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묵묵히 일하는 수수께끼 같은 ‘토끼정’
주인이 만들어 내는 예술품 같은 고로케 정식이 나는 좋다
나는 나의 단골집을 소개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하면 왠지 모르게 ‘잘난 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섣불리 소개를 해서 가게가 붐비게 되어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토끼정(亭)’의 장소와 전화번호를 여기에 쓰지 않기로 하겠다.
‘토끼정’ 은 우리 집 근처에 있고, 나는 종종 이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손님이 열명만 들어가면 꽉차 버릴, 카운터만 달랑 있는 작은 집인데 꽉차는 일이 거의 없다. 인테리어도 극히 평범하고, 바깥에는 간판도 달려 있지 않다. 입구 옆에 ‘서양 정식-토끼정’ 이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무척 조용히 영업을 하고 있는 집이다.
‘토끼정’ 에는 두 종류의 요리밖에 없다. 하나는 매일 바뀌는 정식이고, 또 하나는 고로케 정식이다. 두 음식에 바지락 된장국과 큰 그릇에 한 가득 담긴 양배추 샐러드가 딸려 나오는데, 이게 참 무지하게 맛있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절임도 듬뿍 곁들어진다. 갓 볶은 참깨를 뿌린 데친 시금치라든가, 스파게티와 버섯 초무침 같은 게 작은 그릇에 소복이 담겨 나온다. 쫄깃쫄깃한 스파게티와 씹는 맛이 상큼한 버섯 초무침은 여느 정식집에서 나오는 반찬과는 격이 다르다.
그리고 밥은 보리밥이다. 이 보리밥이 투박한 느낌의 큼지막한 밥 공기에 담겨 나오면 은은한 보리 냄새가 온 가게 안에 물씬 풍긴다. 나는 이 순간이 미치도록 좋다. 차 역시 은은한 엽차(여름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나온다. 젓가락은 약간 짙은 색의 날씬한 삼나무 젓가락이고, 젓가락을 싸는 종이는 고동색이 섞인 연둣빛의 무늬 없는 일본 종이다.
날마다 바뀌는 정식의 반찬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쓰자면 한이 없으니 여기에서는 화제를 고로케 정식으로 한정하겠다. ‘토끼정’의 고로케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글로 표현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꽤 큰 고로케 두 개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을 향해 톡톡 튀듯이 알알이 서 있고, 기름이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건 거의 예술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서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하는 소리를 낸다. 속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녹아들 것처럼 뜨겁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대지에 뺨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잘 자란 감자 ? 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 와, 주인이 엄선해서 구입한 쇠고기를 커다란 부엌칼로 잘게 썰어 섞은 것이다. 양념은 재료의 뛰어남을 살리기 위해 아주 조금만 하고, 맛이 좀 싱겁다 싶으면 ‘토끼정’ 특제 소스를 친다. 소스는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 있어서 스푼으로 그것을 퍼서 치는데, 뭐라고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맛이 난다. 결코 뒷맛도 남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두 개의 고로케 중 하나는 소스 없이 먹고, 다른 하나는 소스를 쳐서 먹는다. 소스를 쳐서 먹는 것도 맛있고, 소스를 치지 않고 먹는 것도 맛있다는 미묘한 심정에서다.
식사가 끝나면 다시 새 엽차가 나온다.
‘토끼정’의 주인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몸은 다부지다. 인상은 나쁘지 않으나 말이 없고, 고집이 세 보이긴 하지만 친절을 강요할 것 같지는 않은 퍽 바람직한 성격의 인물이다. 목덜미에 5센티미터쯤 되는 칼자국 같은 상처가 있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나로서도 음식만 맛있으면 가게 주인의 경력이야 어찌 됐든 알 바는 아니다.
‘토끼정’의 주인에게는 호리호리한 미인 부인과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이 있다. 나는 딱 두 번 집 부근의 길에서 그들을 보았다. 구태여 말을 걸진 않았지만, 딸은 값비싸 보이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토끼정’ 주인과 ‘토끼정’ 부인과 ‘토끼정’ 딸은 셋이서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늘 주인 혼자 ‘토끼정’에서 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재료를 사고 요리를 만들고 차를 끓인다. 그의 움직임은 참 보기가 좋다. 일을 척척 빠르게 처리하는데도 어수선한 느낌은 없다.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토끼정’의 주인은 원래는 야쿠자였단다. 서른 일곱, 여덟이 되었을 때 그 바닥에서 손을 싹 씻고 식당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옛날 패거리들과 연락이 닿지 않도록 일부러 한적한 주택가를 골라 가게를 내고, 간판도 걸지 않고 선전도 하지 않고, 잡지사의 취재도 거절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평판만으로 조용히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인에게 확인해 본 건 아니니까 그 얘기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얘기가 일맥 상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맛있는 점심만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고, 그가 전에 야쿠자였든 뭐였든 전혀 상관없다. 이런 맛있는 고로케 정식을 1,000엔에 먹을 수 있는 가게는 도쿄의 어디에서도 절대로 찾을 수 없다.
언젠가 한번 내가 오후 한 시 반에 ‘토끼정’에 갔더니 재료가 다 떨어지고 없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럼 다음에 오죠” 하고 가게를 나서려고 했더니, 주인은 나를 불러 세우며 “반찬은 남았는데 드시고 가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먹으려고 만든 꼬치와 삶은 고비와 보리밥과 된장국과 나물무침을 내왔는데, 이게 또 도저히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된장국은 냄비 속에 조개를 듬뿍 넣어 국물을 우려내고, 조개에 맛이 완전히 배어들 정도로만 끓이는 거다. 맛이라기보다는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산뜻했다.
“맛있군요” 하고 내가 말하자, 주인은 “남은 반찬이라……”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래서 나는 ‘토끼정’과 수수께끼 같은 ‘토끼정’ 주인이 무척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