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하철을 탔는데 바로 맞은 편 자리에 모녀지간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여자 둘이 앉아 있었다. 양쪽 다 무릎 위에다 같은 백화점의 쇼핑 백을 올려 놓았고, 얼굴도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심심한 차에 '모녀지간인 만큼 과연 얼굴이 많이 닮았군. 분명 저 딸도 나이가 들면 자기 엄마처럼 아줌마가 되겠지'하고 나 혼자 생각하고 혼자 끄덕거려가며 힐끔힐끔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지하철이 아카사카 미쯔케 역에 멈추자 나이가 많은 여자 쪽이 아무 말 없이 혼자 싹 내리고 만 것이다. 요컨대 그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같이 앉아 있었을 뿐인 남남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교적 이런 착각을 잘한다. 판단 기능에 결함이 있는데다 - 아마 결함이 있을 것이다 - 상상력이 점점 앞질러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번 모녀지간이라고 믿고 나면, 그 두 여성의 연관성의 사실이야 어찌 됐든 혼자서 줄달음치는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그 두 여자는 진짜 모녀지간이었을 거라는 가능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무슨 사연이 있어 그 두 사람만이 자신들이 실은 모녀지간이란 걸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가령 그 젊은 딸은 갓난 아기였을 때 - 예를 들면 동경 올림픽이 있던 해에 - 숲속에서 어미 원숭이에게 유괴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딸기를 사 가지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갓난 아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조그만 털 모자와 원숭이 털만 한 오라기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십이 년이 지났다. 딸은 여덟 살까지는 원숭이의 손에서 자랐지만, 그 후에는 마을로 나와 촌장의 집에서 살며,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하였다. 오늘은 긴자의 마쓰야 백화점에 후추를 담을 용기를 사러 나온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쪽은 자기 딸이 죽었다고 믿고 있으므로,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그 사람이 자기 딸인 줄을 알아 차리지 못한다. 어미 원숭이가 그녀들의 머리 위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