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위하여>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내년 여름엔 이모님이 시집간 섬으로 피서를 가자고 지금부터 벼르지만 난 안 가고 싶다. 나의 그리움을 위해. 그 대신 택배로 동생이 분홍빛 도미를 부쳐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p40
<그 남자네 집>
주인 남자도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다 듣고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한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나에게 그 소리가 박수보다 더 적절한 찬사로 들렸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 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p72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 p78
<마흔아홉 살>
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
p107
그 여자는 요새 부쩍 더해진 식탐이 걷잡을 수 없이 도지는 걸 느꼈다. 조금씩 같이 먹을 줄 알았는데 김밥과 순대는 거의 그냥 남아 있었다. 그 여자는 그 소박하고도 느글느글한 것들을 짐승 같은 식욕으로 먹어치우고 인삼차를 한 잔 더 시켰다. 금년부터 치수를 28로 늘려 입었는데도 바지허리는 만복을 이기지 못해 짤룩 하게 뱃살과 허릿살을 갈라놓고 있었다. 명치가 등에 붙을 듯이 날씬하다가도 생명만 잉태했다 하면 보름달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던 배는 이제 두꺼운 비계 층으로 낙타 등처럼 확실한 두 개의 구릉을 이루고 있었다. 허리의 후크를 풀자 역겨운 트림이 올라왔다. 자신이 비곗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면서 메마른 설움이 복받쳤다.
p108
<후남아, 밥 먹어라>
그는 농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그를 농담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p123
후남이는 알맞게 부숭부숭하고 따끈한 아랫목에 편안히 다리 뻗고 누웠다. 그리고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았다. 밥 뜸 드는 냄새와 연기 냄새와 흙냄새가 어우러진 기막힌 냄새가 콧구멍뿐 아니라 온몸의 갈라진 틈새로 쾌적하게 스며들었다. 잠깐만, 어머니가 후남아 밥 먹어라, 다시 한 번 불러줄 때까지 잠깐만 눈 붙이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지리라.
p141
<거저나 마찬가지>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지만 날 저물어서도 다리 뻗고 잘 잠자리가 없는 설움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 먹을 것은 몇 푼만 있어도 해결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많은 세상이고, 구걸을 하거나 아닌 말로 훔쳐 먹을 수도 있다. 잠자리는 얼굴을 안다고, 방이 많다고 내주지 않는다. 가족이나 내준다. 가족 사이로는 비집고 들어가 칼잠을 자도 푸근하다. 그게 바로 가족이 좋다는 의미인 것이다. 엄마의 뱃속도 잠자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 세상이 따습고 포근하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것도 잠자리이다. 가족이란 말이 주는 무조건적인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도 아마 이런 이 세상 최초의 감촉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p166
그러다가 전세 든 사람에게 이렇게 일을 시켜도 되냐고 묻는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괜ㅊ낳아. 괜찮다니까. 거저나 마찬가지로 차지하고 있는 집이니까. 나는 언니가 뻔질나게 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거저나 마찬가지란 소리도 그만큼 자주 듣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말에 길들게 되었다. 그런 게 체념이라는 것 일 것이다. 언니가 남편까지 데려오기 시작하면서 내 호칭은 별장지기로 바뀌었다.
p176
나는 비로소 ‘거저나 마찬가지’를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저면 거저고 아니면 아니지 마찬가지란 무엇일까. 이 집을 정말 거저로 빌려준 거라면 나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전세금이 살아 있어 내가 전세를 든 거라면 당연히 전세 들어 있는 동안의 내 프라이버시는 보장돼야 한다.
p177
<촛불 밝힌 식탁>,
나는 마누라를 아끼고 사랑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누가 먼저 저승에 가면 거기서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세상 뜨고 싶다. 왠지 요새 자꾸 그런 소원이 절실해진다.
p187
"나도 폐 될까 봐 지척에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늙은이 일은 모르는 일, 더군다나 우리 두 늙은이 중 하나가 죽으면 너희가 부담을 안 느낄래야 안 느낄 수 없게 될 터. 매일 문안은 못할지언정 불빛으로라도 오늘도 저 늙은이들이 살아 있구나. 확인 하고픈 게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냐. 우리도 너희 집 창문에 불이 켜지면 내 새끼들이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 거 아니냐. 서로 불빛을 확인 할 수 있는 거리에 산다는 것. 바쁜 자식과 할 일 없는 늙은이끼리 이보다 더 좋은 소통의 방법이 없을 것 같구나.“
p191
<대범한 밥상>
사람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이 저절로 돼가는 거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p219
디카 들고 다니면서 앞산의 아기 궁둥이처럼 몽실몽실 부드러운 신록부터 자지러지게 붉은 단풍까지, 마당의 일년초가 피고 지는 모습, 숨어 사는 작은 들꽃들, 아이들하고 장난치던 시냇물 속의 조약돌들, 무당벌레, 풍뎅이, 지렁이, 매미 껍질, 뱀 껍질, 아이들하고 같이 보면서 가슴을 울렁거린 추억이 있는 것만 보면 닥치는 대로 디카로 찍어서 즉시즉시 아이들에게 보내곤 하니까. 이 할미는 잊어도 너희들을 키운 이 고향 산천은 잊지 말라고, 주접 떨고 싶어서 여길 못 떠나나 봐.
p233
<친절한 복희씨>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죽기도 억울하고, 누굴 죽일 용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너 죽고 나 죽기를 선택한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죽음의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 강을 향해 힘껏 던진다. 그 갑은 너무 작아서 허공에 어떤 선을 그었는지, 한강에 무슨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내가 죽는다 해도 이 세상엔 그만한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허공에서 치마 두른 한 여자가 한 남자의 깍짓동만 한 허리를 껴안고 일단 하늘 높이 비상해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나서 곧장 강물로 추락하는 환(幻)을, 인생 절정의 순간이 이러리라 싶게 터질 듯 한 환희로 지켜본다.
p264
<그래도 해피 엔드>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만 활짝 웃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축복이 되었듯이 나도 그에게 축복이 되길 바라면서.
p280
이 땅의 어머니를 대변했던 박완서를 기억하다
박완서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육신이란 여행 가방’을 여기에 둔 채, 다시는 놀러오지 않으신단다. 생전에 고인은 금쪽같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으셨다. 그러고도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건, 곧 뒤따라가게 될 테고, 가면 만날 걸, 하는 희망 때문이라 하셨다. 만나서 제일 먼저 하고픈 건 포옹도 오열도 아니라셨다. 왜 먼저 갔느냐, 손으로 찰싹, 때려주고 싶다 하셨다. 그것은 당신 손바닥의 아픔으로 자식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한 어미의 애달픈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랬다. 그녀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 이전에 사람의 육체를 낳은 한 사람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늘 이 땅의 어머니를, 여성을, 인간을 대변해왔다. 그것이 그녀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한 번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이듯, 박완서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작가였다.
이 책은 그런 고인의 아홉 편 소설을 묶은 단편집이다.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이 책이 재미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이 단편집을 읽고 있으면, 긴긴 겨울밤, 할머니의 멱둥구미를 맛보는 듯 오감이 달달한 그리움에 담뿍 젖는다. 박완서 할머니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여서 그리움은 다채롭게도 웅숭깊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인생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인생에 달관한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깊은 웃음과 높은 지혜가 그득하다. 그래서 슬프다. 우리는 이런 다정한 할머니를 잃은 것이다.
그녀를 잃어버린 우리 문단은 지금, 식음을 전폐할 만한 슬픔으로 황망하다. 그러나 저물도록 울다 지칠 우리는 언젠가, 다시금 한술 밥을 뜨고 곤한 단잠에 빠지게 될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작금의 이 슬픔이 또렷한 진실임에도, 살아남은 자의 나날은 감정의 모순을 바퀴 삼아 굴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인데도 배가 고프니 밥술을 뜨게 되더라는 고인의 서글픈 고백이 떠오른다. 맞다. 오늘의 슬픔은 시나브로 어제로 옅어져 가고, 우리는 다시 내일이었던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그건 서운하지만 냉엄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땅의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우리는 알고 있다. 살아 버팀이 비루해지는 순간은 번번이 찾아오고, 그때마다 우리는 또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박완서라는 이름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고개를 주억거리고 눈물을 훔치다가 실실 웃기도 하며, 다시금 남아 있는 날들을 견디어 가리라는 것을. 그것이 소설이라는 인간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 박완서를 영원히 현역 작가로 살게 하는 선명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이 땅의 독자들이여. 우리, 진하게 슬퍼하다 진행형으로 그리워하자. 아아, 님은 갔지마는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아니한 고로......
by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