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일기를 쓸 수 있다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자신의 구역질이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났는지, 그 정확한 날짜를 인용할 수가 있었다. 그의 구역질은 1979년 6월 4일(맑음)에 시작되어, 같은 해 7월 14일(흐림)에 끝나 있었다. 그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언젠가 한 번 나와 한 조가 되어 잡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는 레코드 컬렉터였고, 친구의 애인이나 부인과 자는 것을 좋아했다. 나이는 나보다 두셋 아래이다. 그는 실제로 그 때 까지의 인생에서 몇 명이나 되는 친구의 애인이나 부인과 잔 적이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친구가 근처 술집에 맥주를 사러가거나 샤워를 하고 있는 동안에 그 부인과 섹스를 끝낸 적도 있었다.그는 종종 그런 얘기를 내게 해 주었다.
"서둘러서 섹스를 하는 거, 그거 그다지 나쁘지 않더군요."하고 그는 말했다. "옷을 거의 다 입은 채로 되도록 빨리 끝내 버리는 겁니다. 보통 요즈음의 일반적인 섹스는 점점 오래 끄는 경향이죠? 때로는 그 반대로 가는 겁니다. 한번 시점을 바꿔 보는 것만으로도 꽤 기분이 괜찮다구요."
물론 그런 곡예적인 섹스만이 아니라, 느긋이 시간을 갖고 착실한 성행위를 즐기는 일도 있었다. 아무튼 그는 친구의 애인이나 부인과 잔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좋은 것이다.
"남의 배우자나 애인과 정을 통해 그를 빼앗는다든가 하는 그런 굴절된 생각은 없습니다. 한 번 같이 자고 나면 나는 그들과 아주 친밀한 기분이 되곤 하죠. 요컨대 가정적인 기분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섹스지요. 탄로만 나지 않으면 누구를 상처 입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탄로난 적은 없었나?"
"없었죠, 물론."하고 그는 다소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런 종류의 행위는 이쪽에서 드러내고 싶어하는 잠재욕망만 없으면 쉽게 드러나는게 아니거든요. 확실하게 주의를 해서, 뭔가 의미 있는 듯한 말이나 그런 행동따위만 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리고 맨 먼저 기본방침을 확실히 해 두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이건 단순히 친밀감을 담은 게임 같은 것이지, 깊이 관계할 생각도 없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도 없다는 걸 말입니다. 물론 빙 돌려서 말을 골라가며 설명을 하죠."
나로서는 그런 일이 그가 말하는 대로 하나에서 열까지 제대로 되리라고는 아무래도 믿을수가 없었지만, 그가 허풍을 떨어가며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그건 그가 말하는 대로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 대부분은 그걸 바랍니다. 그들의 남편이나 애인 - 다시말해 나의 친구-들 대부분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나보다 핸섬하고, 나보다 머리가 좋고, 어쩌면 나보다 페니스가 크거나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건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것입니다. 그들은 상대가 어느 정도 성실하고, 친절하고,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있기만 하면, 그걸로 오케이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애인이라든가 부부라든가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적인 틀을 넘어 깔끔하게 관계를 맺는 겁니다.그게 기본적인 원칙이죠. 물론 표면적인 동기는 여러 가지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남편이 바람을 피운 데 대한 앙갚음이라든가, 심심풀이라든가, 자신이 아직 남편 이외의 남자와 관계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기만족이라든가, 그런 겁니다. 나는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그런 걸 알 수 있습니다. 노하우 같은 건 없어요. 이것만은 타고난 능력이죠. 있는 사람은 있고,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자신은 정해진 애인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레코드 컬렉터로서, 이따금씩 서로의 레코드를 트레이드한다. 우리는 둘 다 50년대에서 60년대 전반에 걸친 재즈 레코드 컬렉션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 컬렉션하는 대상의 범위가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에 거래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나는 웨스트코스트의 백인 밴드의 레코드가 중심이었고, 그는 콜먼 호킨스라든가 라이오넬 햄프턴 같은 중간파에 가까운 후기 레코드를 모으고 있다. 때문에 그가 피트 조리 트리오의 빅터 판을 갖고 있고, 내가 빅 디킨슨의 <메인 스트림 재즈>를 갖고 있거나 하면, 그 두 가지는 쌍방의 합의하에 기분 좋게 교환된다. 둘이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음질이나 연주를 체크하며, 그런 상거래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그 구역질 얘기를 해준 것은 그런 레코드 교환회가 끝나고 나서였다. 우리는 그의 아파트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음악을 이야기하고, 술을 이야기하고, 그리고는 술에 취해 떠들어댔다.
"예전에 40일동안 매일 계속 토했던 적이 있었어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입니다. 술을 마시고 토했던 것도 아닙니다. 몸의 상태가 나빴던 것도 아니구요. 아무 원인도 없이 그냥 토하는 겁니다. 그게 40일 동안이나 계속됐던 것입니다. 40일입니다. 어지간하죠."
맨 처음 그가 토한 것은 6월 4일이었는데, 이 구토에 관해서는 그가 뭐라 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 전날 밤, 그는 상당량의 위스키와 맥주를 위 속으로 흘려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친구의 부인과 잤다. 1979년 6월 3일 밤이었다.
때문에 6월 4일 아침 8시에 그가 위 속에 든 것을 있는 대로 다 변기에 토해냈다고 하더라도, 그건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각별히 부자연스러운 사건도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토하는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서 처음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레버를 눌러 그 불쾌한 구토물을 하수구로 밀어 넣고, 책상 앞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몸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어느 쪽인가 하면 상쾌한 부류에 속하는 하루였다. 일은 순조롭게 진척되었고, 점심 전에는 배도 고팠다.
점심으로 햄과 오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맥주 한 캔을 마셨다. 그 30분후에 두 번째 구역질이 찾아와 그는 샌드위치 전부를 또 변기 속에 토했다. 흐물흐물해진 빵과 햄이 물 위에 떠올랐다. 그러나 몸에 불쾌감은 없었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토했을 뿐인 것이다. 목 안에 뭔가가 막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시험삼아 변기 위에 몸을 구부려 보았더니, 위 속에 있던 모든 것이, 마술사가 모자에서 비둘기라든가 토끼라든가 만국기 같은 것을 꺼내듯이 나왔던 것이다. 그뿐이었다.
"구토라면 난 지독히 많이 마셨던 학생시절에 몇 번이나 경험을 했었죠. 차 안에서 토한 적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때의 구토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어요.구토 특유의 위가 죄어드는 듯한 감각조차 없었다구요.불쾌감도 없고, 역겨운 냄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이상한 기분이 됐었죠.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 번이나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아무튼 나는 걱정이 됐기 때문에 한동안 일체 알코올은 입에 대지않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구토가 다음 날 아침 어김 없이 찾아왔다. 전날 밤에 먹은 뱀장어와 아침으로 먹은 마멀레이드(오렌지나 레몬의 껍질로 만든 잼)를 바른 잉글리시 머핀(주로 아침에 먹는, 이스트를 넣어 만든 납작한 빵)이 거의 그대로 나왔다.
구토를 한 후 욕실에서 이를 닦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는 툭하고 끊겼다. 그저 그것 뿐이었다.
"같이 잤던 상대의 남편이나 애인이 일부러 그런 전화를 건 게 아닐까?"하고 나는 말해 보았다.
"설마."하고 그는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라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아주 기분 나쁜 분위기를 가진 목소리였죠. 결국 그 전화는 그 때부터 매일 걸려왔습니다. 6월 5일부터 7월 14일까지 말입니다. 어때요? 내가 구역질을 하던 기간과 거의 일치하죠?"
"하지만 장난 전화와 구역질이 어떻게 관련되는 건지 난 전혀 모르겠는 걸."
"나도 그런 건 모르죠." 하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그 일로 혼란스러운 겁니다. 아무튼 전화는 언제나 같은 식이었어요. 벨이 울리고, 내 이름을 말하고, 그리고 툭 하고 끊기는 겁니다. 매일 한 번씩은 전화가 걸려왔지요. 시간은 멋대로였습니다. 아침에 걸려왔던 적도 있고, 저녁에 걸려왔던 적도 있고, 한밤중에 걸려왔던 적도 있었어요. 사실 전화 같은 건 받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일의 성격상 그럴수도 없고, 여자에게 걸려오는 일도 있고 하니까......"
"흐음." 하고 나는 말했다.
"그와 병행해서 구역질 쪽도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먹은건 거의 전부 토했을 겁니다. 토해 버리고 나면 지독하게 배가 고파져서 밥을 먹으면 그걸 또 남김 없이 토해 버리는 겁니다. 악순환이죠. 그래도 평균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토하지 않고 제대로 소화되는 일도 있었으니까, 그걸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거죠. 만일 세 번이면 세 번 다 토해 버리거나 했다면, 그야말로 링거 주사라도 맞지 않고선 연명할 수가 없었겠죠."
"의사한테는 가보지 않았나?
"의사요? 물론 근처 병원에 갔었죠. 비교적 제대로 된 종합병원이었습니다. 뢴트겐도 찍고 소변검사도 했었지요. 암일 가능성도 있어서 그것도 조사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쁜 곳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건강 그 자체였죠. 결국에는 위의 만성 피로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스트레스일 거라고 해서 약을 받아왔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술을 멀리하고, 사소한 일로 끙끙대지 말라더군요. 자기 위가 만성 피로인데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바보입니다. 만성 피로란 위가 무거워지거나, 명치 언저리가 쓰리고 아프거나, 식욕이 없어지거나 하는 거죠. 만일 구토가 있다고 해도, 그건 그 증상들 다음에 나타나는 겁니다. 구역질만 독립해서 뻔뻔스럽게 오거나 하진 않습니다. 나는 구토만 할 뿐이지, 다른 증상은 아무것도 없었다구요. 계속 배가 고팠던 것만 제외하면, 몸은 지극히 좋았고 머릿 속도 깨끗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라고 할 경우에도, 난 전혀 그런 걸 느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야 물론 일이 꽤 빡빡하기야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녹초가 되어 버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여자들과 일도 더할 나위 없이 잘 되어가고 있었구요. 3일에 한 번은 풀에 가서 실컷 헤엄을 치기도 했고...저어, 더 얘기할 필요 있을까요?"
"그렇군."하고 나는 말했다.
"그냥 토했을 뿐입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2주 동안 그는 계속 토했고,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15일째 되던 날, 그는 양쪽 다 진절머리가 나서 일은 접어두고, 구토야 어찌됐든 전화로부터라도 도망치기 위해 호텔에 방을 잡아 거기서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며 지내기로 했다. 처음 한동안은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점심으로 로스트 비프 샌드와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를 깨끗이 해치웠다. 환경이 바뀐 것이 좋게 작용했는지, 그것들은 그의 위 속으로 제대로 들어가서 끝내는 그대로 깨끗하게 소화되어 갔다. 3시 반에는 호텔 티 룸에서 친구의 애인과 만나, 체리 파이를 블랙 커피와 함께 위 속에 넣었는데 이것도 잘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친구의 애인과 잤다. 섹스에 관해서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녀를 보내고 난 후, 그는 저녁을 혼자서 먹었다. 호텔 근처의 요릿집에서 두부와 서경식 삼치 요리와 스노모노(어육이나 채소에 식초를 친 요리)와 된장국으로 배불리 먹었다. 여전히 알코올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때가 6시 반이었다.
그는 방으로 돌아와 TV 뉴스를 보았고, 그게 끝나자 에드 맥베인의 <87분서>시리즈의 신작을 읽기 시작했다. 9시가 되어서도 구토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는 2주 만에 포만감을 느긋하게 마음껏 맛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이대로 일이 좋은 쪽으로 진행되어 모든 상황이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을까, 하고 그는 기대했다. 그는 책을 덮고 TV 스위치를 눌러 잠시 리모컨으로 채널을 찾다가 오래된 서부극을 보기로 했다. 영화는 11시에 끝났고 마지막 뉴스가 나왔다. 뉴스가 끝나자 그는 스위치를 껐다. 위스키가 몹시 마시고 싶어서 눈 딱 감고 위층에 있는 바로 가 자기 전에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생각을 고쳐 먹고 그만두었다. 모처럼의 깨끗한 날을 알코올로 더럽혀 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침대의 독서 등을 끄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한밤중이었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2시 15분이었다. 처음 한동안 그는 잠이 덜 깨어 어째서 그런 곳에서 벨이 울리는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흔들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댔다.
"여보세요."하고 그는 말했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여느 때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고, 다음 순간 전화는 끊겼다.그리고 뚜 하는 신호음만이 귀에 남았다.
"하지만 그 호텔에 묵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하고 나는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죠. 다만 내가 같이 잤던 그 여자한테만은 가르쳐 주었죠."
"그 여자가 다른 누군가에게 귀띔해 준 게 아닐까?"
"뭘 위해서 말입니까?"
듣고 보니 그랬다.
"그 후에 나는 욕실에서 먹은 걸 남김 없이 전부 토해 버렸습니다. 생선, 쌀 전부 말입니다. 마치 전화가 문을 열어 길을 닦아 놓고, 그곳으로 구토가 들어온 것 같았죠 그렇게 토하고 나서 나는 욕조에 앉아 여러 가지 일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맨 먼저생각난 것은, 그 전화가 누군가의 교묘하고도 계획적인 짓궂은 장난이라는 거였습니다. 내가 그 호텔에 묵고 있다는 것을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문제는 뒤로 미뤄 두고, 아무튼 그런 인위적인 짓이지요. 두 번째 가능성은 나의 환청일지도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환청을 경험하다니 생각만 해도 바보 같았지만, 냉정히 분석해 보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벨이 울린 것 같은>기분이 들어 전화기를 들었고, <내 이름이 불린 것 같은>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거죠. 사실은 아무 일도 없었고 말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얘기죠?"
"그건 그렇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지금 이 방에 전화가 왔는지 어떤지 체크해 줬으면 한다고 얘기를 했지만 안 됐습니다. 호텔 오퍼레이팅 시스템은 이쪽에서 밖으로 거는 전화는 전부 체크를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전혀 기록이 남지 않는다더군요. 그래서 단서는 제로였습니다.
호텔에 묵은 그날 밤을 경계로 해서 나는 여러 가지를 비교적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역질과 전화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선 그 두 가지 사건이 전면적으로인지 부분적으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는 것, 그리고 양쪽 다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가벼운 것이 아닌듯하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호텔에서 이틀을 묵고 아파트로 돌아온 후에도, 구역질과 전화는 여전히 같은 식으로 계속되었죠. 시험삼아 몇 번 친구 집에 묵기도 했지만, 전화는 어김 없이 그곳으로 걸려왔습니다. 그것도 반드시 친구가 없고 나 혼자 있을 때만 말이죠. 그래서 나는 점점 기분이 나빴습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내 등 뒤에 서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골라 내게 전화를 걸거나 위 속에 손가락을 처넣거나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건 명백히 분열증의 최초 징후죠. 안 그런가요?"
"하지만 자신이 분열증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분열증 환자는 그다지 없지 않나?"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그리고 분열증과 구토가 서로 연동하는 예도 없죠. 그건 대학병원의 정신과에서 들은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나를 거의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보다 확실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밖에 상대해 주지 않죠. 나 정도의 증상을 가진 사람은 만원인 야마노테선의 차량 한 량 당 2.5명에서 3명 정도는 있다면서, 그런 사람들을 하나 하나 상대하고 있을 여유가 병원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토는 내과에, 장난 전화는 경찰에 가보라더군요.
그러나 아실지도 모르지만 세상에는 경찰이 상대해 주지 않는 범죄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장난 전화, 또 하나는 자전거 도둑입니다.양쪽 다 건수가 너무 많고 범죄치고는 너무 하찮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하나 하나 다루고 있다 보면 경찰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리죠. 때문에, 내 얘기 같은 건 제대로 들어 주지도 않습니다. 장난 전화? 그래서 상대는 무슨 말을 하던가요? 댁의 이름뿐이라구? 다른 말은 없고? 그럼 거기 있는 신고서에 이름을 써요. 그리고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연락을 주세요...대개 그런 식이죠. 어떻게 상대가 내가 가는 곳을 하나 하나 다 알고 있죠, 하고 말해봐도 제대로 상대해 주지도 않고, 너무 집요하게 얘기를 하면 머리가 이상한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받아요.
그래서 결국, 의사도 경찰도,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컨대 나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밖에 달리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든 건 그 <구토전화>가 시작된 지 약 20일째 되는 날이었죠. 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터프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는 정말이지 어느 정도 질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친구의 애인과는 잘 하고 있었겠지?"
"네, 그런 대로. 마침 그 친구가 2주 동안 일 때문에 필리핀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에 우리는 실컷 즐겼습니다."
"그녀와 즐기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없었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없었던 게 당연하죠. 그 전화는 언제나 내가 혼자 있을 때 걸려왔습니다. 구토도 늘 내가 혼자 있을 때만 일어났구요. 그래서 난 생각했죠. 어째서 나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일까 하고요. 사실 평균적으로 나는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은 혼자 있습니다. 혼자 살고 있고, 일의 성격상 교제는 거의 없고, 일에 대한 상담은 대개 전화로 끝내 버리고, 애인은 다른 사람의 애인이고, 식사는 9할 정도가 외식이고, 스포츠를 한다고 해서 혼자서 헤엄을 칠 뿐이고, 취미라면 이렇게 혼자서 골동품 같은 레코드를 듣는 정도이고, 일도 혼자서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류고, 친구는 있지만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모두 바빠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그런 생활, 아시겠죠?"
"음, 뭐," 하고 나는 동의했다.
그는 얼음 위에 위스키를 따르고 손가락으로 얼음을 빙빙 돌려 휘젓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차분히 눌러 앉아 생각을 해 봤죠.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말입니다. 이대로 혼자서 장난 전화와 구토로 계속 괴로워할 것인가 하고요."
"제대로 된 애인을 찾으면 됐을 텐데. 자기만의 사람을 말야."
"물론 그런 생각도 해 봤죠. 나는 그 때 스물일곱이었고, 이제 이쯤에서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려도 나쁘지 않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엔 안 됐습니다. 나는 그런 타입의 인간이 아니거든요. 나는 뭐랄까, 그런 식의 패배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역질이나 장난 전화 같은 이유도 알 수 없는 불합리한 것에 항복을 하고, 내 삶을 간단히 바꿔 버린다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체력과 정신력의 마지막 한 방울을 짜낼 수 있을 때까지 싸우자고 결심했습니다."
"흐음."하고 나는 말했다.
"무라카미 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글쎄,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데."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로 짐작이 가지 않았다.
"구역질과 전화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체중도 훨씬 줄었구요. 잠깐만요-에, 그렇군요- 6월 4의 체중은 64킬로였습니다. 6월21일이 61킬로, 7월 10일은 59킬로입니다. 58킬로라구요. 내 키로 따져 보면 거짓말 같은 숫자죠. 덕분에 양복이란 양복은 전부사이즈가 안 맞게 됐구요. 바지를 부여잡고 걸어야 할 지경이었죠."
"질문이 하나 있는데, 어째서 녹음전화를 장치해 둔다거나 하지는 않았지?"
"물론 도망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질려한다는 것을 상대에게 가르쳐 주는 게 됩니다. 누가 이기나 해 보는 거죠. 상대가 나가떨어지든지, 내가 뻗어 버리든지 말입니다. 구역질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걸 이상적인 다이어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던 겁니다. 다행이 체력이 극단적으로 저하되는 일도 없었고, 일상생활도 일도 평상시처럼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 했습니다. 아침부터 맥주를 마셨고,해가 지면 위스키를 실컷 마셨죠. 마시든 안 마시든 어차피 토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마시는 쪽이 후련하고 납득이 가는 일이죠.
그리고는 은행에서 저축한 돈을 찾아 양복점으로 가서 새 체형에 맞는 슈트 한 벌과 바지 두 벌을 구입했습니다. 양복점 거울에 비춰 보니 마른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더군요. 생각해 보면 토한다는 것도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죠. 치질이나 충치에 비해 고통도 적고, 설사에비교하면 양반입니다. 물론 이건 비교의 문제긴 하지만요. 영양 문제가 해결되고 암일 가능성이 없어지면 구토하는 건 본질적으로는 무해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살을 빼기 위한 인공적인 구토제를 팔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ㅡ"하고 나는 말했다. 결국 그 구토와 전화는 7월 14일까지 계속된 거로군?"
"정확하게 말하면ㅡ잠깐만요ㅡ정확하게 말하면, 마지막 구토가 7월 14일 아침 9시 반이었는데, 그건 토스트와 토마토 샐러드와 우유를 토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화는 그날 밤 10시 25분에왔는데, 그 때 나는 에롤 가나의 <콘서트 바이 더 씨>를 들으면서 시그램VO를 마시고 있었습니다.ㅡ어때요, 일기란 게 써 두면 꽤 편리한 거죠?
"정말 그렇군."하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그 이후로 양쪽 다 뚝 끊긴 거로군?"
"뚝 끊겼죠. 히치콕의 <새>처럼, 아침이 되어 창문을 열어 보니 모든 것이 이미 사라져 버린 겁니다. 구역질도 장난 전화도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63킬로까지 체중이 불어나, 양복장에 걸어 놓은 슈트와 바지는 입을 수가 없게 되었죠. 일종의 기념품처럼 말입니다."
"전화의 상대는 마지막까지 똑같은 어조였나?"
그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리고 약간 멀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아닙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 전화만은 그 때까지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우선 상대가 내 이름을 말하더군요. 이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죠. 하지만 그 다음에 녀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습니까?>하고 말이죠. 그리고 잠시 동안 잠자코 있었습니다. 나도 잠자코 있었죠. 10초? 15초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쪽도 나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습니다. 뚜하는 예의 발신음만이 남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말했나? <내가 누군지 알겠습니까?>라고?"
"글자 한 자 틀리지 않습니다. 느긋하고 예의바른 말투였죠. <내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전혀 기억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당시 5, 6년 동안 관계해 왔던 상대 중에는 그 목소리에 해당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훨씬 옛날 어렸을 때 알던 사이라든가, 그다지 말을 하지 않던 상대까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런 상대가 나를 원망할 만한 일에 대해 짐작이 갈 만한 점은 전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뭔가 심한 짓을 했던 기억도 없고, 동업자의 원한을 살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뭐, 여자 관계에 대해서는 말씀드린 것처럼 약간은 꺼림직한 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27년이나 살았기 때문에 막 태어난 아기처럼 결백할 수는 없는 겁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상대의 목소리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들으면 당장 알 수 있죠."
"하지만 말야, 정상적인 사람은 친구의 배우자와 전문적으로 자거나 하진 않는다네."
"그렇다면,"하고 그는 말했다. "무라카미 씨는 그게 내 속에 있는 어떤 죄책감이ㅡ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죄책감이ㅡ구토라든가 환청이라든가 하는 형태로 결상된 게 아닌가 하고 말하고 있는거로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네.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지."하고 나는 정정했다.
"흐음."하고 말하며 그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자네가 정을 통한 상대의 남자 중 한 명이 사립탐정을 고용하여 자네를 미행케 해서 자네를 혼내 주거나 혹은 자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게 했다. 그리고 구토 쪽은 단순한 몸의 이상이고, 우연히 그 두 가지가 시기적으로 일치 했다고 말이야."
"양쪽 다 일리가 있군요."하고 그는 감탄한 듯 말했다. 역시 소설가는 다르군요. 하지만 말입니다. 두 번째 가설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래도 그녀와 자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지 않게 됐죠? 앞뒤가 맞지 않는데요."
"아마 정나미가 떨어진 거겠지. 아니면 탐정을 계속 고용할 만큼의 돈이 떨어진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이건 가설이니까. 가설이라도 괜찮다면 백 개든 2백 개든 대줄 수 있지. 문제는 자네가 어느 가설을 취할 것인가 하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서 뭘 배우느냐 하는 거지."
"배운다?"하고 그는 의외인 듯이 말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이마에 글라스의 바닥을 대고 있었다. "배운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이 한 번 더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지, 물론. 다음에는 40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이유 없이 시작된 건 이유 없이 끝나지. 그 반대도 또한 사실이고 말이네."
"거 참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군요."하고 그는 킥킥대며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묘하군요. 당신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거기에 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다시 그런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것 말입니다. 저어, 정말로 닥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런 건 알 수가 없지."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가끔씩 글라스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위스키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리고 빈 글라스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몇번인가 티슈 페이퍼로 코를 풀었다.
"어쩌면,"하고 그는 말했다. "어쩌면, 그런 일은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예컨데, 무라카미 씨에게라든가 말이죠. 무라키미 씨도 완전히 결백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 후로도 나는 그와 만나 전위적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종류의 레코드를 교환하거나, 술을 함께 마시거나 하고 있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이다. 나는 일기를 쓰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까지는 알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요즈음 그에게든 나에게든 구토도 전화도 찾아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