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대개 백화점에서 쇼핑하기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어찌 감출 수 있느냐, 나도 백화점을 꽤 좋아한다. 동물원을 예외로 하면 백화점만큼 신나게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입장료도 필요없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백화점이 무려 다섯 군데나 있다. 물론 교외에 있는 주택 도시 니까 도심처럼 규모가 크거나 물건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에서 걸으면 한 십 분 쯤 되는 곳에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는 것은 제법 신나는 일이라 틈만 생기면 -대체로 매일 틈이 있다- 역 앞까지 걸어 나가 백화점 산책을 즐긴다.
백화점 산책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는 뭐니뭐니해도 평일의 오전 중이다, 덜 붐비기도 하고, 공기도 깨끗하고, 모든 것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란 분위기로 말끔하게 정렬 하고있다. 개점 직후면 종업원들의 깍듯한 인사를 받을수도 있다.
한산한 백화점은 어딘가 모르게 식물원과 비슷하다. 어슬렁 어슬렁 걸으면서 상품을 보고 있노라면, '오, 슬슬 수국에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는 걸'이라든가 '목련꽃도 이제 싹지고 말았는데'하고 미묘한 계절 감각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매장 내의 장식물들도 시원스러워지고, 섬머 드레스나 수영복, 서프보드, 끈없는 브래지어(그런 걸 보고 있으면 좀 곤란하지만)가 눈에 띄어 '드디어 여름이로구나' 싶은 실감이 난다. 에어컨이 내뿜는 서늘한 공기를 처음으로 만끽하는 것도 여름 시즌이 시작된 백화점에서이다.
가을 낙엽식으로 물든 백화점도 털 스웨터 냄새가 물씬 풍겨 정취가 있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려고 북적대는 고양감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리고 백화점의 옥상도 꽤 재미있다. 청명한 날에 벤치에 앉아, 어린아이들과 함께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제비우스'게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가 내리는 날에 옥상위를 산책하는 것도 그 나름으로 분위기가 있다.
최근에는 그럴 기회가 없어 별로 못하지만, 옛날에는 비가 내리면 곧잘 여자와 둘이서 백화점 옥상엘 갔다. 옥외 테이블과 목마는 비에 젖어 있고, 주변의 풍경은 비안개가 서려 뽀얗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은 전혀 없다. 고작해야 애완동물 매장에서 열대어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수족관 속을 휘젓고 다닐 뿐이다. 백화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발굴해야 할 가능성이 무수하게 남겨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