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침묵속의공감 2008. 3. 24. 21:10



Pilgrimage For Art

죽음보다 더 깊은 생의 비의(悲儀)를 찾아서

|||| 최창근 | 자유기고가 ||||

아아, 그때의 빛이여.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여.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여 너희들을 기다리리. 내 속의 모든 움직임이 그치고 탐욕을 향한 덩굴손에서 방황의 물기가 빠질 때까지.

밤은 그렇게 왔다. 포도 압착실 앞 커다란 등받이 의자에 붙어 한 잎 식물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둠은 화염처럼 고요해지고 언제나 내 눈물을 불러내는 저 깊은 空中들. 기억하느냐, 그해 가을 그 낯선 저녁 옻나무 그림자 속을 홀연히 스쳐가던 천사의 검은 옷자락과 아아, 더욱 높이 흔들리던 그 머나먼 주인의 임종. 從者여, 네가 격정을 사로잡지 못하여 죽음을 환난과 비교한다면 침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네가 울리는 낮은 종소리는 어찌 저 놀라운 노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저 공중의 욕망은 어둠을 지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교는 아직도 지상에서 헤맨다. 묻지 말라,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神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밤은 그렇게 왔다. 비로소 너희가 전 생애의 쾌락을 슬픔에 걸 듯이 믿음은 不在 속에서 싹트고 다시 그 믿음은 부재의 씨방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쉴 것이니, 골짜기는 정적에 싸이고 우리가 그 정적을 사모하듯이 어찌 비밀을 숭배하는 무리가 많지 않으랴. 밤은 그렇게 노여움을 가장한 모습으로 찾아와 어두운 실내의 램프불을 돋우고 우리의 후회들로 빚어진 주인의 말씀은 정신의 헛된 식욕처럼 아름답다. 듣느냐, 이 세상 끝간 곳엔 한 자락 바람도 일지 않았더라. 어떠한 슬픔도 그 끝에 이르면 짓궂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침을 네가 아느냐. 밤들어 새앙쥐를 물어뜯는 더러운 달빛 따라가며 휘파람 부는 작은 풀벌레들의 그 고요한 입술을 보았느냐. 햇빛은 또 다른 고통을 위하여 빛나는 나무의 알을 잉태하느니 從者여, 그 놀라운 보편을 진실로 네가 믿느냐.
- [포도밭 묘지 2] 전문 -


여기 한 젊은 시인이 있다. 그는 죽었다.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긴 채.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유형의 풍문을 남긴다. 그의 죽음이 남긴 풍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천리를 가거나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허공 중을 배회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지나치게 운이 없다고, 살아서 무명시인이었던 그가 죽어서야 겨우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행운아라고. 살아서 잊혀지느니 죽어서 기억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느냐고. 그의 요절은 그의 시를 한층 더 빛나게 한다고.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니, 그는 그냥 죽은 자가 아니라 이 모질고 험한 땅위에서 비애에 가득 찬 젊음의 한때를 소진하고 간 한 사람의 시인이었다. 세상의 온갖 냄새나는 오욕과 더러움에 몸을 섞다간 불행한 시인이었다. 시인이었기 때문에 더 한층 불행했던 젊은이였다. 하늘 위에 떠있는 풍문은 어디까지나 풍문일 따름이다. 그 풍문은 진원지가 밝혀지지 않은 지진의 여파와 같이 맹목적이다. 맹목적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그 풍문은 시인의 진실을 은폐하거나 때로는 과장하기도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허무한 메아리와도 같은 풍문은 그러나 시효가 다하면 곧 사라지고 말 신기루와도 같다. 풍문을 단순한 풍문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풍문이 시인의 진실을 왜곡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근거 없는 풍문을 근거 있는 사실로 바꾸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이 여기, 이 땅에 살아남은 자가 그와는 운명을 달리한 죽은 이에 대해 가져야 하는 소박한 예의이자 죽은 자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살아있음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이자 그 생존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는 길이다.

불꽃을 뿜어올리는 치열함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조리 소진한 채 열정적인 삶을 살다간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고백처럼 죽은 자를 단순히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 일이다. 산 자가 있는 한 죽은 자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산 자의 곁에서,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살아있기 때문이다. 강렬한 색채, 형태의 의도적인 왜곡, 춤추는 듯한 굴곡이 심한 선의 질감으로 인간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죽음과 병, 고통의 순간을 여과 없이 표현한 에드바르드 뭉크는 다가오는 생의 끝에서 죽음을 그리려 하였다. 우리가 진정으로 삶을 원할 때 죽음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건 어렵지 않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사는 일' 이라고 일찍이 러시아의 젊은 시인 마야꼬프스키가 스스로 목을 매어 그 짧은 생을 마감한 선배 시인 예세닌을 추도하는 자리에서 절규했듯이 죽음의 반대편에 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하고도 끈질긴 삶의 욕망이 뜨거운 용암처럼 펄펄펄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기형도는 절망뿐인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망 너머에 있는 희망의 기미를 찾기 위해서 그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자신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수행해 나갔던가! 그가 남긴 검은 상복을 입은 시편들은 그러한 고뇌와 사투의 산물일 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렬하게 살고자 하였다. 말 많은 호사가들에 의해 지적 허영과 자기 기만으로 심하게 위장되고 얼룩진 신화 속의 한 시인의 초상은 그러므로 그의 본 모습이 아니다. 그러한 호들갑스러움은 시인의 진정한 아우라(aura)를 훼손하여 이미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끊어진 그를 다시 한번 죽이는 길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또 한번의 죽음, 그러한 사회적 죽음은 그의 생물학적 죽음보다 오히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시인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약간의 주저함과 또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나누어 가진다. 더욱이 그 대상이 시인이나 작가의 경우라면 글을 쓰는 손끝으로 부딪쳐오는 당혹감의 부피와 깊이란 감당해내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그것은 좀처럼 견디기 힘든 짓눌림의 무게에 다름 아니다. 시인이나 작가의 존재란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과는 다른 의미에서 한 시대와 그 사회가 요구하는 목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고 간섭하고 화답한다.

때로는 그것이 예언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지사의 음성일 수도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담지자의 노릇이 처음부터 의도된 바가 아니라 마치 물이 스펀지에 스미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담지자를 상대로 정신적 교감을 누리는 대상을 일반독자로 규정할 때 담지자의 침묵은 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한편 불안한 인내를 강요하게끔 유도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던 담지자의 죽음이 몰고 오는 물리적 파장은 당연하게도 크고 오래갈 수밖에 없다.

기형도는 그러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잠언의 내용과는 달리 예언자나 지사 풍의 시인이 아니다. 그러한 잠언들의 성격은 하나 같이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들이며 외면적인 울림이기보다는 내면적인 육성에 더 다가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한용운이나 이육사 같은 시인이 아니라 오히려 김소월이나 윤동주와 같은 수줍은 현자로서의 고백형의 시인에 더 가깝다. 그가 고백하는 시의 내용은 주로 유년시절의 가난과 가족들 그리고 비정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각각의 소외된 개인들이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또 얼마나 다른 것인가.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내 속에 숨어있는 나'를 본다. 나의 실체를, 한 일그러진 자의 초상을 들여다본다. 괴물을 만난다. 나는 '그'이면서 '또 다른 나'이다. 굶주린 나, 불행한 나, 무기력한 나, 욕망하는 나, 그러한 나의 총체성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에게, 그의 퍼스나(persona) - 이 말은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원래는 연극배우가 쓰던 탈을 가리키는 에트루리아인들의 언어였다. 후에 융은 개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해나가는 데에 필요한 조건들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리켜 퍼스나라고 불렀다. 시인은 자신을 한 명의 시인으로 이 사회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또 얼마나 무수한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 했을까! 그리하고도 그는 죽기 직전까지 끝끝내 시인을 시인의 자격으로 보아주지 않는 이 야만의 땅에서 한 사람의 이름 없는 무명시인으로 남아있었다. 그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썼을 연극배우의 가면처럼 그의 생애에 구멍난 무수한 상처를 감추기 위해 썼을 탈은 말 그대로 그의 인격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영혼의 가면이었으리. - 를 간직한 시인에게 동화되고 공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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