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는 벌써 사흘째 계속 내리고 있다. 단조롭고 개성이 없고 참을성이 많은 비다. 비는 내가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차임 잠을 깼을 때에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밤에 잘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런 되풀이의 나날이 사흘 동안 계속 되었다. 비는 단 한번도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는 비는 몇 번인가 그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비가 그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잠이 들었거나 눈을 잠시 뗐거나 했을 사이의 일이었다. 내가 바깥으로 눈길을 둔 한. 비는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눈을 뜨면 항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비라고 하는 것이 순수하게 개인적 체험이 된다. 즉 비를 중심으로 의식이 회전함과 동시에 의식을 중심으로 해서 비가 회전한다 -대단히 막연한 표현이지만- 그런 때가 있다. 그럴때, 내 머리는 지독히 혼란스러워진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비가 어느 쪽 비인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지나치게 개인적이다, 결국. 비는 단지 비일뿐인 것이다. 나흘째 아침, 나는 수염을 깎고, 머리를 빗고, 엘리베이터로 4층에 있는 식당에 올라갔다.
밤늦게까지 혼자서 위스키를 마셨기 때문에 위는 까끌까끌하였고, 아침밥 따윈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아침용 메뉴를 맨 위에서부터 맨 아래까지 다섯번정도 보고 나서, 단념하고 커피와 플레인 오믈렛을 주문했다. 그리고 음식이 올 때까지 비를 바라보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담배는 맛이 전혀 없었다. 아마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6월의 금요일 아침이고, 식당은 텅 비어서 인기척이 없었다. 아니. 인기척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테이블이 스물네 개 하고 그랜드 피아노. 개인풀장만한 크기의 유화. 그리고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주문은 커피와 오믈렛뿐. 하얀 상의를 입은 두 사람의 웨이터는 뭐를 뚜렷이 한다고할 것도 없이 멍하니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맛이 없는 오믈렛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신문을 읽었다. 신문은 전부해서 이십사 페이지지만. 자세히 읽어 보고 싶은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시험삼아 이십사 페이지부터 거꾸로 페이지를 들춰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신문을 접어서 테이블 위에 놓고, 커피를 마셨다. 창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다른 때 같으면 해안선 수백 미터 앞에 작은 초록색 섬이 보일 터였지만, 오늘 아침은 그 윤곽 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가 회색빛 하늘과 어두운 바다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있었다. 빗속에 모든 것이 흐릿하게 퍼져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퍼져 보이는 것은 내가 안경을 쓰지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을 감고 눈꺼풀 위로 안구를 눌렀다. 오른쪽 눈이 아주 피곤했다. 한참 뒤에 눈을 떴을 때에도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초록색 섬은 비 뒤에 감춰져 있었다. 내가 커피포트에서 두잔째 커피를 잔에 따르고 있을 때.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식당에 들어왔다.
하얀 블라우스에 어깨에는 파란색의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무릎까지 오는 쌈박한 감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걸으면 . 똑. 똑. 하는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고급 하이힐이 고급 나무마루에 부딪치는 소리다. 그녀의 출현으로. 호텔 식당은 겨우 호텔 식당다워졌다. 웨이터들도 조금 마음이 놓은 듯 보였다.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문가에 서서 식당을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순간 주저했다. 그도 그럴것이다. 리조트 호텔의 비가 오는 금요일이라 해도. 아침 식사 시간에 손님이 하나뿐이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너무 쓸쓸하다. 나이가 많은 쪽 웨이터가 틈을 두지 않고 그녀를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내 테이블의 둘 저쪽이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간단히 메뉴를 점검하고, 그레이프 프루츠 주스와 롤빵과 베이컨 에그와 커피를 주문했다. 고르는데에 십오 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베이컨은 바싹 구워 주세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어딘가 사람을 부리는 일에 익숙 한 말투였다. 그런 말투라는 게 있는 것이다, 그녀는 주문을 마치자 테이블 위에 볼을 괴고, 나와 비를 바라보았다. 나와 그녀는 마주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커피포트 손잡이 너머로 눈에 띄지 않게 그녀를 관찰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 정. 말. 로 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어떤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비의 저쪽 편인지 비의 이쪽 편인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사흘간이나 쭉 비를 보아 왔기 때문에. 비를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웬만큼은 알고 있었다. 비를 정말로 보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별정도는 할 수 있다.
그녀는 아침치고는 꽤 잘 다듬어진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머리칼은 길고 부드럽고, 귀 부근부터 아주 약간 웨이브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 아마 한가운데서 가른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언제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언제나 손바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잠시 바라본다. 아마 버릇인가보다. 가운뎃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이 조금 사이가 벌어진 채 모아져 있고,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살짝 구부러져 있다. 어느 편인가 하면 마른 편이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다. 미인이라고 못할 것도 없지만. 입술양 끝이 독특한 각도로 휘어있는점하고 눈두덩이 두꺼운 점 -완고한 편견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질 부분일 것이다. 내 취향으로 말한다면 그다지 나쁜 인상은 아니다. 옷 취미도 좋았고, 몸놀림도 상큼했다. 무엇보다도 괜찮았던 것은 비오는 금요일에 리조트 호텔에서 혼자 아침 식사를 하는 젊은 여자가 발산하기 쉬운 그 독특한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점이었다. 그녀는 보통의 커피를 마시고, 극히 보통으로 롤 빵에 버터를 바르고, 극히 보통으로 베이컨 에그를 입으로 가져 갔다. 그다지 재미도 없지만, 별로 지루해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두 잔째 커피를 마시고 나서 냅킨을 접어서 테이블 위에 놓고, 웨이터를 불러서 계산서에 사인을 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비 같습니다." 하고 웨이터가 말했다. 그는 나를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삼 일 동안이나 비에 갇혀 있는 숙박객을 보면 누구라도 동정하겠지.
"그렇군요." 라고 내가 말했다. 내가 신문을 겨드랑이에 끼고 의자에서 일어섰을 때도 여자는 커피잔을 입술에 댄 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나 같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매년 이 호텔을 찾는다. 내가 묵는 것은 대개 숙박 요금이 싸지는 오픈 시즌이다. 여름이나 연말 연시와 같은 하이시즌 요금은 나의 수입으로 본다면 조금 너무 사치스러웠고, 게다가 그때는 지하철역처럼 복잡하다. 4월이나 10월 같으면 두말할 게 없다. 요금은 사십 퍼센트 정도 싸고, 공기는 맑고, 해안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거의 없고, 매일 계속 먹어도 싫증 나지않을 만큼 맛있고 신선한 굴 요리를 먹을 수가 있다, 오르되브르 두 종류. 수프. 메인 디시가 두 종류. 몽땅 굴이다. 물론 공기와 굴 요리 외에도 내가 이 호텔이 마음에 드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방이 넓다. 천장이 높고, 창이 크고, 침대가 넓고, 당구대만큼 큰 책상도 있다. 모든 것이 넉넉하다. 요컨대 장기 숙박객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평화스러운 시대에 그러한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서 세워진 옛날식 리조트 호텔인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유한 계갑 ?은 개념 그 자체가 연기처럼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뒤에도. 호텔만은 변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온 것이었다. 로비의 대리석 기둥. 계단참의 스테인드 글라스. 식당의 샹들리에. 마모된 은식기, 거대한 기둥시계. 마호가니의 체스트, 헨들을 눌러서 여닫는 유리창. 목욕탕 타일의 모자이크. . . . . . . 나는 그러한 것들을 좋아했다. 이제 몇 년 인가 지나면 -아마도 십 년도 안 갈 것이다. - 그것들은 전부 사라져버릴 것임에 틀림이없다. 건물 그 자체의 수명도 다 돼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덜덜 거렸고, 겨울철의 다이닝 룸은 마치 냉장고처럼 추웠다. 개축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누구도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그 개축 시기가 조금이라도 연기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개축한 새 호텔 방이 현재의 사 미터 이십센티미터의 천장 높이를 유지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대체 누가 사 미터 이십센티미터나 되는 높이의 천장을 원하겠는가? 나는 자주 걸 프렌드를 데리고 이 호텔에 왔다. . 몇. 명. 인. 가. 의 걸 프렌드다. 우리는 여기서 굴 요리를 먹고, 해안을 산책하고, 사 미터 이십 센티미터 되는 천장 아래서 섹스를 하고, 널찍한 침대 위에서 잤다. 내인생 그 자체가 럭키한지 어떤지는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 이 호텔에 관한 한. 나는 럭키했다. 이 호텔 지붕 아래있는 한 우리의 관계도 -나와 그녀들의 관계는- 잘돼 나갔다. 일도 잘 됐다. . 운. . 은 내 편에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멈추는 일 없이 흘렀다. . 운. . 이 바뀐 것은 얼마 전이다. 아니. . 운. 이 바뀐 것은 훨씬 전의 일이고, 단지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 운. 이 바뀌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우선 걸 프렌드와 싸웠다.
다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경 렌즈를 깨버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주일 전에 나는 호텔에 전화를 걸고, 더블 침대를 오 일간 예약했다. 처음 이틀 동안 일을 마치고, 나머지 삼 일을 걸 프렌드와 둘이 느긋하게 지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삼 일 전에 아까 말했듯이 나와 그녀는 약간 싸웠다. 대부분의 싸움이 그렇듯이 발단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우리는 어딘가의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토요일 밤이었고, 가게는 혼잡했다. 우리는 둘 다 조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우리가 간 영화관은 만원이었고, 게다가 영화는 평판만큼 재미가 없었다. 공기는 굉장히 탁했다. 내 쪽은 일의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그녀는 생리 기간의 삼 일째 였다. 여러가지가 겹쳐 있었다. 우리 테이블 옆에는 이십대 중반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둘다 굉장히 취해 있었다. 여자가 갑자기 일어서려고 하면서 내 걸 프렌드의 하얀 스커트에 칸팔리 소다 글라스 한 잔분을 몽땅 쏟았다. 여자가 사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따지니까. 동반한 남자가 나서서 말씨름이 됐다. 상대 남자는 체격으로는 나보다 나았지만. 나는 술이 안 취했었다. 막상막하였다. 가게 안의 손님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바텐더가 와서, 싸움을 하려면 계산을 하고 밖에 나가서 해 달라고 했다.
우리 넷은 셈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 모두가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어졌다. 여자가 사과하고, 남자가 클리닝 값과 택시값을 냈다.
나는 택시를 잡아서, 걸 프렌드를 그녀의 아파트까지 바래다 주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그녀는 스커트를 벗어. 화장실에서 빨았다. 그 동안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서, TV스포츠 뉴스를 보면서 마셨다.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지만, 위스키가 없었다. 그녀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책상 위에 쿠키 깡통이 있어서, 나는 몇 개인가 집어 먹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그녀는 목이 마르다고 했다. 나는 또 하나의 맥주를 따서, 둘이 마셨다.
왜 아직까지 옷을 입고있어. 하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풀고, 양말을 벗었다. 스포츠 뉴스가 끝나자. 나는 채널을 딸깍딸깍 돌려 영화 프로를 찾았다. 영화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스트렐리아의 동물 다큐멘터리 프로를 켜 두었다. 이런 식으로 지내는 것은 싫어. 하고 그녀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 데이트하고 섹스. 또 일주일이 지나면. 또 데이트와 섹스. . . . 언제까지 이렇게 해 나갈거야? 그녀는 울었다. 나는 위로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다음날 점심 시간에 사무실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밤에 아파트에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단념하고 혼자 여행에 나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커튼도 시트도 소파도 벽지도. 모든 것이 축축했다. 에어 컨디셔너의 조정 다이얼이 잘못 되어서, 스위치를 켜면 너무 추워졌고, 끄면 방은 습기로 꽉 찼다. 할 수 없이 창문을 반쯤 열어 놓고 에어 컨디셔너를 켜보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서 담배를 피웠다.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여기에 오고 난 후. 한 줄도 문장을 쓰지 못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서 추리 소설을 읽다가. TV를 보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했다. 밖에서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나는 호텔방에서 그녀 아파트로 몇 번인가 전화를 해 보았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만이 언제까지고 계속 울렸다. 그녀는 혼자서 어딘가로 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수화기를 제자리에 올려놓으면. 주위는 언제나 . 조. 용. 했다. 천장이 높은 덕분에. 침묵은 공기 기둥처럼 느껴졌다.
그날 오후. 나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본 그 젊은 여자를 도서실에서 다시만났다. 도서실은 일층에 있는 로비의 훨씬 안쪽에 있다. 긴 복도를 따라가서, 계단을 몇개인가 올라가면. 건너가는 복도가 붙은 양옥으로 만들어진 작은 별채로 나서게 된다. 위에서 보면 왼쪽이 팔각형의 꼭 반모양. 오른쪽이 정방형의 꼭 반모양인 약간 별난 구조의 건물이다. 옛날에는 시간이 남아도는 손님들이 제법 유용하게 이용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이용하는 손님따위는 거의 없다. 장서는 숫자상으로는 그런대로 꽤 되었지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손에 들어 보려는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른쪽 정방형 부분에 서가가 늘어서 있고, 왼쪽편 팔각형 부분에 책상과 소파세트가 놓여있다. 테이블 위의 화병에는 눈에 익지 않은 이 지역의 꽃이 꽂혀있었다. 방안에는 먼지 하나 없다. 나는 삼십분 걸려서, 곰팡이 냄새가나는 서가에서 아주 옛날에 읽은 적이 있는 헨리 라이더 해거드의 모험 소설을 찾아냈다. 낡은 영문 하드 북으로, 뒤에는 기증자(이겠지) 영국인의 이름이 씌어 있었다. 책에는 군데 군데 삽화가 들어 있었다, 내가 전에 읽은판의 삽화하고는 상당히 느낌이 다른것 같았다. 나는 책을 들고 밖으로 튀어나온 창의 움푹한 곳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페이지를 뒤적였다. 고맙게도 이야기 줄거리의 대부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어떻게든 하루나 이틀 분량의 지루함은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책을 읽기시작해서 이십분인가 삼십 분 지났을 때. 그녀가 도서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안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는지.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주저했지만. 한 호흡 두고 나서 가볍게 인사했다. 그녀도 인사를 했다. 그녀는 아침 식사 때하고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책을 찾고 있는 동안. 나는 잠자코 책을 계속 읽었다. 그녀는 아침과 똑같이 똑똑 하고 기분 좋은 구두 소리를 울리면서 서가에서 서가로 걸어 다녔다. 침묵이 한참 있고, 그리고 나서 똑똑 하는 구두 소리가 계속된다. 서가 뒤쪽이어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음에 드는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발걸음 소리로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 도서실에는 젊은 여자아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책 따윈 한 권도 없는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체념한 듯이 빈손인 채 서가 줄을떠나.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구두 소리가 내 앞에서 멈추자. 기품있는 오데코롱 향내가 났다.
"담배를 빌릴 수 있을까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가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두세 번 흔들고 나서 상대편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가 한 개비 빼서 입에 물었을 때.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그녀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연기를 빨아, 천천히 토해 내고, 그리고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가까이서 보니까. 그녀는 처음 인상보다 서너 살은 더 들어 보였다. 항상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 안경을 벗으면. 대개의 여자가 실제보다 젊게 보인다. 나는 책장을 덮고, 손가락으로 눈을 문댔다. 그리고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으로 안경 다리를 말아 올리려고 했다가, 안경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안경이 없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꽤 무료해지는 법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이란 거의 의미없는 사소한 동작의 축적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녀는 가끔 담배를 피우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침묵의 무게를 견디어 내지 못할 만큼 그녀는 오래 잠자코 있었다. 처음에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 그녀한테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뭐 재미있는 책 있었습니까?"
"전혀 없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다문 채 미소를 지었다. 입술 양 끝이 아주 약간 위로 올라갔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책들뿐이니. 도대체 언제 적 책일까?" 나는 웃었다.
"옛날 통속 소설이 많습니다. 세계 대전 전에서 1940년, 50년 경의 것이죠."
"누구 읽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읽지 않겠죠. 삼십 년이나 사십 년 지나고 나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 같은 것은 백 권에 하나 정도니까요."
"왜 새 책을 갖추지 않을까요?"
"아무도 이용하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모두 로비에 있는 잡지를 읽거나, TV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다 읽을 만큼 오랫동안 묵을 손님은 이제는 별로 있지 않을 테니까요. "
"그건 그렇네."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의자를 손으로 잡아당겨. 앉아 다리를 꼬았다.
"당신은 그런 시대를 좋아해요? 모든 것이 좀더 느긋하고 사물이 좀더 단순했던. . . . 그런 시대."
"아뇨." 라고 나는 말했다.
"특별히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 시대에 태어 났더라면. 그때는 또 그때대로 화를 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단한 뜻은 없죠. "
"틀림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좋아하는군요. "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또 잠자코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어쨌든" 하고 그녀가 말했다.
"읽을 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좀 문제네. 과거의 옅은 빛도 좋지만. 비에 갇혀서 TV도 보기 싫고 시간이 남아돌아 가는 손님도 조금은 생각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혼자세요?"
"네. 혼자. " 라고 그녀는 말하고 자기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여행할 때는 항상 혼자예요. 누군가하고 함께 여행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당신은?"
"그건 그렇죠." 라고 나는 말했다. 설마 걸 프렌드가 약속을 어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추리 소설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몇 권인가 갖고 있는데요." 라고 나는 말했다.
"새로운 거니까 마음에 드실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읽으시겠다면은 빌려 드리지요. "
"고마워요. 하지만 내일 오후에는 여기를 출발할 생각이니까. 아마 다 읽지 못하지 않을까요. "
"상관없습니다. 드리지요. 어짜피 문고본이고, 짐이 되니까 여기에 두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
그녀는 다시 한 번 미소짓고, 그리고 손바닥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항상 생각하지만. 물건을 받는 데 익숙하다는 것도 위대한 재능의 하나다. 내가 책을 가지러 갈 동안 커피라도 마시고 있겠다, 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도서실을 나와 로비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심심한 듯한 웨이터를 붙잡고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천장에는 거대한 선풍기가 달려 있어서, 그것이 방안의 공기를 천천히 휘젓고 있었다. 돌아 보았댔자 별수없는 습습한 공기가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왔다 할뿐이다. 커피가 올 동안 나는 엘레베이터로 삼 층에 올라가. 방에서 두 권의책을 들고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곁에는 길이 잘 든 가죽 슈트 케이스가 세개 늘어서 있었다. 새로운 숙박객이 온 것 같았다. 슈트 케이스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세 마리의 개처럼 보였다. 내가 자리에 돌아오자. 웨이터가 납작한 커피잔에 커피를 부어 주었다. 하얀 잔 거품이 표면을 덮고, 그리고 사라졌다. 나는 테이블 너머로 그녀에게 책을 건냈다. 그녀는 책을 받아들고, 타이틀을 본 후.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적어도 그런형태로 입술이 움직였다. 그 두 권의 책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는지 어떤지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책을 겹쳐 놓고 커피를 한 입 마셨다. 그리고 다시 컵을 아래에 놓고, 그래뉼당을 가볍게 한 스푼 넣어서 커피잔을 젓고, 크림을 컵 가장자리로부터 천천히 부었다. 크림의 하얀 선이 깨끗한 소용돌이를 그렸다.
이윽고 그 선은 뒤섞여. 하얀 엷은 막을 이루었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고 그 막을 마셨다. 손가락은 가늘고, 매끄러웠다. 그녀는 손잡이를 가볍게 잡듯이 컵을 지탱하고 있었다. 새끼 손가락만이 똑바로 공중으로 뻗어 있었다. 반지도. 반지 자국도 없었다. 나와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잠자코 커피를 마셨다. 열어 젖혀 둔 창에서 비 냄새가 났다. 비에는 소리가 없었다.
바람도 없었다.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유리창 밖에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소리는 없었다. 비 냄새만이 방안으로 살그머니 스며 들어왔다. 창 밖에 늘어선 수국 꽃이 마치 작은 동물처럼 가지런히 들어서서 6월의 비를 맞고 있었다.
"여기에 오래 계세요?" 하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글쎄요. 닷새 정도." 라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했다. 특별히 감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동경에서 오셨어요?"
"그렇습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당신은?"
여자는 웃었다. 이번에는 아주 조금 이가 보였다.
"동경이 아니예요. "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나도 웃었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마셨다. 얼른 커피를 마시고 컵을 내려놓고, 방긋 웃고 이야기를 끝내고, 커피 값을 치르고 방에 올라가 버리는 것이 가장 제대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내 머리 안 어디에선가. 무엇인가가 껄끄러웠다. 가끔 그런 때가 있다. 잘 설명할수는 없다. 육감 같은 것이다. 아니. 육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분명 한것은 아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희미한 그 . 무. 엇. 인가다. 이럴 때. 나는 내 쪽에서는 무엇 하나 행동을 취하지 않기로정하고 있다. 상황에 몸을 맡기고, 일이 돼가는 것을 지켜 본다. 물론 그것이 . 예. 상. 을. 벗. 어. 나. 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아주 사소한 일이 나중에 터무니 없이 큰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커피를 다 마신 후. 깊이 소파 등에 기대어 다리를 꼬았다. 참기 시합과 같은 침묵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다.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것이 아니고, 그녀의 조금 앞에 있는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덕분에, 오랫동안 한곳에 초첨을 맞추고 있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상대편이 조금 초조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테이블위의 내담배를 집어서, 호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맞춰도 될까요?" 라고 타이밍을 재면서 내가 물었다.
"맞추다니. 무엇을 ?"
"당신에 대해서 말입니다. 어디에서 왔다라든가. 무엇을 하고 있다라든가 . . . . . 그런것. "
"좋아요." 하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그리고 재떨이 안에 담뱃재를 털었다.
"맞춰봐요. "
나는 입술 앞에서 깍지를 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정신을 집중하는 척했다.
"뭔가 보여요?" 라고 놀리는 듯한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여자의 입 가장자리에 신경질적인 미소가 떠오르고, 그리고 사라졌다. 페이스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적당한 때를 맞추어 나는 손가락을 풀고, 몸을 똑바로 했다.
"당신은 아까. 동경에서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죠. "
"네."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말했어요. "
"그것은 거짓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쭉 동경에 살고 계셨죠? 그렇지 . . . . 이십 년 정도인가?"
"이십이 년." 라고 그녀가 말하고, 성냥갑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손을 뻗어 내 앞에 놓았다.
"자 당신이 한 점. "
그리고 담배를 피운다.
"재미있을 것 같네. 계속해 봐요. "
"그렇게 급하게는 못 합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시간이 걸려요. 천천히 합시다. "
"좋아요. "
나는 이십 초 정도 또 정신을 집중하는 척했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여기에서 봐서, . . . 서쪽이죠. "
그녀는 두번째 성냥개비를 로마 숫자 II의 형태가 되게 늘어놓았다.
"괜찮죠?"
"훌륭한데요. "
그녀는 감탄한 듯이 말했다.
"프로예요. "
"어떤 뜻에서는 그렇죠. 프로와 같은 것입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분명히 그대로인 것이다, 언어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미묘한 인토네이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귀만 갖고 있다면. 이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인간 관찰에 관해서라면. 나는 프로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나는 초보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독신이군요. "
그녀는 왼쪽 손가락 끝을 잠시 비비고 나서 손을 펼쳤다.
"반지군요. . . 하지만 됐어. 자. 이것으로 석 점. "
내 앞에 세개의 성냥개비가 III의 형태로 늘어섰다. 거기에서 나는 조금 더간격을 두었다. 상태는 양호하다. 다만 머리가 약하게 아플 뿐이다, . 이. 짓. 을 하고 있으면 항상 머리가 아파온다. 정신을 집중하는 척 하기 때문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정신을 집중하는 척 하는 것은 정말 정신을 집중 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라고 여자가 재촉했다.
"피아노는 어릴때부터입니까?" 라고 내가 말했다.
"다섯 살 때부터예요. "
"프로로 하고 있군요?"
"콘서트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뭐 프로죠. 반은 레슨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 . "
네 개째.
"어떻게 알았어요?"
"프로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 법입니다. "
그녀는 킥킥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술수를 밝힌다면 아주 간단하다.
프로 피아니스트는 무의식중에 특수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그 터치를 보고 있으면 -그것이 비록 아침 식사 테이블을 두들기는 것이라 하더라도-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별 정도는 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옛날에 피아노를 치는 여자아이와 사귀었으니까. 그 정도는 알 수가 있다.
"혼자 사시네요?" 라고 내가 말했다. 근거는 없다. 단순한 육감이다. 대충 워밍업이 끝나면. 제법 육감이 움직이게 된다. 그녀는 입술을 장난스럽게 앞으로 내밀고, 그리고 새로운 성냥개비를 꺼내서, 지금까지의 네 개째 위에 옆으로 올려놨다. 비는 어느틈엔가 약해지고 있었다. 오고 있는지 오고 있지 않은지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의 비였다. 먼곳에서 자동차 타이어가 자갈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해안가에서 호텔 현관으로 통하는 언덕길을 차가 올라오는 소리다. 프런트에 대기하고 있었던 보이가 두 사람. 그 소리를 듣고 큰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현관 밖으로 나갔다. 한사람은 큰 까만 우산을 들고 있었다. 이윽고 현관의 넓은 차 대는 곳에 까맣게 칠한 택시가 모습을 나타냈다. 손님은 중년 남녀였다. 남자는 크림색골프 바지 위에 갈색 상의를 입고, 챙이 좁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넥타이는 하고 있지 않다. 여자는 풀빛의 매끄러운 옷감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튼튼한 체격으로, 햇볕에 잘 그을어 있었다. 여자는 하이힐도 신고 있었지만. 그래도 남자쪽이 머리 하나 정도 키가 더 컸다. 한 보이가 택시 트렁크에서 슈트 케이스 두개와 골프 팩을 꺼내고, 다른 하나가 우산을 펴서 손님에게 씌웠다. 남자가 손을 흔들어 우산을 사양했다. 비가 이제는 거의 그친 것 같았다.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자.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한꺼번에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여자가 무엇인가 말한 것 같은기분이 들었다.
"실례?" 하고 내가 말했다.
"지금의 저 두 사람 부부라고 생각해요?" 라고 그녀가 되풀이했다. 나는 웃었다.
"글쎄. 어떨까요. 모르겠는데요. 한꺼번에 여러 사람의 일을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 더 당신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고 싶은데요. "
"나는 뭐라고 할까. . . 대상으로서 재미있는 걸까?"
나는 등줄기를 펴고, 한숨을 쉬었다.
"글쎄요, 모든 인간은 똑같이 재미있죠. 이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원칙 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안에 있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나는 거기에 이을 적당한 단어를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찾아낼 수가 없었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조금 복잡한 설명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
"잘 모르겠어요. "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계속합시다. "
나는 소파에 고쳐 앉고, 입술 앞에서 다시 한 번깍지를 꼈다. 그녀는 아까하고 같은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앞에는 성냥개비가 다섯 개 예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한 후. 육감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된다. 아주 작은 힌트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옛날에 정원이 넓은 집에 사셨댔죠?"
하고 내가 말했잖아, 이것은 간단했다. 그녀의 차림이나 몸놀림을 보면 양가집에서 자랐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이를 한 사람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든다. 소음 문제도 있다. 아파트 단지 같은 데에 그랜드 피아노를 들여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원이 넓은 집에 살았다고 해서 우스울게 없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무엇인가 이상한 반응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얼어붙은 것처럼 나에게 향해졌다.
"예. 분명히. . . . " 하고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조금 혼란스러워했다.
"분명히 정원이 넓은 집에 살고 있었어요. "
키 포인트는 . 정. 원. 이라는 것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험 삼아 조금 더 캐물어 보기로 했다.
"정원에 관해서 무엇인가 추억이 있으시죠?" 라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잠자코 자기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이었지만. 이윽고 얼굴을 들었을때는 그녀는 이미 자기 페이스를 되찾고 있었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잖아요?" 누구나 정원 있는 집에 오래 살다 보면 정원에 대한 추억이 하나 정도는 있게 되죠. 그렇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
하고 나는 인정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른 이야기를 합시다. "
나는 그대로 아무 소리 안 하고 고개를 창 밖으로 돌려. 수국을 바라보았다. 오래 내린 비가 수국을 선명한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미안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 좀 듣고 싶은데. .?"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을 켰다.
"하지만 그것은 댁의 문제죠, 그 일에 대해서는 나보다 당신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담배가 일 센티미터 탈 동안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재가 소리도 없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당신한테는 어떤 일이. . . . 즉. 어느정도의 일로 보여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봅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만일 그것을. 영. 감. 이라든가 그런 의미로 하는 거라면 말이죠.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느. 낌. 뿐입니다. 암흑 속에서 물건을 찾아내는 것과 같죠. 거기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알 수 있죠. 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어떤 색깔을 하고 있는 지까지는 모릅니다. "
"하지만 당신은 아까 프로라고 말했잖아요. "
"저는 문장을 쓰거든요. 인터뷰 기사라든가. 르포르타주라든가. 그런 거요. 대단한 문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
"과연." 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뭐. 이 정도로 해둡시다. 비도 그친 것 같고, 제 수법도 밝혔으니까요. 심심한데 상대해 주신 사례로 맥주라도 한턱 내죠. "
"하지만 어째서 . 정. 원. 같은 것이 나왔을까?"하고 그녀가 말했다.
"달리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있었을 텐데, 그렇죠?  어째서 . 정. 원. 이죠?"
"우연이죠. 어쩌다 정말과 부딪치는 일이 있죠.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드립니다. "
그녀는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맥주를 마셔요. "
나는 웨이터에게 사인을 해서, 맥주를 두 병 주문했다. 테이블 위의 커피잔과 슈가포트가 치워지고, 재떨이가 새로 놓이고, 그리고 맥주가 왔다. 잔은 잘 식어 있었고, 겉에는 하얗게 서리가 붙어있었다. 여자가 내 잔에 맥주를 부어 주었다. 우리는 잔을 아주 조금 위로 들고 흉내만의 건배를 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자. 목 뒤의 옴폭한 부분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당신은 자주. . . . 이런 게임을 하나요?" 하고 여자가 물었다.
"게임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요?"
"게임입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이래도 제법 피곤합니다."
"왜 해요? 자기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좋습니까. 이건 무슨 능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영감이 나를 인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편적인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사실로서 얘기할 뿐입니다. 그 이상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능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못 되죠. 아까도 말했듯이, 암흑 속에서 모호하게 느낀 것을 모호한 말로 바꾸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은 게임이죠. 능력이라는 것은 좀 더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그것을 단순한 게임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면?"
"요컨대. 내가 무의식중에 상대 안에 있는 불필요한 무엇인가를 꺼내 버렸다면, 이라는 얘깁니까?"
"말하자면. 그런거지요."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만일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특수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런 일은 모든 인간 관계 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아닌가요?"
"그렇지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우리는 잠자코 맥주를 마셨다. 슬슬 일어날 때다. 나는 아주 피곤했고, 두통도 점점 심해져 왔다.
"방에 들어가서 조금 눕겠습니다. "
라고 내가 말했다.
"나는 왠지 언제나 쓸데없는 얘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언제나 후회하죠. "
"괜찮아요. 마음쓰지 마세요. 상당히 즐거웠는데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서, 테이블 위의 전표를 집으려고 했다. 그녀가 재빨리 손을 뻗어 내 손 위에 겹쳤다. 매끄러운 감촉과 긴 손가락이었다.
차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다.
"내가 치를게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당신을 피곤하게 만든 것 같고, 책도 얻었고, "
나는 조금 주저하고,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의 손가락의 감촉을 확인했다.
"그럼. 대접을 받겠습니다."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테이블 위 내편에는 성냥개비가 다섯 개. 예쁘게 늘어서 있다. 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한순간 무엇인가가 나를 잡았다. 그녀에 대해서 맨 처음 느낀 그.무.엇. 인가였다. 나는 아직 그것을 제대로 해결짓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했다. 그리고 결국 그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나는 테이블로 되돌아와 그녀의 곁에 섰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라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이 나를 올려다 보았다.
"예. 좋아요. 하시죠. "
"왜 당신은 언제나 오른손을 바라보십니까?"
그녀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곧 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듯 사라졌다. 한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그녀의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한 채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침묵이 바늘처럼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주위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나는 어딘가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내가 입에담은 얘기의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잠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의 자세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윽고 얼굴을 돌려 테이블 위로 눈길을 주었다. 테이블 위에는 빈 맥주잔과 그녀의 손이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내가 꺼져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2

잠에서 깼을 때. 베개맡의 시계는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어 컨디셔너가 들지 않은 것과 이상하게 생생한 꿈을 본것이 겹쳐서, 온몸이 땀 투성이였다. 의식이 깨고 나서, 손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될 때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뜨뜻하고 축축한 시트 위에 생선처럼 드러누운 채, 나는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는 완전히 그치고, 하늘을 뒤덮고 있던 옅은 회색빛 구름은 군데군데 끊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이 구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끊어진 틈은 미묘하게 그 형태를 바꾸면서 천천히 창가를 스쳐가고 있었다. 바람은 남서방향에서 불고 있었다. 그리고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의 파란색 부분이 급속히 넓어져 갔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파란색이 퍼져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쨌든 날씨는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베개 위에서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시 십오 분. 그러나 그것이 저녁 여섯시 십오 분인지 아니면 아침 여섯시 십오 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인 것 같기도 했고, 아침인 것 같기도 했다. 텔레비젼을 켜면 어느 쪽인지 알 수 있겠지만. 텔레비젼 앞까지 걸어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아마 저녁이겠지. 하고 나는 우선 판단했다. 침대에 들어간 것이 오후 세시조금 지나서고, 열다섯 시간이나 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 아, 마. 일 뿐이었다. 내가 열 다섯 시간 자질 않았다는 증거는 무엇하나 없는 것이다. 아니. 스물 일곱 시간 자지 않았다고 하는 확증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단히 서글픈 마음이 되었다. 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누구한테 따지고 있는 것과 같은 말투였다. 시간은 무서울 정도로 천천히 흘렀다. 무엇인가 생각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시간이 걸렸다. 굉장히 목이 말랐지만, 그것이 목마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목마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힘을 짜내서 침대에서 일어나. 물주전자에 있는 차가운 물을 계속해서 세 컵 마셨다. 반 컵 정도가 가슴을 따라서 마룻바닥에 떨어졌고, 회색 카펫을 까맣게 물들였다. 물의 차가움이 머리 심지에 도달해서 . 얼. 룩. 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피웠다.
창 밖에 눈길을 돌리자 구름의 음영은 아까보다 얼만가 짙어진 것 같았다.
역시 저녁인 것이다. 저녁이 아닐 리가 없다. 나는 담배를 문 채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 꼭지를 틀었다. 물이 소리를 내면서 욕조를 쳤다. 낡은욕조에는 군데군데 . 갈. 라. 진. 틈 같은 것이 있었다. 쇠장식은 하나같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의 물의 온도를 조정하고 나서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뭘 한다고 할 것도 없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뜨거운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가 짧아지자. 그것을 탕 안에 집어넣고 껐다. 몸이 지독히 피곤하다. 그래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그 김에 수염을 깎아 버리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창을 열고 바깥 공기를 집어넣고, 다시 한 번 물을 마시고, 머리를 말리면서 TV뉴스를 보았다. 역시 저녁이었다. 틀림이 없다. 아무리 뭐라 해도 열다섯 시간이나 잘 리가 없는 것이다. 저녁을 먹으로 식당에 가 보니까. 테이블은 네 개나 차 있었다. 아까 도착한 중년 남녀의 모습도 보였다. 다른 세 개는 제대로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입은 초로의 남자들이 똑같은 나이를 먹고 있었다. 변호사 아니면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분위기다. 이 호텔에서 단체 손님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그들 덕분으로 식당은 겨우 원래의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나는 아침하고 같은 창가 좌석을 차지하고, 메뉴를 보기 전에 우선 스카치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주문했다. 위스키를 핥듯이 마시는 동안에. 머리가 아주 조금씩 맑아졌다. 기억의 단편이 하나씩. 있을 곳에 끼워 넣어졌다. 비가 삼 일간 계속 내렸던 일이라든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오믈렛 한 접시밖에 먹지 않은 일이라든가. 도서관에서 여자하고 만났던 일이라든가. 안경을 깨버린 일이라든가. . . . .
나는 위스키를 마셔버리자. 대충 메뉴를 훑어보고 수프와 샐러드와 생선요리를 주문했다. 여전히 식욕은 없었지만 하루종일 오믈렛 한 접시로 지낼수는 없지 않은가. 주문을 마치고, 차가운 물을 마셔 입안의 위스키 냄새를 지우고 나서, 다시 한번 식당을 돌아보았다. 역시 여자 모습은 없다. 나는 적지 않게 낙심했다. 다시 한번 그 젊은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것인지 만나고싶지 않은 것인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그리고 나는 동경에 남기고 온 걸 프렌드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하고 교제하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계산해 보았다. 이 년하고 삼 개월이었다.
이 년하고 삼 개월이라는 것은 웬지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생각한다면. 나는 삼 개월만큼 필요 이상 오래 그녀하고 교제했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헤어질 이유가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헤어지고 싶어. 라고 그녀가 말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말할 게 틀림없다. 거기에 대해 나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나는 네가 마음에 들고 헤어질 이유 따위는 없어, 라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야.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다, 비록 내가 무엇인가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건 . 아, 무. 의. 미. 가. . 없. 는. 것. 이. 다, 나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산 캐시미어 스웨터도 마음에 들었고,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비싼 위스키도 마음에 들고, 높은 천장과 널찍한 침대도 마음에 들고, 지미눈의 낡은 레코드도 마음에 들고, . . , 요컨대 그뿐인 것이다. 나한테는 그녀를 붙잡아 둘 근거가 무엇 하나 없었다. 그리고 헤어져서, 또 새로운 여자 아이를 찾을 일을 생각 하니. 나는 넌더리가 났다. 모든 것을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숨을쉬고,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봤자. 일을 될 대로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창 아래에는 까만옷감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구름은 뜨문뜨문해지고, 달빛이 모래밭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비추고 있었다. 바다 저쪽에는 배의 노란 색 불빛이 희미하게 배어들고 있었다. 단정한 차림새의 사내들은 테이블마다 와인보틀을 기울이면서, 잡담을 하거나 큰 소리로 웃곤 하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혼자서 생선을 먹었다. 다 먹고 나니. 그 뒤에는 머리와 뼈만이 남았다.
크림머리와 뼈를 분리시켰다. 특별한 의미 따위는 없다. 그렇게 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윽고 접시가 치워지고, 커피가 왔다.
방문을 열었을 때. 바닥에 종이 조각이 떨어졌다. 나는 어깨로 문을 민 채몸을 구부려서 그것을 주웠다. 호텔 마크가 들어 있는 풀빛 메모 용지에, 까만 볼펜으로 자잘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나는 문을 닫고 소파에 걸터앉아, 담뱃불을 붙이고 나서 메모를 읽었다.
아까는 미안해요. 비도 개었고 하니, 지루함을 면하기 위해서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시겠어요? 괜찮으시다면 아홉시에 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메모를 다시 읽었다. 같은 문장이었다.
풀?
나는 이 호텔 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풀은 뒤쪽 언덕 위에 있다. 헤엄친 적은 없지만. 몇 번인가 본 적은 있다. 넓은 풀로서, 삼면은 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한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산책하기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 산책을 하고 싶다면 해안을 따라 좋은 길이 얼마든지 있다. 시계는 여덟 시 이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간에 고민할 만한 일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 만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풀이라고 한다면. 어쨌든 그곳은 풀인 것이다. 내일이면. 나는 여기에 없을 것이다, 나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일이 생겨서 간다. 나머지 하루분 예약은 취소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라고 상대가 말했다. 문제는 무엇 하나 없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양복장과체스트에서 옷을 꺼내고, 잘 개서 슈트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올 때보다 책분량만큼 부피가 줄어 있었다. 여덟 시 사십 분이었다. 엘레베이터로 로비에 내려가. 현관으로 해서 밖으로 나섰다. 고요한 밤이었다. 파도 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축축한 냄새가 나는 남서풍이 불고 있었다, 뒤를 올려다보니. 건물의 몇 개인가의 창에 노란 전등이 켜 있었다. 나는 스포츠셔츠 소매를 팔목까지 올리고, 바지 주머니 양쪽에 손을 집어넣고 잔 자갈을 깐 완만한 뒤쪽 언덕길을 향해서 올라갔다. 무릎 높이의 정원수가 길을 따라 쭉 계속되어 있었다. 거대한 느티나무가 초여름의 신선한 잎사귀를 하늘 가득 벌리고 있었다. 온실 모퉁이를 왼쪽으로 돌면 돌계단이 있다. 꽤나 길고 가파른 계단이다. 삼십 계단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풀이 있는 언덕으로 나서게 된다. 여덟 시 오십 분. 여자의 모습은 안보인다. 나는 크게 숨을 쉬고 나서 벽에 기대 둔 덱 체어를 펼치고, 젖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 위에 앉았다. 풀을 비추는 조명등은 켜 있지 않았지만. 산 언덕 중턱에 있는 수은등과 달빛 때문에 어둡지는 않았다, 다이빙대가 있고, 감시대가 있고, 라커 룸이 있고, 주스 스탠드가 있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잔디밭 공간이 있었다. 감시대 곁에는 코스 로프라든가 비트판이쌓여 있었다. 시즌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있었지만 풀에는 하나 가득 물이 담겨져 있었다. 아마 점검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수은등과 달빛의반씩 섞인 광선이 넓은 풀의 수면을 기묘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한가운데쯤에 나방의 시체와 느티나무 잎사귀가 떠 있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않고, 미풍이 나무 잎사귀를 아주 약하게 흔들고 있었다. 비를 충분히 빨아먹은 초록빛 나무들이. 그 향기를 주위에 흩날리고 있었다. 분명히 기분좋은 밤이었다. 나는 덱 체어 등받이를 거의 수평으로 쓰러뜨리고 똑바로 드러누워. 달을 보면서 담배를 피웠다.
여자가 온 것은 시계 바늘이 아홉 시를 십 분 조금 지났을때였다, 그녀는 하얀 샌들을 신고, 몸에 꼭 맞는 노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의 색은 회색에 가까운 블루로.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가는 핑크색 줄무늬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풀 입구와는 반대편에 있는 나무 숲속에서 나타났다. 나는 쭉 입구 쪽만 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계가장자리에 그녀가 나타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풀의 긴 모서리 쪽을 따라서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미안해요. "
하고 그녀가 말했다.
"아까 왔었는데. 이 부근을 어슬렁어슬렁하고 있는 동안에 길을 잃었어요. 덕택에 스타킹이 찢어져 버렸네."
그녀는 내 옆에 똑같이 덱 체어를 펼쳐서 앉고, 오른쪽 다리의 가운데 부분을 나한테 보였다. 한가운데에 십오 센티미터 정도 길이로 줄이가 있었다.
앞으로 몸을 구부리자 깊이 파진 칼라로 하얀 가슴이 보였다.
"아까는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
라고 내가 사과했다.
"악의는 없었는데요. "
"아, 그 얘기 말이죠. 그건 됐어요. 잊기로 해요. 대수로운 일도 아니잖아요. "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굉장히 기분이 좋은 밤이죠?"
"그렇군요. "
하고 내가 말했다.
"아무도 없는 풀이라는 게 좋아요. 조용하고, 모든것이 멈춰 있고, 어딘지 모르게 무기질이고, . . . 당신은?"
나는 풀 수면 위로 퍼져 가는 잔 파도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하지만 나한테는 왠지 죽은 사람같이 보이는데요. 달빛 탓인지는 모르지만. "
"시체라는 걸. 본 적 있어요?"
"예. 있습니다. 익사체입니다만. "
"어떤 느낌이었어요?"
"인기가 없는 풀 같죠. "
그녀는 웃었다. 웃으면서 눈 가장자리에 . 주. 름. 이 갔다.
"본 것은 아주 옛날입니다. "
라고 내가 말했다.
"어릴 때죠. 해안에 떠올라 있었죠. 익사체 치고는 깨끗한 시체였어요. "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 가르마를 만지작 거렸다. 막 목욕을 끝냈는지, 머리에서 헤어린스 냄새가 났다. 나는 덱 체어의 등받이를 그녀하고 같은 높이까지 올렸다.
"봐요. 당신은 개를 키운 적이 있어요?"
하고 여자가 물었다. 나는 조금 놀라서 여자 얼굴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풀로 시선을 되돌렸다.
"아뇨. 없습니다. "
"한 번도?"
"예. 한 번도 없습니다. "
"싫어해요?"
"귀찮아서요. 산책을 데리고 간다든가. 함께 놀아 준다든가. 밥을 만들어 준다든가. 그런 일이 말이죠.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귀찮을 뿐이죠. "
"귀찮은 걸 싫어하시네. "
"그런 종류의 귀찮은 일은 싫어합니다. "
그녀는 잠자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잠자코 있었다.
풀 수면의 느티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날려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옛날에. 몰티즈(몰타 섬 원산으로 순백색의 애완용 개)를 키웠었어요. "
라고 그녀가 말했다.
"어릴 적이었어요. 아버지 한테 부탁해서 사달라고 했죠. 나는 외동딸이었고, 말수도 없고 친구도 없었으니깐. 놀이 상대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당신은 형제가 있어요?"
"형이 있습니다. "
"형제라는 것은 근사하죠?"
"글쎄요. 벌써 칠 년이나 만난 적이 없는걸요. "
그녀는 어디에선가 담배를 꺼내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몰티즈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쨌든. 개 시중은 전부 내가 하기로 했죠. 여덟 살 때의 얘기예요. 밥을 주고, 변 시중을 하고, 산책시키고, 주사를 맞히러 데려가고, 이 제거용 가루를 뿌려 주고, 무엇이든지 다 했죠. 하루도 안 빼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목욕도 같이 하고, . . . . 그렇게 팔 년간 함께 살았거든요. 아주 사 이가 좋았죠. 나는 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개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알았지요. 예를 들어서 아침에 나갈때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사올게. '하고 말하면. 그날 저녁은 집의 백 미터 정도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나서는. . . . . "
"개가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물론이죠. "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럴 것이 아이스크림이잖아요. "
"그렇군요. "
라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슬퍼하거나 기가 죽어 있을 때에는 언제나 위로해 주었지요. 여러가지 재주를 부리면서 말예요. 알겠죠? 정말 사이가 좋았어요. 아주 아주 사이가 좋았었죠. 그러니까 팔 년 뒤에 그가 죽어 버렸을 때, 나는 정말 어떡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제 어떻게 살아나가면 될까 하고 말이지요. 그것은 아마 개도 똑같았으리라고 생각해요. 만일 입장이 거꾸로 되어서 내가 먼저 죽어 버렸다손 치더라도. 그도 똑같이 느꼈으리라고 생각해요."
"사인이 뭐였는데요."
"장 폐쇄. 털실이 장에 차 버렸어요. 그래서 배만 부풀고, 바짝 말라서 죽어 버렸지요. 삼 일간 괴로워했어요. "
"의사한테는 데리고 갔었어요?"
"네. 물론이죠.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거든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는 집에 데리고 와서, 내 무릎 위에서 죽게 했죠. 죽을 때도 쭉 내 눈을 보고 있었어요. 죽고 나서도. . . . 보고 있었어요. "
그녀는 보이지 않는 개를 살그머니 안 듯이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을 가볍게 안쪽으로 구부리고 있었다.
"죽고 나서 네 시간 정도 지나니까 경직이 시작됐죠. 몸에서 점점 온기가 사라져 가고, 마지막에는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 . . . . 그것으로 끝. "그녀는 무릎 위의 손을 바라보면서, 한참 잠자코 있었다. 나는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채 여전히 풀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체는 정원에 묻기로 했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정원 귀퉁이에 있는 황매화나루 옆에 아버지가 구덩이를 파 주셨어요. 5월의 밤이었어요. 그렇게 깊은 구멍은 아니고, 칠십 센티미터 정도.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던 스웨터에 개를 싸서, 그것을 나무 상자에 넣었죠. 위스키가 들었던 나무 상잔가 뭐 그런 것이었어요. 거기에는 그 이외에도 여러가지를 집어 넣었죠. 나하고 개가 함께 찍은 사진이라든가. 도그푸드 라든가, 내 손수건이라든가. 같이 잘 놀았던 테니스 볼이라든가. 내머리카락이라든가. 그리고 예금 통장이라든가 말이예요."
"예금 통장?"
"예, 그래요. 은행 예금 통장, 어렸을 때부터 저축한 것인데. 삼만 엔 정도는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개가 죽었을 때는, 이제는 돈이건 뭐건 다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묻어 버렸죠. 그리고 예금 통장을 묻어 버리는 행위로 내 슬픔을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했던 점도 틀림없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만일 화장터에 보냈더라면. 아마 함께 태워버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쪽이 훨씬 좋았었을 텐데."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눈 가장자리를 닦았다.
"그리고 일 년 정도는 별일 없이 지나갔어요. 아주 쓸쓸했고, 뭔가 마음속에 뻥하니 구멍이 뚫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아나갔어요. 그야그렇죠. 아무리 뭐라 해도 개가 죽었다고 해서 자살할 사람은 없는 걸. "
"결국, 그것은 나한테 있어서도 하나의 전환기였던 것 같아요. 즉. 뭐라고 하면 좋을까.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말수가 적은 소녀가 밖을 향해서 눈을 뜨게 되는 시기였던 셈이지요. 그런 식으로 쭉 살아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희미하게나마 알고는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개가 죽은것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 의미로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
나는 덱 체어 앞에서 몸을 쭉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이 몇 개인가 보였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질 것 같다.
"이봐요. 이런 얘기 지루하지 않아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옛날옛날 어느 곳에 말수 적은 소녀가 있었습니다라든가, 그런 얘기 말예요."
"뭐 그다지 지루하지 않습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다만 맥주가 마시고 싶을 뿐입니다. "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등밭이에 올려놓은 머리를 나한테도 돌렸다. 나와 그녀 사이에는 이십 센티미터 정도밖에 거리가 없었다. 그녀가 깊은 숨을 쉴때마다 덱 체어 안에서 모양 좋은 가슴이 상하로 흔들렸다. 나는 또 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참 아무 소리 안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하고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조금씩 바깥 세상에 섞여 들어갔어요. 물론 처음부터 잘돼 나간 건 아니고, 그렇지만 조금씩 친구도 생겼고, 학교에 가는것도 전같이 고통스럽지 않았죠. 하지만 그것이 개를 잃은 덕택인지. 아니면 개가 살아 있었어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죠.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은 알 수가 없었어요. "
"그런데, 열일곱이 되었을 때, 나는 조금 곤란한 일에 부딪치게 되었죠. 자세히 얘기하면 길어지지만, 어쨌든 나하고 제일 사이가 좋은 친구 이야기예요. 간단히 말해 버리면 그녀의 아버지가 뭔가 문제를 일으켜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래서 수업료를 치르지 못하게 되어서, 그녀가 나한테 그것을 털어 놓았어요. 우리 학교는 사립 여자 학교라서 제법 수업료도 비쌌고, 그리고 알겠죠, 여자 학교에서 여자아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털어 놓는다 하는 것은, 아 그래요라고 끝날 일이 아니잖아요. 그것은 별도로 한다 해도 나는 정말 딱하게 생각했고, 비록 얼마 안되더라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돈 같은 것은 없고, . . . . 그래서, 어떻게 했다고 생각해요?"
"예금 통장을 다시 꺼냈죠.?" 라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렸다.
"별 수 없었거든요. 나도 꽤 주저 했어요.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게 해야만 된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한쪽에 정말로 곤란에 처한 친구가 있고, 한쪽에 죽은 개가 있다. 죽은 개는 돈 따위는 필요가 없을 거거든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알 수 없었다. 나한테는 곤란한 친구도 없었고, 죽은 개도 없었다. 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 혼자서 파냈습니까?"
"예, 그래요, 혼자서 했어요. 집안 식구한텐 말을 못 하죠. 부모님은 내가 예금통장을 묻은 것도 몰랐고, 그리고 다시 파내려면 우선 그걸 묻어 버린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고, . . . 알죠?" 알겠다, 라고 나는 말했다.
"부모님이 외출하신 틈에 창고에서 삽을 들고 와서, 혼자서 팠어요. 비가 온 뒤였기 때문에 흙도 부드러웠고, 그렇게 시간은 안 걸렸죠. 글쎄. . . , 전부 해서 십오 분 정도였나. 그 정도 파니까 삽 끝이 나무 상자에 닿았죠. 나무 상자는 생각했던 것만큼 낡지는 않았어요. 왠지 일주일 전 막묻었다는 느낌이었어요. 묻은 것은 굉장히 옛날 같은 느낌이었지만. . . . . . . . , 이상하게 나무 색이 뿌연 게 말이죠. 막 묻은 것처럼 보였어요. 나는 일년이나 지났으면 새까맣게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 . . 조금 놀랐지요. 이런 건 정말 이상해. 아무래도 좋은일 같은데. 그런 사소한 예상 밖의 일은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있다니, 그리고 망치를 들고 와서 못을 빼고, . . . . 뚜껑을 열었어요. "
나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지만. 계속은 없었다. 그녀는 턱을 조금앞으로 내민 채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어요.?" 하고 나는 유도해 보았다.
"뚜껑을 열고, 예금통장을 꺼내고, 또 뚜껑을 덮고, 구멍을 메웠지요. "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을 지켰다. 막연한 침묵이 한참 이어졌다.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흐린 6월의 오후였고 비가 가끔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집안도 정원도 굉장히 . 조. 용. 했고, 오후 세 시를 지났을 뿐이었는데, 벌써 저녁 같았어요. 광선은 엷고, 희미했기 때문에. 거리가 잘 파악이 안되었어요. 뚜껑의 못을 하나씩 뽑고 있는 동안에 집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 것이 기억 나요. 벨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무번 정도 울렸어요. 스무 번이나 벨이 울렸다고요. 마치 누군가가 긴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는 것 같은 전화벨 소리였어요. 어딘가의 모퉁이에서 나타나서, 다른 모퉁이로 사라져 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
 침묵, 
 "뚜껑을 열자. 개의 머리가 보였죠. 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묻었을 때 개를 싼 스웨터가 미끄러졌는지. 앞다리하고 머리가 튀어나와 있었어요.  옆으로 누워서, 코와 이와 귀 같은 것이 보였죠. 그리고 사진이라든가, 테니스 볼이라든가 머리카락이라든가. . . . 그런 것. "
침묵,
"그때 내가 제일 놀란 것은. 내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왠지는 모르지만.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고요.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무서워했다면. 좀 더 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요. 특별히 무섭다는 게 아니더라도. 하다 못해 괴롭다든가. 슬프다든가, 그런 것이라도 좋았을텐데, 하지만. . . . . 아, 무. 것. 도. 없. 었. 어. 요. 아무 감정도 없었거든요. 마치 우체통에 가서 신문을 집어 들고 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정말로. 내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아요. 너무나 많은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틀림없이. 다만 냄새만이. 언제까지고 남아 있었어요. "
"냄새?"
"통장에 냄새가 배어 있었거든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 . . . 냄새야. 냄새. 그것을 손에 집어들자 손에도 냄새가 배어들었어요. 아무리 손을 씻어도 그 냄새가 없어지지 않았어요. 아무리 씻어도 안 됐다고요. 뼈까지 냄새가 스며들었거든요. 지금도. . . . 그래. . 그런 거예요. "
그녀는 오른손을 눈 높이로 올리고, 달빛에 그것을 비추었다.
"결국" 하고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것이 소용 없었어요.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났죠. 통장에는 너무 냄새가 배어 있어서, 은행에도 가져 가지 못하고, 태워 버렸지요.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 "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떤 식으로 감상을 말하면 좋을지 알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잠자코.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
"그녀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어요. 사실은 그렇게 돈 때문에 곤란했던 것은 아니었나 봐요. 여자아이라는 것은 그런거예요. . 자. 기. 처. 지. 를. 필. 요. 이. 상. 으. 로. 비. 극. 적. 으. 로. 생. 각. 하. 고, 싶. 어. 하. 거. 든. 요, 황당한 얘기죠. "
그녀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를 봤다.
"하지만 이제 그 얘기는 그만두죠. 이 얘기를 시작한 것은 당신이 먼저 꺼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얘기할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 얘기하면서 돌아다닐 만한 일도 아니고 말이죠. "
"얘기해 버리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개운합니까?"
"글쎄. "
라고 그녀는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편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해요. "
나는 아주 오랫동안 주저 했다. 몇번인가 . 그. 말. 을 입 밖에 내려고 하다가는, 다시 생각하고 그만 두었다. 그리고 또 주저했다. 이렇게 주저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 동안 쭉 덱 체어의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담배를 피울까 생각했지만, 담배 상자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손잡이 위에 턱을 괴고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
라고 나는 마음먹고 말을 꺼냈다.
"만일 기분이 나쁘시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잊어버려 주세요. 하지만 왠지 . . . . . 그렇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래도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
그녀는 턱을 괸 채 나를 보았다. 
 "괜찮아요. 말해 봐요. 만일 그것이 기분이 나쁜 일이라 해도 금방 잊기로 하죠. 당신도 금방 잊기로 하고 - 그럼 됐죠?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손 냄새를 맡게 해 주시겠어요?"
그녀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턱은 괸 채였다. 그리고 몇 초인가 눈을 감고, 눈두덩을 손가락으로 문댔다. 
"좋아요. "
하고 그녀가 말했다. 
"자. "
그리고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빼서,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잡고 . 마치 손금을 보는 것처럼 손바닥을 나를 향하게 했다. 그녀는 손에서 완전히 힘을 빼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손을 겹치고 있으니까. 내가 열여섯 살이었을때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는 몸을 굽히고, 그녀의 손바닥에 아주 살짝 코 끝을 대었다. 호텔에 비치되어 있는 비누 냄새가 났다. 나는 잠시 그녀 손의 무게를 확인하고 나서, 가만히 그것을 원피스 무릎 위에 되돌려 놓았다. 
"어땠어요?"
라고 그녀가 물었다. 
"비누 냄새밖에 나지 않습니다. "
하고 나는 말했다. 


3

그녀하고 헤어진 뒤 나는 방으로 돌아와, 걸 프렌드한테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신호 소리만이, 내 손안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울렸다. 그전과 똑같았다.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나의 몇백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의 전화벨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번이고 계속 울렸다. 그녀가 그 전화 앞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스물 다섯 번 벨을 울리고 나서 수화기를 올려 놓았다 밤바람이 창가의 얇은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파도 소리도 들려 왔다. 그리고 나는 수화기를 들고, 다시 한 번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