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되던 해, 내 매혹의 대상은 타자기와 카메라였다. 처음 그들이 내 손에 닿았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어떤 운명같은 것이 나를 이끌어 예까지 오게하였음을. 헤아려보니 지난 10여 년간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탄 횟수는 대략170여 차례. 다닌 나라만 해도 50개국, 2백여 도시가 된다. 이 책은 내가 그토록 갖고자 했던 카메라와 타자기. 바로 그들이 시킨 운명의 행로를 따라 '길' 위에서 쓰고 찍은 사람과 인연과 사랑, 그 추억의 수줍은 기록들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001 ‘열정’이라는 말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이 들어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002 취향 다리기
옥상에 말리려고 널어좋은 젖은 수건을 그만 두고오는 바람에 며칠째 수건이 없다.
필요한 것인데도 5일가량 돈을 아끼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사고 보니 이건 수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행주에 가깝단 생각이 든다. 아니 행주다. 괜찮다. 취향을 바꿔버리면 그만이니깐.
마른 손수건을 접을 적에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수건을 십자 형태로 접는가. 아니면 길게 두 번 접어서 다시 반으로.
반으로 이렇게 접는가. 상표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게 접는가. 아니면 상표가 드러나게 접는가.
접은 손수건을 다리미로 꾹 눌러 각을 세우는가. 아니면 손수건에 선명한 주름이 생기는 걸 죽을 것처럼 싫어하는가.
괜찮다. 여행은 당신의 그런 사소한 취향을 다려 펴주는 대신 크고도, 굵직한 취향만 남게 할테니.
#003 멕시코이발사
나는 이발사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청결하잖아. 청결하지 않은 이발사는 본 적이 없어. 어느 날부턴가는 이발소에 가는 일이 촌스러운 일이 되버려서 더 이상 가지 않지만 난 여행을 가서 어쩔 수 없이 머릴 잘라야 할 일이 있으면 이발소를 찾아가. 앞머리가 눈을 찌른다거나, 며칠 동안 머리를 감을 수 없어서 떡진 머리 속으로 스멀스멀 뭔가가 기어다니는 기분이 들면 역 앞에 내려 이발소가 있는지 두리번거리지. 이발소여야만 해. 달착지근한 미용실의 냄새가 아닌 비누 냄새 나는 왜 그런 이발소 있잖아.
말이 안 통해도 괜찮아. 이발소에서 파마를 해달라고 할 건 아니니까. 일단은 들어가서 흰 천을 두르고 앉은 다음,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당겨서 이발사가 잘라야 할 길이를 알려주는 거야.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싹둑'하는 제스처를 보여 줘야지. 면도는 꼭
하게 내버려둬야 해. 네팔에서도 중국 류저우에서도, 루마니아 시골 마을에서도 내가 이발사에게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듯 찜찜한 표정을 보였거든. 대신 면도날은 끓는 물에 소독한 다음, 면도를 해달라고 하는 게 좋아. 나 때문에 일부러 물을 끓이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좋아.
멕시코의 곤잘레스 할아버지는 기막힌 이발사였어. 60대의 할아버지였는데 그 손길, 있잖아. 일개 머리통에 불과한 것을 대하는 자세가 예술적이였어. 뭐랄까, 배려가 넘치면서, 정확하고,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했는데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전혀 생색내지도 부러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는 거야.
압권은 역시 면도였어. 그는 세 개의 컵을 가져다 나에게 향을 맡게 했는데 비누 거품을 만드는 그 통엔 각각 향이 다른 비누가 담겨 있었더든. 그중에서 맘에 드는 걸 고르게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프로인지 알 수 있겠지. 물론 머리 감길 때
역시 손님이 선택한 향비누로 머릴 감겨주더라고. 난 적어도 남을 위한 배려가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 한 가지 비누만으로 모든 손님의 머릴 감기고 면도를 해주는 것도 뭐 나쁜 일이긴 할까마는 왠지 존중받는 느낌이잖아.
내 머리카락과 수염이 존중받는 거잖아. 그 기분이 나쁠 리 없잖아.
다음 날 아침,
나를 깨운 건 이발소에서 내 머릴 감겨 준 그 비누 향이었어.
달큼했어. 나쁘지 않았어.
#004 그렇게 시작됐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얘기해줄까요?
우선 흰 도화지의 한가운데를 눈대중으로 나눈 다음,
맨 위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줄을 내려 그어요.
이 선은 뭘 의미하냐 하면 왼쪽벽과 오른쪽 벽을 나누는 건데
우선 지금 당장은 평면처럼 보이지만
이 두 벽은 정확한 90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왼쪽 골목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가려면
90도, 몸을 회전해야 되는 '기역자' 벽인 거죠.
일단 왼쪽 벽에다가는 한 남자를 그려요.
벽 쪽에 몸을 바싹 붙이고, 오른 쪽 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살금살금 숨바꼭질하듯 눈치를 보고 있는 옆 모습의 한 남자를요.
오른쪽 벽 역시, 마찬가지로 한 여자를 그려요.
여자 역시 벽 쪽에 붙어서 조심스레 누군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옆 모습 여자를요.
실제 거리는 몇 센티에 불과하지만 90도로 꺽인 벽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저 벽 뒤에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죠.
그림은 그림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지해 있지만 1초 후,
만약 그 두 사람이 앞으로 조금만 움직인다면
코를 부딪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다시 1초 후, 두 사람 모두 화들짝 놀란 나머지
몸을 정반대로 되돌려 멀리 멀리 뛰어가버릴지도 몰라요.
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 게 다인데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된 무엇처럼
그 한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싹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하지만 이 그림은 혼자서만 애태우는 사랑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존재 때문에 애달파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부딪치고 나면 아마도 두 사람은
마음을 터놓으면서 자신의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죠.
「사실, 난…오래 전부터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이 말을 동시에, 둘이서, 상대방이 똑같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 말이 골목 가득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거예요.
이제, 두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를 훔쳐보기 위해
수도 없이 벽 모서리에 얼굴을 기댄 자리는 더 이상 닳지도 않을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래요.
한 사람의 것만으론 가 닿을 수 없는 것,
그러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또 모자란 것,
그래서 약한 물살에도 떠내려가버리고 마는 것.
한 사람의 것만으론 이어붙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자, 지금까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얘기를 했어요.
이 그림 제목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거예요.
근데 나는 과연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005 시간을 달라
당신은 모든 것에 있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하는 시간,
약속 장소에 나가는 시간,
비디오로 본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나서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당신은 스톱 버튼을 누르며,
심지어 전화 받을 때도 벨이 다섯 번 이상 울린 후에야
겨우 받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그러니 당신에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어쩌면 사랑하는 일에도 당신은 똑같은 속도를 고집할지도 모른다.
그게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 시간을 송두리째 나에게 내줄 수 있냐는 거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내준 그 시간 동안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겠냐는 거다.
당신이 시간을 사용하는 것처럼 늘 익숙하고 늘 당당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애절하고 조금은 울컥하는, 그 무엇이었으면 하는거다.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나와 사랑을 시작할 거라면 그냥 나에게 이렇게 말 붙이면 되는 거다.
「 넌 뭘 좋아해?
음, 난 TV를 크게 켜놓고 만화책 보는 시간이랑,
친구가 사준 창가 화분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을 주워
유리컵에 담아두는 일이랑,
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해. 너무너무 좋아해. 」
아마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공중에서 새 한마라기 날아와
내 어깨에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는 내 귀에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제 됐어. 그녀가 침묵을 깨고, 이제 시작한 거야. 축하한다구. 」
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습관을 이해하고, 당신의 갈팡질팡하는 취향들을 뭐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당신이 먹고 난 핫도그 막대를 버려주겠다며
오래 들고 돌아다니다가 공사장 모래 위에 이렇게 쓰는 것.
「 사랑해. 」
그러니 나에게 시간을 달라.
나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
#006 거북이 한 마리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 하는 일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일로 몇번의 죽을 것 같은 고비를 겪은 적이 있는 사람한테는
사람 믿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마음아프게도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픈 일이 많아 아주 먼 나라에 가서 살게 된 사람이 있다.
정말 그렇게까진 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인데 사람을 등지는 일이,
나라를 등지는 일이 돼버린 사람.
쓸쓸한 그 사람은 먼 타국에 혼자 살면서 거북이 한 마리를 기른다.
매일매일 거북이한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말을 붙인다.
그럴 일도 아닌데 꾸짖기까지 한다.
불 꺼진 집에 들어와 불켜는 것도 잊은 채 거북이를 찾는다.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란 확신으로 거북이에게 기댄다.
근데 왜 하필 거북이었을까?
「거북이의 그 속도로는 절대로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보다도 아주 오래 살테니까요.」
도망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먼저 거북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이 두가지 이유가 그 사람이 거북이를 기르게 된 이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심하게 다친 사람의 이야기.
#007 캄보디아 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다녀와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던'이란다.
던은 내가 두 번째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사흘 동안 사원을 안내했던 친구.
스물한 살이었고 얼굴이 까맸고 축구를 좋아했고 사원에서 나를 기다린다고 해놓고 잠이 들어 나를 잃어버렸던 친구.
내가 앙코르와트가 좋아 그곳에 한 달 정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다시 오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원에도 데려다 준다고 했던. 다시 오게 되면 그땐 일반 숙소가 아니라 농담처럼 너의 집에 머물겠다고 했을 때 「다 좋은데 우리 집은 전기가 안 들어와서 어두워.」라고 말했던.
국제전화를 걸어온 이가 던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해져 있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내가 돌아온 날짜를 헤아렸고 내가 두고 온 것이 있는지를 되돌아봤고 사원의 조각과 나무와 바람들을 떠올리느라 대답이 늦었다.
나는 웃을 수도 없었고, 「왜 전화했어?」 라고 물을 수도 없었고 「잘 지냈니?」 라고 물을 수도 없어 싱겁게 말했다. 「한국에 온 거야?」 아니라고. 캄보디아라고. 대뜸 그가 언제 올 거냐고 묻는다.
던은 '내가 다시 오게 되면'이라는 가정으로 그에게 수도 없이 물었던 질문들을 기억하고 내가 곧 올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금방 돌아갈 거라고 그는 믿었단 말인가. 나는 말을 잇지 못한다.
내가 오면 공항에 나와주겠다고 한다. 내가 오면 호수에 가서 수영하자고 한다. 나 오면 예쁜 여자 친구들도 많이 소개시켜줄 것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프롬 사원에도 다시 꼭 가보자고 한다.
그렇게 쓸쓸히 전화를 끊고 세수를 하겠단 마음이 들어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은 무엇으로 붉어져 있다. 그것이 앙코르와트를 감쌌던 노을 같기도 했고 앙코르와트를 적시던 아침 태양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것은 세수를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붉었다.
#008 혼자는 좋아
내가 그의 친구가 되기로 한 건 그가 이름을 두 개나 가지고 있어서였다.
모리스 탱샹(Maurice Tinchant), 트란 트롱(Tran Trong).
아버지가 프랑스인이고 어머니가 베트남인이어서
그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퐁피두 센터엣 열린 한국영화축제 기간 동안 그를 알았는데
그는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은 영화 제작자(그의 대표작은「잔다르크」이다)였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초대라기보다는, 저녁 식사 때가 되었는데
마침 찾아간 우리 집 근처의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친구는 그냥 자기 집에 가서 간단하게 뭘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그의 집은 식물이 많았다. 이국적인 나무들이 주택 정원에 심어져 있었고
한쪽 화단에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허브를 잘라 생수병에 넣으니
물은 훌륭한 허브차가 되었다. 식물을 사면 웬만한 건 땅에다 심는다고 했다.
식물이 많은 집. 왠지 그가 달라 보였고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집을 훔치고도 싶었다.
정원에 가득한 식물로도 모자라 실내에 들여놓은 화분은 식물원을 연상케 했다.
부엌 식탁 옆에 놓인 시클라멘 비슷한 꽃이 보기 좋다고 하니 그가 말했다.
「걘 여행 갈 때, 나랑 같이 가.」
「여행을?」
「한 달 전에 태국 갈 때고 같이 갔어.」
「공항에서 뭐라고 안 해?」
「나갈 땐 괜찮은데 태국에 입국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 걜 데리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까다로웠구.」
난 잠시 당황한다. 그럴 수 있는 것들이. 그러고 싶은 것들이 내겐 몇이가 될까.
「얘가 아프지 않아?」
「가서는 좋아하는 것 같던데 와서는 시름시름 앓더라구.」
여행 후유증이군. 마치 사람처럼…….
「근데 개나 고양이라면 데리고 다니는 걸 이해하겠는데 정말 이상하군.」
「그래서 이혼했어. 그런 날 싫어해. 내 여자는.」
「아,미안.」
「혼자가 좋지?」
「혼자 좋지.」
그가 나에게 보내준 크리스마스 카드를 기억한다.
소포를 받아 보니 엽서 크기의 납작하고도 투명한 플라스틱 통이다.
두께는 1센티미너 정도.
재활용 용기 같은데 무엇에 쓰인 용도인지는 잘 모르는.
그 안에는 껍질을 벗겨내지 않은 보리가 들어 있다.
흔들면 소리가 날 정도.
마당에다 기르던 보리를 말린 거라고 했다.
매직펜 같은 걸로 플라스틱 표면에 간단히 인사를 적어 보내왔다.
그 예쁜 카드를 받고 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혼자 사니까 시간이 많지? 나도 그게 좋아.」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데리고 여행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지만 어느 한편 그것들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불편할까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나는 여행하면서 이런 것들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여전히 신기하다.
-트렁크 가득한 책.
(게다가 그걸 다 읽고 버리는 사람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평소 즐겨 먹는 원두커피.
-두툼한 일기장.
-잠옷.
-애인.
#009 탱고
그날, 탱고 공연을 보고 나온 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하늘에 초승달이 위태롭게 떠 있던 날. 골목길을 혼자 걷다가 골목길을 돌기위해 몸을 꺽는순간, 나도 모르게 탱고 스텝을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웃었다. 그날 본 탱고 공연이 너무 대단해서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탱고 학교에 가보겠다 맘을 먹었다. 쉽진 않겠지만 탱고를 배워도 좋겠단 생각을 한 것이다. 탱고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면서도 로맨틱한 춤이란 인상이 내겐 있었다.
탱고 학교에서는 나처럼 여행 온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 떨렸던 것 같다. 사진이나 영화로만 봐왔던 그걸 과연 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강사는 긴장도 어려움도 모두 없애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 강사의 발만 밟기 일쑤였다. 그래도 미안해하지 말라고 한다. 남의 발에 밟히는 일이 자신의 직업이라며. 발을 몇 번쯤이나 밟았을까. 도대체 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오늘도 나는 그곳에 갔다. 오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몇몇 외국인 커플도 탱고를 배우기 위해 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위스에서 왔다는 '세실'이라는 이름의 너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늘씬했고 진지해 보였고 무엇보다 인상이 부드러운.
강사는 나와 너를 앞으로 불러내어 지금까지 익힌 간단한 동작들을 해보이라고 말한다. 나는 창피했지만 네 손을 잡는 순간 갑자기 모든게 괜찮아진다. 내가 너의 발을 밟을때마다 우릴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웃었지만 그럴 때마다 넌 더 열심이다.
내가 자꾸 너의 발을 밟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두 손을 들어 보였더니 강사는 벽에 붙여놓은 사진 한 장을 가리킨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여인의 향기』 포스터였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 있다
「 잘못하면 스텝이 엉기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기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그 문구를 읽는 순간 내 앞에 벌어진 모든 상황들이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로맨틱한 뭔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탱고를 배우려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손수건을 꺼내 너의 구두를 닦아주려고 하는데 너는 그러지 말라며 내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 구두 콧등을 쓱쓱 닦아낸다. 너는 고맙다고 웃으며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나가 스텝을 익히고 나자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있었고 강사는 특별히 시범을 보여준다면서 조수쯤으로 보이는 여인과 탱고를 추기 시작한다.
춤을 추는 두 사람은 잔잔한 호수를 걷는 새들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나는 순간 탱고의 의식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 출 수 없는 춤. 저런 춤을 추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 벽에 붙은 포스터의 글씨가 이렇게 읽히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010 낙엽들
페루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 안에서 뉴욕 맨해튼에서 왔다는 옆자리 중년 여인에게 대뜸 묻는다.
「뉴욕의 지난 가을은 어땠어요?」
그녀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싱긋 웃으며 답했다.
「7억, 8천8백91만, 9백 서른아홉 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 모두 자기 짝을 찾을 것처럼 뒹굴고 뒹굴었어요.」
#011 라임 아저씨
멕시코 시티는 참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공기가 좋지 않아 조금만 걸어도 목이 칼칼했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을 닦으면 고운 입자의 모래들이 손등에 묻어났다. 게다가 하루에 5리터가량의 물을 해치워도 마시는 순간일 뿐, 갈증을 달래진 못했다. 그러다 숙소 앞 물장수 아저씨랑 친해졌다. 하도 물을 사러 오는 통에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아저씨 하시는 말씀. 물을 많이 먹는군. 라임을 얇게 잘라서 물통에 넣어봐.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그렇게 말하는것 같았다.아저씨는 냉장고에서 라임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라임 값까지 지불하려 하자 아저씨는 그냥 물 값만 받겠다고 했다. 라임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숙소로 돌아와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했다. 물맛은 새콤해졌고 물 전체에 퍼진 향은 물을 마시고도 오래 입 안에 남았다. 신기했다. 고원도시에서 내 몸을 축내던 갈증은 한순간 가벼운 것이 되어 날아가버렸다. 시장을 돌다가 아저씨 생각이 나 라임 한 봉지를 샀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아저씨에게 라임을 반 나눠 내밀었다. 안 받겠다고 한사코 손사례를 치더니 서너 개만 받겠다고 했다. 물을 많이 먹는 너한테 더 필요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내 겨드랑이에 끼워놓은 지도책을 보자고 했다. 볼펜으로 줄까지 그어가면서, 내 남은 여정을 짚어가며 걱정해주었다.
여기는 꼭 가볼 것. 여기는 가더라도 조심할 것. 여기부터 여기 구간은 꼭 기차를 탈 것, 단 급행 말고 완행으로. 그리고 위험한 상황이 되면 태권도로 물리칠 것!
난 그 이후로 목마른 시간이 찾아오면 습관처럼 아저씨의 얼굴이 생각난다.
라임 아저씨, 덕분에 잘 있다 왔어요.
#012 the land of plenty - INDIA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나라, 아무것도 아닌 나라
우리가 어디론가 무작정 가고 싶어한다면 그곳은 모르긴 해도 이래야 할 것이다.
정신의 고향쯤으로 느껴지는 곳, 살면서 배운 몇가지 습관과 형식이 일제히 무너지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인도다. 위험하다는 정보만큼 마음의 짐을 단단히 꾸릴 것, 돌아올 날짜를 못 박듯 정해놓지 말고 떠날 것, 인도로 가는 사람이 챙겨야 할 몇 가지 덕목은 그렇다.
인도에서는 예약도 쉽지 않고,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더군다나 흥정도 불가능하다. 인도에서의 모든 요금은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고 가이드북은 일러주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인도인들은 여행객의 호주머니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데다 그들의 뚱딴지 같은 고집과 딴소리 잘하는 기질은 아마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쯤 실컷 당한 다음에야, 몇 번이고 인도를 떠나야겠다고 투덜대는 입장에 처한 다음에야 그 모든 것들은 순연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헤쳐나갈 몇 가지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겨우 그렇게 된 다음, 적당한 수위로 여행자의 소심증이 단련될 즈음 그들의 그런 모든 행동과 욕심들이 어차피 사는 모습의 일부라고 느끼게 된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인도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라가 된다. 무시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간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 되므로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용접하거나 강심장이 되어야 한다. 질서를 지키는 것도 무의미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일순 우스꽝스럽고 복잡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그 모든 것들이 뒤집어지는 전복의 순간을 만난다. 문득 그곳에서 짐을 풀고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그 며칠 동안,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나라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누구나 낯선 곳에 갔다면 지도를 보면서 갈 곳의 확인과 가야 할 곳을 정한다. 지도의 용도는 대충 그렇다. 그렇다면 인도에서 지도의 의미는? 갔던 곳과 지금 있는 곳을 표시해주는 유일한 노트의 기능만 할 뿐이다. 너무 넓어서, 너무 커서 인도를 다 돌아야겠다는 사람 앞에 놓인 인도 지도란 난폭하고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사람 환장할 노릇이 된다. 인도 대륙 앞에서 여행자는 무저항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모든 게 느리다. 모든 게 멀다. 모든 게 근접 불가능이다. 한 나라에 있다고 하기엔 그 지명들은 너무 멀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도를 이기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인도 대륙 정복의 꿈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최소 1년이란 시간을 투자할 것. 물론 이 얘기는 인도를 몇 년째 떠돌고 있는 이탈리아 여행자에게 들은 얘기다. 나라의 크기에 질리지 않기 위해서 아예 지도를 버릴 것을 권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오래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도는 더 이상 필요치가 않다. 지도가 없는 여행을 두려워 한다면 단지 배낭 속에 넣어 두고 자주 꺼내 보지 않기를 권한다. 그도 아니라면 큰 땅덩이를 돌아보겠다는 유혹을 얼마간 잠재우고 한 곳에서 또는 두세 곳에서 푹 썩는 거다. 그럴 수 있다면 한 며칠 짐을 풀고 매일매일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날마다 다른 인도의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인도에서 마음의 가닥을 잡아가는 자신의 모습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인도는 그런 곳이다. 믿지 말아야 할 것 투성이지만 결국은 믿고, 껴안아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나라, 아무것도 아닌 나라 같지만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어 충분하고도 충분한 나라.
#013 길
햇빛 비치는 길을 걷는 것과 그늘진 길을 걷는 것,
어느 길을 좋아하지?
내가 한 사랑이 그랬다.
햇빛 비치는 길과 그늘진 길, 늘,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고 또 힘들어 했다.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길 다 사랑이었는데, 두 길 다 내 길이었는데
왜 그걸 두고 다른 어느 한쪽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을까?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이 레몬인지 오렌지인지 그걸 모르겠을 때
맛이 조금 아쉬운데
소금을 넣어야 할지 설탕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어젠 그게 분명히 좋았는데, 오늘은 그게 정말로 싫을 때
기껏 잘 다려놓기까지 한 옷을,
빨랫감이라고 생각하고 세탁기에 넣고 빨고 있을 때
가야지요.
차곡차곡 쌓은 환상을 넘겨보려면.....
가야지요.
때론 그것들이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도 봐야죠.
#015 함께
남자 둘이서 간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을 가려고 한 나는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서 여행 계획을 얘기했고
그럴 의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친구는 나에게
'따라가도 되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그의 '따라가도 되겠냐'는 제안에 불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같이 가도 되겠냐는 제안에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둘 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래서 그 두 사람은 멀리로, 아주 멀리로 날아갔다.
노르웨이 오슬로.
두 사람에겐 말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난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 있어서였지만 친구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말이 없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겠지만
그건 우리가 불편하다는 사실 그대로를 증명하고 있는 거였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둘을 말하지 않았다.
정말, 비참할 정도로, 징그러울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두 남자의 여행 방식은 그런 거였다.
기차를 타고 베르겐으로 이동한 두 사람은
항구 주변에 숙소를 정하고 매일매일 산책하는 일로 시간을 때웠다.
둘이서, 혹은 혼자서의 산책.
그러던 어느 날, 그래도 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온 거였다.
나는 친구에게 「나, 나갔다 올게.」라는 말조차 하기 싫어서
혼자서 나갔다 돌아오고 나갔다 돌아오고를 반복.
같이 여행을 하는 대신, 친구는 방해받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내 고집을 존중해주는 듯했다.
내가 나갔다 오면 나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친구도 슬며시 나갔다 돌아오고 나갔다 돌아오고를 반복.
하지만 나는 소리 없이 나가는 친구가 도대체 어딜 가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친구 몰래 뒤를 밟았다.
근데 매일 혼자서, 그렇게 친구가 다니는 길은 나하고 똑같은 길이었다.
호수에 노니는 물새들에게 눈길을 주고,
내가 앉곤 하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목공예 가구를 만드는 상점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천막 꽃집 점원이랑 눈인사를 하고 걸었다 멈춰 섰다의 반복.
비록 뒷모습이지만 그 모든 게 똑같다는 사실에 문득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뭔가 빠진 듯 허전하고 익숙하지 않던 여행에서 가슴속 독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측은하지만 대견하고, 쓸쓸하지만 듬직한 뒷모습.
나도 저런 뒷모습을 가졌을까. 저건 내 모습이기도 한 걸까.
나는 그에게 애써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뭘 먹이려 했고 어디든 같이 가자 했고 지난 시간들을 얘기하려 애썼다.
그의 뒷모습은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나이기도 해서
난 모든 걸 해제하고 혼자이길 원했던 고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는 길을, 내 뒷모습 모두를 나도 한번 따라가보고 싶다.
#018 사랑해라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사람과 한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 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는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019 가면의 도시
왜 하필 가면이었을까?
가면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실체가 그러한 것처럼 가면은 자신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 데 있다. 무도회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한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신분을 떠나 꿈처럼 살기를 원했던 '이상'에 걸맞은 문화 코드였던 것이다, 상점에 내걸린 가면이 수면에 비친 모습에서 인간이 하찮은 감정들로부터 무관심해져 있는 순간을, 인간 영혼이 물위를 떠가는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그렇게 가면을 쓴 채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삶에 얽혀진 짐들을 벗어놓는 순간이며, 꿈이 현실에 대답을 하는 순간이다.
물, 유리, 레이스, 가면, 곤돌라, 광장, 베니스를 수식하는 이런 말들이 아무리 베니스 여행을 결심한 당신 가슴에 미리 떠다닌다 해도 정작 베니스의 아름다움은 베니스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다. 비좁은 골목과 골목을 지나고 좁다란 운하와 운하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가, 산 마르코 광장에 쏟아지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가면을 꺼내드는 그 순간, 당신은 어깨에 실린 모든 짐들을 벗어버리고 세상의 만져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향해 손을 뻗고 싶을 것이다.
#020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을, 아니 다시 태어나야 할 - 삶과 죽음의 냄새가 난다, 베니스
어깨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많은 날들을 기차 안에서 쭈그린 채로 자야 했던 피로가 누적되어 가방 하나를 메고 다니기조차 힘들 지경이 되어 있었다.
물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축 처진 몸을 데리고 다니지 못했다.
베니스에서 나는 씻고 싶었다. 인도 갠지스 강가의 그들처럼 그 물에 몸을 담그고. 어딘가를 향해 손을 모으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베니스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이 물기이건만 나는 그 물을 따라 걸으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물의 냄새를 맡았다. 제법 오래된 냄새가 수면 위를 떠다녔다. 수로를 따라 걷다가 무작정 받쳐오르는 감정이 도무지 무슨 감정인지 그 폭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란 늘 엄청난 엄살을 동반했다.
잠을 잤다. 허름한 방, 낡은 카펫, 그 어느 때보다도 새파란 새벽이 걸어왔다. 엽서를 꺼내들었다. 쑥스러운 글씨로 인사했다. 한 일 년쯤 보지 못한 형에게 언제 술한잔 하자고.
베니스의 건물 벽은 하늘을 닮았다. 창문을 닮았다. 들판을 닮았다. 벽에 눕고 싶다. 저 벽들을 찢어 넣고 가고 싶다. 모조리 배에 태워 서울로 부치고 싶다.
베니스엔 창문이 많다. 사람 사는 집에는 으레 창문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워낙 엄청난 습기를 안고 사는 도시라 그런지 모든 벽은 태양을 향해 뚫리고 창문이 만들어진다. 창문이 많아서 사람들은 창문에 매달려 산다. 창문에 매달려 빨래를 널고 창문에 매달려 이웃과 얘기를 나누며 창문을 딛고 서서 세상을 보려 한다. 창문을 올리다보며 어린아이가 자라고, 사각 창문에 맞춰 삶이 재단되고 인화된다.
숱하게 다닌 곳 가운데 어디가 제일 좋냐고, 어디서 살고 싶으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난 수십 번쯤 베니스라고 답했고 그러므로 수십 번쯤 죄를 지었다는 느낌. 어떤 극찬도 베니스에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선 이물스러운 발언일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 여행자의 개인적인 경험 혹은 인상은 함께 동행하지 못한 사람에게 허황한 허사에 그치기 쉽다.
여러 번 밤기차를 타고 달려갔던 베니스는 엄살뿐인 생채기를 핥아주었고 돌아가 잘 살라고 역까지 따라나와 다독거려주었다. 베니스의 흥망성쇠는 무엇이 가슴을 뜨거워지게 하는가를 알게 했으며, 골목골목에 모가지를 내민 그들의 빨래 냄새는 모든 세상의 이치를 잘 다려 줄 것만 같아 정신들게 한다. 그 신세들이 내 빚의 일부일 테지만 갚을 수 없는 빚 대신 나는 베니스에 관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는 것 말고 또 다른 계산을 해줄 건 없지 않을까 싶다.
어디서 태어나고 싶은가 불행히도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말이다. 옆집의 사내아이로 태어나고 싶은가. 아니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 삶을 택할 것인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며,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세상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태어나고 싶은가. 태어나야 한다면 얼마를 준비할 것인가. 얼마를 돌이킬 참인가.
그래, 다음 생에 우리는 베니스에서 태어날 것이다. 당신과 나는 꼭 그리 할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진 게 없어 불행하다고 믿거나 그러지 말자.
-문 밖에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하지 않았던가.
#022 끌림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직업을 물은 적이 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파리 토박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하는게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러면 그 여행 경비는 어떻게 버느냐고 했더니 틈틈이 막노동 일을 하면서
그 수입으로 에펠 탑도 올라가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간다고 말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뭣할 정도로 가는 곳엘 가고 또 가고하는 사람.
도대체 그가 에펠 탑에 오른 횟수는 얼마이던가.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올라 파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외친 적은 몇번이던가.
파리의 수많은 장소와 거리,
또는 건물들은 정말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빛의 세기에 따라 바람의 결에 따라 한 번 와 닿았던 인상이 전부 다가 아닌,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가 바로 파리다.
수많은 표정을 매일매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그 일은 파리에 사는 사람들에게조차 일과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청년을 우연히 바스티유 광장 근처에서 마주친 적 있는데
내가 먼저 알아보고는 반가워 악수를 청했다.
분수에 고인 물로 손을 씻고 있던 그가 얼른 바지춤에다 손을 닦았다.
「여행 중이니?」
「살고 있는 중이지. 요즘 일이 없거든. 하지만 곧 떠날 거야.」
「어디로?」
「파리로」
#023 ‘아비’의 맘보
너는 3월의 어느 봄날, 교실 창문을 뛰어넘어 나 있는 쪽으로 걸어온 아이.
너의 등 뒤로 쏟아진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내가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 때, 나를 툭 치고 지나가던 아이.
하지만 괜찮았어.
너의 걸음걸이, 속도, 그리고 너의 뒷모습까지도.
그 정도 신호라면, 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
넌,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칠판을 지우곤 하던 아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건 당번들이 하면 되는 거였는데
넌 칠판을 지우고 그랬었어.
아이들은 수군댔지만 난 그런 너를 싫어하지 않았지.
아니...... 난 그런 너를 좋아했었어.
난, 너한테 그렇게 물었지.
「너, 칠판 지우는 일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내가 지워줄 수도 있어.」
그랬더니 넌 이렇게 말했어.
「안 힘들어. 그 많은 글씨들을 다 지우고 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데.」
「왜, 뭐가 그렇게 답답한데?」
「그냥 다...... 그냥 다......」
아프지마.
아프더라도 10분만 세게 아프고 말아.
네가 그 아픔을 남에게 전가하려 든다면 그 사람도 아플 거거든.
그가 조금도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자기 아픔을 다 쏟아놓지는 마.
그럼 애초 앓던 그 사람 아픔은 숨이 막혀 곱절이 돼버리거든.
그래서 넌 지금 그곳에 없구나.
눈 마주치는 일조차 미안한 일이 될까봐 어느 먼 곳,
아무도 없는 역에 내려 '난닝구' 바람으로
혼자 맘보를 추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혼자는 추지 말고 아픔과 함께 추어라.
대신 얼마나 힘이 됐는지 아픔은 모르게 하라.
*영화 「 아비정전」에는 극중 아비로 분한 배우 장국영이 러닝셔츠를 입고 맘보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
#024 나는 간다
거대한 어항 같은 도시 안에서 물기 없는 호흡을 하고 있을때,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와 떠들고 있을때, 문득 나를 에워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놓고 싶을 때, 깊은 밤 잠에서 깨어 통장 잔액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죽집에 들어가 죽 한 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다 주인이 가져다준 신문 첫 장을 외면하고 싶을 때,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아플 적에 친구 고래가 아픈 고래를 수면까지 밀어올려서 숨을 쉬게 해준다는 얘길 들었을 때, 웅크린 채로 먼 길 가는 달팽이의 축축한 행로를 지켜보고 있을때, 아무도 없는 밤바다에 알몸을 담그고 누워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을 때, 어쩌면 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 뿐일지도 모른다는 억지스러운 논리와 세상 모든 이야기가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어쩔수 없이 동의해야 할 때,
기다리는 것이 희망인 줄 정확히 알면서도 희망이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군중들 속에서도, 한낮인데도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왔을 때, 그렇게 한낮이 무거웠을 때, 달큼한 바람이 불고 몸이 뜨거워지고 그래서 눈을 감고 싶을 때, 뭔가 가득 채워놓은 것이 쓰러져 엎어졌을 때, 이사 후, 아무렇게나 기대놓은 그림을 누군가가 말을 해줘서야 바로잡고 있을 때, 정이 들어버려서 마음이 통해버려서 달빛 아래 각자 다른 길로 헤어지고 싶지 않을 때, 뭔가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짐을 꾸리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 그렇게 그렇게 한없이 한없이 걸어나갔다가 다시는 몸을 돌이키고 싶지 않을 때, 문득 뚜렷한 이유도 대상도 없이 무작정 고마울 때, 보름달 주기를 따라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던 마당의 꽃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할 때, 다시 또 누군가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을 때.
#025 511 W22ND STREET, NEW YORK
차마 이별하기에 그 길엔 사람이 너무 많았던가.
그 길은 너무 밝지 않았던가.
비 온 뒤라 길이 질척이지는 않았던가.
어려운 길이었던가.
잊지 못할 길이었는가.
내가 먼저 발걸음을 뗀 길이었는가.
당신이 그 길 위에 서서 오래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길이었던가.
코끝으로 작약꽃 향이 아스라이 스치고 지나갔던가.
아니 그냥 향수였던가.
아니면 나무 타는 냄새였던가.
정녕 안녕이라고 말한 길이었던가.
한데 왜 나는 그 길 위에 다시 서서 당신을 부르는 걸까.
#0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떤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 속담이다.
이 속담은 티베트의 칼날 같은 8월의 쨍한 햇빛을 닮아 있다.
살을 파고들 것만 같은 말이다.
내가 지금 걷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027 소파에 눕다, 구르다, 끄적이다
영화로 만들면 절대 흥행하지 못할 것 같은 슬픈 단편
▶ 공간
파리의 전철역과 혼자 사는 여인의 아파트.
▶ 등장인물
남자_ 대략 27세.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아주 어려서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여자_ 나이를 알 수 없는 여인.
느낌으로는 30세 정도로 보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프랑스 여자.
Scene 1 지하철 플랫홈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 남자.
지하철 한 대가 와서 멎으며 사람들을 풀어놓고 다시 떠난다.
한 맹인 여자가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남자 옆을 지나간다.
똑깍, 똑깍 - 지하 공간을 울려대는 맹인 여자의 지팡이 소리.
이때, 저쪽에서 주인(사내)과 함께 의자에 앉아 있던 큰 개 한 마리가
맹인 여자의 지팡이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다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컹컹거리며 짖기 시작하는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사나워진다.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는 여자, 다시 걷는다. 계속되는 지팡이 소리.
지팡이 소리에 더욱 흥분하는 개.
주인의 품을 헤치고 나와 맹인 여자에게 달려가 여자의 치마를 물어뜯는다.
사정없이 찢기는 여자의 치마, 당황해하며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는 맹인 여자.
이때, 느릿느릿 걸어가 개를 말리는 껄렁껄렁한 개 주인.
이를 지켜보던 남자가 자신의 셔츠를 벗어 맹인 여자의 아래를 가려준 뒤,
여자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다. 여자는 아까부터 흐느껴 울고 있다.
대충 성의 없는 사과를 하는 개 주인,
그런 개 주인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다 개 주인의 멱살을 잡는 남자.
그러다 참겠다는 듯 손을 놓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여자의 지팡이를 찾아 손에 쥐여주는 남자.
여자_ 고맙습니다. 제가 당황을 해서......
길을 모르겠어요, 매일 다니던 길인데......(공간을 감지하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출구가 지금 제 정면에 있나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대꾸하지 못하는 남자.
Scene 2 여자의 집
문이 열리며 맹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맹인 여자의 허리에 감겨 있는 남자의 셔츠.
대충 자리를 찾아 앉고는 한숨을 몰아쉬는 여자와
멍청히 서서 방 안을 둘러보는 남자.
여자_ 왜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질 않죠?
남자_ ......
여자_ 참 이상한 일이군요. 차 한잔 드시겠어요?
남자_ ......
남자는 창가에 올려놓은 화분을 보고 있다.
식물은 마를 대로 말라비틀어 있다.
남자가 아무 대답도 없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여자,
남자를 잘못 데려온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여 한순간 얼굴에 두려움이 들어찬다.
그래도 감정을 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더듬더듬 주전자를 찾고
주전자에 물을 채워 가스레인지를 켠다.
그녀의 동작이 점선처럼 느릿느릿, 더듬더듬 이어진다.
다시 찻잔을 챙겨 탁자에 앉는 여자.
그녀는 불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고,
남자는 탁자 위에다 성냥개비 여러 개를 이어붙여 알파벳 글씨를 만들고 있다.
「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성냥개비 글씨를 읽게 하려고 남자가 탁자 위에 올려진
여자의 손을 잡자 깜짝 놀라 뿌리치는 여자.
여자_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가슴이 답답한 남자는 날랜 몸짓으로 찻잔을 집어든 다음,
찻잔을 부딪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여자를 집중시키고, 진정시킨다.
이제 여자는 고요하다.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들어 탁자 위에다 뭐라고 쓰기 시작하는 남자.
「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여자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여자_ 미안해요. 전 글씨를 몰라요, 점자밖엔.... 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그녀가 힘없이, 하지만 평화롭게 미소짓는다.)
아, 이 얘기조차 알아듣지 못하겠군요.
남자, 다시 여자의 손가락으로 뭐라고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자의 움직임대로 따라가주는 여자의 손마디.
하지만 무슨 글씨인지 여자는 모른다.
여자_ (한숨을 쉬며) 우린 참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군요.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것을 보자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차를 만드는 남자.
(관객은 남자의 익숙한 행동에서 혹시 그가 이 집에 살고 있는 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어떤 익숙함을 발견하게 된다.)
탁자 위에 만들어진 두 잔의 차.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
그 위로 삐거덕하며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
#029 산더미
내가 파리에 살 적에 빈민가에 살던 시절이 있었어.
아랍 사람들과 흑인들이 많이 사는 곳.
허기 때문에 가게로 달려가도 아랍 가게 아니면
아프리카 상점 같은 그런 곳들뿐이었지.
깊은 밤에 두어 번 총소리를 들은 적 있고 11시 넘어서는 길가에서
은밀히 마리화나를 팔곤 하던 곳.
내가 자주 가는 아랍 가게는 식료품 가게였는데 할아버지가
아랍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야채며 쌀, 우유 같은 걸 팔았거든.
물론 내가 좋아하는 포도주도 팔고 통조림도 팔았지만, 아무튼 난
그 할아버지한테 고향이 어디냐고 물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고향이 어디라고 대답하는 소릴 들은 적이 없네. 귀머거리 할아버지였어.
두꺼운 안경을 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자주 졸고 있던.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시던.
아무튼 난 그 아랍 가게를 자주 갔는데 어느 날 깊은 밤,
무서운 동네의 공기를 가르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신문이랑 잡지들을 수레 가득 끌고 가게로 향하는 모습을 본 거야.
이상할 것도 없었지.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트집 잡으려면 끝도 없는 거였거든.
아무튼 근데! 그 가게가 있는 2층만 밑으로 무너져 내린 거야.
2층이 통째로 꺼져 내리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압사하신 거야.
너무 많은 책들을 2층으로 끌어올린 거지.
그 가게 앞을 지나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는데 그만 목이 메더라.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실려갔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물건들을 모두 털어가버려서 휑한 가게가 특히 더 그랬어.
그리고 2층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
그러니까 내장이 터져버린 것 같은 책더미 속에서
내가 읽다가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한국 잡지가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부분에선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선 뭔가를 자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과
내가 죽더라도 아무도 목이 메게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거야. 아랍 가게 할아버지로부터.
#030 이집트
내일 아침, 난 어디든 간다. 단, 할 수만 있다면 이집트가 아닌 곳으로, 다음 날 새벽, 카이로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나갔다. 카이로로 떠나는 첫 기차를 타기위해 사람들이 점처럼 모여드는 아스완 역. 추운 새벽이었다. 역사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거지가 몹시 추운 듯 잠에서 깨어난다. 거지는 추위에 비해 턱없이 얇은 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눈 뜨자마자 주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빵조각을 주워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한다. 배가 고파 보였다. 그때 거지 옆을 지나가던 한 사내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 가지고 있던 자루의 내용물을 모조리 비우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뭘 하려는 걸까. 주머니에서 칼 같은 것을 꺼내더니 두툼한 자루 밑동에 세 개의 구멍을 낸 다음, 빵을 우물거리고 있는 거지에게 그 구멍 난 자루를 거꾸로 해서 씌워주는 것이었다. 아! 추운 거지에게 훌륭한 옷이 선물되었다. 추워 보이는 거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사람은 비록 소매는 없지만 따뜻한 새 옷을 입혀주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거지. 나는 자루를 입혀준 그 사내와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진다.
난 문득, 언제인가 어느 역사에서 잠에 들기 위해 자루를 잘라 덮으려고 절반으로 나누는 두 사람을, 빵을 나누며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두 사람을 본 기억이 났다. 하나는 중국 광저우에서, 하나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였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징표 하나를 얻었으니 거지는 오래 따뜻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마음의 징표 하나 주었으면, 그 징표의 무게로 나 지긋이 따뜻해졌으면.
#031 something more
뭔가를 갖고 싶어한다. 뭔가를 찾아서 헤맨다.
뭔가가 더 있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모를 일이다.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건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씩 쓰러뜨려서라도
그걸 갖고 만지겠다는 건지를.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때문에
우리는 이렇게라도 연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something more.......................
이 세상에 있겠지만 이 세상엔 없을 수도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유로울 수도 , 벗어날 수도 없단 말인가.
#032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탓하지 마세요.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 데,
문제는 있는 거예요.
#033 옥수수 청년
우르밤바 계곡에 다녀오던 그날 밤, 기차역에서 다시 그 청년을 마주친다. 하루종일 얼마를 팔지 못한 건지 청년의 바구니 속엔 거의 줄지 않은 옥수수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난 그 청년에게 다가가 아까 주지 못한 돈, 1솔을 내민다.
청년은 고마워했지만 나는 돌아오면서도 돈도 받지 않고 그냥 옥수수 하나를 준 그 청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구멍가게 같은 곳에 들어가 음료수 두 개를 산다. 그러고는 그중 하나를 청년에게 내밀었다.
다다음날이었다. 쿠스코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역으로 나갔다.
그날도 청년은 새벽에 쪄낸 옥수수를 놓고 역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청년 앞을 지나가면서 환하게 웃는다. 청년도 나를 기억하는가 보다. 그러고는 이 아름다운 쿠스코를 떠나야 했으므로 나는 그 청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저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뒤를 돌아봤더니 그가 옥수수 두 개를 봉지에 담아 나에게 건넨다. 나는 그가 옥수수를 팔려는 줄로만 알았다. 바보처럼. 난 그 때, 지갑을 꺼냈으니까.
하지만 청년은 두 손을 내저으며 기차에서 먹으라는 몸짓을 해보인다.
가슴 한구석이 내 손에 들린 옥수수의 온기처럼 따뜻해졌다.
내가 오래 기억해야 할 건 그 온기뿐이 아니라, 청년의 미소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교감일 거라 생각한다.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된다.
#034 돈 감추는 법
요즘 세상에도 산적(山賊)이 있다니.
굽이굽이 산을 넘어 탁스코로 가는길은
세상에서 몇안되는 위험한 일로 정평이 나있는 길이다.
한낮에도 게릴라들이 튀어나와 버스를 가로막고는 총을 들이대며
여행객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곳.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눈에 뜨게 줄어든 곳이다.
내 팔뚝의 시계쯤이야 빼앗겨도 상관없는 것이고, 현금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버스에 타기 전,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 양말 속에 감추려는데
어떤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건다.
영어를 할 수 없는 노인은 계속해서 뭐라 중얼중얼거렸다.
내가 알아들을 리 있나.
노인은 한동안을 답답해하더니
내 손에, 상처났을 때나 붙이는 밴드 두 장을 쥐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밴드가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버스에 올랐다.
노인이 내 옆에 오더니 구두 밑바닥(땅바닥에 닿는 구두의 맨 밑면)에
돈을 깔고 양쪽에 밴드 두 장 붙인걸 보여줬다.
물론 돈은 얇은 비닐에 살짝 싸여 있었다.
바로 이게 현금 감추는 방법.
버스 안에서는 걸을 일이 없으니 돈에 상처가 나거나 돈을 잃을 일도 없었다.
하하. 이 깜찍한 할아버지를 보라.
돈을 감추는 방법은 정말 여러가지다.
불가리아의 기차에서 만난 노부부는
쿠키 상자에다 돈을 넣어 비치는 봉지에 넣은 다음 버젓이 들고 다녔다.
누구나 입국한 지 이틀만 있으면 영락없이 털리게 된다는
볼리비아의 라 파스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여행자는
보온병에 돈을 넣어 안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여권을 보여줄 일이 생기자
그가 보온병 뚜껑을 열더니 여권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권을 보여줄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바지 벨트를 풀었다.
기대하시라.
내 오른쪽 넓적다리에 찬 전대를 보고
이번엔 그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좋은 풍경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 가는 새가 있어.
그 새는 좋은 풍경을 가슴에 넣어두고 살다가 살다가
짝을 만나면 그 좋은 풍경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일생을 살다 살다 죽어가지.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얘기.
#036 인도에 도망 온 사람들
싫어하는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많을 거란 생각을 한다. 너는 설탕과 선글라스와 개와 죽음과 웃음을 싫어한다, 너는.
밤새 그녀는 또 울었나 보다. 얼굴이 많이 부어 있다. 늘 울기를 잘하는 그녀는 가끔 말한다. '울고 싶다'든가, '울었다'든가, '울게 될 거 같다'라든가 하는 따위의 시제를 바꿔가며 중얼거린다. 그러는 그녀를 귀찮아해본 적은 없다. 다만 같이 그 기분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조금은 문제였다. 무슨 주문처럼 달고 다니는 그녀의 그런 감정이 나에 비하면 훨씬 솔직하고 당돌하게도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울음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무기로도, 장치로도 작용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만큼 그녀의 울음은 상투적이었고, 습관적이었으므로.
그녀의 생일, 나는 그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고 다시 짐을 싸야 했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헤어져야 했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장미를 샀다. 그녀의 나이 수만큼, 스물여섯 송이의 장미는 대여섯 가지 색으로 혼합되어 있었고, 그녀의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벌레도 먹고, 시들기고 하고 그랬다. 그녀는 장미를 받고도 세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세었으니, 됐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볼에 작별 키스를 했다.
#037 사막에 가자
여행을 하면서 만난 선배 격의 많은 여행자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소리는
'이제 당신도 사막을 여행해야 할 때'라는 소리였다.
사막에 앉아서 밤을 응시하라는 소리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고수들이 늘어놓는 사막 여행담은 가히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가슴에 무늬를 만들어놓는 그 무엇이 있었다.
너무 강렬해서 약간은 서글프기도 한 그 무엇.
살아 있는 생명들을 모조리 삼켜버릴 듯한 밤의 푸르름,
별의 느린 동선까지도 잡아챌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시력,
그리고 절대의 고요, 절대의 침묵, 강박에 의한 외로움-.
그것들이 후배 여행자에게 들려주었던 수다스런 '사막'이었다.
사막에 가자.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 또한 사막이지 않겠냐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막에 가서 제대로 울다 오자
#038 캉허우징
자넨 군대 주소를 적어 주려다 그 주소는 바뀔 수도 있을 거라 말하며 고향집 주소를 적어 줬었지. 영원히 바뀌지 않을 주소라고 말했어. 영원히 바뀌지 않을 주소라는 말에 난 울컥했던 것도 같아. 나도 그런 주소를 갖고 싶었네. 집이 아니라면 거짓말처럼 버젓한 주소라도 말이지.
'흘러 흘러 어느새 나는 칠레와 와 있네' 라고 쓰고 싶지만 그렇게까진 아니네. 집을 나선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네. 그냥 걷고 사람을 만나고, 걷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기분만 들 뿐.
#039 좋아해
낡은 옷을 싸들고 여행을 가서 그 옷을 마지막인 듯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해. 한 번만 더 입고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계속 빨고 있는 나와 그 빨래가 마르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마른 옷을 입을 때 구멍 하나 둘쯤 더 확인하거나 특히 입을 때 삭을 대로 삭은 천이 찢어지는 그 소리를 좋아해.
기차역이나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차가 떠남으로 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인연을 좋아해. 그 당장은 싫고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이 여행에 스며드는 걸 좋아해.
옆방에 장기투숙하는 사람들을 사귄 다음, 그들에게서 소금과 기름을 꾸는 걸 좋아해. 몇 번 귀찮게 하다가 결국엔 내가 만든 요리 아닌 요리를 그들에게 한 접시쯤 건네게 되는 상황까지도.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여행자가 아니라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머문다 싶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들은 나에게 자전거를 내주고 나는 그들에게 가져온 동전 몇 개를 나눠주고,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맥주 한 잔을 권하고 그렇게 해가 기울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싫어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펴놓은 수첩 가득 그들과 주고받은 대화의 흔적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사진 찍는다고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애써 운전석 옆 앞자리에 앉혀주던 기사가 버스를 세우더니 흙탕물 튀긴 버스 유리창을 자신의 옷으로 닦아주는 것도, 산사태가 난 길 위에서 버스를 밀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옷 버린다며 나를 제외시켜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자기가 듣는 음악이라고 음악 테이프를 갈아주며 내 표정을 살피는 기사와 서른 시간이 넘는 여정 동안 기내식처럼 식사를 차려 손님에게 나눠주던 남자 버스 안내원이 때 낀 손톱을 파내다가, 하품까지 섞어가며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많이 왔다고 말하는 것도 좋아.
기약 없이 떠나왔으니 조금 막막한 것도, 하루하루의 시간이 피 마르듯 아깝게 느껴지는 것도, 돈이 다 떨어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당신이 내 국제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겨우 연결된 국제전화인데 내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됐어'라고 퉁명스레 말하는 것도 모두 나쁘지 않아.
「나, 2년 전에 싱가포르에 간 적이 있었어.」「그래?」「근데 싱가포르가 싫었다.」「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곳이지.」「사실,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가 경유하는 곳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한 며칠 쉬려고 내렸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습기때문에, 더위 때문에, 불쾌함 때문에.」
식당 벽에는 붉은 계통의 페인트들이 아무렇게나 덕지덕지 발려 있었고 나는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그가 말했다. 사진 한 장 받아볼 수 있겠느냐고 그가 말했다. 나는 흑백 필름이라 재미없는 사진일 거라고 말했다. 그가 사진을 갖고 싶다는 말에 그의 사진도 몇 장 찍는다. 그가 묻는다. 「특히 왜 싱가포르가 싫었어?」나는 대답한다. 「빌어먹을 한 동성애자가 나를 따라다녔고 그래서 더 더웠지. 4일 동안 머물 예정이었는데 이틀만 머물다 왔어.」그러자 그가 말한다. 「나도 동성애자야.」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 표정은 아무 머뭇거림도 없다. 이런 경우 내쪽에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괜찮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왜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그 말을 하는 거지?」하고 되물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말한다.
「중요하지 않아!」
왜 그말을 한 걸까? 묘한 공기를 어찌해보려고 꺼낸 말이지만, 너무나도 터무니없고 너무나도 형편없다는 생각에 젓가락을 놓고 한참을 혼자 웃었다. 그도 내가 만들어놓은 그 이상한 공기를 어찌해보기 위해서였는지 한마디를 외친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지!」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다닐 수만 있다면, 그래서 뭐든 볼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만 있다면!
#041 쓸쓸
파리에서 영화학교를 다닐 때였어. 난 체질상 학교보다 극장을 더 좋아하고 극장보다 공원을 좋아하고 공원보다는 강을 좋아하고 강가보다는 다리 위를 좋아해. 근데 더 좋아하는 곳이 생긴 거야.
난 그때 인도에 가고 싶었던 거 같아. 그때 우연히도 인도 음악 CD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음악을 듣는데 당최 살기가 싫어지는 거야. 나중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프로듀서를 맡은 라이 쿠더(Ry Cooder)가 그즈음 인도 가서 작업한 음반이었는데 그 음악을 들으러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어. 그곳은 새로 나온 음반이나 잘팔리는 음반들을 듣게끔 해놓았어. 안 사도 되니까 그만이었지.
근데 그렇게 일주일가량을 듣고도 그 음반이 갖고 싶어 당최 죽을 거 같은 거야.
난 그때 죽을 것처럼 인도에 가고 싶었던 거 같아.
86프랑을 내 맘대로 '특별 위로 할인'한 단돈 68프랑을 내고서 말이지.
#042 거리의 악사
내가 연주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아마 그는 매번 그 자리에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그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주한다.
- 요한 세바스찬 바흐
#043 먼 훗날
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잖아요.
#044 이스탄불에서의 첫 아침
아무 대답을 않자 당신은 여행자가 아니냐고 물어온다. 나도 안다. 내가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항상 나는 지도를 처음 받을 때처럼, 지도를 펴들고 버릇처럼 묻는다.
이 지도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냐고. 그건 여행자에게 있어 중요한 시작이며, 절대적 의무이기도 한 일이다.
지금 현재 있는 곳을 마음에 두는 일, 그것은 여행을 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045 영국인 택시 드라이버
택시 기사는 등에 차가운 것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큰 소리로 강조한다.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이라잖아요!」
상대를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건 분명 사랑인 거다.
#046 고양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내가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당신이 그랬다. 당신은 그 게임에 모든 것을 몰입하느라
전날 무슨 일을 했는지 뒤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
당신은 그를 '한번 더 보려고'가 아닌
당신의 확고한 열정을 자랑하기 위해 그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걸 전투적으로 포장했고, 간혹 인간적인 순정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그 끝 지점을 확인하는 순간
큰 눈처럼 닥쳐올 현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그무렵 나는 당신을 그 절망에서 꺼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도화지를 기다랗게 말아 눈에 대고는
그곳을 통해 단 한 가지만 보려드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 어울리는 건 한참 느슨하고 모자란,
나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허나, 당신은 몇 년째 그대로였다.
여전히, 오랜만에 길가에서 마주친 나 같은 사람은
아침 신문에 끼여 배달되어 오는 전단지 같았다.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이 몇 년 전과 똑같은 그대로일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랑을 거둬버린 그를 향해
다시 사랑을 채우겠다고, 네 살 난 아이처럼 억지 부리는 일로
세상 모든 시간을 소진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고장난 장난감처럼
덜그럭덜그럭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 가 있으면서 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균형을 잃은 지 오래이면서도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고양이처럼 돌아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찌 될 것인지, 어찌해야 할 것인지를
결코 당신이라는 고양이는 알려주지 않는다.
#047 시시한
조금만 좋아하지 그랬어요? 너무 열심히 그 시간을 살지 말지 그랬어요?
조금뿐이었다면 안 헤어질 수도 있는데 뭔가를 너무 많이 올려놓으니까 헤어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바꾸기로 한 건가요. 바꿔도 안 시시해지는 걸 찾아서?
신발이 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언젠가 신발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당장은 사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게 해요.
신고 있던 신발은?
몇 달쯤, 적어도 한 달은 이 신발로 너끈히 버틸 수 있다고도 생각하잖아요.
근데 어느 날, 신발을 사요. 단순히 기분 때문에 날씨 때문에 혹은 시간이 남아서일 수도 있겠죠. 새 신발을 사서 신고 나면 쇼핑백에 담겨 한쪽 손에 들린 신고 있던 신발은 얼마나 시시해요? 죽을 것처럼 시시하죠. 시시하고, 도무지 시시한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는 돌리는 내 등짝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시시했겠어요?
시시한 게 싫다고 시시하지 않은 걸 찾아 떠나는 사람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시시해요?
처음에 시시하지 않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보면 시시해요, 사랑은.
너무 많은 불안을 주고받았고, 너무 많이 충분하려 했고
너무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그래서 하중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시시해요, 사랑은.
그러니 어쩌죠? 신발을 사지 말까요? 옆에 아무도 못 오게 할까요?
하지만 그럴 순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건 어때요?
시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확신한 그 지점, 그 처음으로 달려가세요.
그리고 당분간도, 영원히도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 채로 계속 자나 깨나 시시할 거라고, 또박또박 말한 다음. 처음부터 다시.
지구 반대편에 가 있다 생각하고 세상 모든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048 뒤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되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되고 수심 깊디깊은 강을 건너는 일처럼 시작하지 말아야 했을 일이 돼버린다.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자주 뒤를 돌아다본다. 그건 내가 앞을 향하면서 봤던 풍경들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풍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지나온 것이 저거였구나 하는 단순한 문제를 뛰어넘는다. 아예 멈춰 선 채로 멍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일도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뒤돌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냥 뒤로 묻힐 뿐인 것이 돼버린다.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내가 뒤척이지 않으면, 나를 뒤집어 놓지 않으면 삶의 다른 국면은 나에게 찾아와주지 않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 모두는 뒤에 있는지도 모른다.
#049 뭔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한 걸
그만, 두고 온거다. 도저히 포기 할 수 없는건데
과연 나는 찾으러 갈 성격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됐느냐 하면
그게 한낱 물건이면 비행기 값도 계산해야되고, 또 시간적인 것도
계산에 넣어야 되고....... 결국은 물건일 경우,
가지 않을 것 같단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인 경우, 사람 문제인 경우엔 조금 다를 거란 생각.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를 거란 생각.
소중한 누군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곳에 남아 있다면
언제건 다시 그곳을 찾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론 그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지 그건 장담 못하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아마 나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
#050 나이와 발레
나는 마흔이 되는 순간, 두려워질 것 같다. 그건 스물이 되기 직전에도, 서른이 되는 직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 스물이 되기 직전엔 너무나도 많은 눈물을 흘렸고 서른이 되기 직전엔 너무나도 많은 매혹들 앞에 쓰러졌기 때문에 마흔 직전의 시간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숨이 막힐 것 같다. 어떤 일이건, 사람이건, 혹은 그렇지 않은 막무가내의 이유로라도 나는 영 어려울 것 같다.
한 중년 여성이 미국에 몇 개월간 연수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처럼 빠듯하지 않을 터였으므로 그는 떠나기 전부터 미국에 도착하면 시간을 제대로 쓰기로 맘을 먹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우기 시작했다. 바로 발레였다. 마흔이 넘은 여성이 발레를 배우기 위해 발레 연습복을 차려 입고 초급반에 등장한 거였다. 우스웠을까? 아니면 아름다웠을까? 발레 교습소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잔뜩 모인 연습실이었지만 어른이었고, 동양인이었고, 게다가 나이 마흔이었지만 오직 땀만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그 자신을 위로했을 것이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그 때문에 어지러웠을 것이고, 마침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걸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해져서 떼굴떼굴 마룻바닥을 뒹굴었을 것이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발등을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아마도 눈부셨을 것이다. 발끝을 세우고 여러 바퀴를 뱅그르 도는 발레 동작에 감동을 받은 그는, 꼭 한 번만이라도 그걸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한 줄이지만, 목마른 이유다. 초급반 과정을 지나 토슈즈와 우아한 색의 로맨틱 튀튀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데는 과연 그렇게 많은 이유가 필요한 걸까??
#054 따뜻한 기록
우연히. 아주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난 어느 친구의 수첩을 보게 되면서
나는 한참 동안 따뜻했다.
캐나다 기차에서 만난 앙투완.
그의 수첩 속 달력 칸칸에는 베토벤, 존 레넌, 고흐, 아인슈타인.....
이런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태어난 건, 우연의 힘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므로 기억될 가치가 적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았고 그렇게 떠나는 것은
인류에게 더없이 기억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므로
일일이 그 날짜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너는 말했다.
따뜻한 건 ,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어서 가치가 적다고 생각되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055 2004년 11월 20일
2004년 11월 20일, 파리의 아침 7시 40분경,
밤새 『지옥만세』 읽기를 끝내지 못하고 잠들기에 실패.
산책이나 하려고 푸석한 얼굴로 나갔는데 벌써 차들이 밀려 있었다.
차가 막히기엔 조금 이르다 싶은 시간인데 무슨 일일까.
높고 어두운 건물들을 제치고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해서야
커다란 무지개가 떴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이 무지개를 보느라 차들이 밀렸던 것.
내 삶도 저마큼만 높고
아름다웠으면 하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 인생의 무지개가 되면 안 될까?
그 누가 내 인생의 무지개가 되면 안 될까?
환상은 건드려서 이미 부서졌다지만,
희망은 건드리면 무지개가 되잖아. 저렇게.
#056 생일
오늘 오랜만에 밥이 먹고 싶어서
쌀 파는 곳을 겨우 찾아낸 다음 쌀을 사서 밥을 하고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서 들고는
가을 잎들이 뚝뚝 떨어져내리는 공원에 가서 먹었는데
나는 그 정도 행복이면 돼요.
달걀 두 개의 값과 양과 맛을 넘어서지 않는 행복.
#058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이 맵다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060 그래야 하리라
신발의 끈을 느슨하게 매야 하리라. 말소리를 낮추어야 하리라.
바람보다 빨라서는 안 되리라. 눈을 감더라도 마음을 감아선 안 되리라.
전생에 혹은 그 전생에 살았던 땅의 냄새를 맡게 되더라도
그 냄새에 흔들려서는 안 되리라.
순간을 포착하되 거리는 두어야 하리라.
그래야 모든 것들은 매혹적이리라.
갖가지 열매들을 대접받고 심장은 사과의 양 볼처럼 두둑해지리라.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리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있을지도 모르리라.
내가 버렸던 전부와 내가 만나야할 전부가
큰 숲으로 우거져 몇 평 땅을 내주고 쉬라 할지도 모르리라.
그 땅을 가져야 하리라.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어
조금 더 달라고 말해야 하리라. 씨를 뿌려도 좋으리라.
내 것이 아닌 씨앗을 뿌려, 대접할 것들이 자라기를 기다려
식탁에 올려도 좋으리라.
옷을 입지 않는다면 맨몸이어도 좋으리라.
몸의 얼룩쯤이야 달리면 그만이리라.
마음이 내키면 나무 위에 올라 나는 연습을 하고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소리쳐도 되리라.
혹시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하여 홀로 통곡하게 되더라도
그 울음은 흉도 죄도 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이 물으면 되리라.
강도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 나룻배에 나와 당신을 실어
먼 데까지 곤히 잠들며 가자던 약속을 왜 잊었느냐고
태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당신에게 물어야 하리라.
아직도 오지 않는 당신에게, 왜 오지 않느냐고 물어야 하리라.
#061 페루에서 쓰는 일기
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에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을 게 있다는 확신에 기대는 바람에 나는 자주 사람에 의해 당하고 패한다.
한번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여행은 끝이다. 그만큼 자유롭지도 못할뿐더러 기회도 적기 마련.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한 친구를 믿은 적 있으나 그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고 한사람을 믿은 적 있으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 듯하였다. 그 울림은 더 장황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옮겨가면 그뿐이었다. 내가 사람에게 함부로 대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기에 당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라 자위하면 되는 것.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중국의 왕희지가 서예를 연마하기 위해 연못물이 까매지도록 먹을 갈았는데 이를 두고 묵지(墨池)라 했다는 일화처럼 나는 사람을 믿기 위해 끊임없이 다닐 것이고 그렇게 다님으로써 사람의 큰 숲에 당도하기를 희망한다.
역사가 길지 않은 믿음은 가볍다. 그 관계엔 부딪침만 있고 따분함만 있을 뿐이며 혼자인 채로 열등할 뿐이며 가벼울뿐더러 균형마저 잃는다. 심연은 깊은 못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끝이고 더 이상 아름다워질 것도 이 땅 위에는 없다.
#062 산토리니 섬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은 몇년 동안 푹 썩었습니다. 쨍쨍한 햇빛을 받고도 몸 기운이 들뜨지 않는 곳, 따뜻한 물기가 머리속에 고였다 사라지곤 하는 첫 경험 같은 곳, 이곳 풍경은 자연이라기보다 차라리 정신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음을 도드라지게 하는 풍경은 얼마 전부터 보기 힘들어진 당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몽상의 나라에서 한참을 떠도는 꿈. 그 꿈을 그리워하던 당신이 이곳으로 집을 옮긴다면 어떨까요. 마주치는 시선만으로 생기는 관계조차 만들지 않으려는 당신, 이곳에 도착해서야 당신 마음의 병도 나을 듯 싶습니다. 누워 엎드린 소를 닮은 이 섬에서 소의 눈망울을 하고 종일 바닷가에 나와 마음을 내어 말리는 건 어떤가요.
석양이 보이는 해변의 카페에서 이곳 술인 우조 몇 잔에 마음속 동굴 벽을 타고 흐르던 점액이 씻겨 사라질 무렵에는 돌고래 떼가 백사장 앞에서 한참을 놀다 갔습니다. 그들의 방문을 끝으로 흐릿하고도 아슬아슬한 저녁 햇살의 물결이 도착합니다. 큰 점으로 뭉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기 위해 흩어지고요. 그래도 나는 일어설 줄 모릅니다. 산토리니에서의 감정은 이렇듯 날마다 팽팽합니다.
함부로 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함부로 살다가 함부로 짓밟힌 저를 발견하고서야 비장한 삶의 각오를 떠올리는 제가, 비참했습니다. 삐뚜름한 마음으로 삐뚜름한 세상과 대적했던 나나 당신 역시, 부끄럽게도 폭발할 일이 있다면 이곳이 적당하단 생각입니다.
흘려보내도 쏟아 부어도 다 받아내야 할 것만 같은 이곳의 광채는, 얼마 안되는 상실감을 짊어지고 와서 여전히 엄살을 떠는 이들에겐 공격적이기도 하겠지만 이만한 곳에서 이만한 쓸쓸함을 누리는 것도 행복이겠습니다.
막배가 끊길 시간, 부두로 향하려다 등대 위로 올라갑니다. 푸른 초원 위를 지나는 제가 보입니다. 그런 저를 보고 바람이 말을 붙입니다. 저는 이곳의 말을 몰라 대답조차 할 수 없어 한참 바람의 얼굴만 바라봅니다. 보고 싶은 당신, 여기는 세상의 끝입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안 되는 고통들은 마비되었습니다. 섬을 찾아야 간격이 보이고 침묵이 떠오르는 이유 때문입니다.
#063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사람들의 성씨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그것을 따르지 않는데 주류를 이루는 성씨는 모두 일곱 개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월요일에 난 아이는 달. 화요일에 난 아이는 명마(名馬)로 일컫는 형마. 수요일은 바람. 목요일은 '날다'의 의미인 푸부. 금요일은 별. 토요일은 횃불. 일요일은 해다.
사람에 따라 보통 서너 개의 이름이 있고 많은 경우엔 수십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오랜 세월 이어오던 일처다부나 일부다처에서 오는 자연스런 현상임과 동시에 가계도의 혼선을 의미한다. 게다가 종교적인 의미의 좋은 이름이 있으면 그 이름을 취하고 승려가 되면 또 다른 이름을 취해야 하므로 이름 수는 자연스레 늘어나게 마련.
불심 하나만으로, 오체투지로 몇개월씩 걸려 조캉 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 일을 하다가도 오며 가며 사원에 들러 공을 들이는 사람들. 길에서 마주치는 어린 승려들의 장난기 섞인 시선에 발길을 늦추고, 동네 여기저기서 밀려나오는 향 연기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모든 세상의 길이 한 겹이 아니라는 걸 알게도 된다.
그런 그들 가슴은 평생 가도 울 일이 없지 싶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인 까닭이다. 그들은 지상의 지붕 위에 올라서서 먼 곳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 먼 곳에 신비에 가까울 정도의 현실이 꿈뜰거리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마, 살아가는 일보다는 우주 중심을 향해 겸허해지기 위해 고개 숙이는 일이 먼저라고 믿으며 사는지도......
만약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그곳에 머물다 돌아오더라도 티베트를 기억하지는 말자. 다만 꿈꾸자. 황망히 모든 것을 쓰러뜨리고 난 다음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그곳에 모든 것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064 그린 파파야 향기
차를 빌려 1번 국도를 타고 달랏에서 며칠을 머문 뒤 해변 휴양지인 나트랑(NhaTrang)에 도착해 아무 방이나 잡았다. 천장이 높은 방, 타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싫지 않은 냉기.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한 수백 초 동안 깊은 잠을 자다 일어났다. 머리 위에 팬이 느릿느릿 돌고 다시 더워지는 한낮의 기운을 피하기 위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갔다. 미친 듯 달려가 푸른 바다 속에 나를 담갔다.
바다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산호섬 방문, 스노클링, 오찬, 그리고 낚시 따위가 배에 하루 동안 차려놓은 메뉴들이라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과 프랑스, 미국, 중국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 종일 위의 메뉴들을 즐기거나 아니면 태양을 피해 열대 과일들을 잘라 먹는 일이 배 위에서 할 수 있는 느릿느릿한 것들이다. 배가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된 주방의 요리는 점심 무렵이 되어 맛볼 수 있었는데 갑판 위에 차려진 음식 때문에 수영복 고무줄이 터질 것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음식 접시를 나르고 있는 청년을 보라. 그 사내의 뒷모습부터가 조금 낯익지는 않은가. 그 청년은 그날 하루 여정의 책임자였다. 나에게 유난히 신경을 쓰며 친절을 베푼 '친구'이며 스노클링할 때 툼벙거리며 지독한 장난을 걸어온 친구이며, 산호바위에 발을 베었을 때 붕대를 감아준 친구.
그날 하루 동안의 여정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름을 묻는다. '김'이라고 한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조금 늦게 놀란다. 「혹시 아버지가 한국인인가?」베트남 전쟁 때 건너왔던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한다. 순간 나는 오므라든다. 내 놀라는 반응에 그는 일부러 웃는 것 같다. 그의 눈과 나의 눈에 비슷한 물기가 감돈다. 그 멀게만 느껴지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날아온 내게서 어쩌면 그는 형제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애써 말하지 않고 나에게 잘해주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뭐라고 괜히 이름을 물어 그의 있지도 않은 아픔을 들쑤신 것이다. 그렇게 짤막하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져 한참을 걷던 나는 몸을 돌려 힘없이 태양 쪽으로 향해 걸어가는 그를 힘차게 불러세웠다. 이번엔 내가 그에게 해줄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돼서였다.
#066 바깥
집에 가기 싫어 여관에 간다.
집을 1백미터 앞두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발길을 돌려
1백미터를 걸어내려와 여관에 든다.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 없어 쓸쓸한 것도 아닌데
오늘도 난 여관 신세를 지기로 한다.
집이 주는 안락함은 두렵고, 생활의 냄새는 더 두렵다.
해야 할 일들이 오래 중단된 채 어질러진 책상과
며칠째 설거지를 하지 않아 접근하기조차 무서워진 부엌 주변과
이불이나 옷가지에서 내뿜는 익숙한 냄새 모두가 어느 한순간
역하다는 사실이 나를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여관은 유난히 푸석푸석한 아침을 선사해주고
익숙하지 않은 욕실의 낯선 비린내를 맡게 하고
창문으로 새들어오는 햇빛에 속을 쓰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순간 불쑥 이상한 위로가 방문한다.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혼자가 아니어서
아무튼 괜찮다는 사실에 문득 내 자신은 근사해진다.
창문을 열어도 옆 건물의 벽만 보이는 곳이
뭐 그리 엄청난 위안을 줄까마는 아무것도 없기에 동시에
모든 확률이 존재하는 여관, 방,
그 낯선 곳에서 나는 잠시 어딘가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는 것이다. 사치하는 것이다.
「아줌마, 저 있던 방, 1박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는 내게
어딜 나갔다 오겠냐고 묻는다.
「네, 집에 좀 다녀오려구요.」
#067 케 세라 세라
언제나 한 가지 대답이면 된다.
닥치는 대로....../될 대로 되라./난 겁내지 않는다./이것도 운명이다.
이 모든 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한다.
라틴어 '케 세라 세라(Que Sers Sers)'
내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을 듯.
세세하게 일일히 신경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사는 사람.
그냥 뭉뚝하게, 되는대로 터벅터벅 살아가는 사람.
자잘한 신경을 많이 쓰고, 꼼꼼하게 계획 세워서 사는 사람이라도
모두 잘 살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반대, 조금 심드렁하게, 또는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잘 살지 못하리란 법도 없는 듯.
멋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멋있다.
안 씻는 사람 안 씻어도 멋있다. 일생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은 그게 멋이다.
아둥바둥 살아가는 너 같은 사람은 그것도 그대로 멋이다.
솔직히 가끔은 못하는 것이기에 꿈꾼다.
씩씩하게, 못하는 거지만 대범하게, 자신 없지만 통 크게.
말 그대로 케 세라 세라(Que Sers Sers) 그렇게.
6개월의 여행을 준비하는 도중에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처럼 대충대충 사는 놈이 왜 많은 사람들을 잃는 거냐? 버리는 건가?
그리고 왜 남들은 너에 대해 있지도 않은 많은 말들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나는 알지. 잘난 척하기 때문이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케 세라 세라(Que Sers Sers).
#068 삶은 그런 거예요
한 아궁이에서 지은 여러끼니를 나누어 먹으며
낯선 풍경에 놀라 단체 사진을 수없이 찍으며 각별한 감정들을 나눴죠.
심지어 돌아오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요.
삶은 그런거예요.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것.
#069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뭔가 하나하나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 아니면 뭔가 좀 빡빡하게나마, 겨우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 둘 중 하나면 좋겠는데,난 지금 그런데. 뭔가 그래도 약하게 나마 돌아가는 느낌. 그게 아니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하루하루가 그럭저럭 맞물려 그나마 최소한 돌아가는 느낌이 있다면 그 아침은 다행스럽고 고마운것.
스페인의 작은 시골 마을에 할아버지가 산다.
할아버지 이름은 '쿠르도' , 일흔 다섯.
이 할아버지는 시골 밭에다 35년째 하루도 쉬지 않고 교회를 짓고 있다.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없이, 그저 자기 손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하루 한 끼 식사하는 시간만 빼고는 온 시간을 벽돌 올리는 일에 하루를 쏟는다.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 교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도 가난했다.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인생을 사셨던 분. 그래서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밭에 기르던 작물들을 모두 뽑아버리고는 터를 다지고 그날부터 하나하나 교회 건물을 올리고 있다.
물론 넉넉하진 않다. 그냥 되는대로 나무 베어다가 기둥 올리고, 흙 퍼다 벽돌 구워 벽 만들고, 그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다 보면 뭔가 이루어지리라는 것, 이것이 칠순의 노인이 사는 방식이다. 하루 한 끼만의 식사를 하는 것도 그 이상은 필요 없다고 느끼기 때문. 그 모든 것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말랐으되 청년의 것만큼 다부지다. 이 할아버지를 누가 말리겠는가.
이해 할 수 있을것 같다. 천분의 일, 만분의 일,
나는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
그게 누구와 연관된 것이든, 아니면 그냥 나하고 약속한 것이든,
그래서 조금 이해할 수 있단 얘기.
꾸물꾸물 살며, 그 자리에 뭔가를 쌓아올리는 사람.
#070 포도나무 선물
칠레 시골 마을에 포도농장을 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운전을 하면서 그 시골길을 지나다가
문득 코끝으로 스치는 포도향기에 취해 포도농장엘 들르게 됐습니다.
여인은 포도를 좀 살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정성스럽게 포도를 따서 바구니에 담아 그 여인에게 건냈습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여인은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터무니없이 아주 비싼 가격을 불렀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같았습니다.
「네?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거죠?」여인은 다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 정말 맛있는 포도입니다.
세상 그 어떤 포도보다 맛에 있어선 자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높은 값을 부른 이유는,
이 포도들이 열린 한 그루 포도나무를 통째로 선물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와서 이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가십시오.
어떻하시겠습니까?
이 값을 치르고 포도나무 한 그루를 선물 받으시겠습니까?」
여인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해마다 초가을 무렵이 되면 청년은
포도를 따러 오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여섯 번째 가을이 되던 해,
둘은 포도나무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포도나무의 가지를 일부 잘라 말린 뒤,
서로의 반지도 조각해 가졌습니다.
단지 여인의 아름다움에 홀려 돈도 받지 않고
거저 포도를 주었다면
또다시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포도나무까지 돈도 안 받고 선물했다면
여인은 굳이 이곳에 포도를 따러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례하지만 돈을 받음으로써 그녀가 그곳에 와야 하는
이유까지도 선물했던 것입니다.
#071 카메라 노트
Finland_Helsinki : 밖에는 비가 오고 카페 안은 따뜻하다.
Japan_Tokyo : 늦은 밤 거리, 세워놓은 자전거, 고요함 그리고 막막함.
Italy_Venice : 훔쳐서 데리고 오고 싶었던 화분.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 창가에 혼자 살고 있던 화분.
Argentina_Buenos Aires : <Provocative> 도발하는, 자극적인.
Argentina_Buenos Aires : 길에서 탱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던 노인. 한국인 순영 씨의 사진을 가방에 넣어 다녔음.
France_Paris : 센강가에서 나는 울었지. 물과 나무는 사람을 벅차게 하는 게 있어.
Chile_Valparaiso : 시장 구경은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한눈에 알게 되는 곳.
India_New Deli : 어둔 호텔. 산책마저도 쉽지 않았던 시장거리. 난 그도시에 대해 아무 기억이 없다.
India_Benares : 살면서 배운 몇가지 습관과 형식이 일제히 무너지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India_Agra : 근데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드는 건 그곳이 많이 변했을까봐 그게 겁난다.
Bulgaria_Kopulibshziza : 한번 가면 오던 길을 하얗게 까먹고... 오래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 우리 거기 가지 않을래?
China_Pingyao : 아름다운 고성의 도시. 평생 시계를 보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Mexico_Guadalajara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누군가를 마중하는 길이다.
Itary_Venice : 조금은 멀리 있어도 돼, 내가 조금 걸으면 되니까.
Italy_Venice : 창문을 올려다보며 어린아이가 자라고, 사각 창문에 맞춰 삶이 재단되고 인화된다.
Italy_Venice : 베니스는 어렵지 않다. 그저 느끼면 된다.
Itary_Venice : 하지만 언제나 혼자인 길이었다.
U.S.A._New York : 추운 곳. 한여름에도 추운 곳. 마음이 추워서 외로운 곳.
U.S.A._New York : 네 이름이 톰이라고 했던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던가.
France_Paris : 적어도 난 그 사람 때문에라도 절망적이질 않았다.
United Kingdom_London : 기다리는 것이 만져지기라도 하는 것인가.
France_Paris : 오늘이 지나가고 희망이 지나가고 사랑도 지나가면, 다른 날이 올까?
Germany_Berlin : 꼭 보폭을 맞출 필욘 없는 것 같아 조금 늦게 가도, 조금 멈췄다 가도, 목적지는 나오거든?
Itary_Venice : 길들여지다 미쳐버린 당신의 나무, 당신의 바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미쳤을까요. 그렇게 무장했을까요.
Morroco_Pez :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지 않으면 살아있는지 어떤지 모르잖아요. 조금 무서운 말 같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Bulgaria_Train : 혼자가 아니라는 말, 참 좋죠?
Mexico_San Miguel de Allende : 후회 적게 하고, 남한테도 잘하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나한테도 잘하기. 알았지?
Vietnam_Hochiminh : 평소엔 그냥 그런 거였는데 어느 한 사람으로 인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명사로 각인되는 경우 있잖아요, 왜.
China_Namgyung : 사람들이 당신을 쳐다볼 거예요. 당신의 그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 기분이 좋아질 거라구요.
Rumania_Train : 하루 스물네 시간이 열두 시간밖에 안 될 때가 있다. 하루 스물 네시간이 마흔여덟 시간일 때가 있다.
Nepal_Pokhara : 어쩌면, 어쩌면 그곳에서 우리가 안고 사는 이 지지부진한 삶의 틀은 한순간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France_Paris : 시원한 나무 그늘. 그 나무 그늘 아래 챙 넓은 모자. 읽다 만 책 한 권. 파래서 너무 파래서 눈물이 날 것 같은 하늘. 그 하늘 아래를 아주 천천히 걷는 발걸음의 속도.
Cambodia_Siem Reap : '어딘가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건 마땅히 갈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능성을 획득하고 싶은거지. 그 가능성을 따라가다 보면 풍덩하고 빠질 데가 나오는 거야.
Tibet_Lasa : 늘 그자리에 있었고, 늘 사람들 눈에 띄었던 것들인데. 어느날, 갑자기 바람처럼 우리 눈에, 마음에 걸려드는 일이 있습니다.
Tibet_Lasa : 가야지요. 차곡차곡 쌓은 환상도 펴보면서, 때론 그것들이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도 봐야죠.
Vietnam_Hochiminh :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장만옥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가 되고 싶어. 나랑 같이 내 시계를 1분만 봐줄 수 없겠어?」
France_Paris : 지하철을 타면 많은 이야기가 생각나. 세상에 없는 이야기들이.
France_Paris : 만나는 일이 피고 지는 꽃인가 했습니다.
France_Paris : 난 인생에서 아직 찾지 못한 보물 한 가지를 찾으려 해.
#000 도망가야지, 도망가야지 epilogue
고등학생 시절, 지방 사는 친척의 결혼식에 부모님 대신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눈 내리는 날이었다. 그때 내 안주머니엔 축의금 봉투가 들어 있었는데 나는 목적지에 내려서도 결혼식장으로 가질 않고 눈 오는 길을 걷고 또 걷다가 다시 기차를 탔다. 일주일 동안을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이었고, 단독이었던 나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죽을 것처럼 두들겨 맞았지만 그래도 좀 살 것 같았다.
처음 나의 그런 욕망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한 권의 두꺼운 책처럼, 드넓은 광장처럼 그것은 얼굴을 쉽게 드러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것에 흠뻑 빠지고야 말았다.
거기, 길이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운수 좋은 일이 닥칠 것 같은 길이었다. 애초부터 그 길을 가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다른 길로 가려 했지만 뭔가 자꾸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던 길이었다, 그래도 그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다른 길로 가다보니 어느새 길은, 이쪽 길로 이어져 있었다, 다른 길로 가도 한 길이 되는 길의 운명. 길의 자유. 그 길 위에 나는 서 있었다. 그 길에 서 있음으로써 나는 살 것 같았다.
쑥쓰러운 외도였다. 하지만 그 외도가 이렇게 나를 큰길로 내몰게 되리라곤 그 누구도, 나도 미리 짐작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돌이켜보는 일만으로도 아찔한 감이 없지 않다. 어떻게 그 많은 곳을, 그 낯선 곳을 다녔단 말인가.
하지만 고맙다. 운명이 나를 그리로 몰아준 것에, 내 운명의 묘한 자장에 감사한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찾게 된, 근 10여 년간 여행을 하면서 메모지처럼 들고 다녔던 노트 뭉치들을 들춰보면서 가슴에 큰 돌 하나가 올려진 기분이 들었던 건 뭔가를 계속 끼적이며 살아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왜 그걸 하며 살아온 것일까.
그 많은 곳을 다니면서 그냥 다닌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쉬임 없이 써야만 했던 것이 살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었는지 또는 존재의 한 방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분명하지 않음이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열정이 아니고는 그럴 수도 없었을 터. 분명 나에겐 열정이 있었고 아직도 열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밎기지 않는다. 이제 그 열정에 쓰게 된다면 끼적이고 쓰고 하는 일이 아닌, 더 다니는 일에 쓸 것이다.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행의 기록이라 포장되었지만 여행의 기록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여행의 지침서도 아니다. 하지만 이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영원히 떠나 있는 사람이고자 했던 소망 가까이로 몇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책이 세상에 나왔으니 나는 이제 비로소 떠난 게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처 때문에 떠난다. 나또한 다르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떠나 눈발이 된다. 사는 일 또한 그랬다. 차곡차곡 쌓인 사람과 희망에 대한 환상으로 살면서, 때론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까지도 바라보는 것.
끈임없이 뭔가가 닥치는 일이 인생이고, 그 닥치는 일은 잘 맞이하고, 헤치고 그러나 다시 처음인 듯 끌리고 하는 게 인생의 길이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모든 이들의 바람처럼 그 인생을 통째로 느끼고 싶었고, 느끼며 살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책의 바탕은 그것이 된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그 느낌들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이 가주었음 한다. 내 길에 당신도 함께해줬으면한다.