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미국인은 동물의 죽음을 경시한다. 우리는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에게 "고양이 한 마리 죽은 거 가지고 뭘 그래? 잊어버려." 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본다.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죽음 앞에서 어려운 질문에 사로잡힌다.
내가 가장 흔히 듣는 질문은 " 내친구가 스스로 잠들지 못할때 언제 그를 보내야 할지 알 수 있는가?" 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동물을 더 오래 살릴수 있게 되고(삶의 질은 의문이지만) 안락사가 유행함에 따라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도 어려워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른 질문을 낳기 때문이다.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것이 옳은가? 고통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가? 동물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낄까? 동물은 자기가 떠날때를 알려줄까? 만약 알린다면 어떤 방법으로 알릴까?
어느 질문에도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고객들에게 동물친구는 때가 다가왔을 때 정말로 그것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만성 질환이나 노화로 죽음이 임박하면 동물친구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잠을 많이 자고, 숨을 깊이 들이 쉬며, 서서히 기력이 없어진다. 동물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동물친구가 더 이상 자신과 진심으로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다 운이 좋다면 동물 친구는 잠자는 도중에, 혹은 숨을 깊이 들이쉬다가 평온하게 숨을 거둘 것이다.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 그것은 골짜기와 계곡이 가득한 여행이다. 이제 슬픔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새로운 고통이 엄습한다. 그러나 슬픔은 인간이 겪어야 하는 경험 중 하나다. 그것은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여행이다. 그 목적은 잊으려는것이 아니라 상실감을 극복하고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형태가 달라질 뿐 동물친구와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된다. 친구의 몸은 땅에 묻히지만 그 영혼은 여러분의 가슴에 묻힌다.
닮은꼴영혼, 앨런 쇼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