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 시절부터 공부를 싫어하여 당연히 성적도 시원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영문 일역' 참고서를 읽은 것 만큼은 예외적으로 좋아했다.
'영문 일역' 참고서의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는가, 그것은 거기에 예문이 잔뜩 실려 있는 점이다. 나는 그 예문을 하나하나 읽거나 기억하는 것만으로 싫증을 내지 않고 제법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 원서를 읽을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영어교육에 무슨 불만을 토로할 생각은 없지만, 전치사니 동사 변화니 아무리 정확하게 머리에 처넣는다 해도 책은 읽을 수 없다.
그 무렵에 외운 예문을 지금도 몇 가지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머셋 모옴의 '그어떤 면도기에도 철학이있다.' 란 구절도 그 하나이다. 그 앞뒤로 꽤 긴 문장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다 잊어버렸다., 요컨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매일 계속하다보면, 거기에서 저절로 철학이 생겨난다는 요지의 문장이다. 여자에 적합하게 고치자면 '립스틱에도 철학이 있다' 는 얘기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모옴의 이 문장을 읽고 '으음,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하고 꽤나순진하게 감동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카페의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 어떤 언더록에도 철학이 있다' 고 생각하면서 매일매일 팔년 간 언더록을 만들었다.
한데, 정말 언더록에 철학이 있을까. 그야 틀림없이 있다. 물론 세상에는 맛있는 언더록과 맛없는 언더록 쪽엔 확실히 철학이 있다.
그까짓 언더록, 얼음에다 위스키를 갖다 붓기만 하면 되잖는가 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얼음을 깨는 각도 하나에 따라서도 언도록의 품위나 맛이 영 달라진다. 큰 얼음이냐 조그만 얼음이냐에 따라서도 그 녹는 양태가 다르다. 큰 얼음만 상용하면 투박하여 멋이 없고, 그렇다고 작은 얼음이 너무 많으면 금방 녹아 물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대중소의 얼음을 조화롭게 섞어, 거기에다 위스키를 따른다. 그러면 위스키가 잔 속에서 호박색의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단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된다.그런 식으로 터득된 사소한 철학이란 나름대로 언젠가는 제법 쓸모 있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