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0페이지에 달하는 OUR YOUNG GENERATION 특집은 2005년을 사는 이십대의 사색과 행동양식과 주의(主義)와 이상을 그려넣은 도표이다. 그들의 홍안(紅顔)은 난장 속에서 헤엄쳐 왔던 내 허술한 꿈들을 변명하게 만들었다. 혹은 재정비하게 만들었거나.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나에게 다른 문화, 다른 삶의 방식은 없었다. 차라리 청춘을 함부로 소비할 줄도 몰랐다. 나는 반사회적일 수도 없었던 쓰레기였다.
인터넷 사이트도 휴대폰도, 비아그라나 시알리스 같은 약도 발기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또는 전희만으로도 평생이 걸릴 것 같았던 날들, 키스가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라기보단 목적 그 자체였던 시기였다. 순금인 척했지만 실은 특정 종파나 조직화된 종교처럼 협량했던 문화와, 사람들이 매일 이건 해야 하고 저건 하면 안 된다며 태장(笞杖)을 가하던 도그마는 내 성장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나에겐 영웅이 없었다. 모형도 없었다(물론, 나는 삶이 어디로 진행될지 안다면 그 시간은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 잘 사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게을렀다. 바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원할 때마다 헤엄칠 수 있었는데도 나태했다. 튕겨 나오는 당구대의 공, 전속력으로 달리며 선회하는 오토바이, 제어 불가능한 스쿨 버스, 자동차 지붕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식의 젊음도 아니었다. 삶의 견고한 중심이나 총알도 뚫지 못할 신념은 애당초 지니지 못했으니 작은 충격에도 흔들렸다. 나는 척박한 독학자였다. 극단적으로 분류된 취향, 성장 호르몬의 돌진, 무책임, 방임, 부끄러운 무위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십대를 방침과 규칙을 정하기보단 느낌을 방임하는 세대, 진정한 고통과 오락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대, 랩 문화처럼 자신을 부풀리는 게 중요한 세대, 어떤 부류보다도 시간에 대한 극단적 강박을 드러내는 세대로 이해한다(태어난 연도조차‘빠른 80’ ‘늦은 78’, 달별로 세분하는 집요한 유행은 충격적이다 못해 슬프다. 삶을 다만 날짜마다 그려넣은 눈금과 육체적 ‘부패’로 헤아리다니). 그러나 이십대는, 사람은 성장하는 한 계속 전진한다는 것, 성장이 멈출 땐 죽는다는 걸 나에게 가르쳐 준다.
내가 그렇게도 자주 젊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건 젊음의 만료일자가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직시하는 건 젊음이 모든 것인 게임에선 누구도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젊음은 사라진다. 첫 번째로 맞이하는 작은 죽음이다. 강한 누구라도 더 이상은 링에 남아 있지 않게 되고, 사이드 라인에서 지켜봐야 한다. 그것도 즐거움이다. 중력으로부터 자신을 들어 올리는 살갗의 게임 속에서 버틴다고 해봤자 결코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건 에고의 문제이다. 모든 나이는 다 멋지고, 우리는 그 나이의 특권자라는 에고이다. 신선하면서도 성숙할 수 있다는 경이, 몸의 퇴화가 주는 것들과 관조를 바꾸는 지혜, 그리고 더 부드럽고 더 놀랄 만한 깨달음.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랬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행동양식은 엄격하고도 약간은 차가운, 모서리가 많은 단호함이다. 물론 내가 원한 걸 취하진 못했다.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삶이 큰 그림이고 어둠은 그 한쪽 끝에 매달린 그림자란 걸 안다. 이제서야 나는 팔을 넓게 벌릴 수 있다. 삶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얻는 건 힘들지만, 내 인생은 충분하다고 생각할 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이 좋다. 삶은 여전히 미지인 지금이, 미지의 모든 게 짜릿한 지금이, 이십대를 벗어난 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안 나는 지금이.

추신 연하여 이별의 소식을 전합니다. <GQ>의 패션 에디터 류영선은 이 달을 마지막으로 <GQ>를 떠났습니다. 편집장이 ‘미스 매거진’으로 부르며 닳을까 어여삐 여기던 그녀였습니다. 당신들도 그녀의 확고하고도 감도높은 스타일링을 만끽하셨겠지요. 그랬습니다. 그녀는 삶은 계란을 벗긴 듯 뽀드득 소리날 듯한 피부와 베일 듯 정교한 콧날을 가졌지만, 어떤 촬영에조차 전신을 던져 불태우고 말던 여자아이였습니다. 하늘하늘 대궁이 가는 식물 같은 몸이면서도 누군가와 대립할 땐 결코 밀리지 않던 독립군이었습니다. 팔뚝의 털 한 올 흐트러지는 것도 못견뎌 했던, ‘천일 동안’많이 웃고 많이 울던 그녀를 기억합니다. 그녀는 그녀에게만 용납된 해학이 깃든 걸음걸이로 삶의 다른 보도 위를 활보하겠지만, 지금 내 마음속에 들려오는 건 그녀의 웃음소리입니다. 맑은 치즈 같기도 하고 백김치 같기도 한, 사랑스럽기만 한 그녀의 웃음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