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르

하루키의우물 2008. 9. 14. 14:23



 
"7월26일에는 한발자국도 집에서 나가지 마세요" 점장이는 말했다.
"그럼 손은 어떻게 합니까?" 나는 무서워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손?"
"문틈으로 손을 내밀지 않으면 신문을 꺼낼수가 없어요."
"손은 상관없어요, 발을 내밀지만 않으면.."
"발을 내디디면 ,음...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 벌어져요"
"상상할수 없는일?"
"그렇습니다."
"예를들면 개미핥기에라고 물립니까?"
"그런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당신이 이미 그것을 상상했으니까요"
"아 .. 그래요."
특별히 점을 믿는것은 아니지만, 7월 26일에 나는 문을 꼭 걸어잠그고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하나 꺼내 먹었다. 도어즈의 LP 레코드판도 있는데로 전부 틀었다. 그리고 상상할수 없는 액운에 관해 될수있는 한 많은것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에게 상상할수 없는 액운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것은 무의미했다. 어느정도의 액운의 숫자를 줄였다고 생각되면  그 뒤에는 반드시 '나에게 상상할수없는 액운'이 또 남아있었다.
7월 26일은 매우 날씨가 좋았다. 태양은 대지를 활짝 내려쬐고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국은 그 형이상학적인 부분까지도 적당히 대지위에 찍어내고있었다. 가까운 풀장에서는 어린이들의 환호성이 들리고 있었다. 쭉 길게 뻗은 이십오 미터의 풀장....아니, 거기에는 남미의 커다란 아나콘다 뱀이 몸을 숨기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아나콘다' 라고 나는 노트에 썼다. 그리고 아나콘다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어도 어쩔수가 없었다.
시계는 정오를 지나 태양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지고 이제 해질녘이 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열일곱개의 빈 캔맥주 통이 널려있었고 또 스물한장의 LP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어느것에도 철두철미하게 진절머리나 있었다. 일곱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 술먹으러 가요" 누군가가 말했다.
"안 돼 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
"이쪽도 그래요"
'급성 알콜중독' 이라고 나는 노트에 쓰면서 전화를 끊었다.
열한시 십오분에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지난번 헤어진 뒤로 쭉 당신만을 생각했어요"
"응.."
"그래서 말인데요. 그때 당신이 말한것, 이제 겨우 알것 같아요"
"그래.."
"오늘저녁 만나면 어때요?"
'성병과 임신' 이라고 노트에 쓴다음 전화를 끊었다.
열한시 오십오분에 점장이한테 전화가 왔다.
"집에서 안 나갔지요?"
"물론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런데 한가지 묻겠습니다만 도대체 나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운이란 예를들어 뭘 말하는 겁니까?"
"예를 들자면 콘도르 같은 거겠지요"
"콘도르?"
"콘도르에 대해 뭔가 생각해봤어요?
"아니요" 나는 말했다.
"콘도르가 갑자기 나타나 당신의 등을 움켜쥐고는 하늘로 날아가 태평양 한가운데다 당신을 버릴지도 몰라요."
"그렇습니까, 콘도르가?"
그리고 시계가 열두시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