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렇게 생각해. 우리들은 모두 옛날에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 일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야"



"젊은 사람은 자꾸 먹어야 하네. 자꾸 먹어 뚱뚱해져야 해. 사람들은 살찌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잘못된 방식으로 살찌기 때문이야"



"마음속에 피로를 남겨 두면 절대로 안 돼요. 엄마가 늘 말했어요. 피곤함은 육체를 지배할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자신의 것으로 하라고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전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요. 그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거고, 어떤 방법으로 사용되면 되는가를 몰라요. 단지 말로써 기억하고 있을 뿐이에요."
"마음이란 사용하는 게 아냐. 마음이란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지. 바람과도 같은 거야. 당신은 그 움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아" 라고 나는 말했다.



"그걸 몸에 붙인 채 이곳에 들어갈 수는 없어. 그림자를 버리든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다" 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나는 그림자를 버렸다.
문지기는 나를 문 옆에 있는 공터에 세웠다. 오후 세 시의 태양이 나의 그림자를 땅에 단단히 붙들어매 놓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는 거야" 하고 문지기는 내게 말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날카로운 칼날 끝을 그림자와 땅 사이에 쑤셔 넣고 좌우로 몇 번 흔들어 딱 들어맞게 한 후, 그림자를 요령있게 땅에서 뜯어내었다.
그림자는 저항하듯 몸을 가늘게 떨었지만, 결국 땅에서 떨어져 힘을 잃고, 벤치에 주저앉고 말았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림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볼품이 없었고 무척 지쳐 있는 몰골이었다.
문지기는 칼날을 접었다. 나와 문지기는 얼마 동안 본체와 떨어진 그림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떼어놓고 보니 기묘한 것이지? 그림자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야. 그냥 무거울 뿐이지" 하고 그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와 잠시 동안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럴 작정은 아니었지만 형편상 어쩔 수가 없었어. 잠시 동안 참고 여기에 혼자 있어 주지 않겠어" 라고 나는 그림자 옆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잠시 동안이라니 언제까지지?" 라고 그림자가 물었다.
모르겠다고 내가 말했다.
"넌 앞으로 후회하게 될 거야.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사람과 그림자가 떨어져 나간다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이건 정말 잘못된거고, 이곳도 잘못된 곳처럼 내겐 생각되는데. 사람이란 그림자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고, 그림자는 사람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거야. 그런데도 우리들은 둘로 갈려진 채 존재하고 있다.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거야. 너는 그렇게 생각지 않니? 하고 작은 목소리로 그림자가 말했다.
"정말이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건 인정해. 그렇지만 이곳은 모든게 처음부터 부자연스러웠어. 부자연스러운 곳에선 그 부자연스러움에 맞추어 가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어" 라고 내가 말했다.
그림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치야 그렇지. 하지만 난 이치 이전에 알 수 있어. 이곳 공기는 내겐 안 맞아. 이곳 공기는 다른 곳 공기와는 달라. 이곳 공기는 나에게나 너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아. 너는 날 버려서는 안 되는 거였어. 우리들은 지금까지 별탈 없이 잘해 오지 않았니? 왜 나를 버렸느냔 말이야."
어찌 되었건 이미 늦었다. 내 몸으로부터 그림자는 이미 떼어져 버린 것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안정되면 너를 데리러 올께. 이건 아마도 일시적인 일로 무한정 계속되진 않을 거야. 다시 둘이서 하나를 이룰 수 있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림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그러고는 힘을 잃어 초점이 없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오후 세 시의 태양이 우리 둘을 비추고 있었다. 내겐 그림자가 없고, 그림자에겐 내가 없었다.
"그건 너의 희망적인 추측에 불과한 게 아닐까. 생각처럼 그렇게 일이 쉽게 돌아가진 않을 거야. 아무래도 난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기회봐서 이곳을 도망쳐 나가야 해. 둘이서 원래의 세계로 되돌아가자" 라고 그림자가 말했다.
"우리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순 없어. 어떻게 되돌아가야 하는 건지 몰라. 너도 역시 잘 모르지?"
"지금은 그래, 그렇지만 나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낼 거야. 너와 때때로 만나 얘기하고 싶어. 만나러 와주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의 어깨에 잠시 손을 얹은 후 문지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문지기는 나와 그림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광장에 떨어져 있는 돌을 주워 모아서 방해가 안 되는 곳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문지기는 손에 묻은 하얀 흙을 셔츠 자락으로 닦아내고, 큰 손을 내 등에 댔다. 그것이 친밀감의 표현인지 아니면 그 큰 힘센 손을 내게 인식시키려고 한 것인지 나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자네 그림자는 내가 소중하게 잘 보관해 줄 거야. 식사도 세 끼씩 빠짐없이 줄 것이고, 하루에 한 번은 밖으로 내보내 산책도 시키지. 그러니까 안심해. 자네가 염려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가끔 만날 수는 있을까요?"
"글쎄, 언제라도 자유롭게 만날 수는 없겠지만, 아예 만날 수 없는 건 아냐. 시기가 맞고, 사정이 허락되고, 내 기분이 내키면 만날 수 있지" 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그럼 만약, 내가 그림자를 다시 찾고자 할 때는 어떻게 하면 되지요?"
"자네는 아직 아무래도 이곳의 실정을 잘 모르는 듯하군. 이 도시에서는 아무도 그림자를 가질 수 없고, 한번 이곳에 들어온 자는 두 번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따라서 지금 자네의 질문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게 되는 거지."
문지는 내 등에 손을 댄 채로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 그림자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우편함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자동 응답 전화기에도 역시 메시지가 녹음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볼일이 없는 듯했다. 괜찮다, 나역시 누구에게도 볼일이 없다. 나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서 커다란 컵에 가득히 위스키 언더록을 만들어 소다수를 조금 섞었다. 그리고 옷을 벗고 침대에 파고들어 가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조금씩 마셨다.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어버릴 듯했지만 하루가 끝나는 감미로운 의식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침대에 파고들어 가 잠이 들기까지의 편안한 한때를 그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뭔가 마실 것을 가지고 침대에 파고들어 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아름다은 해질녘과 깨끗한 공기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런 시간을 좋아했다.
위스키를 절반쯤 마셨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는 침대의 발끝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원형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나는 애써 파고들어 간 침대에서 나와 일부러 걸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떄문에, 전화 벨이 계속 울리고 있는데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벨은 열세 번인가 열네 번이 울렸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만화 영화 같으면 전화 벨이 울릴 때 전화기가 흔들렸을 테지만, 물론 그런 일은 실제론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기는 테이블 위에서 웅크린 채 그저 울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전화기 옆에는 지갑과 칼과 선물로 받아 들고 온 모자 상자가 놓여있었다. 오늘중에 그걸 열고 속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냉장고에 넣어야 할 물건일지도 모르고, 살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혹은 아주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상대방이 먼저 내게 취해야 할 행동을 정확하게 지시해 줬어야하는 것이다.
나는 전화벨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나머지 위스키를 단숨에 비우고 머리맡의 전등을 끄고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검은색의 거대한 그물 같은 잠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공중에서 마구 쏟아져 내려왔다. 잠에 빠지면서 나는 뭐가 어떻게 되든 알게 뭐냐라는 생각을 했다.



"또 입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있고, 설명해선 안 될 성질의 일도 있지. 그러나 자네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네. 여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게 공평하지. 자네에게 필요한 것과 자네가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이제부터 이 도시가 하나하나 자네 앞에 제시해 나가게 되어 있는 거야. 자네는 또한 그런 걸 하나하나 스스로 습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네, 알겠는가. 이곳은 완전한 도시야. 완전하다는 건 모든게 다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지. 그러나 그걸 효과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게 되네. 완전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거야. 그 점을 잘 기억해 두게나. 타인으로부터 배운 건 그것으로 그치고 말지만, 자신이 스스로 습득한 건 자네의 몫이 되네. 그래서 자네를 살피게 될 거야.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고, 머리를 움직여서, 도시가 제시하는 것들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거야. 마음이 있다면, 마음이 있는 동안 그걸 작용시키도록 하게. 내가 자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네."



이윽고 가을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을이 이미 끝나 있었다. 하늘에는 이미 가을 구름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대신 잔뜩 찌푸린 두터운 구름이 마치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사자처럼 북쪽 산등성이 위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가을은 기분 좋고 아름다운 방문객이었으니 그 체류 기간이 너무나도 짧고 또 그 소리 없는 사라짐은 너무나도 당돌했다.
가을이 사라져 버리자, 그 뒤에는 무엇이라고 규정 지을 수 없는 싸늘한 공백이 찾아왔다. 그것은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기묘하고 괴괴한 공백이었다. 짐승들의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색은 서서히 그 빛을 잃고, 마치 표백된 것 같은 흰색으로 뒤덮여서 조만간 겨울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고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들과 모든 사물들이 보이지 않는 막처럼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바람소리나 초목의 흔들거림이나 밤의 고요함이나 사람들이 내는 구둣발 소리조차도 겨울의 어떤 암시를 담고 있는 것처럼 무겁고 데면데면해졌다. 가을에는 그처럼 다정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던 모래톱의 물 소리도 더 이상은 내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모든 것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껍질을 꽉 닫고,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완벽한 자신의 성을 쌓기 시작했다.
겨울은 다른 어떤 계절과도 다른 유별나게 특수한 계절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짧고 날카로워졌으며 이따금 나는 그들의 날갯짓 소리만이 그 썰렁한 공백을 뒤흔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잠을 청했다.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나, 수목과 벽이 나를 그로부터 단단히 지켜주고 있었다. 잠들기 전에 나는 내 그림자를 생각했다. 지도를 그에게 건네 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은 부정확하고, 숲의 내부는 아무것도 그려 넣지 못해 거의 비어 있었으나 겨울이 벌써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겨울이 오면 더 이상 이 작업은 불가능해진다.
나는 도화지에 이 도시의 거리 모양과 이곳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위치와 형태를 대충 그리고 나서 그것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객관적인 사실들을 메모해 놓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젠 그림자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문지기가 나와 그림자를 만나게 해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지만, 분명 문지기는 해가 좀더 짧아져서 그림자의 힘이 약해지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다. 겨울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는 지금은, 그 조건에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리라.
나는 눈을 감은 채 도서관의 여자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자신, 내부의 상실감만 깊어져 갔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이유로 생겨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완벽한 상실감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꼭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나도 모르고 있는 사이에, 그녀에 관해서 무엇인가 놓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끊임없이 말이다.
나는 매일 그녀와 만나고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도 나의 상실감을 메워 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분명히 내 옆에 있다. 우리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그 다음에 나는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그리고 우리는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두명의 여동생과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고 난 후 헤어지고 나면 나의 상실감은 그녀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더 깊어진 듯 느껴진다. 나로서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상실감, 그 결핍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상실감이라는 우물은 너무나도 깊고, 너무나도 어둡고, 너무나도 음침하다. 아무리 많은 흙을 채워 넣어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상실감은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나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의 기억이 그녀에게서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도 그것에 응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모순이 나의 마음에 구제할 수 없는 상실감을 남기는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그 문제는 나에게는 너무나 힘에 부쳤다.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약하고 또 불완전하다. 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 버리고, 잠 속으로 나의 의식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그들이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느냐. 너는 대체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찬 공기 속에서 잔 선잠이 내 몸에서 따뜻한 온기를 모두 빼앗아 가고, 대신 내 머리 속에 기묘한 모양을 한 몽롱한 혼합물들을 쏟아 넣었다. 마치 타인의 몸과 머리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무겁고 막연하기만 했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즉 인간의 성향은 대략 스물다섯 살까지 정해져 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본질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외부 세계가 그 인간의 성향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느냐 하는 것으로 압축될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녀는 내가 마음에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그녀를 사랑한다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죠?"
"그렇네"하고 대령이 말했디.
"자네는 계속 잃어갈 걸세. 그녀에게는 자네가 말하는 바로 그 마음이라는 것이 없네, 나에게도 없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없지."
"하지만 대령님은 나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습니까? 나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고, 잠도 자지 않고 간병도 해주고, 그것은 마음의 또 다른 하나의 표현 아닐까요?"
"아니, 틀리네. 친절함과 마음은 전혀 별개의 것일세. 친절함이라는 것은 독립된 기능이지.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표층적인 기능일세.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지, 마음과는 다른 것이라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훨씬 깊고, 훨씬 강한 것이라네. 그리고 훨씬 모순된 것이지."



"그러나 자네는 그녀를 손에 넣을 수는 있네."
"손에 넣다니요?" 하고 나는 물었다.
"그렇네. 자네는 그녀와 잘 수도 있고,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 이 도시에서는 자네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가 있지."
"그런데 이 도시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군요?"
"그렇지, 마음은 없네" 하고 대령은 말했다.
"자네의 마음도 마침내는 사라져 버릴 걸세. 마음이 사라져 버리면, 상실감도 없고, 실망도 없네. 갈 곳 없는 사랑도 없지. 순전히 생활만이 남네. 조용하고 은밀한 생활만이 남는 거지. 자네는 그녀를 좋아할 것이고, 그녀도 자네를 좋아하겠지. 자네가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자네의 것일세. 아무도 그것을 빼앗아 갈 수가 없네."
"이상한 일이로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때때로 마음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아니, 잃어버리지 않고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 때가 더 적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되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 확신이 나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어서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상실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대령은 조용히 몇 차례나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해 보게. 생각할 시간은 아직도 남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아마 나 자신의 문제일 거야. 당신 탓이 아니야. 내가 나의 마음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거야."
"마음이라는 것은 당신조차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건가 보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때 당시에는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때도 있어. 그러면 대개의 경우는 이미 때가 너무 늦어버리지. 대체적으로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더더구나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먼저 행동을 하기 떄문에 혼란에 빠지는 거야."
"마음이라는 것이 무척 불안하고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고 그녀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나는주머니에 넣었던 양쪽 손을 꺼내 달빛 아래 비추어 보았다. 달빛을 받아 하얗게 물든 두 손은 그 조그만 세계 안에 갇혀 갈 곳을 잃어버린 한 쌍의 조각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음이란 너무나도 불완전한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마음은 흔적을 남기지. 그리고 우리들은 그 흔적을 다시 더듬을 수 있는 거야.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의 흔적을 더듬듯이 말이지."
"그것은 어디에 닿을까요?"
"나 자신에 닿지" 하고 나는 대답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런거야. 그 마음이 없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닿을 수가 없어."
나는 다시금 하늘 위의 달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