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 전 일이다. 미국의 어떤 잡지에서 나이를 먹으면 성욕이 점점 감퇴하지만, 이는 나쁜 현상이 아니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어떤 남성이 '나이를 먹어 성욕이라는 불합리한 감옥에서 간신히 해방된 것을 알고, 나는 무척 기뻤다'고 고백한 기사도 있었다. 그때 나는 아직 삼십대 전반이었기에 '어라, 정말 그런 건가' 하고 그저 탐복했을 뿐이었다.
지금은 이미 사십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니(세월은 참 흐르는 물처럼 빨리도 지나간다), 그 발언에 대하여 나는 보다 노령에 가까워진 인간으로서 '어떤 면에서는 그럴지 모르겠으나, 절대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의견이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여러 가지로 성가시므로 음, 이 자리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차 감퇴하는 것이 비단 성적인 능력만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상처 입는 능력'도 감퇴한다. 이 점은 틀림 없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에는 나도 상당히 자주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 사소한 가슴앓이를 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적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 나름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젊은 분 중에 도, 젊었을 적 나처럼 괴로운 마음을 부둥켜안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일로 큰 타격을 입어, 앞으로 인생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고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렇게 고뇌할 필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쉽사리 상처입지 않게 되는 법이니까요.
나이를 먹으면 왜 상처 입는 능력이 떨어지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또 그것이 내 자신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편 하느냐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상처입지 않는 편이 편하다. 지금은 누가 아무리 혹독한 소리를 하여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해도, 믿고 빌려준 돈이 돌아오지 않아도, 어느 날 아침 펼쳐든 신문에 '무라카미는 벼룩의 똥만큼한 재능도 없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어도(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그렇게 상처입지 않는다. 물론 매저키스트가 아니니 기분은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일로 낙담을 하거나 며칠이고 궁상맞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할 수 없지 뭐, 세상이란 그런거야'라 여기고, 그대로 잊고 만다. 젊었을 때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잊으려 애를 써도 쉬이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할 수 없지 뭐, 세상이란 그런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요컨대 몇 번이고 비슷한 일을 경험하면서 그 결과 무슨 일이 생기면 '뭐야, 또 지난번과 비슷하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매사 일일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은 좋게 말하면 터프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내 안에 있는 나이브한 감수성이 마모되었다는 뜻이 된다. 즉 뻔뻔스러워진 것이다. 변명을 할 생각은 없지만, 개인적인 사소한 체험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떤 유의 나이브한 감수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내가 속 해 있는 직업적 세계에 살아남으려 한다면, 그 시도는 소방수가 레이온 셔츠를 입고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그다지 상처입지 않게 된 것은 인간이 뻔뻔스러워진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을 경계로 '나이도 웬만큼 먹었는데 젊은애들처럼 정신적으로 상처입고 어쩌고 하는 것은 좀 볼품이 없지 않은가'란 인식에 도달했고, 그 이후 가능한 한 상처입지 않도록 의식 적으로 훈련을 쌓아왔다. 그렇게 그런 인식에 도달했는가는 얘기가 길어지니 이 자리에서는 말하지 않겠지만(말하지 않겠다는게 많아 죄송합니다.) 나는 그때 절실하게 생각하였다. 정신적으로 상처 입기 쉬운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경향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당사자에게 주어진 하나의 고유한 권리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물론 나이를 먹었다고 마음의 상처를 전혀 입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혹은 마음에 깊이 새기거나 하는 것은 나이 를 먹은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상처를 입어도 화가 치밀어도, 그것을 꿀꺽 삼키고 오이처럼 시원시원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써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훈련을 쌓아가는 동안 점점 정말이지 상처입지 않게 되었다. 물론 닭과 달걀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상처입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훈련이 가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쪽이 먼저고 나중인지 모르겠다.
'그럼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면 제일 좋지요?'라고 물으면, 나로서는 '싫은 일이 있어도 보지 않은 척, 듣지 못한 척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그리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판《피터의 법칙》.'우선 아내부터 시작하자구요. 그 나머지는 간단하니까.' 아내가 없는 사람의 경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