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쉘 바스키야 (이태리어로). 1983
그가 내게 준 자유의 이미지는 팝콘이다..
열을 받아 터지기 전까지는 그 뽀얀 속내를
볼 수 없는, 단단한 껍질을 뚫고 터져나오는
비명같은 열망, 평소의 나는
옥수수 알처엄 단단하고, 그 표면처럼
매끈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의지와 비교적
정돈된 일상의 모습으로, 이런 내 안에는
여러 알의 팝콘이 숨어 있다. 언제나 카운트
다운을 하고 언제든 일탈의 준비가 된,
나는 자유롭고 싶어하는 열 받은 팝콘이다
앙리 마티스 <금붕어와 조각>,1912
"내가 너에게 뭔가 해줄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김성호(가을의 복병), 1998
거기서 두사람은 뭘 할까?
좋아한다는 말대신 주고 싶은 그림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그냥 갈대 그림이거니 생각했다.
다시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갛게 수줍은 볼을 가진 소녀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소년
갈대에 싸여 보일 듯 말 듯한 그들은 거기서 뭘 할까?
그 갈대밭의 어린 여인들을 보면서 나도 슬그머니 당신을 끌고 그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인생이 이처럼 바람 많은 갈대밭이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불현듯 나의 그대에게 속삭이고 싶어졌다. 붉은 볼을 가진 소녀처럼, 그도 이런 내 마음을 알까?
김성희 - 그리움
그때 우린 정말 사랑했을까?
사랑에 빠졌을 때 눈에 들어온 그림
사랑때문에 울어본 기억이 있는지.그로 인해 세상 종말을 예감하고..
그로 인해 세상의 환희를 노래한 적이 있는지.
사랑때문에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은 기억이 있는지.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의 기억이 당신에게 있는지.
내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
힘없이 뻗은 내 손바닥 위에 자기 손바닥을 올리고,
다섯 손가락 꺽어 깍지끼며 말하던 사람.
"우린 이렇게 만났고, 내가 네 손을 놓지 않으면 넌 내게서 떠날 수 없어."
다섯 가닥으로 굳어 있는 손가락을 접을 수도 없었던 나.
사랑은 교통사고 같아서 내 어디에도 사고의 예감은 없었건만 나는 그를,
그는 나를 만나 우리는 사랑하고 말았다.
사랑의 미열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사랑.
그러나 그는 떠났다.
나는 아직 굳은 채로인데 그는 다섯손가락 깍지 풀고 떠나버렸다.
태어나기 이전 이미 예정된 이만큼의 사랑이라면,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하며 새벽을 맞았건만 .......
아침이면 또다시 마음 바닥은 철거덩철거덩 그리움으로 울고 있었다.
다시는 보지 말아야 할 사람.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비슷한 사람만 봐도,
관계된 사소한 명칭만 들어도.......
그사람으로 이어지던 날들이 있었다
피에트 몬드리안(컴포지션), 1921
싫은 소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름답다
나는 네모가 좋다. 네모가 지니는 사각의 예리함이 좋고
사각을 향해 뻗어 있는 직선의 거침없음이 좋다.
네 개의 각이 주는 안정감이 든든하고 그 경쾌함이 매력적이다
친구도 그저 둥글둥글하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동그라미보다는 가끔은 가슴 아픈 충고도 할 줄 아는
직선 같은 친구가 더 믿음직스럽다
반지도, 귀걸이도, 목걸이도
특이한 사각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에 어쩌줄을 모른다
이런 나의 사각 예찬이 몬드리안의 <컴포지션>을
만났을 때의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리되지 못한 나를 시각적으로나마 정돈시켜주기 때문이었을까
절제되고 균형잡힌,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색의 무게와 비례는 마치 철저한 계획아래
제작된 한사람의 인생 계획표 같은 느낌을 준다
지나온 시각들의 시각적 그래프.
기뻤던 시간.방황했던 시간.슬펐던 시간.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렀던 시간.
이 모든 시간들이 하나씩 색깔이 되고
그 시간들을 헤쳐간 나의 모습이 때로는
굵은 선으로 혹은 가는 선으로 회면 위에 나타나 있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화면에 담는다면. 어떤 색이 가장 많을까.
그녀의 세번째 남자
보면 보이는 그림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착한 여자를 만나면 삼십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삼대가 행복하단다.
잘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세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면 통장 세 개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단다.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만난 이 사람이 가슴이 따뜻한 남자이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세상의 많은 여자들 중 바로 내가 예쁘고 착하며,
지혜롭기까지 한 여자이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만 갖고 살면, 정말 보일까?
보인다. 나는 세상의 이렇게 많은 사람 중 체온이 따뜻한 그를 발견했고,
그는 나를 착하고 예쁘고 지혜로운 여자가 되도록 이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키스>, 1907
원시인의 사랑
마음이 따뜻해지는 조각
나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 '잘생긴'의 기준은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 같다.
[캔디] 만화에 나오는 테리우스 같은 외모의 남자에게 일단 끌리던 예전,
그러나 지금은 된장 뚝배기처럼 수더분하고, 보글보글 더운 내 나는 사람이 좋다.
성격도 세련되고 깍듯한 사람이 좋았던 예전에 비해,
소탈하고 인간적인 남자에 더 끌리게 되었다.
무언가 보장된 장래보다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비어 있는 미래,
그리고 그 미래에 배팅할 배짱을 지닌 사람이 멋있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 사람 안에 진실과 가능성이라는 키가 내장되어있을 때의 이야기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오직 진실한 사랑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
브랑쿠시의 작품 <키스>를 볼 때마다 나는 차가운 돌에서 은근히 배어나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샤프한 외모의 남자에게서 느끼는 의외의 뜨끈뜨끈한 온기처럼.
이 키스는 첫 키스는 아니다. 첫 키스의 아스라한 맛이 아니라,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서로의 입술에 익숙한 이들의 오랜 습관같은 키스다.
관능적이고 자극적이면서 어설펐던, 첫 키스가 아니라,
오늘 아침 내가 그와 한 입맞춤, 잠자리에 들기 전 서로의 편안함을 기원하는 입맞춤,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진행형의 키스다. 우린 아주 오랜 옛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맺어진 인연이었어,
라고 믿는 이들의 키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에서 빚어졌다고 믿는 이들의 키스.
작가도 그랬을까. 작가도 나처럼 생각했을까.
두 사람의 눈과 입술은 이미 하나의 일치점에 닿아 있으나 감싸안은 두 팔은 더한 밀착을 요구한다.
키스하기에 불필요한 코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주 오래된 마치 원시적부터 그래왔던 것 같은 입맞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요즘처럼 오염되지 않은 원시인의 습관 같은 더운 입맞춤.
작가는 그걸 표현하고 싶었을거다.
내 사랑도, 이렇게 투박하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모양으로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원시인의 사랑이면 좋겠다.
한운성 (매듭), 1987
나는 절대로 그림을 떠나지 않는다
나의 유언장 같은 그림
절대로 용서 못할 사람에 대한 기억도, 이것 아니면 죽겠다는 비장한
욕망의 기억도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이 없는, 어찌보면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명하자면 이 또한 성격 탓이다. 한번 결심한 일은 거의 절대로
돌아보지 않는 성격, 지금 죽어도 후회하지 않은 만큼의 준비성(?), 모두 잘될거라는
낙천성 등등, 지금도 내 친정집 내 화장대 거울에는 유언장이 붙어있다.
'소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몇 해 전 어느날 이미 나는 내 주변 정리를 끝내버렸다.
일기장이며, 비디오테잎, 책 등등 어느 시기까지의 내 흔적을 모두 박스에 정리해 넣었다.
빠트리지 않고 유언장도 써두었다. 유언장의 내용이 모든 나의 흔적들을
읽지 말고 '버리라는것' . 누군가가 나를 본다는 것이 싫었다.
사춘기쯤에서 나는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병에 걸린 걸까. 끈임없이 정리하고,
또 벌이고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에 대한 강한관념이라도 걸린 양, 사춘기 소녀처럼 아무도
조면 안 될 일기와 유언장을 쓰고 내 나이만큼 쌓여가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토록 극대화된 매듭앞에서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날 중 어느 맺힌 기억을
살려내기 보다는 앞으로의 결심을 꼭꼭 매듭지어 정리하는 일밖에는 하지 못한다.
내가 해야 할 일, 그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도 그림이고,
내가 세상을 만나는 창이 되어준 것도 그림이다. 그림에 대한 욕심외에는
무엇도 나를 매듭지을 것이 없고, 그림에서 배운 나는 결코 그림을 떠날 수 없다.
그 결심 하나가 힘주어 쥔 주먹처럼 내 앞에 매듭으로 확대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로버트 인디애나 <러브>, 1966
말없는 사랑이 더 미덥다
하물며 광화문 사거리의 전광판 불빛처럼 밝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은, 가만가만 누가 알까 겨워하며
그래서 이미 사랑이 아니다. 말로 다 해버린 사랑은 '사랑'이란
왜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했던지. 나 사랑해요? 라고 물으면,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라고 되묻던 사람.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에 떠도는 하고많은 사랑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이 더 미더웠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화면 가득 채운 'LOVE'.
이 사랑은 빨강이나 핑크 빛으로 관념 지어져 있는 사랑에 대한 믿음조차
한 치 오차도 없이 정교히 칠해진 LOVE라는 단어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단어를 빌려 나눠진 화면 위를
건조하고 단도직입적인 사랑. 과감하고 직선적이며 여지없이
밀레니엄의 지구 위를 떠돌고 있는 사랑의 실체는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쉽게 사랑하고, 치밀하게 계산하고,
사랑이란 단어를 빌려 방만하고 있는 모습. 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