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서너 번 맥주 광고에 나와 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항상 맥주 광고란 말인가? 래비트 지우개라든가 꼼므 데 갸르손이라든가 도영 지하철, 이시마루 전기, 아사히 신문사, 다카라 싱크대, 도요타 포크 리프트, 일본대학 이공학부, 매킨토시 컴퓨터 등등, 세상에는 무수한 제품을 만드는 무수한 회사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데 말이다. 그런데도 어찌 된 셈인지 나한테는 맥주 광고 의뢰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필경 무슨, 나란 인간의 근원에 직결된 필연적인 원인이 전설의 거대한 뱀장어처럼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우둔한 머리로 추측하는데, 대체 어떤 것인지 짐작이 안간다. 알고 있는 분이 계시면 가르쳐 주세요.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모든 의뢰를 거절하였다. 첫 번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서 '아참, 맥주 마시는 것을 깜빡 잊었군'이라면서 무릎을 탁 치고 냉장고로 향하는 장면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 목욕탕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수염을 깎는다. 그러나 가능하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보지 않으려 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아봐야, 아침부터 넌더리가 날 뿐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수염을 깎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예를 들면 여러분 앞에서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는 자신의 모습이 무슨 도움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겸손이 아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소설가가 어째서 텔레비전 광고에 나가야 하는가란 근본적인 의문이 내 안에서 불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제를 더 이상 추구하면, 세상이 좁아지고 말 듯하니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겠다. 잊어 주세요.
좀 의아한 사건이 있었다. 로마에 살 때 아내와 베네치아를 여행하였다. 차를 운전하며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여행이라 미리 호텔을 정해 두지도 않았다. 베네치아에서 한 오래 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아침에 식당으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무라카미씨 아니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양복을 입은 일본인 남자가 서 있었다. "예, 그런데요"라고 내가 대답하자, 상대방이 명함을 내밀었다. 광고 대행사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어느 맥주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도쿄에서 베네치아까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단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죠? 나는 아무한테도 내가 있는 곳을 알려 주지 않았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 그렇게 물어보았다.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면, 그는 우선 로마에 가서 내 아파트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래서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우연히 내가 베네치아 방면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베네치아의 소위 일류 호텔이란 호텔에 전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 번째에 드디어 내가 있는 호텔을 찾아내었고(그야말로 기적이다. 나는 항상 싸구려 호텔에 숙박을 정하는데, 그때는 빈 방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비싼 호텔에 묵었었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 식당에서 내 꼬리를 잡았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나는 지금 개인적인 여행을 하고 있고, 사전 약속도 하지 않았으니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그를 물리쳤을텐데, 그렇게까지 수고를 하였으니 참 대단하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소설 같다. 무대도 다른 곳도 아닌 베네치아다. 그래서 차분히 그의 얘기를 다 들어 주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지금도 전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농밀한 정열과 대담하고 신속한 행동력─회사 내에서도 분명 유능한 인재일 것이다. 만약 고대 이집트에서 태어났다면, 역사에 남을 멋진 피라미드라도 축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현대에 태어나, 우연히 광고 대행사에 취직하여, 우연히 맥주 광고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비아냥이 아니고.
그러나 역시 나는 광고 출연 의뢰를 거절하였다. 미안은 하지만. 만약 그때 나와 함께 있던 여자가 아내가 아니었다면…… 하고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그렇지 않겠어요?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시는 여러분, 그 열성적인 마음은 알겠지만 사전 약속 없이 불쑥 만나러 오시면 곤란합니다.
지금이니까 고백하지만, 나는 딱 한 번 텔레비전 CM에 출연한 일이 있다. 아는 사람이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는데 '어떤 가전제품 회사의 광고를 제작하려고 국립경기장 트랙에서 마라톤 장면을 찍는데, 별일 없으면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출연하였다. 나는 외국인 러너들에 섞여 골 앞에서 데드 히트를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촬영에 반나절이 걸렸다. 조그맣게 찍혀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개런티는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