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와 단절한 채 오직 글쓰기에만 매달려 완성한 자전적 소설
나는 원칙적으로 소설에 후기를 붙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이 소설은 5년 전쯤에 쓴 <개똥벌레>라는 단편소설을 그 축으로 하고 있다. 나는 이 단편을 기본으로 해서 4백자 원고지 300매 분량으로 깔끔한 연애소설을 써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과 원더랜드>를 마 치고 다음 장편을 시작하기 전에 기분전환 정도의 가벼운 기대를 가지고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원고 분량이 900매 정도나 불어나 '가볍다'고 하 기 어려운 소설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의 그 무 엇이 이 소설에 쓰여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이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설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과 원 더랜드>에 자전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의미인데, F.스코트 피츠제 럴드의 <밤은 부드러워>와 <위대한 개츠비>가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 과 같은 의미에서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마도 이는 감각의 차원에 속하는 문제 일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쓸 만하다거나 쓸 만하지 않다거나 하는 것처럼 이 소설도 역 시 좋거나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품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됨 됨이를 넘어 존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셋째로, 이 소설은 남부 유럽에서 쓰여졌다. 1986년 12월 21일에 그리스 미케 네 섬의 한 빌라에서 쓰기 시작해서, 1987년 3월 27일 로마 교외의 아파트와 호텔에서 완성했다. 일본이 아닌 곳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이 이 소설에 어떠한 영 향을 미쳤다고 뚜렷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어떤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전 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안았을 수도 있다. 단지 전화도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오직 글쓰는 몰두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 밖에 큰 환경의 변 화는 없었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그리스에서, 중반부는 시실리에서, 후반부는 로마에서 쓰 여졌다. 아테네의 싸구려 호텔 방아는 테이블과 의자가 없었다. 나는 매일 타베 루나에 가,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테이프를 워크맨을 통해 120 회 정도 반복해 들으면서 이 소설을 써내려 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존레논과 매카트니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로, 이 소설은 이미 죽음으로 이별한 나의 친구들과, 살아 있지만 떨어져 있는 나의 몇몇 친구들에게 바친다.
1987년 6월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