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숨쉬는 공기 속에 다양한 영역, 애정, 다양함, 혼란이 공존한다. 거기엔 세속적 의미의 나의 처지, 나의 기념일을 잊지 않는 친족 같은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언제나 행복해, 라고 나는 말한다. 물론 행복이라는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행복한 건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안계시다면 나는 한 번도 그 두 음절을 발음할 수 없었겠지.
어머니는 나와 다르다. 어머니 생일이었다. 비행기이륙 전 스튜어디스들이 보여주는 안전 시험같이 꼭 거쳐야 하는 일처럼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엄마, 갖고 싶은 거 있음 말해봐."
엄마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즐거움!"
나는 웃었지만, 묻지 않을 수없었다.
"엄만, 나하고 사는 게 별로 안 즐거운가부지?"
어머니는 운율을 섞어 말씀하셨다.
"즐거운 것도 없고, 안 즐거울 것도 없고."
어머니에겐 즐거움에 관해 갖고 있는 기억이 거의 생화학적으로 파괴되기라도 한 걸까?
다시 어머니날이었다. 비행기 착륙 전의 최종 확인처럼 반드시 뭔가를 해야하는 날이었지만, 나에겐 1원도 없었다. 아침 식탁에서 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꽃이 싫지?"
"그래, 싫어"
"딴 거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퇴근하면서 사줄께..
"난 다 필요 없다. 방이나 어지르지 말아라"
엄마에게 20개의 립스틱과 10개의 마스카라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 말이다. 엄마한테는 말을 탄 로버트 레드포드도 없고, 실크로 된 안감 같은 장래도 없다.

마감이었다. 허황하게 사무실을 헤집다가 집에 왔다. 벽에서부터 스스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아 어머니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는 문득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막 자기 자신을 찾기 시작한 한 남자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나는 허영심이 강하고 믿을 수 없고 불안정한 아들일 뿐이었다. 분필로 그은 듯 선명한 가책이 밀려왔다.
"오늘, 어머니날인데 나, 엄마한테 아무 것도 못해 주고, 정말 미안해"
그건 나의 내부에 머무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는 매일 어머니날처럼 나를 대해 주잖아"
텔레비전에 시선을 준 채 어머니는 무감한 톤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막혔다. 갑자기 울 것 같아서 눈을 크게 떴다. 나의 시선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 소파의 가죽 위에 얹혀져 있는 먼지들, 케이블 티비의 다큐 프로그램. 조금 어두운 듯한 거실등을 쫓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안에 솜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어머니날처럼 어머니를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말로 나를 위로하고 계신 것이다. 나는 더이상 어머니 옆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영태에게 전화를 했다. 영태도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내가 어머니한테 물었잖아. 어머니는 나하고 사는 게 몇 퍼센트 좋으세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100퍼센트. 이러시는 거야. 그 순간 눈물이 막 나오려고 하는 거야."
나는 그 아이만이 나와 같은 슬픔과 기쁨을 느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넌, 남자가 뭐 그런 것 갖고 그러냐? 남자가?"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와 떨어져 산 적이 없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나날들은 언제나 행복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두려움 없이 문을 연 적이 없다. 문을 열고 나는 가만히 '엄마...'하고 부른다. 불이 켜져 있거나 어머니의 대답이 들리지 않으면 시간이 정지해버린다.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걸 느끼면 뭔가 달라져 있다고 느끼는데, 어머니의 부재는 언제나 슬픈 확신을 주는 것이다.

검사 결과에 따라 어머니가 입원할지도 모르는 어느 아침. 어머니는 병원 갈 채비를 갖추시면서 나에게 당부하셨다.
"너, 내일 월급. 통장에 들어오면 돈 찾아서 성주 엄마(옆집에 사는 엄마 친구)한테 빌린 돈 30만원 바로 갚아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통장에서 돈을 찾는 방법을 몰랐다. 고상을 떠는 것으로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니다. 카드를 긋는 것 말고 나는 어떤 경제 시스템과도 무관하다. 하지만 알았어, 라고 나는 대답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현실 감각이 티끌의 티끌만큼도 없는 나를 딱해 하셨다. 언젠가 어머니가 어머니의 서랍을 열어 보일 때도 그랬다. 잘 들어. 내가 혹시 갑자기 죽더라도 이건 무슨 무슨 보험이고, 이건 무슨 무슨 통장이니까, 잘 알아서 여기서 돈 얼마 찾아서 저기로 또 얼마 집어넣고...이건 도표처럼 복잡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의 추가된 아들이 아니라 사려 깊은 보호자 같은 아들이 되고 싶었지만, 내 자신에게서 그렇게 크고 불의한 폭탄들을 발견할 때마다 죄사함을 받지 못할 배덕자처럼 우울해지는 것이다. 엄마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 같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날 떠나지 않고 머무시는 건 아니겠지.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된다면, 나는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도로 안내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거실엔 여자 옷들이 널려져 있다. 어머니는 재킷에 단추를 달고 계신다. 옆집 성주 엄마가 여성복을 만들어 백화점에 납품하는 바람에 어머니에겐 덩달아 일감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극빈 층도 달동네도 아니고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나는 영어와 일어 공부를 하고, 성경을 읽거나 한문을 쓰는 어머니가 더 좋다.
"그 단추 하나 달면 얼마야?"
"20원"
"하루 종일 하면 모두 얼마쯤 되는데?"
"한 만 원쯤 될라나?"
"그거 해서 뭐 할려구?"
"으응, 돈 많이 벌어서 너 맛있는 거 사줄려고"
"내가 뭐 맨날 주리나, 뭐? 뭐 사줄 건데?"
"영덕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었지만, 난 슬펐다. 오전 두 시였다.
"안 자? 난 맥주 한 잔 하고 잘 건데"
"잠이 올 때 얼른 쫓아 들어가서 자야지, 잠 안 올 때 들어가서 뒹굴 뒹굴 천장 쳐다보며 이 생각, 저 생각 그러는 거 난 싫다"
얼마 전엔 소연의 아들 영재가 경인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영재는 가르쳐 주지도 않은 컴퓨터 그래픽 솜씨로 어른 작가와 함께 2인 전을 연 것이었다. 친구가 이렇게 감격스러운데, 부모야 오죽할까?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물으셨다.
"어딜 가니?"
"응, 친구 아들이 전시회 한대네"
어머니는 잠깐 포즈를 두셨다.
"넌, 친구 아들이 벌써 그렇게 큰 걸 보면 기분이 어떠니?"
"아유, 자랑스럽지 뭐"
"그리고?"
"그리고 뭐?"
"정신차려. 이쪽저쪽 동서남북으로 정신 흐트러 놓지 말고."
"..."
"넌 연인이 없니?"
"엄마, 묻겠는데, 내가 딴 여자 만나서 그 여자, 엄마보다 더 좋아하면 엄만 좋겠어?"
나는 어머니를 계몽시키는 동시에 내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나는 가족들이 넘쳐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고, 엄청난 음식, 넘치는 술, 논쟁, 행복한 혼란이 가득한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히려 내 삶이 풍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원하는 건 전통적인, 흡수력이 강하고 포용력이 있는 가족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구조와 규칙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인 것을.
"그러나 그게 자연이다."
어머니는 나를 일축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정신적 지형을 구성하는 통념, 도덕성, 신앙, 기쁨이 뒤섞인 지도를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라디오에서 나는 소리가, 어느 부분에서 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막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늘은 너무 파래서 동대문에서 끊은 파란 천으로 덮어버린 것 같았다. 미술관으로 가면서 나는 내가 살아갈 세월을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안 계시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월은 질식할 것 같은, 똑같은 삶일 뿐이다.
난 더 이상 약으로는 듣지 않아, 그냥 조금씩 약으로 통증만 다스리면서 사는 거야, 라고 어머니가 말할 때, 길이 조금만 경사져도 잠시 걷다 아파트 화단에 앉아 숨을 고르실 때. 그대 엄마가 뿜어내는 호흡 곤란을 절실하게 느낄 때, 문득 내 앞에서 좌절한 듯 고개를 저어 보이실 때, 내 뼈는 부서져 먼지가 될 것 같다. 나는 어머니의 건강과 마음에 감정적으로든 실존적으로든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항상 열중하시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지치신 거다.
잠원동에 살 때 우리는 자주 아파트 화단에서 민들레를 뜯었다. 때로 장갑과 작은 모종삽을 준비해 고수부지에 나가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하고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변에서 어머니는 이건 민들레, 저건 쑥, 저건 능쟁이라고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뜯은 풀은 죄다 엉뚱한 것들이라고 면박을 주셨다. 나는 풀밭 한 쪽에 앉아 자조적으로 휘파람을 불며 어머니가 나물을 다 뜯기를 기다렸었지. 나는 시간을 멈추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가 과거에 고립돼 있지 않고 미래에 관해 말씀하시는 걸 다시 듣고 싶다.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데, 잠깐 바람이 멎은 것 같았다. 언제 멈추었을까?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출혈, 영속성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사진을 배우고 싶었다. 어머니의 모습을 더 많이 담아 두고 어머니를 더 많이 기억하도록. 그건 가장 특별한 순간. 또 나 말고는 아무도 나와 똑같은 사진을 가질 수 없으리라는 기쁨 때문이다. 그러나 용호 형이 사진기를 빌려주었는데도 한 번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철저한 수동 카메라 조작법은 코란처럼 나를 칼날 아래 처박았다.
나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목록들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식료품 점의 냉동 코너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나는 어머니에게 우리가 옛날에 살던 집처럼 작은 나무 창고 너머에 해바라기 밭이 있고, 대문 안쪽으론 백일홍과 채송화가 있는 화단을 선물해 주고 싶다. 아버지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던 덕수궁 햇볕 아래에도 데려가고 싶고, 오키나와에도 둘이 가고 싶다. 수영복 입은 엄마도 보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건 술 취한 자기 위무일 뿐이다. 우리는 한 집에 사는 상이한 두사람이다.
내가 몇십 만원도 넘는 캘빈 클라인 수트를 카드로 호기롭게 긁을 때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젖혀두고 단추 하나 달면 20원짜리 일을 하니까.
밤에, 나는 내 방 문을 조금 열어 두고 침대에 누워 거실에서 나는 음향을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단추를 다시면서 쪽가위로 실을 자를 때 사각, 하고 스치는 듯한 소리, 창문을 마저 닫는 소리, 같은 음으로만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 친구처럼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나는 드라마 재방송 소리. 하지만, 잠들기 전에 무서운 생각들이 천장부터 내려와 나를 짓누를 때 나는 천사가 악에서 나를 구해 주리라고 생각하다가, 급기야 저기에 우리 어머니가 앉아 계시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방안은 온통 어머니로 가득 차는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나는 다시 물어 보았다.
"엄마는 나하고 사니까 좋아?"
"그래, 왜?"
"뭐가?"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가서 살아?"
"단지, 그래서?"
"그래"
"아유, 매력 없어"
어머니는 나를 보며 웃으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아들하고 사니까 좋지, 내가 이충걸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죽도 못 먹었을 거야"
나는 행복했다. 그러다가 다리를 찰싹 맞았다.
"너, 다리 흔드는 게 얼마나 나쁜 건 줄이나 알아?"
엄마는 내가 중년의 남자라는 걸 또 잊었다.
"나, 딴 데선 안 그래. 집이니까 이러는 거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안 새!"
어머니는 또 한 대 때리셨다. 아아, 행복하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나는 고아지만, 나는 지금 하나도 고아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