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실패하는 원인은 대부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이다. ‘자아, 열심히 하자!’라고 결심을 했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해, 귀찮은데 그만 두자’라고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기분 나빴던 일을 잊어버리고 싶은데, 마음이 제멋대로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하루였어!’라며 몇 번이나 그 일을 되새기곤 한다. 또 10분만 쉴 작정이었는데, 마음이 제멋대로 ‘이대로 한 시간만 더 놀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제멋대로이고 우리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즉,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하는 생각의 방해를 받아 마음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굴며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을 멈출 수만 있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도 담담하고 은은한 행복감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더 강한 전기 자극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뇌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풍조마저 있다. 하지만 뇌라는 정보 처리 장치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극을 얻기 위해서라면, 곤란한 생각조차 멈추지 않는 깡패 같은 성향이 있다. 보통 우리가 아무리 생각하기를 멈추려고 해도 뇌 속의 수다쟁이는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자아, 생각하기를 멈추자… 뭐? 이미 생각해 버리고 말았잖아! 맙소사! 생각을 멈추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것만 어렵니? 넌 어제 요리도 망쳤잖아… 그러고 보니 슬슬 배가 고픈데…’ 이처럼 아무리 생각을 멈추려 해도 마음을 피곤하게 만드는 잡음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평소에 얼마나 생각의 흐름을 자각하지 못했는지를 알게 된다. 생각을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맘대로 생각을 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이번엔 정말 생각을 멈추자’ 하고 생각해 보아도, 또 다른 생각이 더 늘어날 뿐이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을 멈춰야 한다고 결심해도, 실제로 ‘생각 버리기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실행하기란 어렵다.

p5-6

 

 

사람은 하루 종일 생각을 하며 지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사고하는 것은 인간의 훌륭한 특질이고,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각하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이 정말로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많이 생각이 많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해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병’이 되기도 하는 인간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서툴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이 들어주기를 원하는데, 상대가 전혀 듣고 있지 않아 화가 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말로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것일까? 만일 일부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당신 이야기는 듣지 않겠어’라고 마음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들어주자’라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상대가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고민을 잘 들어줘서 상대의 신뢰를 얻어야 되겠다든지, 이해하는 척을 해서 멋진 사람이 되겠다든지… 여러 가지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나는 평소 좌선을 하며 스스로의 의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오랫동안 계속 들여다보는 일을 해왔다. 우리의 의식, 즉 마음은 아주 빠른 속도로 계속 움직인다. 마음은 미세한 단위로만 측정할 수 있는 초고속으로 이동하며 정보 처리를 한다. 그리고 정말 짧은 순간에 시신경으로 가서 ‘보는’ 행위를 하고, 청신경에 가서 ‘듣는’ 행위를 한다. 정말 짧은 한 순간에 ‘듣다 → 보다 → 듣다 → 생각하다 → 듣다 → 보다 → 듣다’와 같은 정보처리가 행해진다. 원래는 듣기만 할 작정이었는데, 어느새 관계없는 정보들이 뒤섞여 들어온다.

p14-15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에 대해 ‘좀 더, 좀 더’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를 탐욕이라 부른다. 누군가에게서 마음에도 없는 입에 발린 칭찬을 들으면, ‘좀 더 듣고 싶다, 좀 더 듣고 싶다’라고 자꾸 원하게 되는 마음의 번뇌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라고 반발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는 분노이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불쾌해지면, ‘이런 말은 듣기 싫다’라고 불쾌한 대상을 밀어내고 배제시키려는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이런 경우의 분노는 일상에서 우리가 말하는 분노보다는 그 의미가 폭 넓다. 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도,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긴장하는 것도 원인은 모두 하나이다. 바로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연료가 되어 타오르는 충동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반발의 힘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분노라 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이든 일단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분노의 어두운 번뇌 에너지가 증폭되어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기 쉬운 인격이 만들어진다.

p19-20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 과거의 데이터에 완전히 지배되어 새로운 현실을 전혀 인식 할 수 없기 때문에 손자를 보고도 아들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눈앞에 일어나는 일은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에 별 볼일 없게 느끼고, 부정적인 생각이 주는 자극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p23

 

 

우리의 일상에는 변명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가족, 친구, 연인을 위해 솜씨를 다해 요리를 만들었다고 치자. 음식을 다 만든 뒤에 맛을 보았더니 조금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미각을 통해 입력된 싱겁다는 자극에 휘둘린 나머지 불안하고 초조해지면, 생각이 혼란스러워져 반사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된다.

“오늘 요리, 간 보는 것을 깜박했어요. 맛이 조금 싱거울지 몰라요. 미안해요, 오늘 좀 바빠서 허둥지둥했어요.”

이런 말 뒤에 숨겨진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차분히 간을 좀 봤더라면, 훨씬 맛있었을 텐데..... 천천히 시간을 들여 요리할 수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텐데.....’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독백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 변명이라면 아직 들어줄 만하고, 어딘지 귀여운 구석도 있다.

하지만 한번 변명을 시작하면, 변명할 때마다 발생하는 자극이 습관이 되어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게 된다. 먹는 사람이 새로운 접시에 손을 댈 대마다 “맛이 좀 싱겁지? 오늘 요린 실패야.”하고 말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 변명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아니, 괜찮아, 그렇게 싱겁지 않아.” 혹은 “응, 그래도 맛있어.”라는 등 일일이 대꾸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 피곤하게 된다. 결국 요리를 먹는 사람에게까지 부담을 지우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상대가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겠지만, 정말 맛이 너무 싱겁다고 생각하는 경우라면, 매번 “아니, 그다지 싱겁지 않아.”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무언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적절히 대꾸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괴롭고, 변명하는 자신도 핑계를 늘어놓을 때마다 괴로운 기분이 든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굳이 기회만 있으면 변명을 하려드는 것일까.

변명이 고질적인 습관이 된 이유는 그것이 주는 괴로운 자극에 마음이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괴로운 자극과 불쾌한 자극을 받을 때 두근거리는 느낌을 ‘기분 좋다’로 착각해버리고, 정말 불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쾌락으로 바꾸어 받아들인다. 이처럼 마음은 변명이 주는 단기적인 기분 좋음에 속아 점점 더 많은 변명을 되풀이하며 계속해서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다.

p51-53

 

 

왜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일까? 그것은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공복상태에서 먹으면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배가 고프기도 전에 과자를 먹거나, 식사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밥을 먹는다. 물론 먹는 목적 자체가 공복감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닌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맛있는 것을 맛보기 위해서이거나 먹는 동안은 괴로운 일을 잊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배불리 먹은 뒤에는 혈액이 위쪽으로 집중하고 포만감도 크기 때문에 깊은 사고를 하기 힘들어진다. 고통에 대해서도 둔감해지기 때문에 배가 아주 부르거나 그 이상이 될 때까지 먹게 된다. 그리고 항상 이런 식으로 과식을 하다보면 어느새 몸이 뚱뚱해지고 다이어트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씬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질수록 다이어트를 실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스트레스를 잊어보려고 많이 먹게 된 거이고, 많이 먹다보니 뚱뚱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잊으며 지냈는데,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어느 틈에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먹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몸에 뱄는데, 막상 ‘먹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면, 쓸데없이 새로운 스트레스만 늘어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먹게 된다. 문제는 의식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이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머릿속에선 먹는 것에 대한 생각만 들끓는다. 원래 다이어트를 하려면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늘 ‘먹으면 안 돼, 먹으면 안 돼!’하고 먹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 뇌는 무언가를 하면 안 된다고 자꾸 생각할수록, 그 일에 더 집착하고 더 큰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우리 마음에 격렬하게 스며든다. 따라서 어느 순간 고삐가 느슨해지면, 지금까지 부정적으로 집착하고 있던 먹는 것에 대한 폭발적인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어진다. 결국 부정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뇌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더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p144-146

 

 

물건을 늘려가며 집착한다는 것은 눈앞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안개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눈앞에 안개가 끼면,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적합한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은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좋은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주면 좋은가 등의 순간적인 판단이 둔해진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물건을 수집하고 돈을 모으는 데 열중하는 것일까? 일단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보다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면 마음도 편해진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것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부족한 느낌이 들어 괴롭다는 의미이다. 이런 괴로움은 왠지 불행하고 무언가 모자란 듯한 느낌을 주어 ‘그것을 꼭 가져야지!’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으면, 일단은 괴로움이 사려져 기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것을 소유하지 못했던 때로 다시 돌아가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하는 새로운 괴로움이 생겨난다. 또 그에 이어 ‘그럼, 안 돼지!’라는 강한 반발심이 생기면서 마음을 크게 자극한다. 이제 마음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의식하는 단계에 이른다. 따라서 스스로 깨닫든 그렇지 못하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뒤에는 마음에 괴로움이 새겨지고 늘 강한 안개가 발생하게 된다. 잃어버리지 말고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새롭고 더욱 강렬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욕망의 업이 쌓여간다. 욕망의 업이 쌓이는 동안, 단순히 물욕만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다른 욕망들로 변해서 발전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커지면,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자신의 욕망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만의 욕망으로 변해서 나타난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혹은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나를 이렇게 대해 달라, 나를 대할 땐 이러이러한 태도를 갖추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무분별하게 소유하는 물질을 늘려 가면, 반드시 인격도 나빠진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늘려 안정시키기 위해서 소유하는 물질을 늘리려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인격이 점점 불안정 상태가 된다. 일반적으로 호화로운 대저택에 살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사생활이 순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마음에 항상 괴로움이 있고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p160-162

 

 

소유물을 줄이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속을 들여다보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

p164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도 결국은 버리는 행위이다. 즉,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을 가장 뜻있는 일을 위해 버리는 것이다.

돈이란 자아를 아주 강하게 자극한다. 나는 이만큼 돈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만큼 마음이 편하고, 이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더 많은 돈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돈은 자기가 지배하는 영역의 촉수를 키울 수 있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돈만큼 자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도 드물다.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