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글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행여 선을 보는 자리에서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상대방이 석연치 않아 하여 성사될 일도 성사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글쎄 취미가 번역이라는 둥 그러잖아요. 이번에는 아무래도 좀……."
"음, 그럴만도 하군요. 그랬어요, 번역이 취미라……."
이런 대화가 어디에선가 오가고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별일도 없는데 일요일마다 스카이 라인 GTR을 몰고 하코네에 가서는, 고갯길에서 단란한 남의 가족을 뒤쫓는 것보다는 훨씬 정상적인 취미 같은데, 뭐 그건 그렇고.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번역이 취미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번역서를 출판하였고(그 대부분이 미국의 현대소설이다), 번역은 이미 내 직업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로 시작한 탓에 지금 다시 읽어보면 식은땀이 나는 부분도 많아 큰 소리는 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소설가인 한편 번역가로도 통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번역은 취미'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내 안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나는 틈만 나면 버릇처럼 책상앞에 앉아 '충동적'으로 번역을 한다. 딱히 생활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누구의 부탁을 받아서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공부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물론 결과적으로는 좋은 공부가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이다. 분명하게 말해, 나는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기에 이렇듯 질리지도 않고 번역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취미라 하지 않고 뭐라 할 것인가…….
"그렇게 번역을 많이 하시니, 초벌 번역자를 쓰시겠죠?"라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나는 초벌 번역자를 쓴 일이 단 한번도 없다. 내가 아는 번역가 중에도 초벌 번역을 시키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런 일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은 법, 초벌 번역자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초벌 번역자를 쓰면, 번역이란 직업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놓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번역을 하면서 가장 가슴이 설레는 때는,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는 언어를 세로로 세워 놓는 그 순간이니까 말이다. 그때 머릿속 언어 시스템이 쭉쭉 스트레칭하는 그 감각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리고 번역된 문장의 리듬이 얼마나 싱그러울 수 있느냐는 그 첫 스트레칭에 달려 있다. 그 쾌감은 실제로 맛본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문장 쓰는 법을 번역 작업에서 결과적으로 배웠다. 외국의 탁월한 작가의 문장을 하나하나 가로에서 세로로 '어여차' 바꿔 쓰는 작업에서, 문장에 숨겨진 비밀(미스테리)을 그 밑동부터 해명해 온 셈이다. 번역이란 유난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더딘' 작업이지만, 그런 만큼 세세한 부분을 체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번역이란 작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중에, 그렇게 못된 인간은 없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좀 미련한 구석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극단적으로 비열한 짓을 할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선을 보는 상대가 '전 번역이 취미입니다'라고 한다고, 단지 그것만으로 마다하지는 말아 주세요.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설가가 번역하는 것이니, 보통 번역가와는 좀 색다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자의식 내지는 자부심 비슷한 것이 마음속에 있었는데, 한참 경험을 쌓고 이리저리로 머리를 쿵쿵 부딪친 다음에야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문장이 지닌 맛을 가능한 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착실하게 아슬아슬할 정도로 텍스트에 바싹 다가가, 그 결과로 마지막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맛'이 나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독자적인 맛을 가미하려 애쓴다면, 역시 번역자로서는 이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번역의 진정한 묘미는 좋은 오디오 장치가 한없이 자연음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까지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피커를 예로 들자면 청중에게 '아아, 정말 멋진 소리'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류, '아아, 정말 멋진 음악'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진짜 일류다. 나는 번역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절실하게 그런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지 않다. '알고 있기는 한데' 뭐 그런 정도다. 한 마디로 취미라고 하였지만, 따지고 보니 상당히 광할하고 깊군요.
올해는 빌 크로우의 《안녕 버드 랜드》와 피츠제럴드의 《바빌론을 돌아가다》, 마이클 길모어의 《심장을 찔려》를 취미로 번역하고 있다. 별일 없으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농담이 아니고 다 재미있는 작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