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속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나도 여차할 때, 그런 결정적인 대사를 한번쯤 읊어 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쑥스럽다고 할까, 좀처럼 맨 정신으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취하면 실수를 할 것 같고 말이다. 이러니 평생 못할 수밖에.
챈들러 씨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견을 좀 늘어 놓자면, '안녕' 을 말한 직후의 죽음은 실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우리가 정말 잠시 죽는 것은 자신이 '안녕' 을 말했다는 사실을 몸 한가운데에서 직면했을 때다. 이별을 말했다는 사실의 무게를 자기 자신의 일로서 실감했을 때. 그러나 대개의 경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주위를 한 바퀴 돌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 왔지만, 능숙하게 '안녕' 이라고 말했던 예는 거의 기억에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좀더 제대로 안녕을 말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설령 후회했다고 해도, 그래서 삶의 방식이 바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책임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이라는 것은 아마 뭔가가 있어 갑자기 죽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여러 가지 것들이 쌓여 가면서 죽어 가는 것일 것이다.
예외적으로 아름답게 '안녕'을 말했던 내 이야기를 해 보자.
20세기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카우아이 섬의 노스쇼어는 노을이 너무나 멋있고 아름다웠다. 선명한 오렌지색 덩어리가 산 끝으로 막 숨으려하고, 구름과 바다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석양을 바라보기 위해서 정처도 없이 차를 몰았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브라이언 윌슨의 명곡 "캐롤라인 노"가 흐르고 있었다. 듣고 있으려니 가슴이 울컥 뜨거워지며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20세기가 가는 것에 대해서 나는 그때까지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그저 달력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노래를 듣는 동안, '지금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시간 덩어리가 이별을 알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겼고, 온몸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다. 처음으로 "캐롤라인 노" 를 들은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그때는 솔직히 말해서 이 노래가 좋은지를 몰랐다. 지금은 알고 있다. 절실히 알고 있다. 그렇게 나의 20세기는 지나갔구나, 하는 것을 그때 나는 실감했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20세기에 대해서 그 나름의 배경과 음악을 곁들여 개인적으로 멋있게 이별을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뭐, 가끔은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