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왕국이
퇴색해 가는 것은
후진 공화국이 붕괴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서글프다.


잊혀진 왕국의 뒤편에는 깨끗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맑아서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수초도 자라고 있어, 물고기들은 그걸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왕국이 쓸모없이 되건 말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건 그렇다. 물고기들에겐 왕국이니 공화국이니 하는 건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투표 같은 것도 하지 않았고, 세금 따위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런 건 우리완 관계없는 일이야" 하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냇물에서 발을 씻었다. 냇물은 차가워서, 잠깐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도 금세 빨개졌다.
냇가에서는 쓸모없게 된 왕국의 성벽과 첨탑이 보였다. 첨탑에는 아직 2가지 색으로 된 깃발이 게양된 채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냇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깃발을 보았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저것 봐. 저게 잊혀진 왕국의 깃발이야."
Q씨는 나의 친구다. 또는 친구였다. 왜냐하면 Q씨와 나는 최근 10여 년간 피차 친구다운 일 같은 건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친구였다고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게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친구였었다.
Q씨라는 인물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할때마다, 나는 언제나 절망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원래 설명을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런 점을 계산에 넣더라도, Q씨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특별하고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일을 시도할 때마다 기나긴, 아주 깊고 깊은 절망감에 맞닥뜨리곤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
Q씨는 나와 동갑인데, 나의 570배 가량은 핸섬했다. 성격도 좋아서 결코 남 앞에서 뽐내는 일이 없었다. 자기 자랑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실수로 그에게 폐를 끼쳤다 하더라도, 별로 화를 내지도 않았다.
"괜찮아. 뭐, 피장파장인걸"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단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또 살아온 환경도 좋았다. 그의 부친은 시코쿠의 어딘가에서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꽤 많은 용돈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낭비를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운동 선수이기도 했다. 고교 시절엔 테니스 부원으로 '인터 하이(고교단 대항 시합)' 에도 나갔다. 취미가 수영이어서, 1주일에 두 번은 수영장을 다니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였다.
성적도 ㅡ우수하달 정도는 아니지만ㅡ 좋았다. 시험 공부 따위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학습량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수업중에 꼬박꼬박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도 꽤 잘 쳤고, 빌 에반스와 모차르트의 레코드도 잔뜩 가지고 있었다.
소설은 발자크와 모파상 등 프랑스 소설을 좋아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글도 때때로 읽었다. 그리곤 제법 정확한 비평도 했다.
그는 여자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ㅡ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사귀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고상하고 예쁜 연인이 있었다. 어느 품위 있는 여대 2학년생인데, 일요일마다 데이트를 했다.
아아.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대학 시절의 Q씨다. 뭔가 빠뜨린 말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이건 대수로울 건 없다. 한마디로 말해, Q씨는 거의 흠이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Q씨는 그 무렵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의 이웃에 살고 있었다. 소금을 꾸어 주거나 드레싱을 꾸러 오거나 하면서 우리는 친하게 되었으며, 그러는 중에 서로의 방을 오가며 레코드를 듣거나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나와 나의 여자 친구, 그와 그의 여자 친구, 이렇게 넷이서 가마쿠라까지 드라이브를 한 적도 있다. 아주 기분 좋은 교제였다. 대학 4학년 여름에 내가 아파트를 나오게 되어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Q씨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년쯤 뒤였다. 나는 아카사카 근처 호텔의 풀장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Q씨는 내 옆의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Q씨 옆에는 아주 멋진 비키니를 걸친, 다리가 긴 여자가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는 Q씨의 동행이었다.
나는 그가 Q씨라는 걸 알아챘다. Q씨는 여전히 핸섬했으며, 서른을 조금 지난, 그에게서는 이제 예전엔 없었던 위엄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던 젊은 여자들은 흘끔흘끔 그를 바라보곤 했다.
그쪽에선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평범한 생김새였는데다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Q씨는 옆의 여자와 얘기에 몰두하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와 Q씨 사이에는 공통의 화제랄 것이 거의 없었다. 소금을 꾸어 주셨지요, 드레싱을 꾸러 왔지요, 이런 정도의 얘기 갖고는 그다지 대화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잠자코 책만 읽고 있었다.
풀장은 아주 조용했기 때문에, Q씨와 동행한 여자의 이야기 소리는 듣기 싫어도 나의 귀에 들어왔다. 아주 복잡한 이야기였다. 나는 책 읽는 것을 단념하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글쎄, 그런 건 싫어요. 농담 마세요." 하고 다리가 긴 여자가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당신이 하는 말은 잘 알겠다구. ......하지만 말이지, 내가 하는 말도 이해해 달라 그거야. 나라고 해서 뭐 이런 일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결정한 게 아니야. 위에서 결정한 일을 당신한테 전달하는 것뿐이라구. 그러니깐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하고 Q씨는 말했다.
"흥, 어쩐지." 하고 여자가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ㅡ물론 상당 부분은 나의 상상에서 나온 셈인데ㅡ 이러한 것이었다.
즉, Q씨는 텔레비전 방송국인지 뭔지에서 디렉터 같은 일을 맡고 있었고, 여자 쪽은 좀 유명한 가수인가 여배우였다. 그런데 여자 쪽에 무슨 트러블인지 스캔들인지가 있어서 ㅡ혹은 그저 단순히 인기가 떨어졌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ㅡ 프로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 Q씨에게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 줄 역할이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연예계 쪽에는 그다지 밝지 않아서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줄거리의 대강은 그다지 틀리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들은 얘기대로라면 Q씨는 실로 성실하게 그 직책을 다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폰서 없이는 일을 해 나갈 수 없단 말이야. 당신도 이 세계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그런 정도는 알 거 아니야." 하고 Q씨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한텐 전혀 책임도 발언권도 없다, 그 말인가요?"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주 제한된 거라구."
그리곤 또 얼마 동안 두 사람은 끝이 나지 않는 대화를 계속했다. 여자는 그가 자기를 지켜 주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힘닿는 만큼은 했단 말이야." 하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증거는 없었다.
여자는 믿지 않았다. 나도 별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Q씨가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성실한 공기가 안개처럼 언저리에 떠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Q씨의 책임은 아니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두 사람의 대화엔 출구가 없었다.
여자는 이제까지 줄곧 Q씨에 대해 호감을 품어 왔던 것처럼 보였다. 이번 일이 있기까지,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 듯했다. 그래서 여자는 더욱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여자 쪽이 단념을 했다.
"알겠어요. 이제 됐으니까 콜라나 사와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Q씨는 그 말을 듣곤 안도한 듯이 일어나 매점으로 갔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쓰고, 가만히 옆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책의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고 있었다.
이윽고 Q씨는 콜라가 들어 있는 종이컵을 두 손에 들고 되돌아왔다. 그리곤 하나를 여자에게 건네주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돼. 그러다 보면 또 분명히......" 하고 Q씨가 말했다.
그때,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콜라 종이컵을 Q씨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컵은 Q씨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L 사이즈 컵 속에 든 코카 콜라의 4분의 1이 나에게 뿌려졌다.
그런 다음 여자는 아무 말도 않고 일어서서, 수영복의 엉덩이 부분을 조금 끌어내리곤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나와 Q씨는 15초 가량 아연해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란 듯이 우리를 보고만 있었다.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건 Q였다. 그는 나에게 "죄송합니다" 하고 타월을 내밀었다. 샤워를 할 테니까 괜찮다며 나는 그것을 사양했다. Q씨는 좀 난처한 얼굴을 하고선 타월을 거두어, 그걸로 자기 몸을 훔쳤다.
"책을 변상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그가 말했다.
책은 완전히 폭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싸구려 문고판이었으며, 그다지 재미있는 책도 아니었다. 누군가 콜라를 뿌려서 읽지 못하게 훼방을 놓아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싱긋 웃었다. 옛날처럼 기분 좋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그러고 나서 곧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즈음 해서 다시 한 번 나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잊혀진 왕국>으로 한 것은, 그날의 석간 신문에서 우연히 아프리카의 어느 잊혀진 왕국의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왕국이 퇴색해 가는 것은......" 하고 그 기사는 기술하고 있었다.
"후진 공화국이 붕괴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