근처로 물건 사러 나갔다가 그대로 사라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관리인은 밀린 집세를 내 주지 않으면 소유물을 모두 처분할 건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런 말을 들어도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방 공기를 바꾸고, 썩은 음식물을 처분하고, 부엌의 쓰레기 봉지를 밖에다 내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 길로 경찰서에 가서 행방불명 신고서를 냈다. 만일 아무도 신고서를 내지 않으면 그녀의 존재는 그대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경찰서에서 그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친구라고 말했다. 그들은 먼저 내 이름과 주소와 직업을 물었다. 그런 뒤에 그녀에 관해 질문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나는 그녀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그녀의 육친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녀가 뭘로 생활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찰에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단 수색원을 내 둡시다, 라고 그들은 말해다. 그렇지만 뭐 상대가 어른이니까 머지 않아 불쑥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서류가 작성되었고, 도장이 찍혔고, 서명이 되었다. 만들어진 사본은 서류함에 넣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2주일 후, 내가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는 그녀가 살던 방에 벌써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가구는 틀림없이 집세 대신에 적당히 처분되었을 것이다.
2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는 한번 경찰에 가서 그 뒤의 수색 경위를 물어 보았다. 그러나 1시간 가까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겨우 알아낸 사실은, 결국 아무것도 판명된 것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아파트에 가서 관리인에게 질문을 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관리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녀의 정확한 신원조차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행방불명자가 있는지 당신은 분명 상상도 못 할거요, 라고 담당 경찰관은 내게 말했다.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사라져 버려요. 터무늬없이 많은 수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많은 인간이 특별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사라지는 거요. 그런 일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라고 그는 말했다.
화장품 판매원이 우리 집을 떠난 뒤에도 비는 같은 상태로 계속 내리고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형형색색의 우산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소리 없는 가랑비가 지표로 곧게 떨어지고, 우산은 평평한 토지에 난 가동식 버섯처럼 수평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 핑크색 여인이 되돌아오면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현관문을 열어 놓았다. 그걸보면- 같은 길을 되돌아오면 틀림없이 볼 것이다-그녀는 틀림없이 다시 한번 우리 집 문으로 찾아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역으로 가려면 아무래도 이 집 앞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잠시도 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놓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녹색 우산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검정이나 남색, 파랑,빨강, 노랑 우산은 계속해서 몇 개나 지나가는데, 웬일인지 녹색 우산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그 241호 여인이 우리 집 앞을 떠날 때, 어떤 이유에선가 녹색 우산을 세상에 하나도 남김 없이 없애 버린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여느 때처럼 집 앞을 지나 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들은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해 갔는데, 그 속에도 녹색 우산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들은 모두 검정 가죽 구두에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아무도 장화 따위는 신지 않는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구두를 적시지 않으려고, 마치 고기의 비계를 골라내듯이 조심스럽게 보도의 물구덩이를 피해가며 걷고 있었다. 그녀들의 그런 걸음걸이가 대단히 아름다워서 나는 오랫동안 그런 발의 움직임을 창문으로 줄곧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들 뒤쪽의 담장 안에는 개나리와 목련이 선명한 색을 봄비 속에 드러내고 있었다. 봄꽃에는 소리라는 게 없다.
층층나무의 가느다란 가지에는 빗방울이 갓 죽은 물고기 이빨처럼 가지런히 매달려 있었다. 그 이빨들은 하나, 또 하나 하며 뭔가를 생각해낸 듯이 갑자기 가지를 떠나 밑으로 떨어져서 검고 부드러운 지면으로 소리도 없이 빨려 들어갔다. 아스팔트를 이따금 지나는 차 바퀴 소리만이 내 귀에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것은 마치 올이 가늘고 광택이 있는 천을 손가락 안쪽으로 슬그머니 문지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저녁의 엷은 어둠이 점점 푸른 빛을 더해가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자동 점등식 가로등이 소리도 없이 켜지는 그 시각까지, 나는 빈 잔을 손에 들고 꼼짝도 하지 않고 밖을 내다보며, 못 보아 넘길 리가 없는 녹색 우산과 241호 여인이 집 앞으로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결국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현관 문을 닫고 방의 불을 켰다. 그리고 나서 새삼스레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것은 대단히 이상한 방으로 보였다. 특별히 어딘가가 이상한 것도 아니다. 방은 평소와 다름없는 방이었다. 매우 평범한 거실이다. 소파가 있고 테이블이 있으며, 스테레오 전축 세트가 있고 레코드와 책이 있다. 나는 일하지 않을 때는 늘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내게 그것은 몹시 이상한 방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지구가 파멸된 뒤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장소처럼 생각되었다. 비오는 날의 여인 탓이다. 부풀어 오른 심장과, 주변의 소리를 삼켜 버리는 아주 짙은 봄꽃 탓이다. 이 세계에서 아마도 영원히 사라져 버린 그 녹색 우산 탓이다. 나는 잠시 그 자세 그대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런 뒤에 빈 잔을 부엌까지 가지고 가 설거지통에 놓았다. 그리고 아침에 남은 커피를 데워 마셨다.
마침내 조용히 밤이 왔다. 그렇지만 비오는 날의 여인 #241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영원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