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축제

하루키의우물 2008. 3. 28. 11:56



강치(남태평양에서 사는 포유동물. 물개와 비슷하지만 더큼)가 찾아온 시각은 오후 한 시였다. 나는 마침 간단한 점심식사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던 참이었다. 집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현관 벨이 딩동 하고 울려 내가 문을 열자, 거기에 강치가 서 있었다.
강치는 그다지 특징이 없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강치다. 아르마니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부룩스 브러더즈의 쓰리피스를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보통 옷을 입고, 보통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고 보니 대부분의 강치는 보통 얼굴에 보통 옷을 입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는, 강치라는 동물은  예전의 인민복을 입은 중국인 같아 보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바쁘신데 방해가 되지 않았나요" 하고 그 강치는 말했다.
"아니, 그다지 바쁜 건 아니지만" 하고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특별히 당황해야 할 이유 따위는 하나도 없다. 나는 강치에게  갚아야 할 정신적, 육체적 빚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강치라는 동물을 만나면, 나는 이유도 없이 당황해 한다. 거기에는 어떤 잠재적인 정신적 요인이 있는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나는 강치에게 뭔가 커다란 부담이나 책임을 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강치라는 종족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대수롭지 않게 대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로 외람된 부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만일 폐가 되지 않으시면, 단 10분 간만 시간을 내주시면 매우 고맙겠는데요. 이러한 부탁이 뻔뻔스럽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쪼록 이해해 주시고 시간을 내주시면, 저로서는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겠습니다." 하고 그 강치는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나로서는 이처럼 지나치게 공손한 강치적인 말을 듣고 있는 것도 고역이고, 듣고 있다 보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말해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그들은 그러한 말씨를 사용하도록 죽 가르침을 받아 온 것이다. 그러한 말씨를 쓰지 말아 달라고 말해도, 간단히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사실은 시계를 들여다 볼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볼일이 전혀 없고, 할 일도 없어 따분해서 아까부터 죽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었을 정도다.
"정말로 그다지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습니다." 하고 강치는 조용히 덧붙였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러한 말을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강치를 능숙하게 문간에서 쫓아 버릴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제 곧 손님이 오니까 다음에 만났으면 좋겠다든지, 지금 마침 전화를 걸고 있던 참이라고 말하며 무리 없이 좋은 말로 강치를 내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강치를 상대하게 되면, 나는 왠지 하고 싶은 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강치를 방으로 들어오게 하고, 차가운 보리차를 내놓았다.
"아니, 조금도 신경 쓰지 마세요. 이거 황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정말로 곧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강치는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강치는 맛있다는 듯이 보리차를 절반쁨 마시고, 주머니에서 하이라이트를 꺼내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아, 그런데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군요."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그런대로 지낼 만해요."
"그래도 9월이니까요."
"고교 야구도 끝나 버렸고, 프로 야구도 교진 팀의 우승이 결정된 거나 다름없고,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군요. 한신 팀이 좀더 분발해 주면 센트럴 리그도 재미있어질 텐데요. 역시 무라야마와 에나쓰가 둘이서 던지던 때가 재미있었어요. 야구도 어쩐지 시들해지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래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는 야구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그러나 그럼 말을 할 수는 없다. 어찌 된 셈인지 강치들은 모두들 야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야구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화젯거리 중 하나다.
강치들 사이에서는 야구 없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야구에 관해 정말 자세히 알고 있다. 누구의 타율이 어느 정도고, 어느 투수의 연봉이 얼마라는 둥 아주 자세히 알고 있다. 만일 내가 야구에 흥미가 없다고 말하면, 강치는 혼란에 빠져 버릴 것이다. 혹은 심하게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강치는 세상 물정에 밝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빙 둘러보면서, "실례지만, 혼자 사십니까?" 하고 말했다.
"아뇨, 하지만 아내가 얼마 동안 혼자서 여행을 갔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다. 강치는 알겠다는 얼굴을 하고 몇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부부가 따로따로 휴가를 가지시나 봐요. 그건 썩 바람직한 일이군요. 부부라고 해도, 개개의 인간이니까요. 뭐랄까, 자유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유와 신뢰가 있어야 진정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는 겁니다."
강치는 그렇게 말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모든 건 내 책임이다. 설령 아무리 술에 잔뜩 취했어도, 신주쿠의 바에서 옆에 앉은 강치에게 명함 따위을 건네 줘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단순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누구나 그러한 것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ㅡ생각이 세심한 데까지 잘 미치는 인간이라면ㅡ강치에게 명함을 건네 주지는 않는다.
오해를 받으면 아주 곤란한데, 나는 결코 강치라는 동물울 개인적으로 혐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치에게는 뭔가 혐오할 수 없는 점이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누이동생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강치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내면, 그야 조금 당황해 한 번 더 잘 생각해 보라고 충고쯤은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력히 반대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면 됐다, 라고 결국 말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다.
그러나 강치의 손에 건네진 명함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강치에게 명함을 건네 준 덕분에 상당히 귀찮은 일을 겪은 사람을 여럿 알고 있고, 나 자신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강치에게 있어 명함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새가 유리 구슬을 모으는 것처럼, 열심히 명함을 모은다. 그들은 그 명함에서 어떤 종교적이라 할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체 어떤 종류의 가치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있는가 하는 것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다. 강치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강치들은 명함이라는 한 장의 종이 쪽지에서 실로 여러 가지 의미를 추출하는 것이다.
당신이 한 장의 명함을 그들에게 건네 주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통해 당신에 관한 온갖 사실을 다 알아낸다고 믿고, 또 주장한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은 우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한 장의 종이 쪽지를 통해 인격 따위를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래도 강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강치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인 것이다.
"제 친구에게 며칠 전에 명함을 건네 주셨다고요." 하고 강치는 말했다.
"아. 그래요? 술에 잔뜩 취해 있었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하고 나는 시치미를 뗐다.
"그래도 본인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나는 적당히 모르는 체하고 보리차를 마셨다.
"이처럼 갑자기 찾아뵙고 부탁을 드리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만, 이것도 명함이 맺어 준 어떤 인연인 듯해요."
"부탁을요?"
"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에요. 말하자면 강치라는 존재에 대한 선생님의 상징적인 원조를 받을 수 있으면..... 하는 정도의 부탁입니다."
강치라는 동물은 상대방을 대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강치가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아주 역겨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나는 강치 앞에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상징적인 원조요?" 하고 나는 되물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군요." 하고 말하며 강치는 가방 속에서 바그락거리며 명함을 꺼내어, 되게 중요한 일인 양 내게 건네 주었다.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치 축제 실행 위원장." 하고 나는 직함을 읽었다.
"강치 축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줄 압니다만.....강치 축제란 말 그대로 강치들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단지 강치들이 모여서 활기 차게 축제를 벌이면 되는 그러한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씀드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대는 그러한 독선적이며 자기 충족적인 서클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범위를 한정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축제란 사람과 사람이 인간적으로 접촉하는 일이에요. 속으로가 아니라 밖으로 밖으로 열어 나가야 하는 겁니다. 요컨대 이러한 전통을, 강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보편적이고 더욱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게 저희의 기본적인 취지인 겁니다."
"네."
"축제라는 건 어디까지나 축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연속적인 행위의 하나의 표상적인 귀결일 뿐입니다. 진정한 의미는 즉 우리의 아이덴티티로서의 강치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바로 이 행위의 연속성 속에 있습니다. 축제란 어디까지나 그것을 추인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추인하는 행위라구요.?"
"요컨대 말예요. 오늘날에 있어서 강치라는 존재는, 세계에서 미미한 의미밖에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강치라는 것이 지금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명확한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결국 강치입니다. 강치일 뿐이라구요. 그러나" 라고 강치는 여기서 효과적으로 말을 끊고, 아직 연기가 나는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꼈다.
"그러나 세계라는 것은 현실로서 강치를 포함하여 존재하는 겁니다, 그렇겠죠. 확실히 강치에게는 이전과 같은 힘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강치들은 강치들만이 떠맡을 수 있는 것을 떠맡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아니, 그 이야기는......"
"아아, 죄송합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만 쓸데없는 걸 말씀드렸군요. 요컨대 제가 진정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 없이는 이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해 없이는 사랑도 있을 수 없죠. 우리는 그러한 글로벌한 사랑을 키워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사랑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찬란한 강치 르네상스입니다. 강치가 강치라고 하는 그 사실에 의해 그것을 한번 더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진정으로 재생하는 겁니다. 강치인 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영광도 아니죠. 치욕도 아닙니다. 강치는 강치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김으로써 진정한 강치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강치에게 있어서의 르네상스인 동시에, 세계의 르네상스도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지금까지는 매우 폐쇄적이었던 강치 축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여, 세계로 보내는 메시지, 혹은 그 강치로서의 강치 축제로 만들고자 하고 있는 겁니다."
"무슨 얘긴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고 나는 말했다.
"웅대한 데자뷔입니다. 말하자면, 언젠가 꾸었던 꿈이에요. 그래요. 꿈이라는 것은 언젠가 꾼 적이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하고 강치는 천장을 올려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강치 레토릭이다. 강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아무튼 강치에게는 실컷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특별히 그들이 악의를 품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이야기 하고 싶어하고 있을 뿐이니까.
결국 강치는 두 시 반이 조금 지나서야 이야기를 끝냈다. 나는 피로하여 녹초가 되어 버렸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형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강치는 태연히 미적지근해져 버린 보리차를 다마셨다.
"아주 간단히 설명을 드려 정말 마음이 괴롭습니다만, 대체적인 내용은 이해가 되셨습니까?"
"요컨대 기부금을 모으고 있습니까?" 하고 나는 과감하게 물어보았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러한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어리석고 외람되나마 물론 선생님께서 어디까지나 자연스런 발로로 찬동해 주시고, 또 약간이나마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주신다면, 전국의 강치들에 대한 격려가 될 것임에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갑 속에서 1,000엔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어 강치 앞에 내놓았다.
"적어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이것밖에 없어요. 아침부터 보험료와 신문 구독료를 냈거든요."
"아녜요." 하고 강치는 부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내저었다.
"그런 말씀은 말아 주세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쥐구멍 속에라도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 드니까요. 정말입니다. 저희로서는 그래, 강치를 한번 도와 줘야겠군, 하고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이것은 액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구말구요."
강치가 돌아간 뒤에는, <강치회보>라는 얇은 기관지와 강치 바펜(코트의 가슴이나 팔 따위에 다는 헝겊 휘장, 또는 이것을 본뜬  스티커)이 남겨져 있었다. 바펜에는 강치의 그림과 "메타포로서의 강치"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바펜을 어떻게 처리할까 망설인 끝에 마침 부근에 주차 위반으로 세워져 있는 붉은 세리카가 있어서 그 차의 앞유리 한가운데에 붙여 두었다. 상당히 강력한 바펜이었으므로 떼는데 애를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