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정

침묵속의공감 2008. 3. 24. 21:10



Pilgrimage For Art

죽음보다 더 깊은 생의 비의(悲儀)를 찾아서

|||| 최창근 | 자유기고가 ||||

기형도가 80년대, 그 폭압과 광란의 시대를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상상력의 힘으로 질주했던 저 화려하고 현란한 낭만주의자들인 [시운동] 동인의 마지막 정신적 버팀목이었다면 [21세기 전망] 동인들은 또 하나의 재능있는 아까운 시인을 90년대 초에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그가 바로 진이정이다. 유 하가 자신의 첫 시집 '무림 일기'를 그의 이름으로 헌정했던 그 진이정이고 지금은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에 가 있는 시인 허수경이 '모래도시'라는 장편소설에서 그의 시 '등대지기'를 인용하며 그가 떠난 빈자리를 두고두고 아쉬워한 그 진이정이다.

유하가 '무림일기'라는 연작시로 90년대라는 세기말적 증후군을 대변하는 주목받는 신예시인으로 그 이름을 알리기 전의 아직은 무명이었던 시절 진이정과 가졌던 가난한 문청으로서의 교우 그 면면들은 실로 눈물겹다. 그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을 유하는 진이정의 유고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의 발문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유하가 그의 시집을 진이정에게 바쳤듯이 진이정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을 유하에게 바쳤다. 그만큼 그들의 사이는 각별했던 것이리라.

[시운동] 동인들이 그들이 그토록 아끼던 먼저 간 동료 기형도를 위하여 그가 사망한 지 1주기가 되던 해 그를 추모하고 그가 남긴 시들을 영원히 지인들의 가슴에 묻는 시집 화형식을 퍼포먼스라는 다소 즉흥적인 이름으로 성대하게 열었다면 [21세기 전망] 동인들은 그들의 4집 동인지를 진이정의 넋을 위로하는 한 권의 추모집으로 꾸몄다. 그 추모집 '거꾸로 선 꿈의 세상에서'엔 진이정 자신의 대표시와 시론 그리고 생전에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동인들, 유 하를 비롯하여 윤제림, 박용하, 차창룡, 허수경의 추모 시편과 함성호가 쓴 시인론, 새로 진이정의 유고시들을 분석한 정과리와 이광호의 작품론이 실려 있다.

진이정의 죽음이 동시대의 요절 시인이나 작가들의 경우처럼 자살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그가 오랫동안 폐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단지 그는 '죽음의 골짜기로 스미는 착한 물의 잠처럼 그대는 찾아왔네'(제목 없는 유행가)라고 읊조리거나 '내겐 추억 없다 찰나 찰나 연소할 뿐 하얀 절망의 재도 한땐 창창한 나의 추억이었으리라'(추억 거지) 혹은 '난 왜 그리움 따위에만 허기를 느끼는 것일까'(엘 살롱 드 멕시코) 또는 '그래 그냥 사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마음 털리며'(생일)로 시집 곳곳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 그 고통은 삶의 비애라는 차원을 넘어서 죽음의 손길이 내미는 유혹의 언저리까지 맴돌고 있다. '아아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어, 이봐 우리 머나먼 내생의 땡볕 아래서 파아란 곰팡이로나 만나자꾸나'(사람, 노릇, 하기란, 너무, 힘들어)나 '약 냄새, 돈은 슬퍼라, 어린 육체보다 더 슬픈 십 원 짜리 지폐, . . . 죽으면 그렇다 . . .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아트만의 나날들)나 '그럼 죽음이란 돌이킬 수 없도록 다시 어려지는 것인가'(케이크 위의 '축 생일') 같은 시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시시각각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숨가쁜 가난과 경제적 궁핍, 그리고 그러한 가난이 몰고 온 병마와 싸우며 육체적인 목마름뿐만 아니라 늘 허기진 정신의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도무지 주체할 길 없는 그토록 강렬하고도 음습하기까지 한 욕망은 그의 몸과 마음을 소진시킬 대로 소진시킨 채 생각보다 일찍 그의 영혼을 이 세상에서 거두어가 버렸다. '나는 헛읽었다; 나는 헛살았다 . . . 어머니, 난 굶고 있답니다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하대요 난 창백해져가고 있어요 난 고기가 필요하대요 고기가 부족하니까, 내 몸이 에이즈 걸린 것처럼 비틀대는군요 아, 알았어요, 육식도 섹스의 일종인가 봐요 난 섹스가 부족해요 그럴 밖에, 채식주의의 섹스니까요 새벽 세 시의 섹스가 고파요 섹스에 굶주리기 때문에 나는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난 섹스 결핍이랍니다 철 지난 키스는 지겨워요 제철의 사랑을 하고 싶어요 철 지난 연애가 날 늙게 한다구요'(새벽 세 시의 냉장고)나 '아이야 나의 희망엔 아직 차도가 없구나, 나의 눈물도 이별도 사랑도 아직 아직 차도가 없어, . . . 난 부드러운 것이 좋아, 희망처럼 부드러운 애를 희망의 자궁을 빌려 낳고 싶어, 또는 너의 몸을 빌려 희망의 포르노를 찍고 싶어, . . . 인간이란 참 불쌍한 존재야, 알을 낳은 뒤 힘겹게 바닷가로 기어가는 어미 거북처럼, 우린 단 한번 섹스의 대가로 물레방아의 인생을 돌아야 하지, 그래도 난 인생이 좋아, 난 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이미 저승에 가 버린 시인들의 목소리가, 소주 냄새에 섞여 퍼져가는 그들의 육성을,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인 걸, 불쌍한 나의 희망이여, 난 너를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좋지, 나의 희망엔 아직 그 흔한 차도조차 없구나, 난 외로워, 난 희망보다는 말벗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나의 희망엔 아직 차도가 없다) 그리고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에 등장하는 내성적인 독백들, 이를테면 '눈물도 없이 나는 운다 울었다 너무 팔아먹을 것이 없었으므로 거꾸로 선 꿈의 세상에서, 가끔 나는 바로 선다 / 누가 내 몸 안에서 섹스를 하나 봐 헐떡이는 소리, 세 살 이후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 . . 결혼식장이 어물전 같아 비리지 않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 기고 싶다, 비비고 싶다, 까고 싶다 . . . 몽정의 나날이여, 꿈의 정액이여; 어디 마땅한 질을 찾아가거라 비단 같은, 비로드 같은, 총구멍 같은, 융단 같은 너의 질 . . . 그래 자살도 못하는 것이다 / 나는 게릴라처럼 침만 삼키며 하루를 버틴다 장미 같은 그녀의 성기를 연상하면 침이 고여 . . . 기계로 쓴 시를 읽는 사람들, 뜬소문처럼 우주에 떠 있네 / 몸에 음식이 들어가면 왜 마음이 방자해질까 / 어느 새 밥이 꺼졌다 내 인생도 꺼져 있었다 . . . 나는 여태까지 참기만 해왔어 그게 인생이란다; 개 같은 / 어머니, 절 꼭 잡으세요, 누가 지구를 팽이 돌려요 . . . 내 인생은 엇박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용은 사라지고 리듬만 남은 삶이여 / 진리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 . . 눈물의 성분엔 미량이나마 진리가 들어 있는 듯해 울고 나면 천국에 들어온 느낌 / 어머니, 당신은 왜 여자입니까 여자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만을 받는 나날들 . . . 어머니, 얘가 바로 내 정부예요 나는 며느리를 데려올 능력은 없어 농촌 총각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시 총각인 것이다 온 세상의 처녀들이 두려워하는 시 총각! . . . 창포로 머리 감은 처녀와 하루만 살고 싶다 . . . 나는 상상할 수 없어 공자님의 섹스를 말야 . . . 문명이라는 이름의 등잔에는 심지가 없네 그런데도 언제나 휘황하지 . . . 냄새 때문에 난 윤회하는 것이다'를 접하게 되면 공감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타인의 입을 통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는 나와 같은 허기짐에 배고파하는 수많은 중생들을 잠시나마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간 언어의 순교자인가.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가슴 아프다. 진이정, 그 스스로가 자신을 '연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진창의 아들'(진창)이나 '칼날 위를 거닐어야 밥이 나오는 차력사의 아들'(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7)로 비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고도 시인이다 또는 그러니까 시인'(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6)이었던 맑은 눈과 선한 웃음의 착하고 여린 심성을 가진 이 땅 위의 순박한 한 사내였다. 그 자신이 한 때 굿패의 일원이었던 진이정은 우리의 소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그의 짧았던 생을 시라는 형식의 노래로 풀어버린다. 그의 노래는 소외받은 자들의 한과 원을 풀어버리고 모든 이의 상생을 축원하는 해원굿, 일종의 비나리에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의 시에는 유난히 노래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제목 없는 유행가)가 그렇고 (애수의 소야곡)이 그렇고 (이태리 품바)가 그렇고 (환상, 굿,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애수의 소야곡)에서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남인수와 고복수의 팬이던 아버지는 내 사춘기의 송창식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나는 또 누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 . . 가부장의 달빛만 괴괴한, 이 이승의 쓸쓸한 밤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왜 이리 두려운 일인지 잃어버린 그의 꿈이 왜 이리 버거운 짐인지' 라고 자신의 속좁음을 자책하며 아버지의 맨 얼굴과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신적 순결성은 (환상, 굿,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나는 왜 잃어버린 사랑을 생각했을까 어찌하여 나의 사랑엔, 슬픔이란 쌍둥이 자매가 줄창 붙어다니고 있었던 것일까' 라는 슬픈 독백과도 같은 자각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