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지를 일컬어 미국식으로 '팬티' 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팬티' 밑에 입는 종래의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 팬티는 뭐라 불러야 좋을지 알쏭달쏭 할 때가 있다. 영어라면 언더 팬티가 되겠지만, 그런 명칭이 확실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은 일본에서는 바깥 팬티와 속 팬티의 혼란 상황이 점점 더 그 혼미함의 도를 더해 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언더 팬티' 쪽을 모으는게 -물론 남성용 입니다. - 일종의 취미이다. 가끔씩 백화점에 가서는 '저걸로 할까. 이걸로 할까' 하고 혼자서 망설여가며, 대여섯 장을 한꺼번에 사들인다. 덕분에 서랍장 안에는 상당한 양의 팬티가 쌓여 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 (줄여서 소확행 )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혼자서 생활하는 독신자를 제외하면 자기의 팬티를 자기가 사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또 런닝 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 막 새로 산 정결한 냄새가 퐁퐁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그 기분이란 역시 소확행의 하나이다. 하기야 런닝 셔츠 쪽은 는 같은 상표의 같은 물건을 일괄하여 사니까, 팬티의 경우와 달리 골라서 사는 즐거움은 없다.
그런데 남자의 경우 속옷이라는 장르는 기껏해야 팬티와 런닝 셔츠에서 그만이다. 여성의 속옷이 점령하고 있는 광대한 영역에 비하면, 마치 집 장사가 지어 판 집의 앞뜰처럼 좁고 간결하다. 오로지 팬티와 런닝 뿐이니 말이다.
속옷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가끔은 남자로 태어나길 다행이다 싶은 감회에 젖는다. 만약 내가 지금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여자로 태어났다면, 속옷을 넣는 서랍이 하나나 둘 정도로는 도저히 모자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