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인생이란 시계가 증가하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긴 이 성찰은 - 성찰이랄 만한 것도 못 되지만 -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 인생의, 개인적인 측면에서 생겨난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러니까 전혀 보편성이 있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쯤 전,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이야기인데, 우리 집에는 시계란 이름이 붙어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가난했던 탓도 있지만, 시계 따위가 꼭 있었으면 하고 바리지도 않았다. 그럴만한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날이 밝으면 고양이는 배가 고프다고 말 그대로 우리를 두둘겨 깨웠고, 잠이 오면 적당한 시간에 잤다. 거리에 나가면 도처에 전광 시계가 있어, 불편을 느낄 건덕지가 없었다. 집에는 라디오도 TV도 전화도 업으니까 신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오백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담배 가게에 가서 하이라이트를 한갑 사고, 그 길에 한쪽 방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힐끔 들여다 보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그레도 시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별로 생각지 않았다.
지금은 손목 시계니 탁상 시계니 오디오 타이머니 하고 전부 합하면, 열여섯 개나 되는 시계가 집에 있다. 무려 열여섯 개다. 시계 열여섯 개가 내 집안에서 제각기 때를 새기고 있는 것이다. 십오 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거짓말 같은 생활이다. 열여섯 개중 반 정도는 어딘가에서 받아온 것이다. 무슨 상을 받았을 때의 기념품이든지, 짤막한 원고의 사례금 대신이든지, 개인적인 선물이든지, 그런 류이다. 그런 것들이 필립 K, 딕크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종류의 엔트로피의 증대처럼 차츰차츰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온 집이 시계의 소굴 같이 되어 버렸다.
이따금 기분이 내키면 그 열여섯 개나 되는 시계의 시간을 하나하나 점검해 볼 때가 있다. 저쪽으로 가서는 바늘을 돌려 시간을 늦추고, 이쪽에 와서는 앞당기고 하노라면, 인생이란 것이 웬지 불가사이하게 여겨진다. 시계 따위 없이도, 그닥 불편할게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