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혜경이(한동네에 사는 화가)가 냉이를 가져왔다. 혜경이는 덕소나 양평 쪽의 재래시장을 찾아다니길 좋아한다. 그런 데서 산 시골냄새 나는 먹을 거나 입을 것을 자랑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는 걸 취미처럼 즐김을 알기 때문에 으레 사온 거려니 했는데 동네 들판에서 손수 캔 거라고 했다. 그럼 들판 양지쪽에 파릇파릇한 게 냉이였는가. 혜경이처럼 서구적인 멋쟁이가 들판을 앉은걸음으로 기어다니면서 냉이를 캤을 생각을 하면 괜히 유쾌해진다. 그는 우리 마을 들판과 뒷동산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어디에 은방울꽃의 군락지가 있다는 것도 알고, 꿩이 몇마리나 서식하는지도 알고 있고, 먹는 버섯과 못 먹는 버섯을 가려낼 줄도 알고, 잡목들과 야생화의 이름에 해박하다. 내가 징그러워하더 벌레도 그에게서 이름을 전수받고 나면 자연히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하찮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야말로 그가 겉만 번드르르한 멋쟁이가 아니라 진짜 멋쟁이인 까닭이다. 그가 우리 동네서 캐온 냉이로 된장국도 끓이고 데쳐서 무치기도 하는 동안 온 집안이 봄냄새로 가득해졌다. 나는 그게 식탁에 오르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우선 손가락으로 집어서 천천히 맛을 보았다. 흙의 에센스가 바로 이런 거다 싶은 강한 냉이맛이 수액처럼 고루 퍼지면서 마치 내가 한그루 나무가 된 양 싱그러워지는 걸 느꼈다. 순간적이지만 행복한 착각이었다. 그렇게 올봄은 냉이맛으로부터 왔다.


바깥에 나가보니 우리집 울타리 안에서는 냉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대신 돌나물이 맹렬히 돋아나고 있었다. 돌나물의 번식은 맹렬하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아주 연하고 뿌리도 깊지 않아 제거하기도 쉽지만 뽑아버리고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는 게 그 풀이다. 이사온 첫해와 이듬해는 클러버 때문에 애를 먹었다. 잔디 사이사이에 클로버가 돋아나는 걸 처음에는 무심히 보아넘겼다. 마당이 클로버로 뒤덮여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클로버는 특히 소녀들에게 친숙한 꽃이다. 어쩌다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라도 보장받은 것처럼 즐거워하며 책갈피에 고이 간직했었다. 그런 소녀 취미로 클로버를 귀엽게 보고 있는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게 아닌가. 그냥 놔두면 잔디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잔디를 가지런히 곱게 가꾼 집과 비교가 되면서 클로버와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클로버 줄기는 질기다. 질긴 줄기가 잔디 사이에 치밀한 그물망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아침에 눈만 뜨면 마당으로 나가 땅을 기면서 포크로 클로버 줄기를 들춰내고 뿌리를 후벼팠다. 그짓 하는 재미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재미삼아 하던 게 일단 잔디와 클로버로 편을 갈라 잔디 편을 들기로 작정을 하자 점점 클로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증오가 끓어올랐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이었다. 여북해야 그짓에 들려 헤어나지 못하면서 문득 인간의 광기 중 가장 무서운 인종청소에 들린 독재자의 심정을 다 이해한 것처럼 느꼈을까. 드디어 클로버를 완전히 제거하고 잔디 세상이 되었다. 잔디만이 가지런해진 지 얼마 안되어 돌나물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 대중음식점에서 돌나물을 초고추장에 무친 걸 먹어보았는데 맛이 상큼했다. 마당의 돌나물을 뜯어다가 그대로 해보니 그 맛이었다. 돌나물을 예쁘게 보기 시작하자 돌나물이 건강에 좋다는 정보까지 들려왔다. 돌나물과 돌미나리 즙을 장복해서 고질적인 위장병을 고쳤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때부터 돌나물과의 공존이 시작되었다. 제거보다 훨씬 수월하고 만족감을 준다. 아침마다 그놈의 것을 한움큼씩 따다가 초고추장이나 마요네즈에 찍어도 먹고 김치도 담가먹는다. 별맛은 없지만 연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점점 허약해지는 치아에 부담이 안되어서 좋다. 사람의 입과 위장처럼 무한정한 처리장도 없지만 농사처럼 좋은 것도 없다. 신경 안 써도 수요와 공급이 적당히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그 반가운 돌나물이 제일 먼저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마다 내 집 마당에서 꺾는 꽃으로 식탁을 장식하고 싶다는 게 나의 소녀적인 꿈이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아침마다 내 집 마당에서 채취한 식물로 입안을 헹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심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우리 마당에 저절로 돋아나는 먹거리로는 돌나물말고도 머위와 깻잎이 있다. 머위는 돌나물처럼 밍밍하지 않고 쌉쌀한 향기가 짙다. 줄기를 데쳐서 된장에 무쳐도 좋고 잎사귀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쪄서 쌈을 싸먹어도 좋다. 누가 건강식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건만도 그 너울대는 잎을 보면 저절로 건강이 옮아붙을 것처럼 느껴지는 씩씩한 야생식물이다. 그밖에 우리 마당에서 잘 퍼지는 것으로는 박하가 있다. 담밑의 큰 나무 그늘에서 해마다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박하는 고기나 생선 같은 걸 먹고 나서 더운물에 몇잎 띄워 차를 만들어 마시면 입안에 남아 있는 동물적인 취기(臭氣)를 상쾌하게 제거해준다. 식후 아니더라도 기분이 찝찝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마시면 한결 개운하고 대범해진다. 돌나물 외의 그런 것들은 아직은 아무런 기별이 없다.그러나 땅속에서 곧 움트려고 지금도 용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사철 기온이 3도 정도는 시내보다 낮다고 하는데도 올겨울은 평년보다 짧고 덜 추워서 그런지 한번도 땅이 꽁꽁 얼어붙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요 며칠 동안에 흙이 부드럽다 못해 꼼지락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 뿌리와 씨앗들의 활발한 기지개 때문일 것이다. 풀에 비해 점잖고 느린 나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심어 비리비리한 매화나무 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딱딱하게 오므리고 있던 봉오리들이 약간 헐렁해진 사이로 발그레한 게 비치고 있지 않은가. 내 눈높이 밖에 안되는 어린 나무지만 제가 매화값을 하려고 아마 제일 먼저 필 모양이다. 마당에 있는 나무 중 가장 큰 살구나무는 아무런 기별이 없다. 나는 거칠고 무뚝뚝한 살구나무 둥치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봄에 큰 나무에 귀를 기울이면 땅속에서 물 길어올리는 소리가 쪼르륵쪼르륵 들린다고 어디선가 들은 생각이 나서이다. 처음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기다리는 사이에 마침내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꼈다. 귀를 뗀 후에도 여전히 그 소리는 귓가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건 어쩌면 살구나무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집앞을 흐르는 시냇물에서 들리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겨울 가뭄이 심해 시냇물은 조금밖에 흐르지 않는다. 아무러면 어떠랴. 그 물이 그 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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