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골동품을 좋아해서 여행하는 곳마다 그곳의 골동품 가게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쓴 것 같다. 나는 가능한 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단정짓지 않고 살아 가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과감히 독단적으로 세우고 싶은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골동품에 특별한 흥미가 없는 사람이 어울려 주기 위해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서 장시간 빈둥대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절대로 없다.' 는 것이다. 아내가 뭐가 뭔지 모르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가게 주인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하품을 하면서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며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을 보고 있다. '어째서 이렇게 더러운 접시에 이렇게 비싼 가격을 붙여 놓지?'
속옷 가게에 들어가는 것과는 달라서(들어가지 않지만), '눈 둘 곳이 없어 곤란한' 것은 없으니, 그 점은 구원이라면 구원이랄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지루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교토의 작은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을 때, 나는 처음부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게를 보고 있는 할머니의 눈매도 싫었다. 그 할머니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법사 같아 보였다. 깊은 숲속 이상한 집에 혼자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기도 떠돌고 있었다. '저쪽으로는 다가가지 않도록 하자. 좋은 일 없을 것 같으니까.' 하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지루한 나머지, 나도 아내를 따라다니며 들은 풍월에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 눈앞에 있는 접시를 보고 '아마 메이지 시대의 것인가 본데, 무늬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걸.'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정도에서 그만두면 좋았을 텐데 (왜 그만두지 않았던 거야!), 손으로 들어 보았다. 바로 그때 등에 뭔가 찌릿하게 강력한 전자파 같은 시선을 느꼈다. 아, 이건 실수야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이 미끄러지며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것, 어차피 잘 깨지는 거니까요.' 하고 할머니는 웃으며 말해 주었지만, 그 여자의 눈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그런 특수한 메시지를 포함한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고도 교토에는 아직 적잖게 살고 있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그 '한 장은 팔 수 없다'고 하는 열 장 세트의 접시를 울며 겨자먹기로 전부 사 왔다. 안 살 수가 없잖아.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예요.' 나중에 아내가 야단쳤다.
'그렇지만 말이야, 그건 염력이야.' 하고 나는 변명했다.
'그 할머니가 찌릿찌릿 전파를 보내 내 손이 미끄러워지도록 했단 말이야.'
물론 아내는 그따위 말은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지금도 그 아홉 장의 접시는 집에서 사용하고 있다. 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접시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