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s by Mark Arbeit
2006년 10월 17일 3시 30분, 하와이 대학의 연구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 고흐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작고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두 다리는 1미터쯤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의자에 걸쳐 놓은 채 고개만 약간 돌려 방문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의 왼손에는 작은 페이퍼백 영문 서적이 들려 있었다. 연구실의 두 벽은 책으로 가득했고, 책상 옆에는 자전거가 한 대 서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메일을 통해, “미안하지만 두 번은 곤란하고 한 차례, 두 시간 정도라면 인터뷰 하고 싶다”고 했던 9월 19일부터 정확히 28일이 지난 날이었다.
4시쯤 일어나서 걷거나 뛴 다음 원고를 쓴다. 오후에는 설거지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그의 일상은 이렇게 조용한데 그의 글은 바쁘다.
자전거 타시나봐요?
지금 머물고 있는 집이 캠퍼스에서 10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거든요. 학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타요.
어제 하와이 전체가 흔들렸어요. 지진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일본에선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만, 하와이에선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놀랐어요.
고베에서 자랐으면 지진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자라던 때에는 고베에 지진이 많진 않았어요. 지진으로 유명한 고베에서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믿고만 있던 하와이가 흔들려서 글 쓰다가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미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상, 하루키 상. 어떤 이름이 편하세요?
어떤 거라도 좋지만, 일본에선 대부분 저를 하루키 상이라고 불러요. 아시겠지만 일본엔 나말고도 유명한 무라카미(류)가 한 명 더 있잖아요.
그럼 저도 하루키 상으로 부를게요. 하와이에는 언제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와이 대학의 초청으로 8월에 왔어요. 강의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특별 강좌는 몇 번 할 것 같아요. 그 동안 문학 관련 수업에 몇 번 초빙강사로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정말 기발하고 요상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하와이에는 아마 내년 여름까지, 그러니까 1년쯤 있다가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하와이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댄스 댄스 댄스>에 묘사된 하와이를 보고, 분명 와봤으리라 생각했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렇게 세심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순 없을 테니까요.
처음 온 것이 20년 전쯤인가 그럴 거예요. 그 후로 자주 와서 친구도 몇몇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 오아후에 머무는 건 처음이죠. 전 하와이 섬 중 카우아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얼마나 좋은지 집까지 샀을 정도니까요. 조용하고 평화롭고, 무엇을 쓰든 집중이 잘 돼요. 그래서 3~4년 전에 카우아이에 두세 달 머물면서 <해변의 카프카>의 반을 썼어요. 세 달은 카우아이, 나머지 세 달은 도쿄에서 썼지요.
이번에 하와이에 계시는 동안 어떤 계획이 있나요? 역시 소설을 쓰는 건가요?
네. 좋은 소설을 쓰는 것.
구상 중인 소설이 있나요?
일단 지금은 휴식을 좀 취하고 12월쯤 다음 소설에 착수할 생각인데, 딱히 구상중인 건 없어요. 항상 전 백지 상태에서 소설을 시작해요. 이런 걸 써야겠다, 하면 부담이 되거든요. 필요한 건 첫 장면 하나예요. 하지만 그 장면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생생해야 하며, 명확한 것이라야 해요. 캐릭터도, 스토리도 일체 정해두지 않지만 확실한 첫 장면만 있으면 자신감이 생겨요. 잘 끝낼 수 있겠다 하는.
그럼 <태엽감는 새>도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남자라는 첫 장면으로 쓰기 시작하신 건가요?
네. 그때 제 머릿속엔 오로지 하나,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남자 모습만 있었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저도 몰랐어요. 그냥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설명을 해보죠. 저기 저 멀리 점 하나를 찍고 거기까지 달려가기로 해요. 달리는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몰라요. 잘 쓰여진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결말을 모르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다음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궁금하고, 궁금하니까 흥미진진하고, 흥미진진하니까 계속 쓰게 돼요.
녹색광선
"좋아하는 옷으로 가져오긴 했지만 …" 라면서 촬영 당일날 하루키가 녹색 배낭에서 꺼낸 옷들은 대부분이 라운드넥 면티셔츠였다. 여덟 번 정도 빨아야 나올것 같은 톤 다운된 컬러의 그 티셔츠들은 하와이의 녹생광선과 잘 어울렸다.
당신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합니다. 스토리도 결말도 없이 그렇게 독특한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나는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아요. 대신, 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내 머릿속엔 일종의 '캐릭터 서랍장' 같은 것이 있어서 관찰로 얻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곳에 보관해요. 사람은 미스터리예요. 관찰하면 할수록 더 흥미로워요. 할 수만 있다면 집까지 따라가서 보고 싶어요.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옷을 입는지 누구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렇게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면 내 머릿속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요.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캐릭터가 필요할 때나는 어떤 서랍을 열어야 할지 아는 거죠.
그렇다면, 하루키 상은 특별한 사람입니까?
저는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정의해요.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는 '난 특별하구나' 생각하지만 글을 쓰지않을 땐, 이렇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할 땐 지나치게 평범해요.
독자들에게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건 확실해요, 그들은 당신의 소설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선망하고 추구합니다. 재즈,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 고양이, 영화, 하루키 상이 좋아하는 요리까지요. 당신의 소설 속 문화아이콘이 상품화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그런 얘기들을 종종 듣는데, 사실 별 관심은 없어요.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에는 깨끗이 잊으니까 그 주변적인 것들도 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게 되죠. 난 그냥 글 쓰는 것을 즐길 뿐이에요. 사람들이 그걸 즐기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게다가 난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전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이 좋거든요. 책을 쓰는 게 좋고, 소설을 쓰는 건 좋지만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건 바람이 아니었어요. 알아보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활보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원칙이 제 얼굴이 알려질 만한 일들, 특히 TV출연을 하지 않는 거예요.
신주쿠나 하라주쿠 같은 곳을 거닐 때도 알아보는 이들이 별로 없나요?
네. 다행히 그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 도쿄 한가운데를 걸어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신문은 어떤가요? 일본의 신문도 소설가와 페미니스트, 소설가와 정치인 같은 구조로 토론이나 논쟁 같은 것을 붙이기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그냥 고개를 돌리면 돼요. 아무 토론도 안 한다고 하면 되죠. 난 독립적인 개인으로 어떤 그룹에도 어떤 사회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요. 문학계도 싫어요. 작가 친구도 만들지 않죠. 제 친구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열띤 비평이나 날 선 토론보다는 음악, 고양이, 이런 얘길 하는 게 더 좋아요. 전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고 모든 이에게 다 친절하지도 않아요. 내가 사는 세계는 아주 한정된 공간이에요. 숙고 끝에 곁에 둘 사람들을 고르고 그들에게만 최선을 다해요.
소설가 중에는 정치, 사회적으로 분명한 노선을 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은데요. 당신은 어떤가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정치적 견해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질문엔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내 나름의 의견과 입장은 있지만 그걸 공론화하는 건 싫어요. 스토리텔러는 견해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니까요. 말을 훌륭하게 잘 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하니까. 대신 전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30대에 쓰신 에세이에서 마흔살이라는 나이는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비인 것 같다고 하셨죠.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할 만한 작품을 써놓고 싶다고요.
기억해요. 아마 <상실의 시대>가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요. 서른 여덟쯤에 썼으니까.
한국에서 당신이 일본 작가로는 유례 없는 인기를 얻게 된 데도 <상실의 시대>가 큰 역할을 했죠. 그 책을 읽고 있는 청순한 여자가 나오는 휴대폰 광고도 있었고, '하루키체'로 통하는 문체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상실의 시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도 없었을까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2백만 부가 팔렸대요. 일본 밖으로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된 데에는 <상실의 시대> 역할이 크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상실의 시대>는 제 작가 인생에서 일종의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소설 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인 만큼 작품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죠, 특히 기존 일본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섹스신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지요.
그게 참 묘한 게, 제가 그 소설을 쓰기 전에는 평론가들이 하루키의 책에는 섹스나 죽음 등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엄청나게 공격했어요. 그래서 이걸 쓸 때는, 좋다, 내가 이 책에선 성 묘사와 죽음을 제대로 다뤄보리라 생각했어요. 도전이었죠.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과제나 목표치를 정하세요?
어느 소설을 쓸 때나 마찬가지예요. <태엽감는 새>에서는 스키닝(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행위)을 묘사했는데, 그때도 독자들의 항의 전화를 엄청 받았어요. 대체 "왜!왜!왜!하루키 상은 어쩌자고 그런 역겨운 묘사를 하는 겁니까?" 라고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를 생생하게 써보자는 것이 도전이었죠. 스스로에게 던진 임무랄까. 운동한 것과 같아요. 이번 달은 오른팔 근육, 다음 달은 허벅지 근육, 다음 달엔 어깨. 이런 식으로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이나 <어둠의 저편>의 섹스신을 떠올려 보면, 당신은 이제 섹스신 묘사에는 통달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하하. 그러습니까. 많은 독자들이 내가 그런 묘사를 쓰는 걸 아주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쓸 때는 참 민망하고 부끄럽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하죠. 하루키, 이건 네 일이야! 멈추면 안돼!
<상실의 시대>가 잘 될 거라는 느낌 같은 것이 있었나요?
아뇨, 정말 몰랐어요. 처음엔 단편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쓸수록 계속 두꺼워지더니 또 그렇게 저절로 베스트셀러도 됐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릭터가 살아서 움직였어요. 미도리는 미도리대로 와타나베는 와타나베대로, 그들의 의도와 의지가 있었죠. 그래서 내마음대로 중간에 멈춰버릴 수가 없었어요.
스무 살의 와타나베와 스무 살의 당신,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나요?
아닌 것 같아요. 우선 내 주변엔 와타나베처럼 여자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비슷한 것도 있어요. 수줍던 20대, 진실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했던 거나 삶을 향한 진지한 자세 같은 것.
대학 켐퍼스의 노래
지난한 설득 끝에 촬영에 응하겠다는 하루키의 답을 들었다. 단, 촬영장소는 하와이 대학 캠퍼스로 제한하며, 야외 촬영은 한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촬영 당일날 그는 "글 쓰는 모습은 찍지 말아줘요" 라고 딱한번 요구 했을 뿐. 포토그래퍼의 요구에 친절히 응했다.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를 쓴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상실의 시대>는 분명 잘 쓴 소설인 것은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좋아해준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모두들 러브스토리를 좋아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사실 내 스타일의 문학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나의 대표작이라고, 내가 쓴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그런 염려를 하게 됐어요.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상실의 시대>는 전형적인 리얼리즘 소설인데 전 스스로를 리얼리즘 작가라고 생각지 않거든요. 내게 <상실의 시대>는 일종의 도전 같은 거였어요. 나도 리얼리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럼 어떤 소설들이 하루키 스타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 새> 같은 포스트 모던을 추구하는 작품이죠.
리얼리즘과 정반대 선상에 있는 그런 소설을 통해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전 독자들을 상상과 비현실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어요. 내가 제시하는 비현실의 세계를 읽으면서 그걸 현실의 일부로 느꼈으면 해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런 비현실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제 책을 통해 사람들이 그런 비현실의 세상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국에는 당신이 발표한 80여 권의 책 중 번역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작품, 약 50여 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책의 저자 소개 페이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담담한 문체로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간상을 그리는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루키 상을 소개하고 있죠. 맞는 설명인가요?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웃음).
직접 저자 소개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음, 제가 쓰고 싶은 건 한 가지예요. 사람. 난 그들을 '내 사람들(my people)'이라고 불러요. 제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것. 일반적인 사람들에 관한 거죠.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죽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하. 좋은걸요? 그런데 정말 제가 80권이나 되는 책을 썼나요?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이미 완성된 소설에는 관심이 없어요. 2년이 넘게 걸린 장편도, 닷새 만에 완성한 단편들도, 다시 보지 않아요. 출판되면 잊어요. 문장과 캐릭터, 스토리 모두. 빨리 잊고 새 작품을 쓰고 싶으니까요. 가끔 옛 작품에 대해 "이런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는 분들을 만나면 전 "아, 그렇습니까?" 하고 말하긴 하지만 실은 기억을 못해 미안할 때가 많아요.
만약 누군가 한정된 시간에 당신과, 당신의 작품을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 많은 책 중에 어떤 작품을 권하시겠어요?
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난 벌써 27년째 글을 쓰고 있잖아요. 긴 시간이죠. 시간대별로 작품의 성격이 달라요. 첫 10년, 다음 10년, 그렇게 블록으로 나눌 수 있어요. 굳이 뽑아보라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정도를 말하겠어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작품이니까요. 한 번도 다시 읽은 적은 없지만 이들 작품은 지금도 구석구석까지 잘 기억하고 있어요. 공을 많이 들였죠. 보통 단편은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면 끝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아요.
혹시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정말 첫 번째 소설이었나요? 그 전의 습작기는 어땠나요.
네. 정말 그게 내 생애 첫 소설이었어요.
첫 번째 독자는 누구였나요?
제 아내요. 아내는 기억을 못한다고 하지만(웃음). 그때도 지금도 전 항상 책을 출판하기 전에 단 한 사람, 아내에게 의견을 구해요. 그녀는 굉장히 예리한 평론가예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죠. 좋은 조언을 많이 줘요.
아내는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던가요?
<어둠의 저편>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에서는 불륜을 다뤘는데도요?
그러게 말이에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리고 며칠간 너무 친절히 대해줬어요. 맛있는 것도 매일 만들어주고.
첫 번째 독자는 여전히 같지만 많은 것들이 변했겠죠. 데뷔작을 쓰던 74년의 하루키 상과 지금 2006년의 당신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때보다 조금은 더 나은 스토리텔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땐 못 쓸 것 같은 것이 많았거든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등등. 섹스신, 폭력신, 막 도망다녔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엇에 대해서라도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행복한 일이죠.
그간의 작품 중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걸까요?
다행히 저는 집중력이 강한 편이어서 힘을 많이 들여 글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면 <태엽감는 새>인것 같아요. 우선 그때 개인적으로 좀 바빴어요.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키는 1991년에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1993년에는 터프츠 대학에 각각 재임 연구원과 초청 교수의 자격으로 머물렀다) 수업 준비를 하느라고 바빴어요. 소설 자체의 요인도 있었어요. 전 소설마다 목표가 있다고 했죠? 그런데 <태엽감는 새> 에는 특히 그 목표가 여러 개 있었죠.
팔 근육과 어깨, 배 근육까지 다 단련해야 하셨겠네요.
그렇죠. 그거 다 단단하게 만드느라 3년이 걸렸어요.
결과에는 만족하세요?
그런대로, 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책이 되었으니까요.
근육을 단단하게 한 덕분에 퇴고에 걸리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나요?
음, 그건 아니예요. <해변의 카프카>는 초고가 6개월 걸렸는데 퇴고에 1년이 걸렸어요.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대여섯 번을 고치고 또 고쳤으니까. 6개월간 초고를 쓰면 10개월은 원고를 손보는 데 보내요.
인세는 달라졌겠죠?! 오른 인세 덕분에 부자가 됐나요?
돈 말하는 거죠? 맞아요. 꽤 올랐어요. 그런데, 밎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난 돈에 욕심이 없어요. 이런 평범한 옷과 자전거, 시계만 있으면 돼요. 이유 없이 비싼 건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요.
그럼 대체 그 많은 돈으로 무얼 하시나요?
자유. 자유를 사고, 내 시간을 사요. 그게 가장 비싼 거죠. 인세 덕에 돈을 벌 필요는 없게 됐으니 자유를 얻게 됐고, 그래서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됐죠.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자유를 얻는 대신 스트레스 또한 덤으로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잘 팔리는 작가라는 것, 쉽게 읽히는 소설이라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스트레스가 되진 않나요? 문학의 위엄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 존재하잖아요.
편견은 편견일 뿐이에요. 나는 되도록 쉬운 단어로, 가벼운 문장안에 심오한 스토리를 담아 내고 싶어요. 어려운 단어를 조잡하게 조합해 어려운 문장을 만들었는데 스토리는 텅 비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비극이에요, 그건. 그보다 비참한 건 세상에 없어요.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역작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새 책 한 권 내실 때마다,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평론이 쏟아집니다. 그 많은 평론이 하루키 상을 공정히 평가한다고 보세요?
난 평론은 읽지 않아요. 일본의 평론가 들은 내게 그리 친절하지가 않거든요. 한국에도 내 책들이 한국의 전통 문학을 오염시켰다고 말하는 평론가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일본 평론가는 정도가 더 심해요.
당신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어떤 건가요?
평론을 안 읽으니 잘 모르겠지만 샅샅이 다 찾아 읽는 아내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본 평론가는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난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걸 답답해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뚜렷한 내 독자층이 있고 책은 세계 여러 곳에서 팔리고 있으니까, 일본 작가인 내 책의 주제가 다르게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둘러싼 그 수많은 얘기들을 어떻게 다 감당하시죠?
더 강해졌어요. 갑자기 유명하게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죠. 사람들은 세계적인 작가라고 칭송하다가 곧 이용해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상실의 시대>가 날개 돋친 듯 팔렸을 때 난 우울했어요. 무거운 짐이었죠. 게다가 아시다시피 평론가들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싫어하는 건 만국 공통이잖아요.
하루키 상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 많았나 봅니다.
제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3만부 팔렸고 <양을 쫒는 모험>은 13만 부가 팔렸대요. 그 정도가 제게 익숙한 독자 수였어요. 잘했을 때 10~15만부. 그런데 <상실의 시대>가 나왔을 때, 갑자기 2백만 부가 팔렸고,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스트레스가 시작했죠. 어찌된 일인지 균형을 잃고 만 거예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 이후 다시 독자수가 20만 정도로 돌아왔어요. 최근작 <어둠의 저편>은 30만부가 나갔다니까요. 그 정도가 전 딱 좋아요. 편안하죠.
하루키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오래 생각했고, 신중히 답했다. 수려 하진 않았지만 정확한 영어였다. 하루키는 <먼 북소리> 에서 당시의 심상을 이렇게 풀어 놓았다. "신문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어느 서점에서나 <상실의 시대>가 1위였다. (중략) 그렇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고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일종의 안타까움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내가 있을 있을 곳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가 백 몇십만 부 팔리고 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중략) 지금 생각하면 결국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성격도 못 될뿐더러 그런 그릇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옛날 괴테는 백만 명의 독자도 기대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괴테가 틀린 걸까요?
틀리죠. 제 기준으로는. 만약 내 책을 읽는 이들이 아주 적다고 해도 난 쓸 거예요. 왜냐면 난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하니까. 멈출 수가 없어요. 운명이에요. 써야 하니까 쓰는 거예요.
그럼, 잘 안 팔릴 줄 알면서도 쓰신 책이 있었나요? 왜, 대중적인 인기는 없을 줄 알았지만 그래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는 영화 감독처럼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쓴 적도 없지만, 나만 읽겠구나 하면서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 소설도 없었어요. 뭐랄까, 제 독자들은 어느 정도 저의 스타일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충성심이 있는 거죠. 그래서 다음 작품이 괜챦은 정도만 되면, 읽어줄 거라고 믿어요. 책이 너무 형편없으면 실망하고 안 사겠지만, 적어도 형편없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멋집니다, 하루키 상.
하하,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인 것 같지요? 저도 러브스토리를 좋아해요. 소년이 소녀를 만나 일어나는 행복하고 슬프고 즐거운 러브스토리. 하지만 그런 소설을 쓰자면 위험 요소가 있어요. 나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제겐 작가로서 나름대로 구축한 흐름이랄까, 방향이 있어요. 나를 믿고 그쪽으로 따라 와주고 있는 독자들은 하루키가 이번에 이런 소설을 만들겠구나 하는 믿음이나 어떤 확신이 있을 거예요. 그 확신을 흩트려 놓고 싶지가 않아요. 러브스토리, 미스터리, 모두 나쁜 건 아니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니까. 다만 내 소설에는 내 안의 세계를 담고 싶어요.
당신이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의 종점은 어디인가요.
제 목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을 쓰는 거예요.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복잡하고 다양한 케릭터와 구성?
물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안에는 전 우주가 담겨 있어요. 너무 다양한 사실들과 시스템, 세계, 스토리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몇 번을 읽어도 또 배울 점이 있죠.
<위대한 캐츠비>도 좋아하는 책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당신이 하도 좋다고 해서 <위대한 캐츠비>를 봤다는 독자들 중에 당신의 편애를 이해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거죠?
어려운 질문이에요. 뭐랄까, <위대한 캐츠비>는 나에게 교과서라고 할 만한 책이에요. 스토리를 구성하는 법, 캐릭터를 움직이는 법, 대화를 불러오는 법, 글쓰기에 관한 모든 것을 그 책에서 배웠으니까요. 수도 없이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어요. 읽을 때마다 항상 배울 점이 있어요. 단어 선택도 좋고 문장도 유려하고 스토리도 훌륭해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죽기 전에 <위대한 캐츠비>를 번역하겠다고 쓰신적이 있죠.
네. 서른네 살 때였을 거예요. 내가 예순이 되기 전에 반드시 <위대한 캐츠비>를 멋지게 번역하리라 다짐했었어요. 예순이 되려면 몇 년 남았지만 지난 10월에 번역을 마쳤어요. 출판한 지 열흘 정도 됐을 때 이미 14만 부가 나갔대요. 기다려준 독자가 많았나봐요.
당신이 번역한 <위대한 캐츠비>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요?
잘한 것 같아요. 일본엔 대여섯 권의 <위대한 캐츠비> 번역본이 있는데, 아마 내가 한 것이 최고일 거예요.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죠?
말할 것도 없어요. 분명한 사실인걸요. 번역하면서 일본어의 어떤 단어가, 혹은 문장이 <위대한 캐츠비>의 원어를 대신할 수 있을까 신중히 생각했고 골라서 썼어요. 그게 참 어려웠고, 동시에 가장 재미있었던 점이죠.
자주 언급하시는 F.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리처드 브라우티건, 커트 보네거트 같은 작가 외에, 좋아하는 일본 작가도 있나요?
오에 겐자부로. 일본 작가의 작품은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좋아해요. 어려서부터 전 외국 문학을 더 좋아했어요. 특히 러시아 문학에 심취해 있었고, 영어를 배우면서부터는 영어로 읽는 것을 즐겼어요.
요즘 작가 중 그들과 비교할 만한 이가 있을까요?
음, 내가 찾은 바로는 아직 없어요. 좋아하는 작가는 있지만 어렸을 때처럼 '이런 글을 쓰면 좋겠다' 싶은 작가는 못 찾은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대단히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타 슈이치, 가네시로 가즈키, 온다 리쿠 등 '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 라고 명명하기도 하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답하기 전에 우선, 아시죠? 나도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한다고요! 일본 현대 문학은 잘 안 읽어요.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전 주로 번역을 하는데, 번역하는 책과 관련된 책 위주로 읽기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내가 안 읽어도 다들 잘만 하고 있는 것 같은걸요.
언젠가 에세이에서 한 문하생이 자신의 소설을 평가해달라면서 당신에게 원고를 보냈다고 썼습니다. 그 문하생이 장어덮밥을 대접한다길래, 만나서 평을 해주었다고 했죠. 누구라도 장어덮밥만 사면 당신에게 평가를 받을 수 있나요?
정말 제가 그런 얘기를 했던가요? 요즘은 남이 쓴 원고에 대한 비평은 하지 않는 편이에요. 종종 그런 부탁을 받지만 정중히 거절해요.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조목 조목 따지고 비판하는 것이 싫어요. 하지만 만약 멋진 여인이 와서 "내 원고 좀 읽어주세요"라고 한다면 제가 어찌 "안돼!" 라고 할 수 있겠어요(웃음).
좋아요. 그럼 예쁜 여자가 찾아 와서 '당신 같은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묻는 다면 어떤 대답을 해주실 건가요?
글쎄요. 전 좋은 소설가가 되고 안 되고는 능력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본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단 한 번도 제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글을 쓰게 만드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본능이 있다면 써야만 하고 쓰게끔 되어 있는 거죠. 운명적으로.
어렸을 때 이렇게 성공한 인생을 살 거라는 생각은 해보셨나요?
전혀요. 전 일단 작가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스물 아홉 살, 내가 소설가가 됐을 때 친구들도 안 믿었어요. 어릴 땐 쓰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일기도 안 쓰셨어요?
네. 난 일기 쓰는 게 정말 싫었어요. 편지도 싫었죠. 그런데, 우리 아내에 따르면 연애편지는 참 잘 썼대요.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하던 걸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내가 나랑 결혼한 것도 그때 쓴 편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명색이 전문 작가니까(웃음).
그럼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글쎄, 별로 없었어요. 다만 난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재즈바를 오픈했고, 재미있게 일했어요. 결국 소설을 쓰게 됐지만.
재즈바 '피터캣' 말씀이시군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 일이라, 그땐 주로 어떤 뮤지션의 노래를 틀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와요. 정말 꼭 언젠가 다시 오픈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으니까. 피터캣에서는 주로 60년대 재즈를 틀었어요. 찰리 파커, 빌리 홀리데이, 마일스 데이비스, 존 골든 같은.
오늘 밤에 다시 한 번 피터캣 사장님이 된다면 어떤 곡을 고르겠어요?
오늘 밤이라면, 글쎄…. 전부 재즈, 일단. 또 어려운 질문이네. 음…. 어떤 걸로 할까. 그래, 빌리 홀리데이의 곡으로 하겠어요.
그녀의 어떤 곡을 틀고 싶으세요?
아무거나, 그녀의 앨범 아무거나 집어서 자주 틀어놓아요. 기분에 관계없이, 날씨에 관계없이.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모두 정말 멋져요.
다시 소설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하루키 상도 종종 주인공에 연민을 느끼시나요? 당신의 소설을 읽다 보면 슬프고 외로워집니다.
물론입니다. 동정이 없으면 어떤 것도 쓸 수가 없어요. <스푸트니크의 연인> 읽었다고 했죠? 주인공이 열 아홉 살 레즈비언이잖아요. 쉰살을 넘어 이 소설을 시작했는데, 그때의 내가 열 아홉의 여자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레즈비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알았겠어요. 알 리가 없죠. 하지만 온 힘을 기울여 나 자신을 스미레에 투영 시키면, 그렇게 연민을 갖고 접근하면, 스미레로 살다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아, 이런 기분으로 사랑하겠구나, 이래서 서운했구나.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예요. 모든 건 강한 동정에서 시작해요.
"22살의 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로 시작하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두 여성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조. '뮤'라는 이름의 한국인 여자 주인공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실제 모델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어시스턴트가 재일 한국인 2세예요. 지난 10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절 도와준 친군데, 그녀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가족에 대해 얘길 많이 했거든요. 책을 쓰기 전에 미리 꼼꼼히 연구를 하고 조사를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하지만,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이 된 시코쿠에 대해 쓸 때도 그 근처는 가본 적도 없었어요. 나중에 책을 쓰고 가봤는데, 뭐랄까. 데자부 같은 느낌이었어요. 한국에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출발해 열심히 상상했어요. 참, 그녀는 아름답기까지 해요.
당신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 바람같이 격렬하게'?
흠…, 네. 어렸을 때요. 분명, 진실로. 최근 일은 아니에요(웃음).
조금 더 얘기해줄 수 있어요?
별로 로맨틱하진 않은데 ….(옛일을 회상하듯 고개를 숙이고 2분 정도 생각하더니 마침내) 미안하지만, 내 이야긴 노 코멘트.
노코멘트인 이유라도?
그냥, 내 추억은 내 안에 간직하고 싶어요.
여기까지 얘기 했는데 예정된 두 시간이 모두 흘러버렸다. 그는 왼쪽으로 꼰 다리를 오른쪽으로 딱 한 번 바꿔 꼬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는 아직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것 역시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40여 일이 지난 11월의 마지막 날 오후, 다시 한 번 같은 나무의자에 마주 앉았다. 하루키의 주름 많은 따뜻한 손과 두 번째 악수를 나누기까지는 실은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어쩐 일인지 그는 두 번째 인터뷰를 다소 늦추고 싶어하는 듯했다. 만나기 약 열흘 전 '프란츠 카프카 국제 문학상'을 받고 돌아온 하루키의 얼굴에는 아직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와이와 하루키
그는 하와이를 좋아해 자주 온다. 여기서 <해변의 카프카>의 절반을 썼으며, 친구들과 하와이 마라톤에도 출전했다. 그는 하와이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점을 마음에 들어한다.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몇 번의 독촉 이메일로 모자라 결국 하루키 상의 집 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누르면서 이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어요.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당신을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어코 포토그래퍼에 어시스턴트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제 말을 믿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믿어요. 제때 답신을 하지 않은 변명을 하자면 프라하에서 돌아온 이후에 다소 지쳐 있었어요, 그때 이후로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어요. 또 전에 얘기했듯이 제 원칙이 모든 인터뷰는 단 한 번, 두시간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인터뷰는 여러 가지로 특별하니까 예외를 둔 것이었죠. 이해해주니 나도 고맙습니다.
프라하는 어떠셨어요? 좀 피곤해 보이세요
프라하는 좋았지만, 시상식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아요. 기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TV 녹화는 프라하의 지역 방송국으로만 제한을 하기로 분명히 언급했는데, 나중에 보니 일본 방송국에 필름을 팔았어요. 일본 전역에 뉴스가 나갔어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돌아온 후로는 어떤 미디어 접촉도 피하고 있는 거예요. 보통 때보다 특히 더 민감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된 거죠.
하루키 상은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엇이 당신을 불쾌하게 하나요.
기자나 카메라맨. 미디어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잠깐, 우선 거기서 저는 좀 빼주세요.
오케이. 당신은 제외입니다.
프라하 수상식 일에 대해서 당신이 느끼는 당혹감은 이해가 가지만, 아마도 언론들은 국민의 알 귄리를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일본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스타 작가니까요.
만약 내가 야구 선수고 영화배우라면, 그렇다면 TV에서 내 얼굴을 보야줘야 맞는 것이겠지만, 작가인 나는 TV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요? 작가는 원한다면 익명성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어요.
수상 사실 자체는 행복한 일이었나요?
솔직히 아니에요. 난 그런 문학상에는 관심이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년에 누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재작년에는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좋은 스토리, 좋은 소설이죠. 내게는 독자가 전부예요. 독자가 내 소설을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족해요. 문학상은 잊혀지는 거니까, 큰 의미는 없어요.
그래도 당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당신의 문학을 찾아 읽고, 가능성을 알아봐주고, 저력을 인정해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일 것 같은데요.
그래요, 거기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거기까지면 나는 충분해요.
당신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세대가 지나도 당신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현재의 재능으로 만족하시나요?
정말 내가 그런 작가가 된 겁니까? 난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인걸요. 누군가 내게 "하루키 상, 이제 안 써도 됩니다" 라고 해도 난 계속 쓸 거예요. 시간이 남을 때 누군가는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고 또 누군가는 야구 경기를 보겠지만 나는 글을 써요. 쓰고 싶으니까.
글을 쓸 때, 책상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키보드, 컴퓨터, 커피, 전 카페인 중독이거든요. 고양이랑 살 땐 고양이도 항상 내 옆에 있었어요. 요즘은 여행하면서 사니까 고양인 없지만, 83년 담배를 끊기 전엔 책상 머리에서 담배도 많이 폈죠. 하지만 글을 쓸 땐 비교적 깨끗하고 체계적으로 책상을 정리하는 편이에요.
책상처럼, 소설을 쓸 때의 삶도 체계적인가요?
네. 책을 쓰지 않을땐 혼돈 그 자체지만, 일단 소설을 시작하면 굉장히 조직적이 돼요. 비즈니스맨처럼 언제나 새벽4시에 일어나고 보통 9시나 10시까지 주로 아침에 집중해서 써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죠.
문자나 활자가 지겨워질 때는 없었나요? 힘들다거나.
아니요, 지금껏 그런 적은 없었어요. 내가 생각해도 난 워커홀릭이에요. 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뭔가를 꼭 써요. 지난 5~6년 하루도 쓰지 않은 적이 없어요. 에세이든, 번역이든 무언가 반드시 쓰죠.
부모님이 사준 많은 책들이 어쩌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많이 사주셨어요. 두 분 다 고교 선생님이셨는데, 책이 중요하다는 걸 아셨던 것 같아요. 항상 책을 권하셨어요.
어린 시절하면 또 생각나는게 뭔가요?
고양이. 고양이는 내 친구였고, 동생이었어요. 왜 그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나 몰라요. 그냥 부드럽고 따뜻하고, 나처럼 개인주의고, 그런게 다 맘에 들어요.
10대에 당신을 열광시킨 건 무엇이었나요?
흠. 그땐 영화보고 책 읽는 것이 전부였어요. 고교시절에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주로 영화를 같이 많이 봤어요. 나는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여자친구 때문에 비장하거나 크로테스크한 영화보다는 행복한 멜로물을 많이 봤죠.
20대의 당신은 어떤 일에 집중했나요?
20대 하면, 일한 기억밖에 없어요. 그땐 진짜 정신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전 학생 때 결혼을 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는데 재즈바까지 오픈했으니까 사업자금으로 빌린 그 많은 돈을 갚아야 했죠.
30대의 가장 큰 사건은요?
소설가가 된 것. 일단 한번 확실히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고 나면 남은 인생은 예측하기 쉽잖아요.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소설가가 된 경우라면 별로 놀랄 게 없지만, 그런데 난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맘이 전혀 없었는데 됐잖아요.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작가가 된 건 30대의 가장 큰 사건이 아니라,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에요.
지금 쉰 여덟이시죠? 지금은 어떤 것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아니, 만으로는 쉰 일곱이라고요(웃음). 스무 살 땐, 여자친구랑 데이트하는 게 좋았어요. 지금은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데이트보다 글 쓸 때가 더 행복하다니, 하루키 상에게 매력적인 여자란,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100% 여자 아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100% 여자 아이라, 사실 전 여자에겐 별 기대를 안 해요(웃음). 좀 난해한 존재여야지. 제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단 하나, 저와 있을 때 즐거운 시간을 갖는 거예요. 아무리 예쁘고 똑똑해도 나와 대화가 안통한다면 그건 싫어요. 하지만 내가 농담을 했을 때 그녀가 웃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신사가 갖추어야 할 성품은 무엇인가요?
여자에게 항상 친절할 것. 그리고 정직할 것. 그런데 여자들 앞에서 항상 정직성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친절함을 갖는 건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 기준으로 보면 당신은 몇 점짜리 신사인가요?
글쎄, 전 꽤 친절한 편인 것 같은데. 가부장적인 사고방식도 없는 편이고요.
이번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구나. 하는 감이 있었어요. 한국의 잡지와는 인터뷰를 한 적이 없기도 하고요. 일본을 벗어나 제 소설에 첫 번째로 관심을 보여 준 게 한국, 한국의 독자 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한국의 독자는 매우 특별해요,
우리가 나눈 '좋은 소설'에 대한 논의는 이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말들이 오간다 해도 세상은 여전히 불길하고, 글을 읽는다는 것으로는 고통에 처한 아이들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문학의 효용성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한국의 팬에게 받은 편지에 쓰여 있었던 것 같아요. 스무 살 소녀였는데,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난 새벽 2시, 갑자기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그의 집으로 달려갔대요. 좋은 스토리라면, 읽는 이의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행동 자체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감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직접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훌륭한 스토리는 만국 공통어로 작용해요. 한국, 미국, 러시아, 베트남에 있는 이들은 모두 각각 다른 언어를 쓰지만 좋은 스토리를 보면 똑같이 감동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합니다. 국가간 분쟁은 심해만 가지만 그 와중에도 문학은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믿어요. 스토리는 파워가 있어요. 그 어떤 정치 분쟁보다, 어떤 사회 분쟁보다도.
하루키는 그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후기에 이런 말을 썼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판된 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필연성이 없으면ㅡ가령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ㅡ 아무도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안에 그럴 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GQ
객원 에디터/이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