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란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SNEAKER란 '비열한 인간'을 말한다. SNEAKERS가 정확한 표기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SNEAK은 '살금살금 걷다'란 뜻이다. 과연 스니커를 신으면 살금살금 걸을 수 있다. 스니커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틀림없이 친구들이나 가족들로부터 신나게 불평을 들었을 것이다. '누, 누구야! 너야?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니까 깜짝 놀래잖아'라든가, '당신, 이제 그 새 신발 그만 신었으면 좋겠는데요. 나, 섬뜩해서 접시를 벌써 세 개나 깨고 말았다구요'라든가 하고.
그래도 스니커를 발명한 사람은 분명 아주 아주 즐거워했을 것이다. 수없이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광경을 상상하고 있자니 꽤 재밌다.
상세한 조사를 해 본 즉, 스니커는 1872년 보스톤에 사는 제임스 P 브래들리라는 마구 가게 주인이 발명했다고 한다. 브래들리란 사람의 성품이라든가, 그런 것에 관해서는 분명치가 않다. 부인이 접시를 깼다는 둥,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았다는 둥 하는 기술도 없다. 에디슨이나 라이트 형제에 관해서는 자세한 전기가 있는데, 스니커를 발명한 사람이 이런 저급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브래들리 씨는 몹시 유니크한 인물이었던 듯하다. 그는 처음에는 고무바닥 편자를 발명하여, 시 당국으로부터 13달러 벌금형을 받았다. 고무바닥 편자를 붙인 말이 살금살금 거리를 걷다가, 앞에 걸어가던 노부인의 목덜미를 날름 핥은 탓이다. 노부인은 기절하여 쓰러졌고, 브래들리 씨는 경찰에 연행되어 벌금을 냈고, 고무바닥 편자는 폐기 처분당했다.
그렇지만 브래들리 씨는 포기하지 않고 고무바닥 편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마침내 인디언 토벌군에게 실험적으로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1868년의 일이다. 기병대가 소리를 내지 않고 인디언부락의 배후로 잠입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성과가 그다지 신통치 못했던 모양이다. 보스톤의 노부인과 수우족 전사와는 역시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1872년 브래들리 씨는 '편자에도 고무바닥 편자가 있는데, 인간의 신발바닥에도 고무가 붙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오카모토 타로적 전환을 이룩한다. 그렇게 하여 '브래들리식 고무바닥 신발'이 탄생한다.
'브래들리식 고무바닥 신발'은 언제부터인가 SNEAKERS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악의에 찬 이름이 붙여진 것을 보면, 보수적이며 온화한 보스톤의 시민들은 브래들리 씨와 그의 발명품에 대해 꽤나 진저리를 쳤던 모양이다.
세월은 바뀌어 1982년.
나는 스니커를 몹시 좋아한다. 일년 중 350일은 스니커를 신고 지낸다. 데크 슈즈에다, 로 컷트에다, 바스킷볼 모델에다, 빨강 파랑 하양 컨버스에다, 게스에다, 정말 여러 가지 스니커를 갖고 있다. 스니커를 신고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 따위 눈꼽만큼도 두렵지 않은 기분이 든다.
이따금, 어떤 사람이 스니커를 발명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앞에 쓴 것과 같은 허구를 생각해 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