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고 하염없이 빌붙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마누라의 친정집에서 나와 고쿠분지(國分寺)로 이사를 했다. 왜 하필이면 고쿠분지냐 하면, 거기에서 재즈 찻집을 시작해 보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취직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 좀 연줄이 닿는 TV방송국 같은 델 몇 군데 다녀봤지만, 일의 내용이 기가 찰 정도로 한심스러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자그마한 가게라도 좋으니 나 혼자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재료를 골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한테 제공할 수 있는 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재즈 찻집 정도에 불과했다. 좌우지간 재즈가 좋았고, 조금이라도 재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사업 자금은 나와 마누라 둘이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저축한 돈 이백오십만 엔에다, 나머지 이백오십만 엔은 양쪽 부모님에게 빌려서 조달하였다. 1974년의 일이다. 그 당시의 고쿠분지는 오백만 엔쯤 있으면 그런대로 좋은 장소에 스무 평 정도 넓이의 제법 분위기 좋은 찻집을 차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오백만 엔이란 돈은 거의 자본이 없는 사람이라도 좀 무리를 하면 긁어모을 수 있는 액수였다. 요컨대 돈은 없지만 그렇다고 취직도 하고 싶지 않은 인간도, 아이디어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고쿠분지의 내 가게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경영하는 흥미로운 가게가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고쿠분지나 쿠니다치(國立) 부근 조차도 땅값이 상당히 많이 올랐고, 건축비도 올랐으니 역 가까이에다 열다섯 평에서 스무평 남짓의 좀 세련된 가게를 벌이려고 하면 최소한 이천만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이천만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젊은이가 모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과거에 내가 그런 부류의 한 사람이었던 만큼, 요즘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염려스럽다. 빠져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살기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1974년 하루키는 고쿠분지에다 <피터 캣(고양이 피터)>이라는 재즈 찻집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