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의 시간이 적금통장 속에 처박혀 납작한 숫자로 인쇄되는 것 같은 예리한 반발과 상실감....


생의 조각 퍼즐은 곳곳에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생긴다. 오랜 뒤에 존재의 자리를 옮길 때, 먼지 수북한 장롱 밑자리에서 발견되는 지나간 시절의 증명사진처럼, 그 낯선 모습을 더러는 되찾기도 하겠지만.....


모든 중요한 기억들은 포르말린 같은 정적의 보자기에 감싸여서 존재한다. 한순간의 정적이란 영원의 작은 조각 같은 절대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은 상실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잃은 것들이 모두 그곳으로 가서 쌓이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잃은 것만이 우리가 소유한 진정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말하는 것만 같다. 요즘은 모든 일에 다음과 끝이 보여. 공연히 마음이 흔들리는 일 같은 건 이제 없을 것 같아. 때론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생이 어리석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다행인 것은, 어리석음에는 익숙해질 수 없지만 고통엔 익숙해질 수 있다는 거지.


뜨거운 건 재난이다. 하지만 미홍은 그렇게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다. 가능하면 자기애를 경멸하려고 노력하고 차갑고 무관심하고 권태에 이력이 붙도록 자기를 방치하는 초연함을 길러왔다 해도, 어차피 뜨거움은 메마름과 건조함의 극단에서 갑자기 치솟는 산불처럼 기습하는 것. 미홍은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의 심연을 해결할 의사가 없다. 오히려 생의 노하우란 선명한 분열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런 한순간에 상대에게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눈은 카메라의 검은 상자처럼 물체를 거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리고 색체와 형체의 모자이크 같은 점들은 후두엽의 회벽에 반사시켜 뇌로 읽어낸다고 한다. 그런 읽어냄은 우리가 인지하는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것을 한순간에 이미 파악한다고 한다. 미홍은 그 눈빛의 파동 속에서 무엇을 보아버렸던 것일까......


난 사랑을 원하지 않아. 혼란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아. 이대로 직업적 커리어를 굳히면서 조금 더 버티고 싶어. 삶이 허리를 조금만 굽혀 그 오목한 자리를 내어줄 때까지 오래 바라보고 싶어. 그러면 희망 없이 황량하게, 위안 없이 묵묵하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겨우 그 정도의 오목함에 기대어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조금만 더 이 공허한 거리를 혼자 걸어야 해.....


왜 타인에게 솔직해지겠는가? 하지만 왜 진짜 사랑을 할 수 없었을까.....함께 현실의 합리성을 설득시키고 그것을 넘어서서 삶까지도 사랑으로 장악하는, 신비한 경지로까지 나아갈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면 그녀 자신이 그런 상대가 못 되기 때문에?


마치 쇠가 녹슬 듯 우리는 현실 속에 노출되어 부식되고 산화되어 간다. 처음으로 삶을 느낀 그 순간부터, 살기 위해 숨을 쉬는 순간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간다. 우리의 살갗은 금속처럼 부서지고 녹슬고 삭고 굳고 무표정해진다. 아무도 새삼스럽게 비명을 내지르지는 않는다. 너무나 오래된 병. 골수에 새겨진 병이므로. 무슨 게임처럼 비명을 내지르는 자는 자신의 비명 소리와 함께 전력을 다해 붙들고 있던 벽에서 거꾸로 떨어져 버린다. 삶이란 점점 더 고급단계로 접어드는 외국어 같아서 결국 모든 사람은 낙오하여 소통할 수 없는 세계의 잊혀진 독방에서 홀로 죽어간다.
삶의 적은 삶이고, 무엇보다 현실성이라는 독이다. 하지만 삶이 허용한 것은 독으로 범벅된 현실의 수위 내에서이다. 넘어갈 수 없는, 넘어가버려서는 안 되는 저 마다의 긴장된 수위.....


사람들마다 방식이 다르겠지만 미홍에게 모르는 사람은 0점 이하에서 시작된다. 나쁜 기억들까지도 합쳐져서. 어떤 사람은 100점에서 시작해 알아가면서 점수를 깍아 간다지만, 미홍은 의외로 점수를 더해 주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낯선 사람에 대해 그녀는 관대하지 못하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저지를 만한 어리석은 일들은 이미 충분히 저질렀다. 하지만 역시 감정의 문제이다. 언제라도 예외적일 수 있고 다시 어리석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약속도 없고 그처럼 쉽게 헤어져버렸다고 해도, 한 시절의 지속만으로 영원성은 가능하다. Y는 미홍의 영원성의 페이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내부는 실은 외부와 마찬가지로 상피 조직으로 봉인된 외부이다. 우리는 자신 속에 또 한 겹의 외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부라고 할 만한 것은 우리 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가현은 자신의 공허하고 단정한 모범성이 역겨웠다. 역겨울 뿐만 아니라 관절이 아프도록 후회스럽다. 자신의 몸이 꽉 잠겨버린 채 열쇠를 잃어버린 아주 작은 자물쇠같이, 묶인 양손은 머리에 인 포로처럼 답답하다. 너무나 안이했기에, 그 벌로 다시는, 평생이 다 흘러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번 어긋난 사랑은 우리들 내부의 암흑 속에 유배되어 한없이 유예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요. 얼굴에 탈을 쓰고 잠든 영혼처럼. 내가 나의 얼굴을 잃어 버렸으니까요.


삶이란 환멸을 겪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랑도 꿈도 시간도, 일조차도 모든 것이 환멸로 귀결되고 만다. 그것은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환멸을 쌓으면서, 미홍은 삶이 매복해 놓은 암초와 같은 환상으로부터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평화와 무위.....


"많은 사람이 사랑을 원하지만 실은 저마다 사랑할 수 있는 정량이 달라요.. 당신은 지금 굳게 닫혀 있어요. 시간만 흘러갈 뿐 생은 시작되지 않아요.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의 상태라고 말하지만, 아니예요. 사랑은 지식이고 무한히 생동하는 방법이고 영혼의 상상력을 삶 속에서 서로에게 실현하는 변태죠. 구체적으로 알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어요."


"사랑을 극복하면 사랑은 사라질까요? 더 심화될까요?"
어느 날 미홍이 말했다.
"더 심화되겠지."
진성이 대답했다.
"하지만 사랑을 극복하면 다른 모든 극복과 마찬가지로 점점 느낄 수 없어지고 유예되는 것이지. 그러다가 너무 깊어지면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아. 제 속에 있겠지만 실종되어 버리는 거야. 극복이란 그런거야. 왜 사랑을 극복해야 하지?"
미홍은 자신의 위태로움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어떻게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거나, 거부할 것인가. 더구나 극복하려 하다니.
"사랑은 집착하는 거야. 두려움 없이 집착을 키우고 만에 한 잃어야 할 때는 태산 같은 집착의 고통에 빠질까 봐 두려워 하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난 지금과 같은 사랑을 원해. 마음껏 사랑하는 사랑을."


아주 많은 사랑도 아주 많은 부처럼 존재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미홍은 그 완벽한 사랑의 느낌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상황 또한 갑작스러운 흩어짐 못지않게 두려워한다. 그런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 이상, 아주 나빠질 일은 없다. 적어도 그처럼 완벽에 가까운 사랑이 시작된 이상.....


"슬픔이라는 거.....참 이상해.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그런 경험.....요즘 난 허방다리를 딛는 그런 슬픔에 자주 빠져. 책을 읽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아침에 눈을 떳을 때도,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다가도, 문득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한 사람의 생에서도 어떤 시기에 얻었다가 어떤 시기에 잃기도 하고, 일찌감치 왔다가 흔적 없이 가버리기도 하고 뒤늦게 느리게 오기도 하고, 생이 그런 것처럼, 어떤 조건이 완벽하게 모여들었다가도 또 서서히 흩어져가는 것처럼......사람들마다 삶의 시기가 다른 것처럼.


갖지 못할 것이다.....아무리 원해도 이 사랑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거리에 떠도는 바람처럼 집을 나와 낯선 거리를 걸을 동안, 이렇게 낯선 해변에 앉아 있는 동안 잠시 갖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을 시간으로 따져보면 불과 3초라고 했던가. 삶의 매 순간을 과거로 흘러가는 동시성 속에서 순간 순간 정지된 현재로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두 겹의 인식처럼, 두 겹의 순간처럼 신비로웠다.


세상엔 사랑을 희롱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사랑을 멸시하고 매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근본적인 애정 결핍이나 배반과 상처와 환멸, 의심과 피폐한 기다림과 소외와 생활고, 싸구려 불량품같이 넘치는 유사 사랑들, 지쳐버린 마음과 학대..... 그러나 갖가지 신발을 시시각각 바꾸어 신는 그런 다족류 같은 사람들조차 긴 복도를 걸을 때나 홀로 계단을 오를 때, 길모퉁이를 돌 때나 밥숟가락을 들 때, 잠들기 위해 반듯하게 등을 펴고 누울 때 언 뜻 자신이 지고한 단 하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내내 절룩거리며 더러운 발로 누추하게 장바닥을 헤맨 사람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 속에 묻혀 있는 빛을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두려움 없이 이 부조리한 삶 속에 드러내는 행위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향해 가면서 동시에 자신의 궁극에 이르는 길이에요. 나는 이 사랑을 등을 뚫고 나갈 긴 칼처럼 내 몸 깊숙이 받아들여요. 사랑이 무엇을 요구할지 알고 있으니까요. 생명을 주고 생명을 되찾을 거예요. 지금 이 시간, 어디엔가 한 여자가 데도록 뜨거운 것을 머리 위에 이고 집 안을 서성이며 울고 있어요. 나무들조차 줄기에 가지를 삽입하고. 아무도 모를 땅 밑에서 서로의 혀를 당기고 수액을 섞으며 관능의 황홀에 빠져 있는 이 무심한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