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에도 일본 신문처럼 인생 상담 코너가 있는데, 나는 그 코너의 제법 열렬한 독자였다. 덕분에 미국에서 4년 반을 지내는 동안 일반적인 미국 사람들이 껴안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해 통달한 기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는 무수한 고민거리로 넘쳐나는데, 그러나 미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의 고민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사람들의 고민거리라는 것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같은 고민이라도 나라가 다르니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깊이 생각에 잠기는 쪽이 훨씬 더 많았다.
고민의 내용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카운셀러와 미국의 카운셀러는 그 대답하는 양식 또한 상당히 다르다. 일본의 경우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정서적인 대답이나, 혹은 위에서 그렇게 지시를 내렸는지 판에 박힌 대답만 흔히 볼 수 있는데(일반적으로 그런 정도의 대답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우는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군'이라며 무릎을 탁 치고 싶을 만큼 유효한 것이 많았다. 미국 사람들은 '애매한 일본의 대답' 가지고는 전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대답 속에는 사리정연하고 명쾌한 결론이 없으면 안된다.
또 한 가지 큰 차이점은, 일본에서는 유명인이나 유직자가 의뢰를 받아 본업 틈틈이 상담에 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해당 전문분야의 '인생 상담원'이 대답한다는 것이다. 즉 인생 상담에 관한 한 전문가라서, 이 코너는 연재 칼럼에 뒤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전문성을 띠고 있고 설득력도 있다. 삶과 죽음에 관계된 진지한 고민거리에서부터 얼토당토않고 엉뚱한 고민거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상담이 들어오는데, 조금이라도 빗나간 대답을 하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면, 전국에서 비난의 소리가 빗발치므로 상담원은 절대로 멍청한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실례를 몇 번인가 경험하였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신문에, 한 주부가 보낸 편지가 실려 있었다.
'나는 항상 전라(全裸)로 집안일을 하는데, 어느 날 뒷문으로 잠입한 남자한테 레이프를 당하여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정확한 문장까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주부가 전라로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상담원도 '참 안된 사건이지만 구태여 알몸으로 집안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쩌다 슬쩍 집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폭행을 당할 위험도 크고, 무익한 도발은 사전에 피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대답해 놓았다. 나도 옳은 대답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만사는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에, 그 대답에 대한 항의 편지가 전미의 주부한테서 쇄도한 것이다. 대부분 '나도 그녀처럼 전라로 집안일을 하고 있다. 개방적이고 기분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 당연한 권리를 폄하하거나 박탈할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말이에요, 아무리 기분이 좋다고 해도,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그렇지, 알몸으로 랄랄랄 집안일을 하는 주부가 세상에 이렇게 많이 존재해도 되는 겁니까. 대관절 어떻게 된 나라입니까, 이 나라는.
그런데 그후에도 '전라 가사 주부'는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전철 속에서 멍하니 손잡이를 잡고 있다 보면, 알몸으로 배추를 다듬고 다리미질을 하는 주부의 모습이 불쑥 떠오르는 것이다. 대체 사람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알몸으로 집안일을 한다는 발상에 도달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하는 사이에, 나도 '어쩌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집안일을 하면 정말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 몸소 실험을 해볼까 하고 제법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막상 실행하는 단계가 되면 주춤거려진다. 남몰래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무를 썰고 있는데, 마누라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어떻게 변명을 하면 좋단 말인가. 정직하게 사정을 설명하면 과연 믿어 줄 것인가…… 하고 구질구질 생각하다 보면, 역시 엄두가 나지 않는다. 레이프는 접어두고라도.
몇 년 전 그리스의 조그만 섬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도 전라의 남녀를 심심찮게 보았다. 해변을 거닐다 보면, 정말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벌렁 드러누워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눈을 찔끔 감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점점 익숙해졌다. 여자들의 나체를 보고 성적인 자극을 느끼는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그 다음에 눈에 띈 미니 스커트의 아가씨가 더 섹시하게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알몸으로 집안일을 하고 싶어하는 주부가 있다면 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벗고 일하라고 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건 그렇고 '나 역시 전라로 집안일을 하고 있다'는 주부가 일본에도 계신다면, '전라 가사 주부 문제'를 진지하고 집요하게 국제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무라카미한테로 꼭 연락 주십시오. 반라(半裸)라도 뭐 상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