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거리에는 금년 들어 첫눈이 내렸다. 비가 눈으로 변하고, 눈이 또 비로 변했다. 삿포로 거리에에 눈은 그다지 로맨틱한 게 아니다. 그것은 평판이 나쁜 친척 같아 보인다.
10월 23일, 금요일.
토쿄를 떠날 때에는 티셔츠 차림이었다. 하네다에서 747기에 올라타고, 워크맨으로 90분짜리 테이프 하나를 거의 다 들었을 무렵에, 나는 이미 눈 속에 있었다. 내게는 도저히 그게 믿어지지 않는다.
내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렇게 말한다.
"대개 이래.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첫눈이 내리거든.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오지."
"되게 추운 게로군" 하고 나는 말했다. 훗카이도에 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겨울은 이렇지 않아, 진짜 겨울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춥다구."
우리는 코베 부근의 조그맣고 평온한 마을에서 자랐다. 우리집하고 친구의 집은 50미터쯤 떨어져 있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죽 같이 다녔다. 함께 여행도 가고, 더블 데이트도 했다. 둘이서 술에 몹시 취하여 택시 문밖으로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고, 그는 훗카이도의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도쿄 태생의 동급생하고 결혼하고, 그는 오타루 태생의 동급생과 결혼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식물의 씨앗이 변덕스러운 바람에 날려 운반되듯이, 우리 역시 우연으로 충만한 대지를 목표도 없이 방황한다.
만일 그가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고, 내가 훗카이도의 대학에 진학했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인생도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삿포로의 여행사에 근무하며 온 세계를 날아다니고, 그는 도쿄에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하는 우연이 이끄는 바에 따라 내가 소설을 쓰고, 그는 여행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오리온자리는 오늘도 빛나고 있다.
그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으며, 정기 승차권 따위를 넣어 두는 지갑에는 언제나 세 장의 사진이 들어 있다. 마루야마 동물원에서 양과 놀고 있는 호쿠토 군, 시치고산(아이들 성장을 축하하는 행사) 때의 의상을 입은 호쿠토 군, 유원지의 로켓에 올라탄 호쿠토 군.
나는 그 세 장의 사진을 세 번씩 들여다본 다음, 그것을 그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생맥주를 마시고, 얼음 같은 루이베를 집어 먹는다.
"그런데 P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하고 그가 묻는다.
"꽤 잘해 나가고 있어." 하고 나는 대답한다.
"지난번에 길에서 딱 만났어. 마누라하고 이혼하고 젊은 아가씨와 같이 지낸다던군."
"Q는 어때?"
"광고 대행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주 지독한 광고 문안을 작성하고 있어."
"짐작이 가네."
등등.
우리는 요금을 치르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눈이 내리고 있다.
"어때, 요즘에 고베에 갔다 왔나?" 하고 내가 묻는다.
"아니 아무래도 너무 멀어서. 자네는?" 하고 말하며 그는 고개를 젓는다.
"가지 않았어. 그리고 별로 갔다 오고 싶지도 않고."
"그래."
10분 가량 어슬렁어슬렁 삿포로 거리를 거니는 동안에, 우리의 화젯거리는 동이 나버린다. 그래서 나는 호텔로 돌아가고, 그는 방 세 개짜리 맨션으로 돌아간다.
"아, 건강히 지내게."
"응, 자네도."
그리고 전환기가 쾅 하고 소리를 낸다.
그리고 며칠 후에 우리는 다시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내일이 되면 우리는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두 도시에서, 각각 권태로움을 향해 목표도 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호텔의 텔레비전에는, 로컬 스테이션의 홍보 프로그램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침대 시트 위에 드러누워, 룸서비스 음식인 스모크 새먼 샌드위치(훈제 연어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감색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 한 명이 오도카니 서 있었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정지한 채로 그녀의 허리 위쪽을, 인내력이 강한 육식 동물 같은 시선으로 가만히 비춰 주고 있었다. 앵글의 이동도 없고, 전진이나 후퇴도 없다. 그것은 마침 예전의 누벨 바그(1958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 나타난 경향, 대담한 행동의 추구와 자유 분방한 섹스의 묘사 등이 그 특징)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저는 R군 군청의 홍보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사투리가 약간 섞여 있고, 긴장을 해선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R군은 인구가 7,500명인 작은 마을입니다.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아서 어쩌면 여러분들은 모르실지도 몰라요."
유감스럽게도, 하고 나는 말했다.
"마을의 주요 산업은 농업과 낙농입니다. 그 중심은 뭐니뭐니 해도 벼농사지만, 최근의 '경작 면적을 줄여 가는' 정책에 의해 보리나 근교의 야채 재배로 급격한 이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마을의 변두리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목장이 있는데, 거기서는 약 200마리의 소와 100마리의 말, 그리고 100마리의 양이 사육되고 있죠. 마을에서 현재 축산을 확대시켜 가고 있으니, 앞으로 3년 내에 그 수가 대폭적으로 불어날 겁니다."
그녀는 미인은 아니었다. 돗수가 높은 금테 안경을 쓰고, 고장난 냉장고처럼 딱딱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멋있었다. 누벨 바그 식인 텔레비전 카메라는, 그녀의 가장 멋있는 부분을, 가장 멋있는 상태로 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가 모두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10분씩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세계는 훨씬 더 멋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메이지시대 중반에는 이 R군 부근을 흐르는 R강에서 사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일대 사금 붐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금이 다 채취되어 버리자 붐도 사라지고, 이제는 몇개의 가건물의 자취와 산을 넘어가는 작은 길만이 당시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스모크 새먼 샌드위치의 마지막 한 조각을 먹고, 맥주를 단숨에 다 마셔 버렸다.
"마을은......마을의 인구는 수년 전까지는 1만 명이 넘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이농에 의해 인구 감소가 현저합니다.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나가 문제가 되고 있죠. 저의 동급생들도 이미 절반 이상이 이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에 남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녀는 마치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이라도 들여다보는 것처럼, 카메라의 렌즈 한가운데를 응시한 채로 이야기해 나갔다. 그녀의 눈은 텔레비젼의 브라운관을 통해,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두 개의 캔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따서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마을.
나는 그녀의 마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하루에 여덟 번 밖에는 열차가 서지 않는 역, 스토브가 놓여 있는 대합실, 으스스 추워 보이는 작은 로터리, 글자가 지워져 절반도 읽을 수 없게 되어 버린 마을 안내도, 금잔화가 심어진 화단과 마가목 가로수, 삶에 지쳐 버린 하얀 개, 매우 넓은 한길, 자위 대원 모집 포스터, 3층짜리 잡화점, 학생복과 두통약의 선전용 간판, 하나의 작은 여관, 농업 협동 조합과 임업 센터와 축산 진흥회의 건물, 그리고 목욕탕의 굴뚝 하나가 오도카니 회색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한길 끝을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서 두 갈랫길로 접어들면 군청이 있고, 그 안의 홍보과에는 그녀가 앉아 있다. 작고 권태로운 마을이다. 1년 중 절반 가까이는 눈으로 덮여 있다. 그녀는 그 마을을 위해 홍보용 원고를 써나가고 있다.
"다가오는 모 월 모 일에, 양을 소독하기 위한 약을 배포합니다. 희망하시는 분은, 모 월 모 일까지 소정의 신청 용지에 기입하신 다음......"
삿포로의 호텔의 작은 방에서, 나와 그녀의 인생이 우연히 서로 스쳐가며 접촉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결여 되어 있다. 호텔의 침대에서는 시간이, 마치 빌려 온 신사복처럼 차분히 몸에 잘 맞지 않는다. 손도끼의 무딘 날이 내 발 밑의 로프를 계속 내리치고 있다. 로프가 끊어져 버리면, 나는 어디로도 돌아갈 수가 없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 물론 로프가 끊어지지는 않는다. 맥주를 약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이 들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창 밖에 흩날리고 있는 눈 때문이기도 하리라. 나는 발 밑의 로프를 따라, 리얼리티의 어두운 날개 밑으로 되돌아간다. 나의 거리, 그리고 그녀의 양.
그녀가 양들을 소독하기 위한 약을 손에 넣을 무렵, 나는 나의 거리에서 나의 양들을 위해 겨울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마른 풀을 모으고, 탱크에 등유를 담고, 눈보라가 몰아칠 것에 대비해 창틀을 수리한다. 겨울은 이미 거기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저의 마을입니다." 하고 그녀는 계속 이야기한다.
"이렇다 할 특색도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어쨌든 저의 마을입니다. 만일 기회가 있으면, 마을을 찾아와 주세요. 당신을 위해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나는 머리맡의 스위치를 눌러 텔레비전을 끄고, 남아 있는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그녀의 마을을 찾아가는 일을 생각해 본다. 그녀는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의 마을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그리고 100마리의 양들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