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내릴지도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 형태가 없는 마음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나 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춥니다.‘
p108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총명하고 강하시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앞으로 선생님은 서서히 죽음을 향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많은 힘을 기울이면 잘 죽을 수가 없게 되요. 조금씩 방향을 바꿔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똑같거든요.“
“당신은 잘 죽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나요?”
“전 이미 절반은 죽어 있습니다. 선생님” 하고 니밋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했다.
p132


"그는 제게 언젠가 한 번 북극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북극곰이 얼마나 고독한 동물인가 하는 이야기예요. 그들은 1년에 한 번만 교미를 합니다. 1년에 딱 한 번만이요. 부부와 같은 관계는 그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수컷 북극곰 한 마리와 암컷 북극곰 한 마리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거기서 교미가 이루어져요. 그다지 긴 교미는 아닙니다. 행위가 끝나면, 수컷은 무언가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처럼 암컷의 몸에서 물러선 다음 교미를 한 현장에서 도망칩니다. 글자 그대로 쏜살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거죠. 그리고 다음 1년 동안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상호간의 의사 소통이라는 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일도 없어요. 그것이 북극곰 이야기예요. 아무튼 그게 제 주인이 제게 이야기해 준 겁니다."
"어쩐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는 군요."하고 사쓰키는 말했다.
"확실히 이상한 이야깁니다"하고 니밋은 고지식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나는 주인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북극곰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겁니까, 라고요. 그랬더니 주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제게 되묻더군요. ‘니밋, 그럼 우리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나?’ 하고요.“
p136


쥰페이는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돌아와서 그대로 일상생활에 빠져 들었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았고, 신문도 제대로 펴보지 않았다. 사람들과 얘기하다 화제가 지진에 미치면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아득한 옛적에 땅 속에 묻어 버린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래로 그는 그 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일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비쳐진 황폐한 풍경은 그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던 상처의 흔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거대하고 치명적인 재해는 그의 생활 양상을 조용히, 그러면서도 지금 서 있는 지반 모두를 바꾸어 버린 것 같았다. 쥰페이는 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깊은 고독감을 느꼈다. 삶의 뿌리라고 할 만한 게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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