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스물한 살이 된 장수 고양이 뮤즈에 대해서 썼는데, 이 고양이는 기묘한 에피소드를 잔뜩 지니고 있어(책 한권 정도는 족히 쓸 수 있는 분량이다) 내용을 조금 더 첨가하기로 하겠다.
'고양이를 보면 무서워서 몸이 움츠러든다'는 미즈마루씨가, 또 이 칼럼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넣지 않을 수 없게 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사과드리는 바이지만.
뮤즈는 암코양이라서 몇 번인가 새끼를 낳았다. 이 고양이는 순수한 샴 고양이지만 뭐 딱히 혈통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부터 밖에서 기르면서 제멋대로 나다니게 놔두었다. 그래서 새끼들은 하나같이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잡종이지만, 다들 생김도 귀엽고 영리하여 서로들 가져가겠다고 앞을 다투었다.
그런데 뮤즈가 일고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아는 수의사가 "나이도 꽤 먹었으니 고양이의 몸을 위해서 피임수술을 해주는 편이 좋을 겁니다"라고 하기에 피임수술을 시켜 주었다. 수술을 하기까지 전부 다섯 번 정도는 임신하고 새끼를 낳았다.
고양이란 보통 사람 눈을 피하여 어두운 곳에서 몰래 새끼를 낳는 법이다. 내가 그때까지 기른 고양이들도 모두 그랬다. 낳은 새끼를 사람이 만졌다가는 큰일이 난다. 그런데 뮤즈만은 반드시 밝은 곳에서, 그것도 내 바로 옆에서 새끼를 낳았다. 진통이 시작되고 드디어 새끼가 나올 듯한 단계가 되면, 야옹야옹 울면서 내 무릎으로 안기듯 기어든다. 그리고 호소하듯 내 얼굴을 본다. 할 수 없이 나는 "그래 알았어"라고 말하고, 뮤즈의 손을 꼭 쥐어 준다. 그러면 뮤즈도 내 손을 그 눈길로 꼭 잡는다. 그러다 마침내 다리 사이로 새까맣게 젖은 태아가 움찔움찔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새끼를 낳을 때, 뮤즈는 상반신을 세운 채 양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나는 그런 뮤즈의 몸뚱이를 뒤에서 받치듯 안고 양손을 잡는다. 뮤즈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아무 데도 가지 말아요, 부탁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차분한 눈길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새끼가 밖으로 다 나오고 나면, 나는 태반을 집어다 버린다. 뮤즈는 그동안 새끼고양이의 몸을 날름날름 맛있게 핥는다.
그렇게 한 번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뮤즈는 언제나 다섯 마리쯤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한 마리를 낳고 다음 한 마리를 낳을 때까지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첫 진통이 시작되고부터 마지막 새끼를 낳을 때까지 대개 2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동안 나는 내내 뮤즈의 손을 꼭 잡고, 서로의 눈을 응시해야 한다. 이는 풍경적으로도 굉장히 이상하고, 육체적으로도 지치는 작업이다.
덧붙여 뮤즈는 어째서인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밤중에 새끼를 낳는다. 나는 그 무렵에는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기에 안 그래도 밤이 되면 육체 노동에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 한밤의 2시에서 새벽녘까지 고양이의 출산을 지켜보지 않으면 안되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도중에 우리 마누라와 교대하고 싶지만(졸립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다), 뮤즈는 어찌 된 셈인지 출산 때에는 내가 아니면 근접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절대로 내가 손을 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마누라는 곧잘 "저 새끼고양이, 혹시 당신 자식 아니에요"라고 비아냥거렸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새끼고양이의 아버지는 같은 동네에 사는 고양이다.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면 곤란하다. 야옹야옹.
하지만 새끼를 낳고 있는 고양이와 한밤에 몇시간이나 눈길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나와 그녀 사이에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그것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양이와 인간의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묘한 체험이었다. 왜나하면─세상의 대부분의 눈치 빠른 고양이가 그러하듯─뮤즈도 평상시에는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가족으로서 사이좋게 함께 생활하였지만, 우리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가끔가다 어리광을 피우기는 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새끼를 낳을 때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배를 가른 전갱이처럼 유보없이 나에게 맡기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마치 캄캄한 어둠 속으로 조명탄이라도 쏘아올린 것처럼, 그 고양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인생이 있으며, 고양이만의 사고와 기쁨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출산이 끝나면 뮤즈는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수께끼에 찬 냉정한 고양이로 되돌아갔다.
고양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더군요. 


▶소문의 심장

'타운 페이지'에 '러브호텔'이란 항목이 있는데, 알고 있습니까? 무라카미는 모르고 있었답니다. 지금까지 들추어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