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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 Van Gogh
 
 

1879.8.15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냐 좋으냐.
정말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일하는 것이 금지된 채 독방에서 지내는 죄수는 시간이 흐르면, 특히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리면,
오랫동안 굶주인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겪게 된다.
내가 펌프나 가로등의 기둥처럼 돌이나 철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다정하고 애정어린 관계나 친밀한 우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련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애정이나 우정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무언가 공허하고 결핍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말을 하는 것은 네가 이번에 나를 찾아준 것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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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n out at Eternity Gate,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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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with a child on her lap,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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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tato Eaters,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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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for the Potato Eaters March,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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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of Three Hands for Potato Eaters, 1885
 

1881.12.21

상상이나  현실속의 교회의 벽을 생각하면 냉기를 느낀다. 영혼까지 스며드는
섬뜩한 냉기를. 그런 치명적인 감정에 압도되는 건 아니겠지 하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무언가 변화를 주기 위해서라도 여자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랑없이는, 사랑하는 여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다.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그녀만을 원한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다른 여자에게 가고 싶어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느냐고 혼자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
논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내가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비합리적이고 분별 없는 내 성격에 어떤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빌어먹을 벽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고,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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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인 1882년 4월, 연필과 잉크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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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as an Artist, 1888


1883.12.15

아버지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의식적으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안에 지저분한 발을 하고 드나들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 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걸리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
그래 좋다. 그러나 그 짐승은 사람의 내력이 있고 사람의 영혼이 있다. 게다가 다른 개와는 달리 아주 예민해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가족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 개를 집지키는 개로 삼고 키울 수도 있을텐데, 그들은 이곳이 평화롭고 어떤 위험도

없는 곳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 이상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겠다.
개는 이곳에 돌아온 걸 후회한다. 그들이 친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황야를 떠돌 때도 이집에서 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불쌍한 짐승이 돌아온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뿐이다.



1883.12.17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개로 남아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자연을 떠난 자는 머릿속이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다보면 더이상 검은 것과 흰것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결국 애초에 원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겠지.

'수컷은 아주 야만적이다' 라는 미슐레의 말이 생각난다(그는 이말을 한 동물학자한테서 들었다고 한다). 요즘 내 감정이 아주 격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 자신도 '아주 야만적' 으로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상대가 나보다 약한 경우에는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싸우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영적인 삶의 안내자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목사인 아버지를 가르킨다)과 원칙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결코 비열하지 않다,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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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martre, 1886, oil on canvas,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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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levard de Clichy,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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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 Lottery Office,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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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 Night, 1889



1888.6.18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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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1888.6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Vincent, Don Mcl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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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droom, 1888
 
 
1888.10.16

이번 편지에 드디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작품의 구도를 너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구나. 오늘 기분은 좋다. 아직도 눈은 피곤하지만 머리속에는 새로운 구상이 떠오른다. 여기 그 스케치를 보낸다. 이번에야말로 내 침실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오직 색채만이 내 침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침실의 물건들을 굵은 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침실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벽은 밝은 보라색이고 바닥은 붉은 색으로 칠할 생각이다. 침대와 의자의 나무는 신선한 버터같은 노란색이고, 침대 시트와 베개는 초록빛이 도는 레몬색으로 할 것이다. 침대보는 주황색이고 창은 초록색, 탁자는 오렌지색, 세면 대야는 파란색으로 칠할 예정이다. 문은 자주색으로 칠한다.

이것이 이번 작품의 전부이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벽에는 초상화와 거울, 수건, 약간의 옷이 걸려 있다. 그림 안에 흰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테두리는 흰색이 좋겠지.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내일도 하루종일 이 그림에 매달릴 생각이다. 구상이 아주 단순한 그림인만큼, 그림자나 미묘한 음영은 무시하고 일본 판화처럼 환하고 명암이 없는 색조로 채색했다. 이 그림은 <타라스콩의 합승마차>나 <밤의 카페>와 좋은 대조를 이룰 것이다. 그림을 완성하려면 내일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해야 하니 편지를 길게 쓰지는 않겠다. 아픈 건 좀 덜해졌는지? 나에게 알려주는 걸 잊지 마라.
곧 답장을 보내주기 바란다. 언제가는 너를 위해 다른 방도 스케치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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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Terrace at Night,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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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guin’s Chair, 1888



1889. 1. 22


자네(고갱)에게 작약 그림이 있고, 코스트에게 접시꽃 그림이 있다면, 나에겐 해바라기 그림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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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5.2

삶은 공정하지 않았다.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나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해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생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정신병원이나 군대처럼 규칙에 따라야만 하는 곳에서 더 편안할지도 모르지. 내가 미쳤거나 간질환자라는 걸 이곳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어서 나를 거부할 가능성이 큰것처럼, 파리에서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잘 생각해보자.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림이든 무슨 일이든 그럭저럭 해나갈 생각이다.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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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를 문 귀를 자른 자화상,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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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ellow House,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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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의 창문에서 보기, 1886~87년


1889.9.7~8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왈칵 난다.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막상 겪게 되면 공포를 느끼게 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소망하고 이루려고 해야 할일을 나는 이루지 못했고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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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Agostina Segatori) at a table in the Cafe du Tambourin,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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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s at Auvers,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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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irway at Auvers, 1890



고갱이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中

고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네.
정말 슬픈 일이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슬프지는 않네.
그 가여운 친구가 자신의 광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알기 때문이네..
지금 세상을 떠난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까.
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고, 환생하여 그가 전생에서 한 훌륭한 일로 보답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나마 동생에게 버림 받지 않았고 화가 몇 사람이 그의 작품을 이해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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