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 전 얘기인데, 2월 14일 저녁나절에 무우말랭이를 조렸다. 세이유(西友) 앞을 걷다가 농가의 아주머니가 길바닥에서 비닐 주머니에 담긴 무우말랭이를 팔고 있길래, 갑자기 먹고 싶어져 사고 말았다. 한 주머니에 오십 엔이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두부 가게에서 살짝 튀긴 두툼한 두부와 맨두부도 샀다. 이 두부 가게집 딸은 털이 좀 많긴 하지만, 비교적 친절하고 귀염성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 무말랭이를 한 시간 정도 물에 불렸다가, 참기름으로 볶고, 거기에다 여덟 조각으로 썬 튀긴 두부를 넣고, 다시와 간장과 미림으로 양념을 한 후, 중간 불에다 부글부글 조린다. 그 사이에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놓고 B·B 킹의 노래를 들으며, 홍당무와 무채 초무침과 무우청과 유부를 넣은 된장국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 맨두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놓고, 도로묵을 굽는다. 이것이 그날의 저녁 식사였다.
그걸 먹으면서 문득 생각이 났는데, 2월 14일은 성 발렌타인 데이이다. 발렌타인 데이라고 하는 날은,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다. 그런 날 저녁에 나는 어째서 제손으로 만든 된장국을 훌훌 마셔대며, 제가 만든 무우말랭이 조림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신세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자신의 인생이 한심스러워졌다. 이거야 '팔불출'과 다름없지 않은가? 초콜릿이라곤 아무도 주는 여자가 없다. 마누라조차도 '발렌타인 데이? 그래요'하고 시큰둥 얘기하면서, 내가 만든 무우 말랭이 조림을 묵묵히 먹고 있다.
옛날에는 안 이랬다. 효고현 코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세 여자한테서 초콜릿을 받았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런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헌데 어느 때부턴가 돌연 내 인생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고 말아, 나는 성 발렌타인 데이 저녁에 무우말랭이와 두부 조림을 만들어야 하는 인간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이러고 있다가는 지금 당장에라도 <황혼>에 나오는 헨리 폰다 같은 노인이 돼 버릴 것만 같아, 스스로도 겁난다. 아, 싫다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